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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물] '엄친아' 천어우 뉴욕 상장으로 수조원 '돈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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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립' 청년의 쥐메이, 4년만에 中 화장품 시장 장악

[뉴스핌=강소영 기자] 청년 구직난이 심화하고 있는 중국에서 뉴욕상장으로 벼락부자가 된 한 젊은 사업가의 '대박' 스토리가 화제가 되고 있다. 회사 설립 4년 만에 1조 5000억 원의 주식부호가 된 '쥐에미(聚美優品,JUMEI)'의 CEO 천어우(陳歐)가 그 주인공이다.<본보 4월 14일 '또하나의 우량 N株, 최강 화장품 쇼핑몰 ′쥐메이′ 참조>

천어우 CEO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엄친아'다. 연예인을 연상케 하는 수려한 외모와 미국 스탠포드 MBA스쿨 졸업의 화려한 학력을 가지고 있으며, 부모가 모두 공무원인 중산층 출신 엘리트다. 특히 31세로 바링허우(80後 1980년대 출생자)인 그는 미혼의 젊은이라는 점에서 중국 여성과 방송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쥐메이는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을 할인가격으로 온라인 판매하는 업체다. 라네즈와 미샤 등 한국의 화장품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쥐메이는미국 상장으로 설립 4년 만에 시가총액 34억 3300만 달러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16일 상장한 쥐메이의 발행가는 1주에 22달러, 이날 최종가는 발행가보다 9.91%가 오른 24.18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35.8%의 지분을 보유한 천어우의 주식자산은 13억 8000만 달러(약 1조 5000억 원)에 달하게 돼 일약 '신흥부호'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쥐메이의 성공 상장 후 각종 중국 언론은 8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청년 실업가의 '벼락 부자' 탄생기를 상세히 다루며 그에게 쏟아지는 사회의 관심을 대변해냈다.

◇ 게임으로 첫 사업도 '대박'
천어우는 원래 게임 전문가였다. 학창시절부터 온라인 게임 실력이 뛰어나 각종 대회에 입상해 많은 상금을 타기도 했다. 그는 16세때 전액 장학금과 중국 국내에서 받은 온라인 게임 상금을 가지고 싱가포르로 유학을 떠났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명문 이공대학인 난양기술대학(NTU) 재학 4학년이던 200년 첫 번째 창업을 시작했다. 온라인 게임 플랫폼 가레나(Garena)가 그의 첫 작품이다. 천어우는 미국 유학길에 오른 후 가레나를 수백만 달러에 매각했다. 가레나는 지금까지 건재하며 싱가포르 최고의 온라인 게임 플랫폼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공무원 출신인 그의 부모는 천어우의 창업을 극구반대했다고 한다. 천어우의 부모는  "창업은 취직 못 하는 능력없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다. 인재는 박사가 되어야 한다"며 그의 사업을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뜻을 꺽지 않고 사업을 이어갔고, 가레나가 고가에 매각되자 그의 부모는 천어우의 사업능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가레나가 매각된 후 일 년 뒤 중국의 유명 IT기업 텐센트가 약 천만 달러를 이 기업에 투자했지만, 천어우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는 "24살의 젊은이에게 수백만 달러는 큰돈이다. 난 사업을 더욱 확장하기 위해 유학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게임천재에서 화장품 사업가로
천어우는 사업이 승승장구하던 2008년 미국 스탠포드 MBA 스쿨에 입학했다. 그가 유학길에 오른 이유는 다소 독특하고 간단하다.

"별볼인 없는 사업도 CEO의 학력이 좋으면 투자자가 몰렸다. 나는 하버드와 스탠포드 MBA 출신들이 시장 투자자에게 인기가 많은 것을 알게됐고, 그래서 스탠포드를 택했다"고 밝혔다.

