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정치 국회·정당

속보

더보기

[KYD 폴리티션 스토리] (상) 박지원 "지금 82세지만 나는 여전히 꿈을 향해 간다"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어려웠던 김대중 선생 만나자마자 큰 절"
청년에게도 조언 "현실 어려워도 노력하면 잘 될 것"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TV '폴리티션 스토리'에 출연해 어머니와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잊지 못할 인연들과 자신의 정치 철학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박 의원은 당시 사형 선고 후 미국으로 망명한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뉴욕한인회장이었던 박 의원은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씨와 친분이 있을 정도로 집권 여당과도 인연이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박 의원은 뉴스핌TV 폴리티션스토리에서 미국에서 김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했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김대중 선생에게 큰 절을 올렸다"며 "선생님, 제가 잘못 산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민주화를 위해서 벽돌 한 장이라도 놓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이후 박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랜 기간 측근으로서 곁을 지켰다. 김 전 대통령의 용인술은 위기 때 측근을 불러 해결하고, 위기가 지나가면 측근들을 멀리하는 것이었지만, 박 의원은 한 번도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박 의원은 그 비결에 대해 '모든 일에 영혼을 바쳐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모든 일에 자기의 영혼을 바쳐서 해야 상대방이 미동을 하지 내가 쇼를 하면 이미 상대방은 안다. 그래서 혼을 바쳐서 해야 한다"라며 "그런 것을 중시했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이날 현재 어려운 청년들에게도 당부와 격려의 말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긍정적으로 생각한 결과가 이뤄졌다"며 "사회적인 성공과 실패의 개념이 아니라 내가 성취하고 싶은 것들로 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82세이지만 저는 한번도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루에 2시간씩 걸으면서 그 꿈을 향해 가고 있다"며 "청년들이 궁색하게 생각하지 말고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042년 6월 5일 전라남도 진도 출생으로 광주 교육대학과 단국대학교 상학을 졸업했다. 14대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시작해 국민회의 대변인, 국민회의 총재특별보좌역, 김대중 대통령당선자 대변인, 대통령 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제2대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실장 등 김대중 정부에서 화려한 이력을 자랑했다.

이후에 18대·19대·20대 국회의원을 지낸 후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원장을 역임하고 다시 전남 해남군완도군진도군에서 22대 국회의원으로 돌아왔다. 현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4.12.02 dedanhi@newspim.com

 다음은 박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채송무 정치부 기자, 이하 채 기자)정치인의 미래와 과거, 현재를 전부 아우르는 폴리티션스토리 진행을 맡은 뉴스핌 정치부의 채송무 기자입니다. 옆에는 함께 진행을 맡아주실 스웨덴 린네대의 최연혁 교수님 모셨습니다. 오늘은 박지원 의원님 모시고 정치 역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의원님은 오랜 기간 민주당 내에서 전략적 사고와 성실함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야당 원내대표를 하실 때 여당에서는 굉장히 괴로워하면서도 타협할 수 있는 원내대표라고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같은 성실함이나 전략적 사고는 어린 시절부터 있어왔을 것인데 어떤 소년이셨습니까.

▲(박지원 의원, 이하 박 의원) 그렇게 칭찬을 받으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저희 아버님이 독립지사니까 그런 피가 있겠죠. 그런데 진도에서 저희 집안이 늘 국회의원을 나가고 도의을 나가니까 주위에서 그런 것을 보고 자라 '국회의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 김영삼 원내총무가 펄펄 날라 다녔잖아요. 그래서 '나는 야당 총무를 꼭 한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때 별명이 야당 총무였습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교수) 진도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박 의원) 진도는 유배지로 장흥군과 진도군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저희도 유배된 이들의 후손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학자들이 많이 진도로 유배 와서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한국화, 서예, 특히 국악에 대해 분위기가 아주 좋은, 가난하면서도 평화로운 그런 섬이죠.

-(최 교수) 그 당시 정치적인 현안은 무엇이었을까요.

