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부산=장주연 기자] 배우 최우식(24)은 밝은 톤의 목소리와 순진무구한 미소를 가졌다. 그간 출연한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2012), ‘운명처럼 널 사랑해’(2014), 시트콤 ‘패밀리’(2013) 등에서 그는 이런 타고난 매력을 기가 막히게도 잘 녹여냈다. 어떻게 보면 연기했다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줬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엔 포스터부터 심상치 않았다. 거꾸로 떨어지는 그는 혼란과 혼돈을 오가는 캐릭터처럼 보였고 실제 프레임 속 모습도 그랬다. 대중들에게 각인된 귀여운 이미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기에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당연히 어색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 또 다른, 아무도 몰래 숨겨놓은 제 모습 같다. 이 정도면 메가폰을 잡은 김태용 감독의 말처럼 ‘인상 깊은 20대 신인 배우의 발견’이다.
최우식이 밝음과 어둠을 오가는 10대 소년 영재로 부산을 찾았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 영화의 오늘-비전 섹션에 초청된 최우식 주연의 영화 ‘거인’은 무책임한 부모의 집을 떠나 스스로 그룹홈 이삭의 집에서 살게 된 열일곱 소년 영재의 가슴 시린 이야기를 담았다.
“항상 놀러 오거나 등 떠밀려 와서 뭔가 내 자리가 아닌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없이 왔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이렇게 김태용 감독님과 함께 내 작품으로 오니까 좀 더 재밌고 신나요. 확실히 그전보다 좀 더 즐길 수 있을듯해요. 아~ 근데 사람들이 어떻게 영화를 볼지 너무 떨려요.”
극중 최우식이 열연한 영재는 절망을 먹고 거인처럼 자란 소년이다. 무책임한 부모를 떨쳐 낼 수밖에 없는 영재는 성장통 보다 인생의 고통을 먼저 알게 된다. 최우식은 영재를 통해 깊이 있는 내면 연기를 소화,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넓혔다.
“이렇게 캐릭터에 빠진 건 이번이 처음이고 또 근래에는 없을 듯해요. 뭔가 감정을 만들었다기보다 자연스레 감정이 나온 기분이었죠. 이렇게 긴 호흡으로 영화를 하는 것도 처음이었고요. 사실 걱정도 많이 했죠. 성격도 영재랑 많이 달라서 까불거리거든요(웃음). 감정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고요. 특히 아버지에 대한 원망 부분이 그랬는데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해서 조언을 얻었어요. 감독님이 제가 이해할 수 있게끔 많이 도와주셨죠.”
그의 말처럼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김 감독의 도움을 꽤 많이 받았다. 더군다나 ‘거인’은 김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보니 둘 사이는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배우의 입장에서는 눈앞에 있는 감독을 연기한다는 게 부담도 됐다.
"감독님 이야기란 건 알고 있었죠. 근데 전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어떤 사람을 그대로 따라 하는 건 연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영재를 하고 싶었죠. 아마 감독님이 이랬으니까 나도 이래 야지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면 아마 영재가 살아있는 느낌이 안 났을 거로 생각해요. 그래서 일단 제 생각대로 해보고 감독님이 아니라고 하면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컸죠.”
결국 영화에서 영재가 그토록 흔들렸던 이유는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럼 최우식이란 사람이, 그리고 배우가 바르게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존재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난 유아독존 스타일”이라고 농을 건네던 그는 이내 “부모님에게서 힘을 얻는다”며 쑥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위로 일곱 살 차이가 나는 형이 있는 그는 집에서 귀여움 받는 늦둥이 아들이다.
“매 순간 ‘엄마, 어떡하지? 아빠, 어떡하지?’ 이런 건 아니에요(웃음). 그냥 옆에 의지할 수 있는 그늘이 있다는 거 자체가 좋은 거죠. 제가 부모님께 항상 하는 말이 제 앞에서 울지 말라는 거예요. 제가 생각나는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멋있는 사람이 제 앞에서 무너져버리면 너무 힘들듯해요. 철없죠?(웃음) 아무튼 이번 영화 찍으면서 제가 행복하게 자랐다는 걸 새삼 깨닫고 부모님께 감사했죠. 동시에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부모가 자식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엄청 크다는 걸 느꼈고요.”
인터뷰 다음날부터 BIFF 공식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최우식은 마음 편히 부산에 머무를 수 없다. 핫 아이콘답게 그의 일정은 쉴 새 없이 바쁘다. 지난 2일 개막식에 맞춰 부산에 내려온 후에도 몇 번이나 서울을 오가고 있는 중이다. 당장 다음날에도 서울에 들러 드라마 ‘오만과 편견’ 촬영을 하고 돌아올 예정이다. 빡빡한 일정에 귀여운 투정(?)을 부렸지만, 그의 얼굴에는 변신과 도전을 앞둔 배우의 설렘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어쨌든 이번 영화 속 모습이 그동안 보여준 것과 전혀 다른 이미지잖아요. 그래서 많은 관객이 보고 ‘좀 다른 얼굴을 갖고 있구나’ 했으면 좋겠죠(웃음). 하지만 그보다 제 나이 또래, 혹은 그보다 어린 동생들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해요. 분명 그 친구들 중에서도 말하지 못한 아픔이 있는 친구들이 있을 거니까 이 영화를 보고 위로를 좀 봤으면 하는 마음이죠. 또 그들이 나중에 커서 또 부모가 될 테니까 많이 배웠으면 하고요. 제가 그랬던 거처럼요.”
[뉴스핌 Newspim] 부산=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