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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명암…반도체 빅딜부터 해운·조선까지

기사입력 : 2016년06월09일 12:51

최종수정 : 2016년06월09일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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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조동석 기자]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에 속도를 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대마불사 법칙은 과거 얘기가 됐다. 부실기업은 속속 정리됐다. 결과 재무구조는 개선됐다. 30대 대기업 상호지급보증액은 1998년 2월 33조5000억원에서 같은 해 3월 말 23조5000억원으로 축소됐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업구조조정 추진계획 및 국책은행 자본확충 등 보완방안 합동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형석 사진기자>

◆ 외환위기의 추억

이런 가운데 30대 대기업은 1998년 5월 경쟁력 있는 4~5개 주력업종으로 전문화하겠다며 사업구조조정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지부진했다.

김대중 정권은 삼성, 현대, LG, 대우, SK 5대 그룹 총수를 모아 놓고 “주력 기업 중심의 경영 체제를 갖춰 달라”며 그룹사 간 빅딜을 제안했다.

전자업계에선 반도체가 중심이었다. 삼성은 자동차 사업을 포기하고 대우에 넘기는 대신 반도체 사업은 유지할 수 있었다.

현대와 LG가 문제였다. 당시 현대와 LG는 반도체 시장에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1999년 4월 LG그룹은 정부의 반도체사업 구조조정 계획(빅딜)에 따라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겼다.

금융부문 구조조정은 더욱 빨랐다. 5개 은행, 5개 증권사, 4개 보험, 16개 종금사, 2개 투신사, 5개 리스사, 20개 상호신용금고, 12개 신협이 정리됐다. 아울러 1998년과 1999년 재정지원자금 50조원이 투입되면서 부실채권 정리를 통한 은행의 건전성 회복이 추진됐다.

◆ 건설·저축은행으로 이어진 구조조정

외환위기 이후 건설경기가 침체에 빠졌다. 그러나 건설업체 수는 1997년 3900개에서 2000년 8000개 가까이 됐다. 정부는 과다공급이 원인이라는 판단을 하고 구조조정 정책과 건설 수요 촉진 정책을 함께 펼쳤다.

경기둔화와 부동산경기 위축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불러왔다. 같은 해 8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뱅크런(Bank run) 현상이 일어났다. 경쟁력 약화와 영업력 위축, 건전성 악화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저축은행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 정부가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기회를 놓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외환위기 이후 막대한 공적자금이 은행에 투입되면서 저축은행의 재무상황이 불안했던 가운데, 2005년 고정이하여신이 큰 폭으로 상승했을 때 자산을 늘리는 방법으로 부실 비율을 축소했을 뿐이란 지적이다.

◆ 엇갈리는 구조조정 평가

LG가 반도체 사업을 현대에 넘기자 현대는 이내 자금난에 빠진다. 빅딜에 돈을 쓰면서 적기 투자를 못한 탓이다.

반도체 경기가 다시 하락세로 이어지며 현대는 결국 10조원의 빚을 지고 2001년 채권단으로 넘어갔다. 이후 하이닉스로 사명을 바꾼 뒤 지난 2012년 SK에 인수되기까지 10년 동안 워크아웃과 매각 추진 등을 반복했다. 아울러 LG는 경쟁력 약화의 길을 걷게 됐고, 현대는 전자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반도체 빅딜’ 없었다면 지금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벌어진 한국과 일본 간 반도체 업계의 치킨 게임을 고려하면 그렇다.

업체들이 치열한 원가 경쟁을 벌였고, 현재 D램 제조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3개사만 남았다. 반도체 빅딜이 순기능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빅딜은 저주라고 불릴 만큼 나쁜 사례로 평가됐다. 그러나 최근 평가는 달라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일 조선업 등에 12조원을 투입하면서 이들 업체를 최대한 살리겠다는 구조조정 안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구조개혁을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과제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국제경제학회장 유재원 건국대 교수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력이 고갈돼 있는 것이 근본적인 병인이므로 이를 되살리는데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고 했고, 한국재정학회장 최병호 부산대 교수는 “산업구조조정은 시급한 과제로 한계산업의 퇴출과 함께 신산업의 육성을 위한 정책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뉴스핌 Newspim] 조동석 기자 (dsch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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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 주행거리 두배 증가 배터리 개발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이 에너지 밀도를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칭화(淸華)대학 화학공학과의 연구팀은 '음이온이 풍부한 용매화 구조 설계'를 개발해 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불소 함유 폴리에테르 전해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중국 관찰자망이 30일 전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논문 형식으로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에 등재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폴리에테르 전해질은 고체이며, 연구팀은 해당 전해질을 사용하여 전고체 배터리를 제작했다. 제작된 전고체 배터리는 604Wh/kg의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150~320Wh/kg인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 밀도가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동일한 무게의 배터리이지만 해당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는 두 배 이상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 거리가 두 배 증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500km가량을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가 1000km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 테스트도 통과하였다. 못을 박아도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120도의 높은 온도의 박스 안에 6시간 동안 방치되었지만, 연소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500회 이상 충방전을 거치면서도 에너지 저장 용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된다면 많은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진다. 전기차의 주행 거리는 두 배 증가하며, 드론의 비행 거리도 두 배 증가하게 된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역시 부피당 저장 용량을 크게 끌어올리게 되며 ESS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칭화대 연구진이 개발한 전고체 전해질의 도식도 [사진=네이처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9-3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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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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