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김진위 소령은 25일 파평산 제1대대 방어태세를 갖췄다
- 국군은 북한군 보병과 전차 공격을 잇달아 막아냈다
- 파평산 방어선은 지켰지만 357고지와 철교가 남았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파평산을 지켜라.
임진강 철교는 끊어지지 않았다.
북쪽에는 북한군 제6사단 병력과 전차가 집결했고, 남쪽에는 국군 제11연대가 급히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제1사단이 지켜야 할 곳은 철교만이 아니었다.
그 동쪽, 파평산–적성 일대에도 북한군이 접근하고 있었다.
화석동–적성 사이를 방어하던 제13연대는 제3대대가 북한군과 접촉을 유지하며 철수하는 동안 제1대대와 제2대대를 주저항선에 배치했다. 연대의 임무는 구화리–가여울–적성–문산으로 이어지는 접근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 길이 뚫리면 문산리 일대 제1사단의 우측방이 드러난다. 철교 정면의 제11연대가 버티고 있어도 북한군이 파평산과 적성을 지나 측후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6월 25일 이른 아침, 자하리 분교에서 기동훈련 준비상태를 살피던 제13연대 제1대대장 김진위 소령이 포성을 들었다.
처음에는 멀리서 들리는 포병사격 같았다. 그러나 개성과 장단 방면의 폭음이 끊이지 않았다. 곧 북한군이 38도선 전역에서 공격을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김진위 소령은 연대와 교신하려 했다. 사흘째 이어진 야외기동훈련 동안 끊겨 있던 유선통신은 여전히 연결되지 않았다. 그는 통신장교에게 연락 수단을 찾도록 지시하고, 임진강변에는 경계조를 배치했다.
통신병들이 민용전선에 EE-8 전화기를 연결했다. 비로소 문산에 있는 제1사단 우측방 부대와 통화할 수 있었다.
수화기를 통해 전면 남침 소식이 확인되었다. 개성의 방어선은 무너졌고, 장단에서는 북한군 전차와 보병이 임진강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김진위 소령은 각 중대에 훈련을 중단하고 주저항선의 준비된 진지를 점령하라고 명령했다. 문산 우측방의 위험한 지점을 전차포와 박격포 진지로 보강하고, 북한군의 접근을 감시하도록 했다.
장병들은 실탄과 장비를 챙겨 진지로 이동했다. 그날 아침까지 훈련을 위해 살피던 지형이 이제는 실제로 지켜야 할 방어선이 되었다.
제1대대가 자리 잡은 파평산은 높이 496m였다. 능선에서는 임진강 쪽 접근로를 관측할 수 있었다. 북한군이 강을 건너 남하한다면 도로와 골짜기를 따라 움직여야 했다. 제13연대는 이 지형을 이용해 북한군의 움직임을 일찍 발견하고 화력을 집중하려 했다.
10:30경, 연대에서 추진해 온 탄약이 제1대대의 각 중대에 분배되었다. 장병들은 기관총탄과 박격포탄을 진지로 옮기고 소총 탄창을 점검했다. 2.36인치 로켓포탄도 준비했다.
제6야전포병대대 제3중대의 야포 세 문은 제1대대를 직접 지원하기 위해 CS 133953에 배치되었다. 제2대대는 제1대대의 좌측 148고지에 병력을 배치했다.
북한군 약 1개 중대 규모의 병력이 남진하는 모습이 관측되었다. 선두가 국군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기관총과 소총이 사격을 시작했다. 박격포탄도 접근로에 떨어졌다.
북한군 보병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북쪽으로 물러났다.
첫 공격은 막았다. 하지만 방어선의 장병들은 진지를 떠나지 않았다. 보병이 사라진 방향에서 전차가 올 수 있었다.
한편 육군본부는 개성·문산 방면의 전선이 무너지면 북한군이 경의선과 1번도로를 따라 서울로 내려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육군보병학교 교도대와 육군사관학교 교도대에도 출동명령이 내려졌다.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84호의 시각은 6월 25일 12:00였다. 뒤이어 작전명령 제85호가 하달되었다.
증원부대가 전선으로 향하는 동안, 파평산에서는 다음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14:00경, 파평산 북쪽 기슭을 따라 동서로 이어진 320번도로에 북한군 전차 다섯 대가 나타났다. 전차들은 간격을 두고 제3중대 진지 북쪽 무명고지 방향으로 움직였다.