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스탠포드에서 쥐메이의 창업멤버인 시각디자인 전문가 다이위선(戴雨森)을 알게 됐고, 훗날 중국에서 엔젤투자자의 투자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천어우는 귀국 후 온라인 기반 회사를 설립했다. IT 기술력·시장 분석 능력과 전략 구축 및 투자금 유치 능력이 뛰어난 천어우, 가레나를 통해 기술력을 인정받은 류후이(劉輝) 그리고 시각디자인 전문가 다이위선이 함께 모여 온라인 게임 광고회사 리메이크(Reemake)를 중국에 선보였다. 이때 천어우는 중국 온라인 교육 업체 신둥팡(新東方)의 창업자 중 한 명인 쉬샤오핑(徐小平)을 설득해 18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외국에서 쌓은 경험이 중국 국내시장에서 약효를 발휘하지 못했다. 창업 몇 개월만에 자본금이 바닥을 드러내자 천어우는 사업 전환을 제안했다. 온라인 화장품 판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자는 것이었다.

천어우와 동업자는 3일만에 화장품 판매 플랫폼을 구축하고 소비자의 반응을 기다렸다. 예상외로 소비자의 반응이 빨리 왔고, 수익도 크게 늘었다. 천어우는 2010년 회사명을 쥐메이로 바꾸고 중국의 화장품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 후 쥐메이는 중국 온라인 시장과 화장품 시장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고속성장을 이어갔다.

당시 중국에선 드물었던 '구매 후 불만족시 30일 이내에 무조건 환불' 등 파격적인 고객서비스와 유명 브랜드 상품을 고집하는 전략으로 경쟁업체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회사 설립 9개월만에 직원이 200여 명으로 늘었고, 현재는 총 직원 500명, 매출 5~6억 위안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천어우는 "처음에는 남자 여럿이 여자 화장품을 판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중국에서 여성 화장품 판매로 성공한 사람들은 전부 남자였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 여성 심리를 잘 아는 '화장품 사업가' 

인기스타 한경과 함께 회사 홍보에 나선 천어우 쥐메이 CEO(오른쪽)[출처:BAIDU]
사실 게임과 도전을 즐기는 '상남자' 천어우에게 여성 화장품 사업은 다소 뜻하지 않은 결과였다. 그러나 그는 여성 심리를 꿰뚫은 통찰력으로 중국 여성 화장품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됐다.

그는 여성이 외재적 아름다움에 쉽게 현혹되는 성향을 적극 이용했다.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있는 전(前)슈퍼주니어 멤버 한경(韓庚)을 모델로 기용해 브랜드 지명도를 높였다.최근에는 주주자격으로 한경을 뉴욕 상장에도 동행시켰다. 한경은 중화권 연예인으로는 처음으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입성했고, 이 소식은 쥐메이의 상장이 더욱 화제가 되는 '효과'를 냈다.