▲(박 의원) 저희 어머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승만 대통령이 처음으로 진도를 오셨대요. 어머님이 여성 대표로 이승만 대통령과 악수를 했다고. 어렸을 때 그것이 기억나요. "손을 명주로 싸가지고 있어야 되겠다"고. 대통령과 악수했다고. 대통령이 상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치적 이념은 없었어요. 단 우리 집안에서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 인척, 형님, 아저씨들이 다 민주당을 했어요. 자유당을 하지 않고. 그래서 늘 저항정신은 갖고 있었지만, 제가 어려서 민주당이 무엇인지, 자유당이 무엇인지 모르고 '무조건 국회의원을 한번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나갔죠.

-(채 기자) 아버님이 독립투사셨던 집안 분위기도 있지만, 가장 어린 시절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어머니셨을 것 같은데, 어머니에 대한 가장 큰 기억은 무엇입니까.

▲(박 의원) 어머니는 저에게 모든 것이었죠. 누구나 그렇잖아요. 자기 어머니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우리 집이 가난하지도 않고 부자지도 않고. 그냥 밥술깨나 먹는 집안으로 정미소를 했는데 베푸는, 나누는 삶을 살도록 말씀을 하셨고 실제로 어머님이 그렇게 하셨어요. "남에게 충분하게 주는 사람이 돼라"고 했던 말씀이 기억으로 남아있고 그것이 좋은 교훈을 준 기억이 있어요. 정치를 하면 우리 국민들이 평화롭고 잘 사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고, 엊그제 대전 독립지사 묘역에서 아버지, 어머니께 인사 드리고 조카들, 손주들이 모인 자리에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어 갖는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 분이기 때문에 혼자 소유하려고 하지 말고 나누어 갖으려는 생각을 가져라"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최 의원) 의원님을 보면 인연이라는 것은 선택과 자신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한국의 진도에 있다가 미국으로 가셨습니다. 과정을 말해주시죠

▲(박 의원) 제가 LG에 들어갔었어요. 그런데 저희 큰 형님이 회사에서 미국으로 가셨어요. 그래서 미국에 가서 형님 회사에 잠시 있다가 나와서 독립을 해가지고 저는 진짜 모든 일을 열심히 해요. 치열하게, 그래서 어느 정도 성공을 했죠. 그러니까 "너는 장사할 사람이 아니다. 정치를 해라"고 해요. 저는 긍정적·진보적·진취적으로 생각한 결과가 이뤄졌다고 생각해요. 이룬 것이 사회적으로 성공, 실패 이런 개념이 아니라 내가 성취하고 싶은 것들로 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82세이지만 한 번도 제가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하루에 2시간씩 걸으면서 그 꿈을 향해 가고 있어요. 청년들 좀 궁색하게 생각 하지 말고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잘 되는 것 아니에요?

-(채 기자) 의원님의 정치 역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미국에 가서 성공한 사업가가 돼 당시 민정당 쪽과도 친했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탄압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김대중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박 의원) 제가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와 아주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미주지역 총연합회장을 하고 있는데 전경환 씨가 왔더라고요. 그 분의 형님이 그렇게 높은 사람인지는 처음에는 몰랐죠. 전두환 대통령이 뉴욕을 방문하는데 뉴욕 한인회장 자격으로 환영위원장을 했어요. 이후 전경환 씨가 굉장히 잘해주려고 했어요. 한국에서 큰 이권을 주어서 제가 나왔어요. 나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제가 언젠가는 정치를 하고 싶은데 내가 이것을 하면 족쇄가 될 것 같아요. 독재자에게 이득을 보게 되면 족쇄가 되지 않냐, 그래서 큰 형님에게 전화를 했어요. "형님, 아무래도 내가 이것을 안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앞으로 족쇄가 될 것 같습니다" 했더니 큰 형님도 "하지 마라" 그래서 그 다음날 안했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계시다가 석방이 됐잖아요. 그래서 미국으로 오신 거에요. 저만 안 갔죠. 왜냐면 전두환 쪽과 관계가 있으니까. 그런데 도저히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해 친구의 소개로 김대중 대통령을 찾아갔어요. 제가 찾아간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일체 집을 비우고 혼자 계시더라고요. '내가 잘못 살았구나'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앉아계신 김대중 선생께 큰 절을 올렸어요.

