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엑소더스:신들과 왕들'에서 모세를 열연한 크리스찬 베일 [사진=AP/뉴시스] |
[뉴스핌=김세혁 기자] 배트맨과 주정뱅이 권투선수, 엘리트 살인마에 대머리 사기꾼. 그리고 밥 딜런까지. 지금껏 작품마다 전혀 다른 캐릭터를 선보이며 팬들을 매료시킨 크리스찬 베일(40)이 이번엔 성서 속으로 들어갔다.
영국이 사랑하는 배우 크리스찬 베일이 리들리 스콧(77) 감독과 손을 잡은 영화는 ‘엑소더스:신들과 왕들’이다. 구약성서 출애굽기를 관통하는 이 영화에서 크리스찬 베일은 대서사의 주인공 모세로 변신했다. 지금껏 한 번도 도전하지 않았던 캐릭터에 매료된 크리스찬 베일은 뉴스핌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대작에 참여한 소감과 캐릭터에 대한 생각, 동료들과 환상적인 호흡에 대해 들려줬다.
영화 ‘엑소더스:신들과 왕들’은 고대 이집트 제국을 이어받을 왕자 람세스(조엘 에저튼)와 그의 형제나 다름없는 모세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집트의 2인자 모세가 자신의 숙명을 깨닫고, 노예로 전락한 히브리(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빠져나가는 장대한 이야기가 154분간 펼쳐진다.
작품 속 캐릭터나 이야기를 떠나, 팬들의 관심을 단번에 집중시킨 것은 리들리 스콧과 크리스찬 베일의 만남이었다. 각각 영국을 대표하는 감독과 배우인 두 사람은 ‘엑소더스:신들과 왕들’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며 프로의 면모를 과시했다.
“4~5년 전쯤 이야기죠. 한번은 러셀 크로와 게리 올드만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라면서 꼭 만나보라 권하더라고요. 둘이 잘 맞을 거라 장담까지 하더군요. 그렇게 리들리 스콧 감독과 만났고, 적당한 작품이 있으면 같이 하자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다 지난해 감독이 직접 연락해 출애굽기를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 모세 역할을 할 마음이 있냐고 물었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크리스찬 베일은 높다란 벽 앞에서 더 힘이 나는 스타일이다. 2004년 ‘머니시스트’에서 다들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30kg 감량에 성공한 그는 연기파이기 이전에 지독한 노력파로 인정 받는 배우다. 아무리 그런 크리스찬 베일이지만 모세 역이 들어왔을 땐 그냥 멍했다.
“감독의 제안에 어안이 벙벙했어요. 모세처럼 중요한 인물을 연기해달라는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거든요. 잠시 시간을 가지면서 이것저것 생각도 하고 자료도 뒤적였는데 역시 ‘리들리 감독과 꼭 해보고 싶다. 도전해보자’란 결론에 이르더군요.”
영화 '엑소더스:신들과 왕들'의 주인공 크리스찬 베일과 조엘 에저튼. 두 배우는 각각 모세와 람세스를 연기했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
“모세와 람세스는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함께 자랐고 끈끈한 유대감으로 이어진 형제 이상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능력과 인기를 시기한 람세스 탓에 둘 사이가 틀어지고 말아요. 모세는 추방돼 사막에서 ‘정화’를 경험하고 신의 계시를 받고는 이집트로 돌아가죠. 람세스는 파라오가 된 후 자신이 살아있는 신이라고 믿게 돼버려요. 거기서 비극은 점차 더 심각해집니다. 신의 계시를 받은 모세와 자신이 신이라고 믿는 람세스 사이에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대립이 영화의 포인트인 셈이죠. 참고로 조엘 에저튼과 호흡은 환상적이었어요. 영화에선 늘 으르렁댔지만 카메라만 꺼지면 친구처럼 지냈죠.”
이집트 제국의 2인자로 성장한 모세가 권세를 버리고 노예들을 이끌게 되는 과정은 크리스찬 베일 스스로에게도 흥미로웠다. 특히 모세가 내적 갈등 끝에 심리변화를 맞는 전개가 연기자로서 도전의식을 자극했다.