천어우는 성공한 엘리트 출신 '훈남'인 자신의 이미지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각종 방송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대외활동을 통해 회사와 자신의 지명도를 모두 높이는데 성공했다. 2011년 3월 쥐에이여우핀은 벤처캐피탈인 세콰이어 캐피탈로부터 약 1000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등 시장 투자자가 주목하는 벤처기업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뉴스핌 Newspim] 강소영 기자 (js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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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김일성 동북항일연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만주(滿洲)는 요녕성(遼寧省), 길림성(吉林省), 흑룡강성(黑龍江省), 그리고 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 동부를 포괄하는 지명이다. 이중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동북(東北)이라고 한다. 중국은 만주 명칭보다 동삼성(東三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동삼성에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을 창설한 것은 1933년 9월 18일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중국 공산당은 1928년 봉천에 만주성위(滿洲省委)를 설치하고 전 만주에 걸친 공산 세력 확장에 나섰다. 그러던 중 1933년 9월 18일 남만에서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사를 창설하였다. 제1군 제1사는 중국 공산당 만주성위(滿洲省委) 남만특위(南滿特委) 관할 반석현위(盤石縣委) 산하 유격대를 중심으로 만들었다. 1사 창설 당시 반석현위 산하 유격대장은 진옥진(陣玉震)이었다. 부대장은 박한종(朴翰鍾)이었고, 대원은 한인 20여 명이었다. 이 유격대가 차츰 발전하여 1930년 10월 중국 홍군 제32군 남만유격대가 되었다. 병력은 한인 80명을 포함 230여 명이었다. 총대장은 경기도 용인 출신 이홍광(李紅光)이었다. 이부대가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사가 된 것이다. 군장(軍長)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사장(師長)은 이홍광(李紅光)이었다. 남만의 반석은 당시 한인 공산주의운동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반석현위 중국 공산당 주요 간부는 대다수 한인이었다. 대표적 인물이 오성륜(吳成崙), 박윤세(朴允世), 한진(韓震), 조걸(趙杰) 등이다. 오성륜은 김성주의 역사 날조와 관련하여 대립 관계에 있는 인물이다. 오성륜을 제대로 알아야 김성주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오성륜은 1898년 11월 7일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영와면(永瓦面) 용남동(龍南洞)에서 태어났다. 1906년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건너와 간도에서 살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중퇴했다. 열아홉 살 때 상해에서 김원봉의 의열단에 가입했다. 1922년 3월 상해 황포탄부두(黃浦灘埠頭)에서 김익상(金益相)·이종암(李鍾巖)과 함께 일본군 육군 대장 다나카를 저격했으나 실패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에 있던 중, 탈출하여 독일로 갔다. 독일에서 다시 소련으로 건너가서 모스크바공산대학을 졸업했다. 1926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다. 1929년 중국 공산당 지시에 따라 만주 반석현위 간부가 되었다. 그는(오성륜) 중국 공산당 만주성위 반석현위 간부로서 요즘으로 따지면 특수부대 성격의 이홍광의 개잡이대(打拘隊)를 지도했다. 이홍광의 개잡이대는 반석현위 일대의 지주는 중국·조선인을 가리지 않고 <개犬>로 부르며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이 개잡이대가 사실상 이홍광의 1사 핵심 전력이기도 했다. 오성륜은 외모가 빼어났다. 말과 글이 수려했다. 당연히 이 지역 일대의 여인들이 그를 좋아했다. 오성륜이 남만주 거주 한인 중 제일 먼저 중국 공산당에 입당시킨 인물이 이동광(李東光)이다. 이동광 여동생 이영숙은 미모가 빼어난 과부였다. 오성륜이 이영숙의 집을 거점으로 잡았다.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이영숙은 오성륜에게 반해버렸다. 오성륜이 시키는 심부름이면 거절하는 경우가 없었다. 둘은 만난 지 1개월이 안 돼 동거에 들어갔다. 이 사실을 안 오성륜의 상해 동거녀 두군서(杜君恕)가 이영숙을 찾아왔다. 두군서는 오성륜의 의열단 친구 김성숙의 중국인 아내 두군혜(杜君慧)의 친동생이었다. 두군서도 오성륜을 처음 보았을 때 사랑에 빠져버린 여자였다. 두 여자가 머리끄덩이까지 잡고 싸웠다. 오성륜은 독일에서도 독일 여자와 깊은 사랑을 한 바 있었다. 그는 염문을 뿌리고 다니는 풍류남아였다. 1941년 동북항일연군 잔여 세력이 소련으로 넘어갈 때 같이 가지 않고 당시 중국 열하성(熱河星)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에 투항하였다. 야마모도 히데오(山本英雄) 라는 일본 이름을 지어 친일 활동하였다. 사망 일자는 알 수 없다.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은 1934년 3월 동만특위(東滿特委) 관할 연길현(延吉縣) 삼도위(三道崴)에서 창설했다. 제2군 제1사 역시 한인 주진(朱鎭)이 대장으로 있던 유격대가 근간이었다. 총병력은 565명이었는데, 이중 한인이 549명이었다. 제2군 군장(軍長)은 중국인 왕덕태(王德泰)였고, 제1사 사장(師長)은 한인 주진(朱鎭) 이었다. 