울면서 "선생님, 제가 잘못 산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민주화를 위해서 벽돌 한 장이라도 놓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했더니 저보고 일어서라고 하더라고요. "박지원 회장이 전두환 대통령 환영식을 했다고 해서 부담을 갖지 마라. 당연히 전두환 대통령을 환영한 것이 아니라 미주지역 총연합회 회장으로 환영한 것이니까 괜찮다" 그리고 저에게 큰 감동을 준 것이 "박 회장은 이미 대한민국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박 회장이 수입해 오는 한국 물품 때문에 한국 노동자들이 고용돼서 소득을 올리고, 우리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지 않나"라면서 "나를 좀 도와줘라".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밀사 역할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김 대통령은 편지가 다 검열되거든요. 저한테 써주면 제가 가지고 가서 한국에서 나눠드리고 답장 받아오고. 당시에는 김대중 선생이 정치를 한다, 앞으로 재기해서 대통령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할 때에요. 그런 인연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게 됐습니다.

-(채 기자) 이후에도 대통령 대선 패배와 정계 은퇴, 그리고 복귀해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오랜 기간을 함께 하셨고, 김대중 정부의 문화관광부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 등 실세 역할을 하셨습니다. 또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는데, 김대중 정부를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박 의원) 먼저 13대 국회 때 김대중 총재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비례대표를 해라' 당시에는 당에 공식적으로 돈을 내던 세상입니다. '얼마를 갖다가 총무원장을 하시던 최영근 의원. 울산 국회의원을 했었던 그 분에게 드려라' 했는데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제가 미국 동부고, 서부도 있으니까 이런 것으로 해서 밀려서 안됐어요. 저는 돌아가는데 김대중 총재님이 굉장히 아쉬워하셨어요. 이후 제가 김대중 총재님이 만들었던 미국 인권문제연구소를 이영작 박사, 유종근 박사하고 같이 해왔었어요. 그러다가 14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어요.

선거 끝나고 미국 집에 가 있는데 (김 전 대통령이) 전화를 주셨더라고요. 전화를 주셔서 '수석부대변인을 맡아라'. 이때는 이기택 총재가 통합을 해서 이기택 총재의 꼬마 민주당 분들은 국민을 상대하는 원내대표, 대변인을 맡고, 소위 김대중계, 동교동계는 사무총장, 정책위의장을 맡았어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때 권노갑·김옥두, 동교동 선배들이 제가 좀 인상이 좋았나봐요. 그래서 '인상이 좋은 박지원이 옆에서 모시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해서 수석부대변인을 맡았는데, 이기택 총재 계열의 장석화 의원이 대변인, 제가 수석부대변인. 물론 장석화 의원은 재선 의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뉴스는 김대중 총재에게서 나오잖아요. 이기택 총재는 별로 말씀을 안하시니까. 그러다 보니 사실상 제가 대변인을 했어요. 매일 새벽 6시에 가서 대통령님과 이야기를 했어요.

사실 민주당은 김대중 후보가 낙선을 하더라도 실망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또 4년 있다가 김대중이 있다. 그러니까 뭉치자. 싸우자, 이기자. 이 생각을 갖고 했죠. 마지막 떨어졌을 때는 영국으로 가셨지만 소위 강창성, 문희상, 박지원을 이기택 총재에게 보냈어요. 저는 거기서도 대변인을 했는데,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 민주당은, 동교동은, 호남은 '우리에게는 대통령 후보 김대중이 있다. 그래서 뭉치고 싸워서 이기자'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저도 그 세력 중 하나고, 가장 측근으로 옆 자리에서 모셨어요.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의 의사를 보면 위기가 오면 동교동계 측근, 소위 가신들을 불러서 위기 극복을 하고, 극복이 되면 다시 이분들을 멀리 떼요. 공전하게 하는 거죠. 그런데 저만 1992년부터 서거하시기 전까지 한 번도 옆에서 떨어져 본적이 없어요.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열심히 한 것 뿐이에요. 혹자는 '박지원이 대학에서 노인심리학을 전공해서 아부를 잘한다'. 저도 많은 모략을 받죠. 그럴 때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해요. "천하의 김대중이 누구나 아부는 한 두 달 하면 다 나타난다. 모든 일에 자기의 영혼, 혼을 바쳐서 해야 상대방이 미동을 하지 내가 쇼를 하면 이미 상대방은 안다. 그래서 혼을 바쳐서 일해야 한다". 그런 것을 저는 중시했다고 봐요. 우리 민주당은 김대중과 함께 뭉쳤다. 싸웠고, 언젠가는 이긴다는 신념으로 치열하게 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지지해서 대통령이 됐고 오늘날의 IT 강국, 생산적 복지, 노벨평화상,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정상회담을 이뤘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편에서 계속>