제3중대와 좌측의 제1중대가 화력을 집중했다. 2.36인치 로켓포와 박격포가 발사되고 기관총과 소총도 사격했다. 전차 주변에서 폭발이 일었지만 T-34의 장갑은 뚫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차들은 더 깊이 들어오지 않고 북쪽으로 물러났다. 국군은 전차를 파괴하지 못했지만, 그 접근을 한 차례 저지했다.
잠시 뒤 다섯 대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국군 방어정면을 살피며 천천히 다가왔다. 전차가 진지를 지나치면 뒤따르는 북한군 보병까지 방어선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제1대대는 장병 열여덟 명을 선발해 두 개의 전차특공대를 편성했다. 그들에게는 2.36인치 로켓포 1문과 81mm 박격포탄, 수류탄이 주어졌다.
특공대원들은 전차가 지날 도로를 살폈다. 길 옆의 둔덕과 풀숲을 따라 몸을 낮췄다. 가까운 곳에는 집 일곱 채에서 여덟 채가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전차 궤도가 자갈을 밀어내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특공대가 로켓포를 발사했으나 로켓포탄은 폭발하지 않았다. 전차는 계속 움직였다. 장병들은 수류탄과 박격포탄을 들고 차체 가까이 접근했다. 일부는 전차 아래로 포탄을 밀어 넣고, 일부는 전차 위로 올라가려 했다.
그러나 전차를 멈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특공대가 사용한 수류탄과 박격포탄도 효과를 내지 못했다. 다섯 대 가운데 파괴된 전차는 없었다.
그렇다고 북한군 전차가 그대로 방어선을 돌파한 것도 아니었다. 선두전차는 도로를 벗어나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제2중대 김봉룡 중위가 지휘하는 제1소대 병력도 마을 쪽으로 접근했다. 그들이 전차에 다가갔을 때 승무원은 보이지 않았다. 장병들은 전차를 눈앞에 두고 다시 파괴를 시도했다. 김봉룡 중위는 전차 내부에 수류탄을 두 발에서 세 발씩 던져 넣었지만, 이번에도 폭발하지 않았다.
그때 마을의 집에서 불길이 일어 전차 쪽으로 번졌다. 검은 연기가 치솟자 전차가 있던 자리와 도로의 상황을 더는 그대로 둘 수 없게 되었다. 선두전차에서 약 1~2km 떨어진 북한군 전차대열은 전진을 멈추고 적성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국군은 전차 다섯 대를 파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날의 접근은 막았고, 파평산 방어선도 유지했다.
교전이 잦아들자 김진위 소령은 파평산 동쪽의 357고지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북한군이 그곳을 차지하면 제1대대의 우측방을 위협할 수 있었다. 그는 제13연대에 상황을 보고하고 증원을 요청했다.
제13연대장 김익렬 대령은 소강상태를 이용해 연대 전술지휘소를 백석동, CS 107925 부근으로 옮겼다.
파평산에서 보병의 첫 공격을 물리치고 전차의 전진을 막았지만, 방어선의 빈틈까지 메운 것은 아니었다. 장병들은 357고지 쪽을 경계하며 다음 움직임에 대비했다.
그동안 서울에서 출발한 증원병력도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용산에 도착한 제5사단 제15연대 본부와 제3대대, 제20연대 제3대대가 제1사단 증원부대로 투입되었다.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57mm 대전차포 1개 중대도 제1사단을 지원했다.
서울특별연대는 6월 25일 저녁 문산에 도착했다. 연대장 유해준 중령은 이동 도중 제1사단장으로부터 병력을 분할 운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보병학교 교도대는 제11연대에, 사관학교 교도대는 제13연대에 배속되었다. 각 교도대의 병력은 약 200명이었다. 그들은 교육을 받던 자리에서 출동해, 그날 밤 실제 방어진지를 찾아 들어갔다.
금촌에 도착한 제15연대 병력은 최후저항선 차단진지에 배치되었다. 전방연대가 물러나야 할 경우 퇴로를 확보하고 북한군의 추격을 막기 위한 자리였다.
파평산에서는 국군이 그날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임진강 철교는 여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북한군 제6사단은 문산 정면에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밤이 되자 파평산의 장병들은 진지에서 동쪽 357고지와 북쪽 접근로를 경계했다. 임진강의 제11연대 장병들은 철교 건너편을 지켜보았다.
두 부대 사이에는 서로 다른 위험이 놓여 있었다. 파평산의 빈 고지, 그리고 끝내 폭파하지 못한 임진강 철교였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