동북인민혁명군은 총 11개 군(軍) 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이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을 1936년 7월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으로 개편하였다. 그 이유는 1935년 7월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채택한 '통일전선전술' 결정에 따른 것이다. 코민테른의 '통일전선전술'은 두 가지 방식으로 되어 구성돼 있다. 하나는 모든 사람을 반파쇼인민전선으로 묶어 자기 나라의 독재정권을 쓰러뜨리는데 총동원하되, 공산당이 그 주도권을 잡아 독재정권을 타도한 후, 공산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국가에 있어서는 자기 민족의 주권을 찾기 위해 전 민족을 반제민족통일전선으로 묶어 해방운동을 벌이되, 공산당이 그 주도권을 잡아 해방이 이루어지면 바로 공산정권을 세우는 방식이다. 중국 공산당은 코민테른이 제시한 두 번째 방식에 따라 동북인민혁명군을 동북항일연군으로 그 명칭을 바꾼 것이었다. 즉 외양상으로 폭이 넓은 '항일민족통일전선' 결성을 위해 공산주의 계급혁명 색채가 짙은'인민혁명군' 명칭을 버리고, 대신 항일 구국군의 민족적 이미지가 있는「항일연군」을 사용한 것이다. 이른바 중국 공산당의 1935년 8·1선언이 그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코민테른 지시대로 항일민족전선 결성을 위해 1936년 4월부터 오의성 부대와 접촉하기 시작하여 8월에 양군(동북항일연군, 오의성 부대) 총합 2,000여 명의 병력으로 합동작전을 펼쳐 무송현성(撫松縣省)을 공격하여 만주군을 격멸했다. 이때 김성주는 동북항일연군으로 전속(轉屬: 원적을 바꾸어 소속을 바꿈)하였다. 전속부대는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군 제6사였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1-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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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왕즈이 잡고 말레이오픈 3연패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날카로운 공격력까지 장착해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된 안세영(삼성생명)이 2026년 첫 국제 대회에서 우승했다. 안세영은 11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1000 말레이시아 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왕즈이(중국)를 56분 만에 게임 스코어 2-0(21-15, 24-22)으로 물리치고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우승 상금은 10만1500달러(1억3000만원)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 [사진=BWF] 2026.01.11 psoq1337@newspim.com 지난 해 8차례 만나 모두 왕즈이를 제압했던 안세영은 이날 승리호 상대 전적 17승 4패가 됐다. 왕즈이는 지난해 12월 21일 왕중왕전 결승에서 패한 뒤 "안세영은 항상 모든 나라 선수들에게 롤모델"라며 믹스트존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고 눈물을 쏟았다. BWF 관계자조차 "왕즈이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고 할 만큼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이번 대회는 안세영에게 긍정적인 변수가 많았다. 8강에서 맞붙을 예정이던 세계 3위 한웨이(중국)가 감기 몸살로 기권했고 준결승에서 최대 난적인 세계 4위 천위페이(중국)의 기권으로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 왕즈이는 이날 경기 전 "안세영은 허점이 거의 없는, 매우 철저하고 완성도 높은 선수"라며 승리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안세영은 1게임 초반 몸이 덜 풀린 듯 범실을 쏟아내며 1-5까지 밀렸다. 뒤늦게 리듬을 찾은 안세영은 하프 스매싱을 앞세워 득점을 쌓아 10-11로 인터벌에 들어갔다. 휴식 후 특유의 송곳샷이 살아나며 역전했고 셔틀콕을 상대 엔드 라인과 사이드 라인 위에 떨어뜨리며 21-15로 게임을 잡았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이 11일 월드투어 슈퍼 1000 말레이시아 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승리한 뒤 포효하고 있다. [사진=BWF SNS 동영상 캡처] 2026.01.11 psoq1337@newspim.com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이 11일 월드투어 슈퍼 1000 말레이시아 오픈 여자 단식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BWF SNS 동영상 캡처] 2026.01.11 psoq1337@newspim.com 2게임에선 짜릿한 뒤집기쇼를 펼쳤다. 9-17까지 밀려 패색이 짙었으나 수비와 길게 가져가는 랠리로 추격에 나섰다. 왕즈이가 20-19로 먼저 게임 포인트에 들어갔지만 안세영이 듀스를 만들고 23-22로 앞선 뒤 대각 스매시로 챔피언십 포인트를 뽑았다. 2026년을 여는 첫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안세영은 환호하는 말에이시아팬들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포효했다.   psoq1337@newspim.com 2026-01-1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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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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