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이현경 기자·사진 강소연 기자]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2009년 개봉한 영화 ‘바람’에서 허 씨 캐릭터를 선택했던 양재영(34)은 짧은 등장에도 존재감 하나는 분명했다. 경상도 억양으로 툭 내뱉는 대사 "그라믄 안돼~" "쉽사리"가 특히 진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4년의 시간이 흐른 2013년, 양재영의 존재감은 다시 위력을 발휘했다. tvN ‘응답하라 1994’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 '바람'이 재조명을 받았고 당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양재영에게 카메오 출연기회가 주어졌다.
오랜만에 팬들 앞에 선 양재영의 능청맞은 연기는 여전했다. 시청자들은 "그라믄 안돼"로 시작하는 그의 대사에 폭소를 터뜨렸다. 단 몇 분의 출연에 CF가 몰렸다. 양재영은 벌써 주류, 소셜커머스, 게임, 증권까지 무려 4개의 CF촬영을 완료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나 싶어요. ‘바람’에 출연할 때만 해도 가벼운 마음이었거든요. ‘빨리 어묵먹는 신 찍고 집에 가야지’란 생각이었죠(웃음). 사실 어묵 먹다 대사 몇 마디 하는 게 제 분량의 전부였어요. 물론 준비 하나는 철저하게 했죠. 제 대사가 좋았는지 5년이나 흘렀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허 씨를 고른 순간의 선택이 좋았던 거겠죠?”
듣다 보면 입에 붙고 귀에 착 감기는 대사 "그라믄 안돼"는 양재영 본인의 아이디어였다. 실제로 이 대사는 욕이었다고. 유행어의 탄생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이뤄졌다. 양재영은 어머니와 동네 어부들의 말투를 버무려 특유의 억양으로 이 대사를 완성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아들, 밖에 나가서 나쁜 짓하고 그라믄 안돼’라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정말 익숙했죠. ‘바람’을 연출한 이성한 감독은 경상도 특유의 욕 섞인 대사를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쓰고 싶지 않다더군요. 욕을 뺀 재밌는 말이 뭘까 생각하다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죠. ‘쉽사리’라는 말은 동네 어부 아저씨들이 흔히 쓰셨어요. 저희 집안이 대대로 어업을 했는데, 그 때 일하던 아저씨들이 항상 ‘쉽사리’라는 말을 쓰셨던 걸로 기억해요.”
tvN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카메오 출연한 양재영(사진 위)과 영화 '바람'의 한 장면. 왼쪽부터 양재영, 정우, 이유준 [사진=tvN `응답하라 1994`·영화 `바람` 캡처] |
“미술선생님이 꿈이었어요. 근데 수능 한 달 전 학원 선생님이 소질이 없다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죠. 왜 이제서야 말씀하시냐 물었더니 그저 미안하다고만 하셨어요. 다음날 바로 미술을 그만두고 진로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우연히 친구가 연기학원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갔더니 다들 불은 켜 놓고 말은 한마디도 안 하더라고요.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인가’ 생각도 들었는데 한편으론 ‘멋있다. 한 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죠. 늦게 시작한 연기라 삼수 후 부산예술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렇게 연기에 입문한 양재영에게 좌절은 빨리 찾아왔다. 25세, 영화 ‘돌려차기’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했지만 기대만큼 성과는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5년 만에 서울생활을 포기했다. 그 길로 그는 부산으로 돌아갔다.
“‘연기가 아닌 인기만 좇는 건 아닌가’ ‘정말 연기가 좋다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있는가’. 동네 봉래산을 오르내리며 많은 생각을 했죠. 실컷 연기하면서 돈도 벌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죠. 자연스럽게 공연 쪽으로 눈길을 돌렸어요. 당시 연극을 함께하던 선배가 포기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셨어요. 무대에 서면서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어요. 연기도 공부가 필요한 걸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죠.”
양재영은 유독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깊다. 집안의 장남이 연기를 하겠다고 나선 탓에 경제적 도움이 되기는커녕 부모님과 동생에게 신세만 졌다.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었는데 양재영의 어머니는 2012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어요. 주변에서 저의 평이 좋다면, 그건 다 어머니 덕이죠. 10년 동안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셨어요. 지금 제가 잘된 모습을 보여드렸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앞으로 배우생활 하면서 어머니와 아들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해보고 싶습니다. 모녀간 못지않게 모자간 이야기도 꽤 감동적이고 따뜻하거든요.”
올해 나이 서른 넷 양재영에게 어떤 배우가 목표인지 물었다. '바람' 속 유행어에 비해 인지도는 멀었다며 의욕부터 다진다. 주변에서 못알아봐 버스도 잘 타고 다닌다는 양재영. 살짝 서운함을 내비친 그는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만족할만한 뭔가를 얻고 싶다"며 웃었다.
"아무래도 인지도는 아직이에요. 보여드릴 것도 많고요. 거창하진 않지만 목표도 있어요. 어떤 배우가 되기보다 스스로 선택한 길에 후회 없이 살아가는 거죠. 영화 '푸른소금'에서 송강호 선배님과 같이 연기하면서 느낀 거에요. '선택한 길을 후회없이 걷고 있구나' 스스로 대견할 때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하곤 합니다. 제 꿈도 언젠가 꼭 이뤄지겠죠?"
[장소협조=여의도 빅토리아]
"제 취미는 반신욕입니다. 하하, 의외죠?" 사전 상 ‘취미’의 의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즐거운 일은 무엇이 있을까. 취미가 뭐냐고 물으니 양재영은 망설임 없이 반신욕이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반신욕을 즐기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의외라고요? 이제 저도 나이가 있는 만큼 컨디션 조절이 필요하겠더라고요. 지난 밤 지친 피로를 풀기 위해 매일 아침 10분씩 반신욕을 해요. 길게도 말고 10분만 투자해보세요. 아침에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데는 반신욕만한 게 없어요. 반신욕을 하면 혈액 순환도 잘되고 노폐물도 잘 빠지거든요. 그러면 아침밥도 훨씬 맛있게 느껴지죠. 저처럼 매일 반신욕을 하면 예전보다 훨씬 더 건강한 기분이 들 겁니다. 속는 셈치고 한 번 해보세요.(웃음)” |
[뉴스핌 Newspim] 글 이현경 기자 (89hklee@newspim.com)·사진 강소연 기자 (kang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