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이현경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시청자는 김래원(34)의 연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 움직임 없이도 눈빛과 목소리 만으로 극을 꽉 채우는 김래원의 아우라는 드라마를 끌고 가는 힘이었다.
시한부를 선고 받은 한 남자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마지막 외침을 담은 드라마 ‘펀치’로 3년만에 브라운관에 돌아온 김래원의 복귀는 성공적이었다. ‘펀치’는 박경수 작가와 이명우 감독의 합이 어우러져 찰진 스토리로 시선을 모았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력이 시너지가 돼 '웰메이드 드라마'로 호평받으며 마지막회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 14%를 넘겼다. 그야말로 작품성과 화제성, 인기까지,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은 2015년 지상파의 첫 번째 드라마 흥행작이다.
연출, 구성의 완벽한 조합에 배우의 연기가 작품의 화룡점정이었다. 무엇보다 ‘배우’ 김래원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김래원이 선보인 인물 박정환에 일부 시청자들은 영화 ‘해바라기’ 속 오태식을 떠올렸다. 오태식의 잔상이 짙은 시청자들에게는 김래원의 연기를 TV에서 보는 것 자체가 반가움이었다. 억지로 끼워 맞춰진 인위적인 인물이 아닌 사람 냄새나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인물을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김래원에 대한 기대였다. 그리고 시청자가 원하는 바를 잘 아는 김래원은 이를 잘 충족시켰다. 연기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제대로 맛이 나는 작품에서 김래원은 제 몫을 다 해낸 것이다.
‘펀치’를 위해 15kg을 감량하고서 해쓱한 모습으로 돌아온 김래원은 드라마 종영 후에는 안정을 취한듯 했다. 최근 진행된 인터뷰에서 마주한 김래원은 얼굴에 살이 조금 올랐고 정상 체중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야 얼굴에 핏기가 돌았다. 그는 ‘펀치’를 촬영하면서 5kg가 더 빠졌다고 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촬영 환경에 잠도 못 자고 잘 먹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시한부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막바지에는 의식적으로 다이어트를 했다고. 즉, 총 20kg를 감하면서 바닥난 체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며 박정환의 모습을 매듭지었다.
“드라마를 마치고 설 연휴에 건강을 많이 챙겼죠. 촬영하면서도 살이 많이 빠졌어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인물이라 의도적으로 체중 감량을 했지만 촬영 후반부로 갈수록 피곤해져서 저절로 눈이 쾡해지고 살도 더 빠지더군요. 중간에 연기하면서 손 떨림 증상이 있었다고 하고요(웃음). 전 몰랐어요. 촬영하면서 체력이 바닥이 났었고 저도 모르게 손을 떨었나 보네요. 쉬는 날엔 링거는 꼭 맞았고 감기 때문에 여러번 응급실에도 왔다 갔다 했죠.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열심히도 했고 성적도 좋았습니다. 이번 작품은 시청률과 상관없이 꼭 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시청률이 잘 나오면 현장에서 힘이 나는 건 사실이이에요. 계속해서 힘을 낼 수 있는 상황을 맞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갑과 을의 권력 싸움을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그린 드라마였던 ‘펀치’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분쟁의 축소판이었다. 그야말로 먹고 먹히는 정글의 생존법칙보다도 치열했고 규칙도 없었다. 그 속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검사 박정환은 자신의 목숨이 다해가는 순간 네 편도 내 편도 없는 사회에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권력과 세력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라기보다 아내와, 딸, 어머니 등 자신 주변의 사람을 챙기기 위해 치열한 판을 꾸렸다. 이는 알싸한 긴장감을 불러냈다.