dedanhi@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LG전자, 홈로봇 '클로이드' CES 공개 [라스베이거스=뉴스핌] 김아영 기자 = LG전자가 오는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6에서 홈로봇 'LG 클로이드(LG CLOiD)'를 공개한다고 4일 밝혔다. LG 클로이드는 AI 홈로봇의 역할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콘셉트 제품이다. 사용자의 스케줄과 집 안 환경을 고려해 작업 우선순위를 정하고, 여러 가전을 제어하는 동시에 일부 가사도 직접 수행하며 비서 역할을 수행한다. 이번 공개는 '가사 해방을 통한 삶의 가치 제고(Zero Labor Home, Makes Quality Time)'를 지향해온 LG전자 가전 전략의 연장선이라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LG 클로이드가 세탁 완료된 수건을 개켜 정리하는 모습. [사진=LG전자] ◆CES서 보여주는 '제로 레이버 홈' 관람객은 CES 전시 부스에서 클로이드가 구현하는 '제로 레이버 홈' 시나리오를 볼 수 있다. 출근 준비로 바쁜 거주자를 대신해 전날 세운 식단에 맞춰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고, 오븐에 크루아상을 넣어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 등이 연출된다. 차 키와 발표용 리모컨 등 일정에 맞는 준비물을 챙겨 전달하는 장면도 포함된다. LG 클로이드가 크루아상을 오븐에 넣으며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 [사진=LG전자] 거주자가 집을 비운 동안에는 세탁물 바구니에서 옷을 꺼내 세탁기에 넣고, 세탁이 끝난 수건을 개켜 정리하는 시나리오가 제시된다. 청소로봇이 움직일 때 동선 위 장애물을 치워 청소 효율을 높이는 역할도 수행한다. 홈트레이닝 시에는 아령을 들어 올린 횟수를 세어주는 등 거주자의 일상 케어 기능도 시연한다. 이러한 동작은 상황 인식, 라이프스타일 학습, 정교한 모션 제어 능력이 결합돼 구현된다는 설명이다. ◆가사용 폼팩터·VLM·VLA로 최적화 클로이드는 머리와 두 팔이 달린 상체와 휠 기반 자율주행 하체로 구성된다. 허리 각도를 조정해 높이를 약 105cm에서 143cm까지 바꿀 수 있으며, 약 87cm 길이의 팔로 바닥이나 다소 높은 위치의 물체도 집을 수 있다. LG 클로이드가 거주자 위한 식사로 크루아상을 준비하는 모습.[사진=LG전자] 양팔은 어깨 3축(앞뒤·좌우·회전), 팔꿈치 1축, 손목 3축(앞뒤·좌우·회전) 등 총 7자유도(DoF)를 적용해 사람 팔과 유사한 움직임을 구현한다. 다섯 손가락도 개별 관절을 가져 섬세한 동작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하체에는 청소로봇·Q9·서빙·배송 로봇 등에서 축적한 휠 자율주행 시스템을 적용해 무게 중심을 아래에 두고, 외부 힘에도 균형을 유지하면서 상체의 정밀한 움직임을 지원한다. 이족보행보다 비용 부담이 낮다는 점도 상용화 측면의 장점으로 꼽힌다. LG 클로이드가 홈트레이닝을 돕는 모습. [사진=LG전자] 머리 부분은 이동형 AI 홈 허브 'LG Q9' 기능을 수행한다. 칩셋, 디스플레이, 스피커, 카메라, 각종 센서, 음성 기반 생성형 AI를 탑재해 언어·표정으로 사용자를 인식·응답하고, 라이프스타일과 환경을 학습해 가전 제어에 반영한다. LG전자는 자체 개발 시각언어모델(VLM)과 시각언어행동(VLA) 기술을 칩셋에 적용했다. 피지컬 AI 모델 기반으로 수만 시간 가사 작업 데이터를 학습시켜 홈로봇에 맞게 튜닝했다는 설명이다. VLM은 카메라로 들어온 시각 정보를 언어로 해석하고, 음성·텍스트 명령을 시각 정보와 연계해 이해하는 역할을 맡는다. VLA는 이렇게 통합된 시각·언어 정보를 토대로 로봇의 구체적인 행동 계획과 실행을 담당한다. 여기에 LG의 AI 홈 플랫폼 '씽큐(ThinQ)', 허브 '씽큐 온'과 연결 가전이 더해지면 서비스 범위가 넓어진다. 