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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직 창업주부터 박정원 회장까지…두산 총수 변천사

기사입력 : 2016년03월02일 16:52

최종수정 : 2016년03월03일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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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게 가족경영체제 유지..박두병 초대회장 등 7명이 오너 회장

[뉴스핌=조인영 기자] 박정원 두산 회장이 두산그룹 회장을 맡는다. 이로써 두산은 가족 경영의 전통을 유지함과 동시에 4세 경영시대를 맞게 됐다.

<그래픽=뉴스핌>

2일 박용만 회장은 신임 두산그룹 회장에 조카 박정원 회장을 추천했다. 박정원 회장은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의 첫 손자인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두산은 1896년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896년 8월 1일 지금의 서울 종로4가 배오개에 두산의 모체인 박승직상점을 열었다. 1915년엔 화장품인 박가분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으며 1925년에는 회계처리가 근대화되면서 주식회사 박승직상점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36년 박승직 창업주는 아들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에게 경영을 물려줬다. 박두병 회장은 박승직상점을 계승해 두산상회(현 두산 글로넷)를 설립했다.

다음해인 1952년엔 미쓰비시그룹이 경영하던 소화기린맥주회사를 인수해 동양맥주(현 OB맥주)로 키워냈다. 이후 두산산업, 동산토건(현 두산건설) 등을 설립해 두산그룹의 터전을 닦았고 1960년에는 합동통신(연합뉴스 전신)을 인수하면서 언론계에도 진출했다.

박용오 회장은 박두병 초대 회장의 6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경기고, 뉴욕대를 졸업한 뒤 1965년에 두산산업에 입사했으며 1996년부터 두산그룹 회장에 오르며 경영전반을 진두지휘했다.

2005년 박용오 당시 그룹회장이 동생 박용성씨에게 회장직을 넘겨줄 때만 하더라도 형제 승계를 통한 가족경영의 좋은 사례로 손꼽혔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 박용오 회장이 두산의 경영현황을 비방하는 투서를 검찰에 제출함으로서 이른바 '형제의 난'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분식회계 등 오너 일가의 치부가 드러나 국내외적으로 충격을 안겼다.

경영권 다툼으로 형제들을 고발한 박용오는 이후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2009년 11월 4일 자택에서 향년 72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2005년 박용성 회장이 두산그룹 회장에 오른 뒤 2009년에는 박두병 초대 회장의 사남인 박용현 회장이 2012년까지 두산 회장직을 지냈고, 형의 뒤를 이어 2016년 3월 최근까지 박용만 회장이 약 5년간 두산을 이끌면서 형제 경영을 지속해왔다.

박용만 회장은 2일 열린 이사회에서 조카인 박정원 두산 회장을 천거했으며, 박정원 회장은 오는 25일 두산 정기주총에 이은 이사회에서 의장 선임절차를 거친 뒤 그룹회장으로 정식 취임할 예정이다.

박용만 회장은 앞으로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으로서 두산인프라코어 턴어라운드에 힘을 보태는 한편, 두산 인재양성 강화 등을 위해 설립된 DLI의 회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또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소임을 다하는 데도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박정원 회장은 사원에서부터 시작해 지난 30여 년 동안 두산그룹의 변화와 성장에 기여하면서 준비된 리더로 자리매김 해왔다.

특히 2007년 두산 부회장, 2012년 두산 지주부문 회장을 맡으면서 두산그룹의 주요 인수합병(M&A)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한편, 턴어라운드 기반을 마련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일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

 