후반부로 갈수록 극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던 이유는 초반부터 김래원의 머리 속에는 박정환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명우 감독은 애초 쉽게 드라마를 풀어가자고 했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화가 나면 화를 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달랐다”며 “사실, (배우만의)표현을 고집 부리는 게 연출자의 입장에서는 극의 방향에 지장이 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명우 감독은 날 믿어줬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박정환은 정말 죽음의 문턱 앞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후회도 했지만 잘못된 길에 대해서는 자기 방식대로 책임을 지고 가겠다고 한 멋진 인물”이라며 연기를 하면서도 박정환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사실적인 연기를 위해 자신이 고집했던 부분을 설명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서 ‘난 죽을 사람이야’라고 힘들어 했으면 박정환은 매력 없는 캐릭터였을 거예요. (뇌종양을 앓고 있지만) 평소 정환은 아픈 기색이 없어요. 그만큼 정환은 강한 인물이에요. 그러다 집에서 어느 순간 고통을 호소하는 거예요. 그 부분을 포인트로 둬서 더 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죠. 아픔을 느끼는 장면을 특히 더 신경 썼어요. 극 초반 자신이 뇌종양인 것을 알고도 이태준이 검찰 총장으로 부임했을 때 정환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어요. ‘이것도 다 이겨낼 거다’라는 마음이었거든요. 제 나름의 계획으로 지은 표정이었죠. 고속 카메라로 찍은 슬로우 모션에서는 보일 텐데. 드라마에 잘 잡혔나 모르겠어요(웃음).”
성공적인 드라마 복귀와 주변의 호평이 연이어졌지만 김래원은 흔들림이 없었다. 담담하게 “시청자의 사랑을 느꼈다”며 오히려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펀치’는 자신에게 어떤 작품이냐는 물음에 “2015년을 시작한 작품”이라고 짧게 정의한 뒤 “저를 지켜 본 분들에게는 제가 출연한 작품 중 잘된 작품으로 봐주시는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그리고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10점 만점 중 7점”이라고 아쉬운 마음도 드러냈다.
“예전 작품을 할 때도 ‘나에게 시간이 좀 더 있으면 이 대사만은 평범하게 전달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컸죠. 후반부로 갈수록 흘려버리는 신이 많아요. 명장면이 될 수 있는데 그저 특징 없이 돼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지금의 드라마들이 대부분 그래왔고 그걸 순발력 있게 쫓아가는 게 배우의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걸 감수해야 하는 것도 제 자신이고요.”
인터뷰를 마치며 김래원은 앞으로 사람 냄새 나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펀치’도 그랬든 모든 드라마나 영화는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라고 했다. 진정성 있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작품, 그리고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연기하는 순간이 가장 즐거워요. 이제야 2, 3년 전부터 준비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조금씩 이뤄가는 것 같아서요. 30대와 20대는 다르더라고요. 20대에는 멋있어 보이려한 건 아니었는데 그냥 청춘스타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진정성 있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지금 차기작 시나리오를 쭉 보고 있는데 쉽게 결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찬찬히 살펴보고 이후에 또 좋은 작품으로 뵙겠습니다.”
특히 조재현과는 드라마 '눈사람' 이후 13년 만의 만남이었고 두 사람은 극중 팽팽한 대립각과 더불어 브로맨스까지 펼치며 극의 긴장감을 쥐락펴락했다. 두 배우 모두 선과 악을 오가며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조재현 선배님과는 정말 환상의 호흡이었죠. NG도 거의 안 났어요. 후반 촬영에서는 다들 대사를 외울 시간조차 없어서 앞에 대본을 펴놓고 연기했어요. 그런데도 미리 맞춰본 듯 척척 잘 맞더라고요. 선배님과 연기하면서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발견한 또다른 좋은 친구는 온주완입니다. 저라면 애초 선한 인물이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총대를 멘 악역으로 바꼈다면 많이 섭섭했을 거에요. 그런데 주완이는 밝은 모습으로 그 연기를 다 해내더라고요. 온주완이 맡은 이호성 역할 덕에 박정환이 더 빛날 수 있었던 거죠. 주완이와는 나중에 한 번 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주완이 서브 역도 정말 잘 해주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크게 빛을 발하는 배우라고 생각됩니다.” |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