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 초기 日 주둔군의 군사적 억압·실상 고스란히 담겨
1913년 수원 주둔 日 주둔군 곤도 사쿠조의 병영일지
한국국학진흥원 "일제 강점기 연구 새 이정표 제시할 것"
[안동=뉴스핌] 남효선 기자 = 일제강점기 초기 일본의 조선 주둔군의 억압과 실상을 고스란히 담은 '1913년 조선 주둔군 일지(日誌)'가 최초로 발굴·공개됐다.
한국국학진흥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으로 진행하는 근대기록문화조사사업을 통해 최초로 발굴된 日 조선주차군 병사의 병영 일지를 '근대기록문화아카이브(www. modern.koreastudy.or.kr)'를 통해 28일 공개했다.
![]() |
한국국학진흥원이 최초로 발굴.공개한 일본의 '1913년 조선 주둔군 일지(日誌)'.[사진=한국국학진흥원] 2025.02.28 nulcheon@newspim.com |
이번에 처음 발굴.공개된 '조선 주둔군 일지'는 1910년 일제의 강점 이후, 수원에 주둔했던 일본의 조선 주둔군(조선주차군) 곤도 사쿠조(近藤作藏)가 남긴 1913년 9월 13일부터의 기록이다.
'조선 주둔군 일지'는 총 184면 분량으로, 습자지를 이용해 선장(線裝) 형태로 제작된 기록물을 디지털 이미지로 촬영한 것이다.
해당 일지는 임시조선파견보병 제1연대 제1중대 수원수비대 소속의 곤도 사쿠조가 기록한 것으로, 1913년 9월 13일부터 이듬해 2월 28일까지(약 168일)의 사건이 적혀 있다.
![]() |
한국국학진흥원이 최초로 발굴.공개한 일본의 '1913년 조선 주둔군 일지(日誌)'의 1913년 12월 28일 자 내용.[사진=한국국학진흥원] 2025.02.28 nulcheon@newspim.com |
◇ 日本 조선주차군...조선 침략의 첨병
조선주차군은 일본 제국이 조선을 점령한 후 군사 작전을 수행키 위해 주둔한 일본군이다.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조선 내 군사적 통제를 강화하고 항일 운동을 억압키 위해 조직됐다.
이들의 존재는 조선인들에게 큰 고통을 안겼으며, 이는 3.1운동과 같은 저항 운동의 배경이 되었다. 1913년에는 의병장 노병직이 체포돼 10년형을 선고받고, 독립의군부 사건의 판결이 이뤄졌으며, 호남창의대장 이석용이 임실에서 체포되는 등 조선 전역에서 의병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이다.
이번에 최초 발굴된 병영일지 형식인 '조선 주둔군 일지'에는 병영 내 생활, 교육, 훈련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당시 일본군의 군사 교육 커리큘럼, 훈련 장소, 이동 경로, 야영 방법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1913년 10월 21일에는 탄약고에서 실탄 120발을 수령한 후 과천 방향의 적을 수색했다는 내용이 있으며, 동년 12월 28일에는 수원 읍내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는 기록을 통해 수원지역 최초 전기보급 일시를 알 수 있다.
일기의 말미에는 보병 제1연대 군기 약력 사항이 기록돼 있으며, 이들은 수원 장안문과 수원공립학교를 기점으로 군사 훈련을 진행하면서 시민들의 항일 투쟁을 억압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 |
한국국학진흥원이 최초로 발굴.공개한 일본의 '1913년 조선 주둔군 일지(日誌)'의 1913년 10월 21일 자 내용.[사진=한국국학진흥원]2025.02.28 nulcheon@newspim.com |
◇ 일제강점기 역사 연구 중요한 이정표
이번에 발굴된 병영일지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 당시 조선의 군사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선주차군이 수원 지역에서 군사 훈련을 실시하며 조선인들의 항일 투쟁을 억압했던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이는 일제강점기 역사 연구 및 교육 자료로서 큰 의미를 지니며,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조명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특히 조선주차군의 병영 일지는 기존의 거대 역사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일제 강점기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주둔군의 일상과 삶을 통해 당시 조선주차군이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일제강제 점령의 현실을 좀 더 생생히 미시적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 근대기록문화조사사업은 어떻게
이번에 발굴된 조선주차군의 일지는 2021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민간 근대기록문화 조사사업을 통해 최초로 알려졌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180여 명의 중장년 근대기록자료 조사원들은 1910년부터 1979년까지의 다양한 민간 기록자료를 조사하고, 이를 디지털화 된 자료로 제공하여 아카이빙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한국국학진흥원은 60만 건을 상회하는 자료를 아카이브로 구축한 상태이다.
이 중 가능한 18만 5000여 건이 '근대기록문화아카이브(www.modern.koreastudy.or.kr)'를 통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돼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이번 일지와 같은 중요 근대 기록자료의 발굴을 통해 우리의 근현대 일상과 삶을 복원하고,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 시대를 증언하는 중요 기록유산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nulche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