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중국 관영매체가 11일 장쩌민 생애를 조명했다
- CCTV는 12부작 다큐로 개혁개방 공로를 부각했다
- 시진핑 집권 뒤 드문 공식 재평가로 해석됐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시진핑 시대, 장쩌민 정치적 유산 높이 평가
개혁개방 경제 고도성장 과정중 江 역할 부각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중국 관영매체가 오는 17일 탄생 100주년을 맞는 고(故) 장쩌민(江澤民, 강택민) 전 공산당 총서기겸 국가주석의 생애와 업적을 집중 조명하며 '장쩌민 띄우기'에 나섰다. 시진핑 시대 들어 상대적으로 공개적인 언급이 줄었던 장쩌민 전 주석을 중국 최고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재평가하는 모습이어서 주목된다.
중국중앙TV(CCTV)는 11일 오후 8시부터 CCTV1을 통해 12부작 문헌 다큐멘터리 '장쩌민'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첫 1~2편에서는 장쩌민의 성장과 학업, 사회생활과 정치 입문 과정 등을 소개하면서 개혁개방 초기 선전 경제특구 건설 참여와 상하이 시장 재임 당시의 시정 개혁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다큐멘터리는 장쩌민을 "전 당과 군, 전국 각 민족 인민이 공인하는 높은 위상의 탁월한 지도자"이자 "위대한 무산계급 혁명가·정치가·군사가·외교가" 등으로 규정했다. 이는 장쩌민 사망 당시 중국 당국이 발표했던 공식 부고문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CCTV는 어린 시절 고향인 장쑤성 양저우와 난징, 상하이에서 성장한 장쩌민이 청년기에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아 공산당 가입을 결심하는 과정도 소개됐다. 사회생활 초기에는 미국식 군복을 입고 지프를 몰면서 신분이 노출된 공산당 지하조직원을 대피시키는 데 협조했다고 다큐멘터리는 전했다.
1950년대에는 중국의 제1차 5개년 계획에 따라 28세의 나이로 창춘제일자동차제조창에 배치됐으며, 1955년 소련 스탈린 자동차공장으로 연수를 떠났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리란칭 전 국무원 부총리는 장쩌민에 대해 "온화하면서도 기술과 관리에 능했고 설명도 생생하게 했다"고 회고했다.

문화대혁명 당시의 행적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우한 열공기계연구소 소장으로 근무하던 장쩌민은 직원들에게 외부 정치활동에 휩쓸리지 말고 '타도·약탈'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후 관직을 빼앗기고 청소와 화장실 청소까지 맡았지만, 영어와 일본어 학습반을 조직하는 등 교육을 독려했다고 다큐멘터리는 소개했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장쩌민의 실무형 관료로서의 면모를 부각했다. 국가수출입관리위원회와 국가외국인투자관리위원회 간부로 일하면서 선전 경제특구 건설 절차를 승인했고, 홍콩보다 낮은 15%의 소득세율을 도입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설명했다.
1985년 상하이 시장에 취임한 뒤에는 관행을 깨고 취임 연설보다 언론 인터뷰를 먼저 선택했으며,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를 착용한 채 버스를 타고 시민들의 실제 생활을 살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이후 상하이 증권거래소 설립을 적극 지원하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홍콩의 명보는 관영 방송 CCTV의 이번 다큐멘터리에 대해 시진핑 집권 이후에도 장쩌민의 정치적 유산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개혁개방과 중국 경제성장 과정에서 그의 역할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장쩌민은 덩샤오핑 이후 중국의 핵심 지도자로서, 1990년대 중국의 시장개방과 경제성장을 이끈 지도자로 평가되며 특히 그의 집권 시기동안 중국의 WTO 가입(2001년)과 세계가 놀라는 초고속 경제성장이 진행됐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중국공산당 총서기(1989~2002년), 국가주석(1993~2003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1989~2004년)을 역임했으며 2022년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ch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