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면허 취소·공공입찰 금지' 엄포에도 끊이지 않는 대형사 산재 사망
전문가들 "처벌만으론 한계…불안전 고용·소통 부재가 근본 원인"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 '채찍' 정책이다. 사고 예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중대재해가 없는 기업에 입찰 가산점 등 실질적인 '당근'을 제공해 자발적인 안전관리 강화를 유도해야 한다."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초고층도시건축학회 연구원장)
"중대재해가 나면 며칠씩 쉬는데 그 공기는 연장을 안 해준다. 결국 남은 기간 동안 만회해야 하니까 서두를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
정부의 엄격한 산업재해 근절 의지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새 대형 건설사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연이어 발생하며, 처벌 위주의 사후 대응보다 건설 구조 원인 해결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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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대형 건설사 현장에서 산재 사망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9일 대우건설이 시공하는 경기 시흥시 신축 아파트 현장에서 하청업체 근로자 1명이 숨졌으며, 앞서 3일에는 GS건설 서울 성동구 현장에서 추락사가, 6일에는 롯데건설 경남 김해 현장에서 굴착기 사고가 발생했다.
연이은 사망 사고에 세 건설사는 나란히 공정을 전면 중단하고 전사 차원의 안전 관리 체계 재점검에 나섰다.
이러한 즉각적인 대응은 최근 강경해진 정부의 산재 사고 엄단 방침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연이은 산재 사고를 낸 포스코이앤씨에 "건설면허 취소, 공공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 보고하라"고 지시하며 초강경 대응을 예고한 바 있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형사 처벌 외에도 ▲반복적 중대재해 기업의 건설 면허 취소 ▲공공 공사 입찰 자격 제한 ▲매출액 연동 과징금 부과 등 강력한 행정적·경제적 제재를 검토 중이다.
또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14일 국내 20대 건설사 최고경영자들을 만나 "안전이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자리잡도록 CEO부터 안전을 세밀하게 챙겨야 한다"며 "이러한 조치들(중대재해 발생시 재재 조치)이 단순한 기업 옥죄기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며 기업에 자체적인 안전 대책 마련을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건설사들이 속속들이 안전 대책 강구를 모색했음에도 산업 재해가 연이어 발생하자 전문가들은 사후 징벌적 조치들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처벌 위주의 정책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는 채찍만 들고 있다"며 "(당근책으로)정부 예산으로 현장에 실질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중대재해 방지 기법, 장비, 자세 등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사의 사망자는 증가 추세에 있다. 올해 2월 국토교통부가 더불어민주당 박용갑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시공 능력 상위 20위 건설사들의 건설 현장에서 숨지거나 다친 근로자는 1868명으로 조사됐으며, 이 중 사망한 근로자는 35명으로 25% 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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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뉴스핌] 김학선 기자 = 지난 4월 11일 발생한 광명 신안산선 붕괴사고 현장. 2025.04.14 yooksa@newspim.com |
이와 더불어 건설 현장의 구조적 원인 개선에 대한 요구도 제기된다.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은 문제의 근본 원인은 불안정한 고용 구조와 부실한 인력 인프라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장 근로자의 대부분이 정규직이 아닌 일용직이며, 심지어 전문건설업체 소장까지 프로젝트 단위로 팀이 꾸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산업계 전체가 필요할 때만 인력을 데려다 쓰는 '공유지의 비극'처럼 인프라 관리를 소홀히 한 결과, 아무리 현장에서 안전 관리를 해도 사고를 막기 어려운 취약한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것이 안 회장의 설명이다.
근로자 간 소통 문제도 지적됐다. 안홍섭 회장은 "체계적인 훈련이나 역량 검증 없이 미숙련 일용직, 특히 언어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근로자가 현장에 투입되는 구조가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최근들어 청년 세대가 기피하는 건설 현장의 빈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우는 실정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으로 인해 안전 교육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현장에서 급박하게 발생하는 위험 상황에 대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안형준 교수 역시 "현장 사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타워크레인 기사와 신호수 등 내·외국인 근로자 간의 의사소통 부재"라며 "정부가 나서서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현장에서 필수적인 '건설 한국어' 교육을 시행하고, 수료증을 갖춘 인력만 현장에 투입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더 빨리, 더 싸게'를 강요하는 구조적 문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설 현장에서 만연한 공기 단축이 안전 문제를 방기하는 단초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안형준 교수는 "기술 발전을 통한 합리적인 공기 단축과 원가 절감은 장려해야 하지만, 안전을 무시한 '맹목적인' 공기 단축은 오히려 처벌해야 한다"며 "컨닝해서 1등 한 학생을 처벌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들어 산업재해가 발생한 건설사들 사이에서 관행처럼 불거진 공정 전면 중단에 따른 공기 유연화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안홍섭 회장은 "건설 공사는 처음부터 빠듯한 공기와 공사비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여기에 사고 발생 시 작업이 중단돼도 공사 기간은 연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남은 기간 동안 만회하기 위해 공사를 서두르다 또 다른 사고를 유발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현재 논의 중인 건설안전특별법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라며 "적정한 공사비와 공기를 발주자가 책임지고 제공하게 하고, 공사 여건이 변경되면 공사비나 공기를 조정할 수 있도록 의무를 부여해서 근본적인 사고 원인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dos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