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양면 전쟁 위기 상황"
투자자 트라우마 극복...장기 투자 유도책 필요
[서울=뉴스핌] 이나영 기자= "현재 우리 자본시장은 선진국 시장과의 격차 및 가상자산 시장의 도전에 직면한 '양면 전쟁' 위기 상황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6일 금감원과 금융투자협회가 함께 주최한 '한국 증시 활성화를 위한 열린 토론'에서 이같이 말하며 "자본시장 발전은 어떠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추진돼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으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가 공동 주최했으며, 학계·연구기관·금융업계 전문가 및 개인·기관 투자자들이 참여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박세영 노무라 금융투자 전무, 이진영 NH아문디자산운용 본부장,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한국 증시의 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논의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한국증시 활성화를 위한 열린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5.02.06 yooksa@newspim.com |
◆ 외국인 투자 이탈…"투자자 트라우마 극복해야"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 현재 한국 증시의 근본적인 문제로 '투자자 트라우마'를 지목했다. 특히, 투자자 보호 미흡으로 인한 불신이 한국 증시의 저평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천 회장은 "오랫동안 한국 증시를 경험한 국내외 투자자들이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며 깊은 불신을 갖게 됐다"며 "(대표적으로) 지난 2021년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 분할, 지난해 두산그룹의 불공정 주식 교환 등을 사례로, 한국 시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투자자의 자산이 하루아침에 감소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법적 보호 장치의 부재에서 찾았다. 천 회장은 "해외에서는 일반 주주 보호 의무를 회사의 이사회나 지배 주주에게 부여하는 법적 장치가 존재하지만, 한국 상법은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30년간 반복된 투자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최근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의 항소심 판결을 언급하며 "법원이 '이사가 주주를 위해 행위할 의무가 없다'고 재확인한 점은 현행법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복잡한 규정 보완이 아니라 '누군가가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명확한 원칙 선언으로, 빠른 상법 개정만이 증시 활성화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국증시 활성화를 위한 열린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2025.02.06 yooksa@newspim.com |
◆ 일본 증시와의 차이점…"제도적 변화가 필수"
이날 전문가들은 일본 증시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와 한국 증시와의 차이점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나눴다. 일본이 지난 2008년 이후 지속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 환원 정책을 강화한 점을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김수연 법무법인 광장 연구위원은 "일본은 지난 2008년 3월 기준 전략적 지분율 40%, 주주 환원액 12조원에서 지난해 3월 지분율은 30%로 낮추고, 주주 환원액은 29조 원으로 확대했다. 또한 사외이사 비율을 2007년 기준, 10%에서 현재 98%까지 늘려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한 것도 투자자 신뢰 회복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은 2022년 4월 도쿄증권거래소 개혁을 단행하며 기존의 5개 시장을 3개 시장으로 개편하고 신규 상장 및 상장 유지 요건을 대폭 강화했다"며 "이에 따라 상장 폐지 기업 수는 증가했지만, 도쿄증권거래소는 '우리는 양보다 질을 선택했다'며 시장의 건전성과 신뢰성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에 대한 문턱을 높이며, 부실기업이 증시에서 퇴출되는 등 양질의 기업으로 증시를 재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은 중복 상장 비율이 18.4%로, 일본(4.4%)·대만(3.1%)·중국(1.98%)·미국(0.35%)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김 위원은 "이는 투자자들이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데 혼란을 초래하고 비효율성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부실기업의 상장 폐지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밸류업 공시 등 제한적인 조치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상장기업의 질적 개선이 증시 활성화의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은 주식시장에서 건강하지 못한 기업들의 퇴출이 일상화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면서 "상장기업의 질적 측면이 개선되지 않는 것이 시장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박세영 노무라금융투자 전무 역시 "국내외 투자자들이 소유하고 싶은 양질의 좋은 기업들이 진열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자본효율성 같은 지표도 중요하지만, 경영진이 이사회와 얼마나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느냐도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한국증시 활성화를 위한 열린토론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2025.02.06 yooksa@newspim.com |
◆ 투자자 보호 및 수급 개선…"장기 투자 유도책 필요"
전인구 경제연구소 대표는 개인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가 투자 매력이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수익성"이라며 "한국 증시는 단기적으로 돈을 벌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투자할 만한 종목이 많아야 하고, 유동성이 확보되어야 하지만 현재 한국 증시는 특정 대기업 위주로만 돌아가고 있어 중소형주 투자 환경이 열악하다"며 "공매도 문제와 기관 중심의 시장 구조가 개인 투자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한국 증시의 단기 투자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점은 개선이 필요한 과제로 제시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한국 증시의 거래대금을 시가총액으로 나눈 '거래 회전율'은 2024년 기준 200%로, 미국(96%)과 일본(117%)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와 같은 구조는 국내 증시가 장기 투자가 아닌, 단기 투자 위주로 시장이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협회 설명이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도 "한국 증시를 둘러싼 대내외환경이 녹록치 않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시를 짓누르고 있다. 국내 시장이 선진 시장으로 거듭나려면 장기투자 수요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며 " 퇴직연금과 디폴트 옵션 제도를 개선하고, 연금자산 투자를 촉진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 특히 연금 자산이 해외가 아닌 국내 자본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장기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으로는 연금 투자 확대와 세제 혜택이 거론됐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제도 개편의 방향성에 있어 국민연금은 시장 참여에서의 질적인 측면이, 퇴직연금은 양적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며 "국민연금 기금이 2040년을 기점으로 15년간 급격히 고갈될 것으로 추정되면서 국내 증시에도 자금이 이탈할 것이다. 퇴직연금이 자금 유출을 막아줄 거란 기대도 나오지만 국민연금 유출액 대비 퇴직연금 유입액은 12%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지원 강화도 꼽았다. 박준태 한국금융연구원은 생애 주기에 걸맞는 자산 형성 전략을 위해 더불어 주니어 ISA 도입을 새롭게 제안했다. 주니어 ISA란 만 18세 이하 거주자(일반 ISA 가입자 제외)를 대상으로 ISA 납입금액에 대한 증여세 면제 및 발생 소득을 비과세 처리하는 것이다. 만 18세까지 유지한 뒤 19세 이후 인출할 수 있으며 일반 ISA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전제다.
박 연구위원은 "생애 주기에 맞는 자산 형성 프로그램이 다양한 패키지로 존재했으면 좋겠다"며 "영국에서도 주니어 ISA를 운영하고 있고, 싱가포르에서도 아동 발달 계좌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 역시 과거 단기적으로 주니어 '니사(일본판 ISA)'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년을 위한 노년 자금, 미래 태어날 자녀들을 위한 자금 등 목적을 구체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장기 투자자금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생애 주기 패키지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장기 투자자에 대한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며 "근로소득자의 배당소득 혜택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극복해야 한다. 장기 투자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방향은 충분히 가능하며, 이를 통해 투자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 활성화를 위해 '신뢰 회복'이 최우선 과제임을 강조했다.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은 "한국 증시 개선과 시장 신뢰 회복, 장기 투자자 육성을 위해서는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장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며 "형식적으로, 관행으로 지켜왔던 부분을 실직적으로 할 수 있도록 법을 더 명확하게 개정하는 부분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GNP)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하면서, 단순히 은행 이자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산을 운용하지 않으면 물가 상승으로 인해 자산 가치가 하락하는 환경이 조성됐다"며 "장기 투자 활성화를 위한 세제 개편이 단순히 특정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산 관리가 필수적인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적 필요성하다"고 강조했다.
nylee5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