예를 들어 가족과 씽큐 앱에서 나눈 메뉴 대화를 기반으로 식단을 계획하고, 날씨 정보와 창문 개폐 상태를 조합해 비가 오면 창문을 닫는 등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퇴근 시간에 맞춰 세탁·건조를 마치고 운동복과 수건을 꺼내 준비하는 연출도 제시된다. ◆로봇 액추에이터 브랜드 'LG 악시움' 첫 공개 LG전자는 홈로봇을 포함한 로봇 사업을 중장기 성장축으로 보고 조직·기술 강화에 나서고 있다. 최근 조직개편에서 HS사업본부 산하에 HS로보틱스연구소를 신설해 전사에 흩어져 있던 홈로봇 관련 역량을 모으고, 차별화 기술 확보와 제품 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삼았다. LG 액추에이터 악시움(AXIUM) 이미지. [사진=LG전자] 이번 CES에서는 로봇용 액추에이터 브랜드 'LG 액추에이터 악시움(LG Actuator AXIUM)'도 처음 공개한다. '악시움'은 관절을 뜻하는 'Axis'와 Maximum·Premium을 결합해 고성능 액추에이터를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액추에이터는 모터·드라이버·감속기를 통합한 모듈로 로봇 관절에 해당하며, 로봇 제조원가에서 비중이 큰 핵심 부품이다. 피지컬 AI 확산과 함께 성장성이 높은 후방 산업으로 평가된다. LG전자는 가전 사업을 통해 고성능 모터·부품 기술을 축적해왔다. AI DD 모터, 초고속 청소기용 모터(분당 15만rpm), 드라이버 일체형 모터 등 연간 4,000만 개 이상 모터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회사는 이 같은 기술력이 액추에이터의 경량·소형·고효율·고토크 구현에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휴머노이드 한 대에 수십 개 액추에이터가 필요한 만큼, LG의 모듈형 설계 역량도 맞춤형 다품종 생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홈로봇 성능·폼팩터 진화 지속…축적된 로봇 기술은 가전에 확대 적용 LG전자는 집안일을 하는 데 가장 실용적인 기능과 형태를 갖춘 홈로봇을 지속 개발하는 동시에 청소로봇과 같은 '가전형 로봇(Appliance Robot)'과 사람이 가까이 가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냉장고처럼 '로보타이즈드 가전(Robotized Appliance)' 등 축적된 로봇 기술을 가전에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AI가전과 홈로봇에게 가사일을 맡기고, 사람은 쉬고 즐기며 가치 있는 일에만 시간을 쓰는 AI홈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백승태 LG전자 HS사업본부장 부사장은 "인간과 교감하며 깊이 이해해 최적화된 가사 노동을 제공하는 홈로봇 'LG 클로이드'를 비롯해 '제로 레이버 홈' 비전을 향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aykim@newspim.com 2026-01-04 10:00
사진
의대 정시 지원자 5년 만에 최저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올해 의과대학 정시모집 지원자가 큰 폭으로 줄어 최근 5년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4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6학년도 전국 39개 의대 정시모집 지원자는 7125명으로 전년대비 32.3% 감소했다. 지원자는 2022학년도 9233명, 2023학년도 844명, 2024학년도 8098명, 2025학년도 1만518명으로 집계됐다. 사진은 4일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 모습. 2026.01.04 mironj19@newspim.com   2026-01-04 15:57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