[뉴스핌 Newspim] 조인영 기자 (ciy810@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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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일본군 무장해제 "항복사실 모르느냐?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전의(戰意)가 없는 것을 보이기 위해 기관단총을 모두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도 만일을 위해서 각각 산개하면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몸을 날렸다. 아. 그때 그 바람 냄새, 그 공기의 열기, 아른대는 포플러의 아지랑이, 그리고는 아무것도 순간적이었지만 보이지 아니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가? 우리 주변엔 돌격 태세에 착검한 일본군이 포위하고 있었다. 워커 구두 밑의 여의도 모래가 발을 구르게 했다. 코끼리 콧대 같은 고무관을 제독총에 연결한 험상궂은 방독면을 뒤집어쓴 일본군이 차차 비행기를 중심으로 원거리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그리던 조국 땅을 밟고 처음 맞은 분위기였다. 동지들은 눈빛을 무섭게 빛내면서 사주경계를 했다. 그러나 아직 기관단총을 거머쥐지는 아니했다. 여의도의 공기가 움직이지 않는 고체처럼 조여들어 왔다. 뿐만 아니었다. 타고 온 C46형 수송기로부터 한 50여m 떨어진 곳의 격납고 앞에는 실히 1개 중대나 되는 군인들이 일본도를 뽑아 든 한 장교에게 인솔되어 정렬해 있었다. 그 앞에는 고급장교인 듯한 자들이 한 줄 또 섰고, 장군 몇 명도 있는 듯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8월 18일 한낮의 그 뜨거운 여의도 열기가 우리를 더욱 긴장시켰다. 격납고 뒤에까지 무장한 군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중형전차의 기관포도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환호하는 광복군.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비행장 아스팔트 위엔 한여름의 복사열이 그 위기의 긴장처럼 이글대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땀에 젖어 있었다. 기막힌 침묵이 십여 분이나 지났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행동도 취해 오지 않았다. 마침내 우리가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일본군 고급 장교들이 늘어선 쪽으로 한걸음 씩 움직였다. 각자 산개, 조심하라! 누군가가 이렇게 나직하게 말했다. 서해 연안으로 비행기가 고도를 낮출 때 누군가가 유서를 쓰던 일이 이 순간 내 머릿속에서 상기되었다. 일본군 병사들은 우리가 다가서자 의외로 포위망을 풀 듯이 비켜섰다. 우리는 아직 기관단총을 어깨에 멘 그대로였다. 일본군이 길을 열어주자, 그들도 일본군 육군 중장을 선두로 한 장교단이 우리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조선주차군사령관 죠오쯔끼(上月良夫)였다. 쬬오쯔기는 그의 참모장 이하라 소장과 나남 사단장과 참모들을 뒤로 거느렸다. 우리도 좌우로 벌려 섰다. 쬬오쯔기가 「나니시니 이라시따노?(무슨 일로 왔소?)」말문을 열었다. 퍽 야무지게 보였다. 우리는 말 대신 영등포 상공에서 뿌리다 남긴 선전 전단을 내밀어 주었다. 우리의 임무가 일본어와 우리말로 적힌 전단이었다. 거긴 또 우리가 이렇게 들어오게 된 사연도 적혀있었다. 우리는 한 장씩 그 전단을 다른 일본군 장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쬬오쯔끼는 이를 받아 읽고, "일본은 정전만 한 상태이니 일단 돌아갔다가 휴전 조약이 체결된 다음에 재입국하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위협했다. 자기네 병사들이 꽤 흥분되어 있으니, 만약 돌아가지 않으면 그 신변 보호에 안전책임을 지기가 어렵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에 이범석 장군이 "네 놈들의 천황이 이미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사실을 모르느냐? 이제부터는 동경의 지시가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맞섰다. 그러나 쉽사리 양보하지 않았다. 옥신각신 말이 몇 번 건너 왔다 갔다. 갑자기 쬬오쯔끼는 한 일본군 대령에게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경서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 마중을 나와 있던 참이란 말을 하고는 물러가 버렸다" 이범석 장군은 일본군 측에 "조선 총독을 만나 담판 짓겠다'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일본군 무장해제 임무를 띠고 국내로 들어 온 '광복군 국내정진군'은 아무런 소득도 올리지 못한 채 다음 날 8월 19일 14:30분 여의도 기지를 이륙하여 중국으로 돌아갔다. 광복군은 미군정이 시작되고 나서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 개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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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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