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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문 팔던 소년, 1천억대 주식 갑부 되다

기사입력 : 2016년05월04일 13:00

최종수정 : 2016년06월14일 17:19

주식농부 박영옥 “장기투자가 답...위기는 항상 기회”

[편집자] 이 기사는 05월 04일 오전 09시12분 프리미엄 뉴스서비스'ANDA'에 먼저 출고됐습니다. 몽골어로 의형제를 뜻하는 'ANDA'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과 도약, 독자 여러분의 성공적인 자산관리 동반자가 되겠다는 뉴스핌의 약속입니다.

 [뉴스핌 Newspim] 김양섭 기자 (ssup825@newspim.com)

"오픈된 것(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종목)만 1200억원 정도 될 것 같다.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웃음)"

1200억원. 전업투자자인 박영옥(스마트인컴 대표)씨가 오로지 주식투자로만 일궈낸 자산이다. 공개되지 않은 자산을 더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는 주식을 농사에 비유한다. 농부가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품종을 선택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공부를 하는 것처럼 주식도 투자할 기업을 열심히 찾아야 한다. 그리고 파종한 후에는 늘 논에 나가 작물들을 살피는 것처럼 투자한 회사와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식투자 철학이다. 그는 투자기간을 적어도 3~5년 정도 잡는다. 어떤 종목은 10년 넘게 보유하기도 하다. 그는 “장기투자만이 답이다”고 강조한다. 직장인들에게도 주식투자를 하라고 권유하다. 기업들의 성장 과실을 공유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매매’라는 표현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매매로 접근하면 아무리 벌어봐야 10억원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1000억원 이상의 주식을 갖고 있다. 시작은 4500만원에 불과했다.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 <사진=김양섭 기자>

◆ 신문 팔던 소년, 1천억 주식 갑부 되다

박 대표는 전라북도 덕유산 자락의 작은 산골마을에서, 가난하지도 부자도 아닌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박 대표가 여섯 살 때 병석에 누워 2년여 병치레 끝에 돌아가셨다. 이후 가세는 급속히 기울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흙수저’집안이다. 장남인 그의 어깨는 무거웠다. 지게를 지고 3km 넘는 거리를 걸어 땔감을 해와야 했고, 방학 때는 광산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긴 했지만 중학교 입학조차 고민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담임선생님이 어머니를 설득하고, 첫 등록금을 대신 내주기로 하고서야 그는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선 3년여 섬유가공 공장에서 일을 했고, 이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신문을 팔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그 같은 상황을 원망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면서 지게를 진 것은 아니지만,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가 나의 가장 강력한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신문을 팔면서 '영업'의 묘미를 몸으로 체득했다. 공장에서 일할 때보다 더 적은 시간을 일하면서 돈을 더 많이 벌었기 때문이다. 남는 시간에 공부도 할 수 있었다.

신문을 팔면서 영업성과에 따라 수익에 차이가 난다는 사실, 장사를 잘하면 월급쟁이보다 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이 때 몸으로 느꼈단다. 장사를 잘 하는 기업에 투자해 성과를 공유한다는 그의 주식투자 철학이 이때부터 자리잡은 게 아닌가 싶다.

대학은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중앙대학교 경영학부에 입학해 4년간 장학금을 받았고, 월 10만원씩 보조금도 받았다.

"한 달 동안 입에서 단내 나도록 일해야 겨우 12만원 받았는데, 공짜로 배우면서 용돈 10만원까지 받는 세상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공짜'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사회가 주는 돈이었고, 이를 계기로 사회에 항상 고마움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의 증권가 입문은 지도교수 추천 영향이 컸다. 증권분석사 시험에 도전해보라는 조언으로 대학교 4학년 때 시험을 쳐 합격했다. 학생 신분으로 1987년 현대투자연구소에 취업했다. 이듬해 대신증권에 입사했다. 증권사 입사를 결정하면서 그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증권사에서 4~5년 근무를 한 뒤 자문사에서 펀드매니저를 하고 이후 자신만의 고유펀드를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증권가에 입문한 그는 승승장구했다. 자문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옮겨 일하다가 교보증권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1997년에는 38세에 압구정 지점장으로 발령이 났다. 때는 바야흐로 1997년 9월. 외환위기(IMF) 촉발 직전이다.

지점장으로 일하던 시절 IMF가 터졌다. 본인 계좌는 물론 고객의 돈이 반의 반토막이 났다. 어머니 명의로 되어있는 집을 팔아 고객의 손실을 보전해줘야 했다. 법적인 책임은 없었지만 도의적 책임은 있었다.

