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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14분, 안중근을 깨우는 사람…김수남의 '안중근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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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핵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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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남 이사장은 지난해 2월 14일 안중근의 날 선포식을 열었다
  • 협회는 2월 14일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한 운동을 재추진한다
  • 시민 참여와 문화행사로 안중근 정신을 생활 속에 알릴 계획이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2016년 안 의사 외손녀와의 만남이 인생 바꿔"
2월 14일 사형선고일 국가기념일 추진
코로나19로 중단된 서명운동·국회 청원 재추진
"젊은 세대가 즐겁게 기억하는 역사 만들기"

[서울=뉴스핌] 정태선 기자 = 오후 2시 14분. 무대의 불이 꺼지고 기차 소리가 울렸다. 이어 총성 여섯 발이 터졌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의 장면이 무대 위에 되살아났다. 스크린에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극의 제목은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였다.

지난해 2월 14일 경기 하남시청 별관 대강당에서 열린 행사다. 객석에 앉은 시민들은 연인에게 초콜릿을 건네는 밸런타인데이가 안중근 의사에게는 사형선고일이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행사 시각을 오후 2시 14분으로 정한 사람은 김수남 (사)2.14안중근문예협회 이사장이다. 협회 이름부터 행사 시각까지 모두 2월 14일을 가리킨다. 명함에는 안중근 의사가 단지동맹 때 남긴 손도장을 본뜬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김 이사장이 되살리려는 것은 단순히 잊힌 역사적 날짜가 아니다. 젊은 세대가 사랑을 고백하는 날에 독립운동가의 삶도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문화다. 코로나19로 멈췄던 '2·14 안중근의 날' 법정기념일 지정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월 14일은 젊은 세대가 사랑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그 사랑의 절반만 안중근 의사께 나눠 달라는 겁니다. 밸런타인데이처럼 젊은이들이 즐겁게 기억하는 날, 그러면서도 민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 그걸 법으로 정해 두는 게 제 숙원입니다."

김수남 협회장.

김 이사장이 안중근 기념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2016년 가을 찾아왔다. 중국 하얼빈에 살던 김영금씨가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79세였던 김씨는 안중근 의사의 친여동생 안성녀 여사의 외손녀였다.

김씨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 핸드볼 선수로 활동했지만 1958년 중국 제1회 전국체육대회 경기 도중 크게 다쳤다. 허리와 다리 수술을 10차례 받았지만 통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1급 장애인으로 50여 년을 살아야 했다. 김 이사장이 전한 사연에 따르면 김씨는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중국 정부의 장애인 위로금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가 찾은 곳은 영화 '영웅 안중근' 제작사였다. 주경중 감독과 제작진은 안 의사의 후손을 만난다는 마음으로 김씨에게 큰절을 올렸다. 당시 영화 제작위원회 부위원장이던 김 이사장도 그 자리에 있었다. 분당차병원 원무과장으로 일했던 그는 김씨의 사연을 듣자마자 병원부터 떠올렸다.

"사연을 듣는 순간 몸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제가 일했던 병원이니 어디로 연락해야 하는지 알았거든요. '우리 안중근 의사 외손녀께서 반드시 진료를 받게 해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며칠 뒤 김 이사장은 주 감독과 함께 판교 차병원그룹 재단을 찾아 김춘복 이사장을 만났다. 김씨는 분당차병원 척추센터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과 진료를 받았다. 원래 진료가 없는 날이었지만 담당 교수가 직접 나왔다고 한다.

김씨는 진료를 받으며 눈물을 훔쳤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김씨는 "중국에서 수술을 10번 받았지만 약을 먹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날의 만남은 김 이사장에게 오래 남았다. 교과서에서 배운 독립운동가의 이름이 살아 있는 후손의 고통과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알았습니다. 안중근은 교과서 속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아픈 후손이 있는 우리 집안 이야기라는 걸요. 그날 이후로 손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던 원무과장은 그렇게 안중근을 알리는 일에 인생의 한 부분을 내놓게 됐다.

사단법인 2.14안중근문예협회 제공.

2월 14일은 세계적으로 밸런타인데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이 날짜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1910년 2월 14일, 안중근 의사는 중국 뤼순의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안 의사는 자신을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밝히며 일본의 재판에 맞섰다. 자신이 개인적인 원한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한 전쟁을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전쟁포로로서 만국공법에 따라 재판받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김 이사장은 바로 그날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안 의사가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뿐 아니라 법정에서도 자신의 신념과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굽히지 않았다는 점을 알리자는 것이다.

그가 2월 14일을 기념일로 만들자는 뜻을 처음 공개적으로 강조한 것은 아니다. 2018년 2월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에서 열린 '제1회 도마 안중근의 날' 행사에서도 같은 주장을 펼쳤다. 당시 안중근의사교육문화재단 사무총장이던 그는 사형선고일을 기념일로 제정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독립투사들의 공적도 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 참석자들은 이후 안성녀 여사의 묘소를 찾았다. 안 여사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적을 입증할 자료가 부족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한 상태다. 안 의사의 외손녀를 병원에 모셨던 김 이사장에게도 안 여사의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처음엔 다들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왜 하필 일본 법원이 판결한 날이냐고요. 저는 그날 안 의사가 법정에서 보여준 당당함을 기억하자는 겁니다. 불법 재판이었다는 걸 우리가 잊지 않으면 그날은 패배한 날이 아니라 증언한 날이 됩니다."