“히브리인 노예를 무자비하게 대하는 이집트에서 모세는 장군이자 람세스 다음 서열이었죠. 모세 본인도 노예가 이집트에 필요하다 여기는 지배층인지라 어릴 때 사치스럽게 컸을 거에요. 하지만 극단적으로 신을 경험하며 달라져요. 유대인 장로를 만나면서 깨달음을 얻죠. 비로소 무언가 평생 자신을 괴롭혀왔다는 사실을 안 모세는 지금까지 자신이 알아왔던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 후 이집트에서 추방당하고 신을 만나게 되죠. 모세의 심리변화에 꽤 비중을 둔 영화라 지루하지 않게 긴장을 유지하려 애썼어요.”
히브리 노예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빠져나가는 모세의 여정은 장대하고 험난하다. 이 과정에서 모세는 숱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 그 유명한 열 가지 재앙도 이 무렵에 등장한다. 마침내 모세가 노예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서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모세의 여정은 오늘날에도 그 가치가 엄청나요. 종교를 떠나서 말이죠. 모세는 히브리인 사이에 태어난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라는 파라오의 명령에도 살아남은 극적인 인물이에요. 강에서도 살아남았으며 사막에서 정화를 경험하고 신을 만나게 되죠. 이런 모세의 여정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도 그대로 나타나요. 종교가 있건 없건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어요.”
예고편에서도 등장한 것처럼, ‘엑소더스:신들과 왕들’에는 거대한 전투신이 담겨있다. 크리스찬 베일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인 2012년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도전이 따른 이번 촬영이 즐거웠다고 회고했다.
“‘아메리칸 허슬’을 찍기 직전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났어요. 지금도 왼쪽 팔을 재빨리 움직일 수 없을 정도죠. 사고가 난 건 리들리 스콧을 처음 만난 후였는데, 갑자기 영화에서 활을 쏴야 한다니 걱정이었죠. 신경이 회복되지 않아 팔이 덜덜 떨렸거든요. 다행히 촬영이 시작될 무렵 상태가 좋아졌어요. 인간의 몸은 정말 신기하죠? 말도 타야 한다는 감독 말에 얼마나 신이 났나 몰라요. 촬영 때 말 탈 기회가 생기면 정말 짜릿하답니다. 영화를 찍기 위해 익혀야 하는 다양한 신체적 기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에요.”
같은 세대 배우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하는 크리스찬 베일. 이미 13세 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태양의 제국’에서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갇힌 영국 소년을 열연한 그. 이후 다양한 작품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은 베일은 아주 멀쩡한 사람에서 미치기 일보직전의 사이코까지 어떤 캐릭터든 소화할 수 있는 배우임을 신작을 통해서도 입증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훌륭한 작품, 실력파 감독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 혼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확신해요. ‘엑소더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최고의 감독과 배우들이 저와 함께 했기에 모세가 빛나는 거 아닐까요? 맡은 배역이 주연이든 조연이든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엑소더스’에서도 그랬고, 다음 영화에서도 마찬가지겠죠.”
크리스찬 베일이 생각하는 리들리 스콧 감독 “한마디로 대단했죠. 리들리 스콧은 무엇이 중요한지 정확히 알아요. 덕분에 이렇게 스케일 큰 영화를 단 74일 만에 찍더군요. 감독은 올해 77세지만 상당히 재빨라요. 그를 보면 탄력적인 움직임이 뭔지 알 수 있을 정도죠. 게다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어필하는 감독이에요. 호불호가 단호하죠. 덕분에 제가 좀 힘들었습니다. 뭘 원하는지 잘못 파악할 수도 있어 테이크에 따라 더 열정적이고 과격하게 연기하거나, 부드럽고 인간적으로 연기하기도 했어요. 편집 과정에서 감독이 마음에 드는 테이크를 선택하도록 여지를 준 거죠. 개인적으로는 카메라를 5대, 6대, 심지어 7대까지 동시에 돌리는 감독의 작업방식이 대단히 만족스러웠어요. 인적으로 카메라가 한 대일 때보다 의식이 덜 되거든요. 저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면 저도 그를 쳐다보며 “뭘 봐?”라고 말하고 싶어져요. 신경이 쓰이는 거죠. 하지만 일곱 명이 저를 쳐다보면 시선을 무시하고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죠. (왼쪽부터 크리스찬 베일, 리들리 스콧 감독, 조엘 에저튼) [사진=AP/뉴시스] |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