“도저히 못견디겠더라. 내가 나중에 잘되더라도 두고두고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승승장구하던 그가 지독한 실패를 경험하게 됐던 순간이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천만 다행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때 실패가 없었다면 오늘날 성공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신봉했던 기술적 지표들은 일부 유용하긴 하지만 주가와 거래량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원리를 당시 터득했다”

IMF를 계기로 그는 투자패턴을 완전히 바꿨다. 장기투자자로 돌아섰다. 이때 그의 수중에는 4500만원이 전부였다. 농부의 마음으로. 좋은 기업을 찾아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기업이 가진 땅을 보려고 현장에 가보고, 근처 부동산 중개업소도 다녀봤다. 회사 관계자들을 만나러 수차례 회사를 방문했다. 그 회사 분위기를 두루 살피기 위해 화장실도 가보고 식당도 가봤다. 그렇게 해서 확신이 서야만 ‘동업’의 마음으로 투자에 나섰다.

◆ '9.11테러' 전업투자자 계기.."기회는 기다리면 온다"

9.11 사태는 그에게 기회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외부 악재였다. 그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판단했다. 고민도 많이 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 당시 그의 자산은 10억원 정도. 그는 “확실한 기회로 생각했다. 그동안 좋게 보던 주식들이 다 급락했는데 그런 주식들을 사놓고 잠수를 탔다”고 했다.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고 전업투자로 나선 것이다. 당시 그는 삼성증권에서 투자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9.11 사태는 그가 본격적으로 제도권에서 벗어나 전업투자자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그는 그동안 봐왔던 좋은 종목을 몇 개 골라 풀베팅했다. 주변에서 돈을 빌려와 투자금을 더 높이기도 했다. 그는 “평온한 시기에 그런 베팅을 하지는 않는다. 그때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총 30억원 정도를 주식에 투자하고 기다렸다. 6개월여만에 그가 산 종목들은 대부분 이전 시세를 회복했다.

그는 항상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다. 그는 “기다리면 기회는 언젠가 온다. 준비해온 사람만 그 기회를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08년 금융위기, 2013년 유럽재정 위기 등도 그에겐 모두 찬스였다.

그는 지수 전망을 잘 하지 않는다. 누가 코스피 지수 전망을 물어본다면 그의 대답은 “모른다”이다. 또 그가 투자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요소도 아니다.

“코스피 지수는 전체적인 주시시장의 상황을 나타내는 것일뿐 당신이 투자한 기업의 상황은 아니다. 거기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

◆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주식? “이미 수억원대 주식 보유”

그는 주식을 오래 보유한다. 기본적으로 3~5년 정도를 보고 투자를 시작한다. 기업을 발굴한 뒤 소량을 투자하고 공부와 소통을 계속한다. 확신이 서면 본격적인 투자를 한다. 매수기간은 짧아도 6개월, 길면 1년을 넘긴다. 이렇게 해서 어떤 주식은 3~5년 기다렸다 팔지만 일부 종목은 10년 넘게 보유하기도 한다. 그가 말한 ‘동업’이다.

그는 주로 대기업보다는 중소, 중견 기업 투자를 선호한다. 그리고 그 업종의 1등 기업을 좋아한다.

“내가 동업을 하는 마음으로 투자를 해야 하는데, 대기업들은 여러가지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고, 경영자와 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기업 말고도 다양한 업종들의 1등 기업이 너무 많다. 자기 주변에서 알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모르는 기업에 절대 투자하지 말아라.”

그는 자식들에게 이미 9년전 1600만~2500만원정도씩 증여를 했다. 주식투자 종잣돈 성격이다. 대학생인 두 딸의 자산은 그사이 무려 8억원, 12억원대로 늘어났다. 막내 아들의 자산은 3억원대다. 그는 1000만~2000만원이 얼마 안되는 것 같지만 스노우볼(Snowball)효과가 발휘되면 자산이 이렇게 커지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녀들 각자 특성에 맞는 종목을 골라주려고 노력한다.

“큰 딸은 마케팅, 비즈니스, 여행 등에 관심이 많고, 둘째딸은 심리학 전공하는데 사람들의 심리 파악을 잘 하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막내는 자동차나 장난감 이런 부분에 관심이 많다”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큰 딸에게 ‘진도’주식을 사줬는데, 큰딸의 의견을 듣고 금방 팔았다. 내 기준에는 좋은 기업이지만 딸의 기준으로는 아닌 듯 해서 그렇게 했다”

박 대표는 안랩에 투자해서 3년만에 250%의 수익률을 거둔 경험이 있다. 둘째 딸 이름으로도 이 기업에 투자했다. 박 대표는 1만4000~1만5000원대에 매수해서 4만원 내외에서 팔았다. 결과적으로 250% 정도의 수익을 보고 팔았지만 이후 대선테마가 붙으면서 폭등해 16만원대까지 올랐다. 4만원대에 매도 당시 박 대표가 ‘매도’의견을 냈지만 둘째 딸은 ‘보유’의견을 냈었다.

