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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디데이

[뫼비우스 단상] 물탱크 속의 아리아

기사입력 : 2016년07월21일 13:13

최종수정 : 2016년08월04일 17:33

일상에 흔히 보이는 것들로 뫼비우스적, 그 이상의 상상 여행을 하려 한다. 주변의 사물들엔 저마다 독특한 내력이 숨어 있고 어떻게 빚느냐에 따라 보석이 되기도 하고 나침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출발한 여행의 과정에 어떤 빛깔의 풍경이 나타날지, 그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지 필자 자신도 설레인다. 인문학의 시대라고 하는데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메타적 성찰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사물과 풍경, 시대와 인문을 두루 관통하면서 색다르면서도 유익한 여행을 떠나려 한다.


흔한 일상 중의 하나가 어둠이다. 일상의 소품은 아니지만 분명히 일상이면서도 그로부터 비껴있는 듯한 존재. 살다 보면 인생의 어둠이 올 수도 있는데 나는 아주 특이한 어둠을 체험한 적이 있다.

평범하게 별 문제 없이 살아가다가 IMF 때 참혹하게 무너져 인력사무소에 나가 잡부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동료 잡부 한 명과 경기도의 어느 아파트 단지의 물탱크 청소를 하러 갔었다.
현장에서 전문가인 기공을 만나 셋이서 커다란 랜턴을 켜고 모터와 양수기, 밀대 등을 들고 매고 물탱크 속으로 십 미터쯤 걸어 내려갔다. 학교 교실만한 공간이 일곱 개나 연결되어 있었으며 물이 무릎까지 차 있었다. 양수기를 가동해 물을 퍼낸 다음에 청소를 하는 것이 그날의 업무였다. 밖에 있는 전원과 연결을 시켜 모터를 가동시켜놓은 상태였기에 양수기의 버튼을 누르자 물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한참 진행이 되다가 양수기가 갑자기 멈추었다.
정전이 되었나 보다며 기공은 밖에 나가 해결하겠다고 나혼자 남겨둔채 동료를 데리고 나갔다. 랜턴이 하나밖에 없기에 그들이 들고 나가자 물탱크 안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나는 지금껏 그런 어둠을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외가에서 보던 시골의 밤 정도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지하에 묻혀 있는 공간이기에 빛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곳이었다. 입구조차 들어오면서 닫아야 해서 빛이 스며들 길이 전혀 없는 절대 어둠인 것이다. 손바닥을 내 눈 앞에 바짝 대어보았다.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서웠다. 더욱이 정전이다. 내 무릎 아래는 물에 잠겨 있었다. 우리가 설치한 장비들도 물 속에 잠겨 있는 상태였다. 만약에 뭐가 잘못되어 전기라도 흐르게 된다면 나는 꼼짝없이 감전사하는 것이었다. 망상마저 생기면서 공포가 커져갔다.
막막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아~ 소리를 내어 보았다.
놀라웠다. 지상에서 내던 내 목소리와 전혀 달랐다. 그렇게 맑고 투명할 수가 없었고 공명을 타고 있었다. 몇 번 더 소리를 내어 보았다.
나는 목소리에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다. 말이 빠르며 발음이 부정확한 편이다. 사춘기에 그에 관련된 상처가 있기에 불편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 순간 그런 것들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내 목소리는 정확하며 그토록 맑고 청아하며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목소리를 더 크게 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노래 역시 잘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노래 역시 이게 내가 부르는 건가 싶었다. 닫힌 공간 속의 공명을 탄 나의 노래는 내가 반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학교 교실 만한 공간이 일곱 번이 꺾여져 연결된 구조였기에 내가 부르는 노래는 파도를 치며 밀려오는 밀물처럼 메아리를 연속 일으키며 울려 퍼지고 있었다. 너무도 황홀해서 천상의 아리아가 있다면 꼭 이럴 것 같았다.
휴대폰이 혹시 물에 젖을까봐 밖에 맡겨둔 것도 한몫해 만끽한, 지상에선 있을 수 없는 어둠. 소음이 섞여 있기 마련인 지상과는 완전히 차단된 곳이기에 소음 또한 일점 없다. 물이 고여 있긴 하지만 바람이 한 점도 일어날 수 없는 공간이기에 물은 완전히 정적이었다. 그런 환경이기에 내 목소리의 투명성이 완벽에 달해 있었고 그것은 넓은 공간의 굴절된 구조에 의해 메아리를 연속해서 생성하며 아름답게 공명되면서 빛처럼 넘치는 것이었다.
그 체험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르자 저만치서 랜턴 빛이 잔잔히 번져올 때의 장면 역시 한 장의 그림 같다. 신이라도 되는 듯 그 완전 어둠을 거두며 찰랑찰랑 물소리를 내며 저벅저벅 걸어오는 게 아닌가. 우리 셋은 다시 양수기를 돌려 물을 퍼내고 청소를 마쳤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인 경우가 있다. 그럴 땐 목소리를 내어 보라.

절대 어둠. 그 안에서의 깊디 깊은 고독은 진리를 깨치거나 자성을 이룰 최적의 조건이 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의 어둠은 그 훌륭한 길에 대해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환경인 셈이다.
어둠이 그렇지 않고 깊은 절망이나 공포로 이어진다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그런 곳에 사로잡히면 빠져나오려는 몸부림마저도 어둠에 잡혀먹기 십상이다. 어둠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우울증. 만성 피로, 환멸, 좌절, 콤플렉스, 트라우마 같은 것들은 그런 면을 짙게 지니고 있다. 삶에서 일어나는 어둠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것들도 많아서 함부로 말해선 안될 것이다.
실은 물탱크 안에 정전이 되고 혼자 있게 되자 그 절대 어둠은 어둠만은 아니었다. 완벽한 충만의 느낌이 아마 내 목소리가 천상의 아리아인 듯 여겨지기 이전에 감지되었던 것 같다. 어둠과의 그런 은밀한 조응이 내게 소리를 내게끔 했을지도 모른다.

볼펜을 한 바퀴 돌리는 장난을 하면서 의미를 헤아려 보는 일, 카톡에 누군가 올린 그림을 자기 식으로 해석해 보는 일, 어쩌다가 물탱크 같은 곳에 처박혀 정전마저 일어난 처지에서 그곳의 특색 그대로를 음미하며 바로 거기서 색다른 연출을 해보는 일. 그런 일이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삶은 상상력이 줄 수 있는 그런 선물을 곧바로 짓밟을만큼 가혹할 수 있으며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 즐비한 절망의 조건들. 세상을 양극화로 가속화시키는 신자유주의의 수혜자건 피해자건, 혜택을 많이 받는 수혜 계급이건 적게 받거나 받을 그릇마저 없는 소외 계급이건 분명 다르고 또 그것이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중요한 아젠다에 속하긴 하지만 어둠은 누구에게나 속속들이 찾아온다. 사회가 어떤 형태든 간에 인간의 본질에 해당되는 것이다.
인간 본질에서 비롯된 어둠이건 사회적 구조에 의한 어둠이건 찾아와 그에 직면할 때 다양한 행동들이 가능할 것이다. 이를 악물고 일어나 물탱크의 사업자로 거듭나거나 아파트 건설 사업주로 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의 물탱크에 들어가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처우를 개선할 위치에 가 있건 그들을 위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주도할 위치에 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을 백팔십도로 돌려 삶과 세상, 우주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인문적인 사람이 되거나 수행 정진의 길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일이 가능하겠지만 그보다 앞서 어둠뿐인 막막함 속에서 그 실체를 가만 응시하며 자아의 목소리를 내어 귀 기울여 들어보는 것도 적어도 손해보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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