사단법인 2.14안중근문예협회 제공.

김 이사장은 밸런타인데이를 없애거나 초콜릿을 사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젊은 세대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기념일의 인기를 빌려 안중근을 알리자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방식은 거창하지 않다. 초콜릿 상자에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 스티커 하나를 붙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초콜릿을 사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초콜릿 상자에 안중근 손도장 스티커 하나 붙이자는 겁니다. 젊은 사람들이 재미있어야 오래갑니다. 숙제처럼 기억하는 날은 금방 잊힙니다."

지난해 2월 선포식에 참석한 한 관람객도 밸런타인데이처럼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는 날이 되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김 이사장이 바라는 것은 국가가 정한 기념일 하나를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날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의 구상에서 기념일은 출발점이다. 학교에서는 역사 이야기를 나누고, 시민들은 손도장을 찍으며 안중근을 기억한다. 청소년들은 백일장과 그림 공모전에 참여하고, 문화예술인들은 시극과 노래로 독립운동의 의미를 전한다. 기념일이 생활 속으로 들어와야 오래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단법인 2.14안중근문예협회 제공.

김 이사장의 명함 배경에는 손바닥 수십 개가 겹쳐 있다.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직접 찍은 손도장이다. 안중근 의사가 단지동맹을 맺으며 약지 한 마디를 잘라 낸 뒤 남긴 '대한국인' 손도장을 본뜬 것이다.

손도장은 시민들이 역사에 참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김 이사장은 아이들이 손도장을 찍다가 손가락이 짧은 이유를 물으면 그때부터 역사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손도장을 찍다가 꼭 묻습니다. '왜 손가락 하나가 짧아요?' 그 질문 하나면 역사 수업이 시작됩니다."

조직도 조금씩 늘어났다. 2023년 12월 발족한 하남지회는 한 달 만에 회원 80여 명을 모았다. 첫 모임에서는 연탄 500장과 이웃 돕기 성금을 마련했다. 현재 협회는 하남 본부를 중심으로 부산·대구 지부와 하남·시흥·안산 지회가 활동하고 있다.

안중근 정신을 기념식에 가두지 않겠다는 것이 김 이사장의 생각이다. 역사적 인물을 기억하는 데서 출발해 이웃을 돕고,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활동으로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2024년 10월 26일에는 하남시지회가 하남시 보훈회관에서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15주년 기념식을 주관했다. 시민과 보훈단체 회원 200여 명이 참석했다. 가수 이경아씨는 조마리아 여사의 마음을 담은 노래 '아들아, 아들아'를 불렀다. 김 이사장은 이날 격려사에서도 2월 14일의 기념일 지정을 촉구했다.

2025년 2월 선포식에는 이현재 하남시장과 여야 국회의원들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하남시의회는 앞서 2024년 12월 추진위원회와 간담회를 열었다. 김 이사장은 이를 바탕으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조례 제정부터 추진하고 전국으로 활동을 넓혀 가겠다는 계획이다.

협회의 활동은 문화와 체육 분야로도 이어졌다. 시 낭송가들이 시극을 올리고 판소리 공연을 펼치는가 하면, 2025년 3월에는 하남시종합운동장에서 '제1회 안중근의사배 팔굽혀펴기 대회'도 열렸다. 어린이와 시민, 지역 인사들이 함께 참여하는 행사였다.

"안 의사는 교육자였고 사상가였고 군인이었습니다. 문화로 기억하고, 이웃을 돌보며 실천하고, 몸으로 단련합니다. 그 세 가지를 다 하는 게 안중근 정신이라고 봅니다."

사단법인 2.14안중근문예협회 제공.

김 이사장의 다음 목표는 분명하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서명운동과 국회 청원을 재추진하고, 지방자치단체 조례 제정부터 차근차근 추진해 2월 14일을 국가기념일로 만드는 것이다. 전국 시·도에 지부를 세우고 청소년 백일장과 그림 공모전도 확대할 계획이다.

법정기념일 지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 차원의 검토와 입법 절차 등 넘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김 이사장은 시민 참여를 넓히고 각 지역의 움직임을 모아 이 문제를 공론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꺼낸 이야기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였다. 안 의사는 순국 전 자신의 유해를 조국이 독립한 뒤 고국으로 옮겨 달라는 뜻을 남겼다. 그러나 순국 116년이 지난 지금도 유해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 이사장은 기념일 운동 역시 결국 안 의사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이름과 생애를 기억해야 유해 봉환을 비롯한 미완의 과제도 계속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얼빈의 외손녀를 병원에 모시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후손이 아직도 아픈데 우리가 그 이름을 잊으면 안 되지요. 언젠가 2월 14일에 젊은 연인들이 초콜릿을 건네며 '오늘 안중근의 날이기도 하대'라고 말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그날까지 멈추지 않겠습니다."

김 이사장의 달력에는 세 날짜가 자리 잡고 있다. 2월 14일 사형선고일, 3월 26일 순국일, 10월 26일 하얼빈 의거일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중 하루를 더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일이다. 달력 속 숫자 하나가 역사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그 질문이 다음 세대에 전해지는 것. 김수남 이사장은 오늘도 오후 2시 14분을 기억하자고 말한다.

사단법인 2.14안중근문예협회 제공.
사단법인 2.14안중근문예협회 제공.

wind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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