그렇다면 안랩을 4만원대에 매도한 것은 성공한 투자일까, 실패한 투자일까.

그는 "성공한 투자"라고 했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수익만 보자'라는 게 그의 투자철학이기도 하다. 투자할 당시 그는 안랩의 주식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을만큼 좋은 주식었다고 회고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꾸준히 성장할 기업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테마주로 엮이는 순간 오히려 그는 매도했다.

"기업의 가치와 무관한 재료로 요동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럴 때는 팔고 나오는 것이 내 투자원칙 중 하나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주식이 또 있느냐’고 묻자 그는 뜬금없이 결혼식 주례를 봤던 얘기를 꺼냈다.

“인생 살아보니 자전거와 같더라. 결혼이란 2인용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결혼했다고 바로 행복해지는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투자한 기업중에 ‘삼천리자전거’라는 주식이 있는데 그런 의미로 삼천리자전거 주식 10주씩 실물로 결혼하는 신랑, 신부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물려주고 싶은 주식에 대한 구체적인 종목 대신 그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치를 줄 수 있는 기업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 프로필

1961년 출생
1988년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92년 중앙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석사
1987년 교보증권 지점장
2007년~2014년 새누리당 중앙위 금융·재정분과위원장
2006년~현재 스마트인컴 대표이사 회장
2013년~현재 중앙대학교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
2013년~현재 김창준 정경아카데미 발전위원회 회장
2015년~현재 통일과나눔재단 후원회 '통나무' 공동대표

