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23일 미국 공습으로 중상 입고 국정 장악 못했다.
- IRGC 중심 강성 군부가 모든 결정권 독점하며 실권 행사한다.
- 하메네이는 군부 네트워크 탄탄하나 성직자 영향력은 쇠퇴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미·이스라엘 첫날 공습 때 얼굴·다리·손에 심각한 부상… 의식은 뚜렷해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현재 이란 국정 전반을 완전 장악·통치하고 있지 않으며,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를 중심으로 한 강성 군부가 주요한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다만 하메네이와 IRGC가 대립하는 관계는 아니며 하메네이 안전에 대한 우려와 부상, 그와 연락이 매우 제한돼 있는 상황 등이 맞물려 의사결정권이 군부에 위임된 상태라고 했다.
NYT는 이 같은 내용의 '이란 권력 구조' 기사를 보도하면서 이란 정부 고위 관리 6명과 하메네이를 개인적으로 아는 인사 3명, 전직 관리 2명, 혁명수비대 관계자 2명, 체제 내부 사정에 정통한 고위 성직자 1명 등을 인터뷰했다고 밝혔다. 혁명수비대 및 정부와 연계된 다른 관계자 9명도 접촉했다고 한다.

■ 하메네이, 중상 입었지만 정신 또렷… 국정 운영에 관여
하메네이는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첫 날 중상을 입었다. 그의 아버지인 이란의 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해 자신의 부인과 아들, 여동생과 제부를 이날 잃었다.
하메네이는 살아 남았지만 한쪽 다리는 세 차례 수술을 받은 뒤 의족 착용을 기다리고 있고, 한쪽 손도 수술을 받은 뒤 서서히 기능을 회복 중이다.
그는 얼굴과 입술에도 심한 화상을 입어 말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관계자들은 그가 결국 성형 수술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가 된 이후에도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거나 직접 음성 메시지를 내놓지 않는 이유도 자신이 취약해 보이거나 목소리가 약하게 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같은 부상과 미·이스라엘의 추가 암살 시도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그에 대한 접촉은 극도로 제한돼 있다.
혁명수비대 고위 지휘관들과 정부 고위 관리들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추적해 그를 찾아낼 것을 우려해 그를 방문하지 않는다.
NYT는 "그에게 전달되는 보고와 메시지는 수필로 작성된 뒤 봉인된 봉투에 담겨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이용해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리는 신뢰할 수 있는 전령들의 '인간 사슬'을 통해 전달되며, 그의 지침 또한 같은 방식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 권력은 군부 손으로… 성직자 영향력도 쇠퇴
현재 이란의 모든 결정권은 IRGC 손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의 고문을 지냈고 하메네이를 잘 아는 정치인 압돌레자 다바리는 "모즈타바(하메네이)는 국가를 마치 이사회 의장처럼 관리하고 있다"며 "이사회 멤버들의 조언과 지도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그들이 집단적으로 모든 결정을 내린다"고 했다. 그는 "이란의 장성들이 바로 이사회 멤버들"이라고 했다.
영국의 국제관계 전략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의 중동·북아프리카 국장이자 이란 내 인사들과 교류하고 있는 사남 바킬은 "모즈타바는 아직 온전한 지휘권이나 통제권을 갖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모즈타바에 대한 예우는 있을 수 있고 공식적인 의사결정 구조의 일부로서 서명을 하기도 하지만 현재 그는 이미 결정된 사항을 보고받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란 권력 구조의 한 축이었던 성직자 그룹도 현 체제에서는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버지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고위 성직자로서 시아파 종교계에서 존경을 받고 정치적 영향력도 막강했던 데 비해 모즈타바는 성직자로서의 신분도 낮아 아버지 수준의 위상을 갖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하메네이, 이란·이라크戰 참전… 군부와 탄탄한 네트워크 키워
하메네이는 17세 때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그는 혁명수비대의 '하비브 대대'라고 불리는 여단에 배치됐다. 이때 그는 자신의 평생을 좌우할 네트워크를 쌓기 시작했다.
하비브 대대에서 함께 군 생활을 했던 부대원 중 다수가 이후 군과 정보기관의 영향력 있는 요직에 올랐다.
하메네이는 아버지 관저에서 근무하며 군과 정보 작전을 조율했는데 이 시기는 군 장성들과 정보 수장들과 유대를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됐다.
혁명수비대 정보국장을 지낸 호세인 타에브, 1980년대에 그를 지휘했으며 최근 현역으로 복귀한 모센 레자이 장군이 하비브 대대 시절부터 가까운 친구로 꼽힌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 또한 오랜 전우이다.
NYT는 "이란 관리들과 그를 개인적으로 아는 인사들에 따르면 하메네이와 타에브, 갈리바프는 몇 년 동안 매주 한 번씩 최고지도자 관저에서 긴 업무 오찬을 가졌다"며 "이들은 '권력의 삼각형'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혁명수비대는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 혁명수비대, 주변국 공격과 해협 봉쇄, 미국과 휴전·협상 등 모두 결정
전쟁 이전 미국과 협상을 주도했던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최근엔 주요 과정에서 배제됐다. 대신 IRGC 출신인 갈리바프 국회의장이 전면에 나섰다.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군부 결정에 반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미국·이스라엘 공습에 맞서 주변 아랍국을 공격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전략도 모두 IRGC가 주도했고, 미국과의 협상과 일시 휴전도 군부가 결정했다. 갈리바프 의장을 협상 대표로 내세운 것도 IRGC였다.
미국과의 2차 협상을 놓고도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협상에 긍정적 입장이었지만 군부가 "미국과 협상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무산됐다.
NYT는 "IRGC 등 강경 군부는 이란이 계속 싸운다면 결국 이스라엘과 미국을 패퇴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어떤 양보도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