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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 소재 국산화, 위험 감수할 수 있는 토양 필요”

기사입력 : 2019년08월07일 21:15

최종수정 : 2019년08월07일 21:15

“모방으로 성공하던 시절 끝나..혁신하려면 위험 감수할 줄 알아야”
연구개발 정부지원·대-중소기업간 협력 강화·지속성 있는 정책 필요

[서울=뉴스핌] 나은경 기자 =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국내 기업인들은 이 분야에서 국내 기업이 지금보다 더 성장하지 못하고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날 한 자리에 모인 7명의 기업인들은 정부와 대기업, 중소·중견기업 모두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동시에 지금은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눈 앞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지원과 대-중소기업간 협력, 지속성 있는 정책과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 분야 공동토론회 패널토론 모습. 왼쪽부터 박영수 솔브레인사장, 이종수 메카로 사장, 주현상 금호석유화학 팀장, 김호식 엘오티베큠 사장, 서진천 프리시스 대표, 이현덕 원익IPS 대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김태성 성균관대 교수, 황철성 서울대 교수 [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일본이 한국을 대상으로 수출을 규제하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서 과학기술과 관련 분야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토론회가 이뤄졌다. 이번 토론회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공학한림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주최했다.

이날 참여한 기업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를 만드는 △솔브레인 △메카로 △금호석유화학과 부품을 만드는 △엘오티베큠 △프리시스, 장비를 만드는 △원익IPS △주성엔지니어링이다.

◇ "위기이자 성장할 수 있는 기회"

기업인들은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확대한 지금의 상황이 위기라고 인식하면서도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소재·부품·장비 분야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의견을 같이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와 같은 소자기업의 위상에 비해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로는 정부와 대기업, 중소·중견기업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우리 반도체 산업은 35년간 경쟁국이 없어 편하게 1등해 왔다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우리보다 30배 큰 중국이 우리보다 더 빠르게 추격해오고 있기 때문에 모방이 아닌 혁신으로 1등해야 한다. 혁신은 위험을 감수할 때 나오는 것인데 아무도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종수 메카로 사장도 “어떤 모험도 하지 않으려는 사회분위기가 있는데 리스크 감수를 통한 개발의지 명분이 있어야한다”며 “안정적인 양산성을 확보하기까지 중소기업의 영세성과 시장크기가 우려요인이라 대기업과의 협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실패에도 관용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다..

박영수 솔브레인 부사장은 “보편적 기술이 적용된 것들만 국산화 됐고 일본이 생산하는 기술적 난도가 높은 제품은 국산화가 되지 않았다”며 “따라잡힐 수 있는 게 아니라 고유기술을 확보해서 무역흑자를 낼 수 있는 장기전략을 취해야 지속성장이 가능한 국산화 결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진천 프리시스 대표이사는 “부품 회사로서 말하자면 국내 시장은 시장성 자체에 한계성이 있다”며 “한계를 극복하고 국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시장성이 없기 때문에 부품업체들이 선뜻 비즈니스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역설적으로 국내 소재·부품·장비를 좀 더 프리미엄을 주고 사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국내기업이 핵심기업일 때 프리미엄으로 국산제품을 먼저 구입하고 범용 제품은 해외 공급처에서 공급받는다.

◇ "시비 가릴 시간에 국산화 가능한 토양 만들어야"

시급한 상황인 만큼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기술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토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황 회장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라며 “우리는 국산화를 위해 얼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얘기할 게 아니라 전쟁이 터졌으니 싸워서 이기는 기술개발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해법으로는 △정부지원 △대-중소기업간 협력 △지속성있는 정책과 컨트롤타워이 공통적으로 지적됐다.

서 대표이사는 “정부가 특정 타깃과 프레임을 가지고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 분야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부족했다”며 “탄탄한 기업이 혜택받지 못하고 좀비기업이 수혜받다가 사라지면서 국가적 낭비로 이어질 때가 있었는데 좀 더 규모있고 갖춰진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대기업과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중소·중견기업의 협력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현덕 대표는 “소자업체는 그동안 국내 장비업체를 국산화 파트너, 이미 양산화 성공한 설비를 이원화시키기 위한 파트너 정도의 인식으로만 바라보며 협업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며 “소자업체 자체의 기술개발이나 기술동력을 위해서도 장비업체가 더 규모있고 기술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소자업체와 장비업체간 협력관계가 긴밀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수 사장은 “전체 반도체 소자 특성에 미치는 영향이 있어 해당 소재를 생산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수요-공급 업체 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테스트베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대기업이 신규 제품에 소재를 탑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면 국산화 개발은 수월해질 것이다. 소자업체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맞춤형 지원 정책과 꾸준한 실행력이 국산화 속도를 좌우할 것”이라고 테스트베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지속적인 정책과 컨트롤타워 중요"

지속적인 정부정책과 이를 이끌어갈 수 있는 컨트롤타워의 중요성도 언급됐다.

이종수 사장은 “모든 것을 동시에 하다가 하나도 못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며 “정책의 영속성을 위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부사장도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컨트롤 타워가 유지돼야 한다”고 말을 보탰다.

이번 긴급 토론회에는 산업계와 학계, 법조계 전문가들이 모두 모였지만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기업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날 주최측에서도 기업인들의 목소리에 중점을 두고 보도해 줄 것을 언론에 요청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교수)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일본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2019.08.07 mironj19@newspim.com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 학회장도 “대기업이 글로벌 수준의 공급처 다변화를 추진해오고 있었고 국내에 해외 공급처의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국가 다변화까지는 이뤄지지 못해 일본 내 여러 기업들에서 분산 공급받아왔다”며 “’대기업은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 정부와 같이,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지속되도록 공급처의 국가 다변화와 국산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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