[뉴스핌 Newspim] 김양섭 기자 (ssup825@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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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3남' 김동선 경영 검증 시험대 [서울=뉴스핌] 남라다 기자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인 김동선 부사장이 이끄는 한화갤러리아의 백화점 업계 존재감이 흐려지고 있다. 백화점 시장 점유율도 6%대로 내려앉았으며, 수익성도 악화되면서다.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미래비전총괄이 부사장직에 오른 지 만 1년 만에 거둔 성과가 미흡하자 책임론이 부상하고 있다. 경쟁사들이 본업 경쟁력 강화를 앞세우며 간판을 교체하고 대대적인 리뉴얼을 꾀하는 사이에, 갤러리아는 유통업과 다소 동떨어진 신사업인 식품에 집중한 영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김 부사장은 명품 강화와 백화점과 호텔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 두 가지로 본업 반등을 꾀하고 있다.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 [사진=한화갤러리아] ◆김동선 부사장 취임 1년...그룹 존재감은 UP 26일 업계에 따르면 김동선 미래비전총괄이 올해 11월로 부사장직에 오른 지 만 1년이 지났다. 현재 김동선 부사장은 한화갤러리아를 비롯해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한화로보틱스, 한화모멘텀,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 미래비전총괄과 함께 ㈜한화 건설부문 해외사업본부장을 겸임하고 있다. 이로써 김 부사장은 한화그룹 내 총 6개 계열사의 미등기 임원에 이름을 올린 상황이다. 김 부사장이 지난 2020년 한화에너지 글로벌전략담당 상무보로 입사해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시작한 지 4년여 만의 일이다. 그는 그간 그룹 내에서 입지를 다져오면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2022년 갤러리아부문 전략부문장 전무에 선임됐으며, 이듬해 3월 한화갤러리아가 한화솔루션으로부터 독립법인으로 분사하며 그룹 내 영향력을 키웠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경영 승계 과정에서 유통·서비스부문을 김동선 부사장에게 물려주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한화갤러리아 지분도 올해 대폭 늘렸다. 한화갤러리아는 김 부사장이 지난 8월 23일부터 9월 11일까지 20일간 진행된 공개매수를 통해 2816만4783주를 확보했다. 이로써 김 부사장의 보유 지분은 기존 2.32%에서 16.85%로 높아져 2대 주주로 올라섰다. 1대 주주는 36.31%를 보유한 ㈜한화이고, 3대 주주는 한화솔루션으로 1.39%의 지분을 갖고 있다.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갤러리아 명품관 외관 전경. [사진=한화갤러리아] ◆신사업 집중에 본업 경쟁력 약화 김 부사장 개인적으로는 그룹 안에서 존재감이 뚜렷해졌지만, 내실 경영엔 부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본업인 백화점 사업은 오히려 퇴보하며 김 부사장의 경영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1년 사이에 주력 사업인 백화점의 사업 경쟁력은 약화했다. 한화갤러리아의 시장 점유율은 2022년 7.8%에서 2023년 6.8%, 올해 3분기에는 6.4%를 기록하며 꾸준히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실적도 뒷걸음치고 있다. 한화갤러리아는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매출 역성장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한화갤러리아의 올해 3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114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 감소했고, 19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지난 2분기 영업손실 45억 원에 이어 3분기까지 2개 분기 연속으로 적자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호텔 사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 1~3분기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리조트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4%가량 줄어든 4182억 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은 54억 원으로 전년 동기(179억 원) 대비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다만 김동선 부사장이 역점적으로 추진했던 파이브가이즈는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신사업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파이브가이즈 운영사인 에프지코리아 등 식음료 부문 매출은 3분기 기준 370억 원으로 지난해 말(104억 원) 대비 3배 이상 뛰었다. 그러나 식음료 부문 매출 비중이 3분기 기준 전체의 9.4%대로 크지 않은 만큼 한화갤러리아 성장을 이끌기엔 역부족이다. 백화점 매출 비중은 90.6%에 달한다. 본업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는 이유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웨스트에 오픈하는 에르메스 매장 전경. [사진=한화갤러리아] ◆본업으로 다시 눈 돌리는 김동선 이에 한화갤러리아는 계열사 간 시너지 극대화로 승부수를 띄운 모습이다. 한화 유통·서비스 부문(한화갤러리아,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은 포인트 교차 사용 제도를 시행하며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이번 개편으로 백화점과 갤러리아몰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던 'G포인트'를 한화리조트를 비롯해 호텔 사업장과 골프장, 아쿠아플라넷 등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H-라이브 클럽' 포인트 역시 갤러리아백화점 등 한화갤러리아의 사업장까지 사용처를 확대한다. 지난달에는 통합 유니폼을 도입하며 브랜드 통일성을 강화했다. 통합 유니폼 도입은 각사 모두 10년 넘게 사용한 유니폼을 교체하며 브랜드 통일성을 확보하고 고객 인지도 제고의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최근 발표한 '명품관 리뉴얼' 계획 역시 수익성 반등을 위한 자구책이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서울 압구정동 명품관 웨스트관을 내년 하반기까지 리뉴얼해 이스트관과 마찬가지로 럭셔리 공간을 넓힐 방침이다. 컨템포러리 브랜드 위주로 이스트(EAST)에 비해 상대적으로 명품 브랜드가 적었던 웨스트(WEST) 공간을 대폭 리뉴얼한다는 구상이다. '갤러리아=명품'이라는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해 백화점 큰손인 VIP들을 잡아 실적 개선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한화갤러리아 관계자는 "김 부사장은 미래비전총괄로서 단순 신사업을 넘어 향후 회사를 이끌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가시적 성과를 낸 파이브가이즈 등 식음료 부문은 물론, 본업인 백화점, 호텔 등을 포함해 향후 다양한 사업군에서 회사의 미래 성장 동력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nrd@newspim.com 2024-11-2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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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문가비 아들 친부는 정우성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모델 문가비(35)가 출산한 아들의 친부가 배우 정우성(51)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우성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는 24일 "문가비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한 아이는 정우성의 친자가 맞다"며 "아이의 양육 방식에 대해서 최선의 방향으로 논의 중이다. 아버지로서 아이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출산 시점과 두 사람의 교제 여부, 결혼 계획 등 사생활 관련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알렸다. 배우 정우성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앞서 두 사람 사이의 득남 소식이 알려졌다. 두 사람은 2022년 한 모임에서의 만남 가까이 지냈으나 교제한 사이는 아니었고 결혼 계획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6월 문가비가 임신 사실을 알렸고 정우성은 양육의 책임을 약속했다고 한다. 문가비는 뷰티 예능 프로그램 '겟잇뷰티' 등으로 얼굴을 알린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다가 지난 22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들 출산 사실을 고백했다. 그러나 결혼 여부나 아이 아버지에 관한 언급은 없어 궁금증을 샀다. 당시 문가비는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소식에 아무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저는 임신의 기쁨이나 축하를 마음껏 누리기보다는 가족들의 축복 속에 조용히 임신 기간 대부분을 보냈다"며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건 오로지 태어날 아이를 위함이었다. 마음 한편에 늘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꽁꽁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사진=문가비 인스타그램] 이어 "세상에 나온 아이를 앞에 두고 여전히 완벽한 준비가 되지 않은 엄마지만 그런 내 부족함과는 상관없이 존재 자체만으로 나의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주는 아이를 보며, 완벽함보다는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찬 건강한 엄마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가비는 1989년생으로 2017년 온스타일 예능 '매력티비'와 '겟잇뷰티'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SBS '정글의 법칙'과 KBS '볼빨간 당신' 등 각종 예능에 출연했다. 여러 광고와 헤라서울패션위크 등 패션쇼 무대에도 섰다. jyyang@newspim.com 2024-11-2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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