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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 단상] 소묘 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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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흔히 보이는 것들로 뫼비우스적, 그 이상의 상상 여행을 하려 한다. 주변의 사물들엔 저마다 독특한 내력이 숨어 있고 어떻게 빚느냐에 따라 보석이 되기도 하고 나침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출발한 여행의 과정에 어떤 빛깔의 풍경이 나타날지, 그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지 필자 자신도 설레인다. 인문학의 시대라고 하는데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메타적 성찰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사물과 풍경, 시대와 인문을 두루 관통하면서 색다르면서도 유익한 여행을 떠나려 한다.

골목의 바깥으로 처음 나간 것이 너댓살 때인듯하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골목 너머의 세상으로 나갔는데 그때 각인된 이미지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독자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지만 이런 풍경에 가깝다.

수많은 가위들이 저걱저걱 움직이고 있었다. 커다란 가위들이 내 앞뒤, 옆으로 쓱쓱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그 속에 갇힌채 천천히 걸으며 그 낯선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댓살 꼬마의 키가 오육십 센티쯤 되려나. 눈은 그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 있다. 치마도 지나갔을텐데 내 기억엔 바지만이 새겨져 있다. 그것도 검정색 바지 위주로. 검정빛 가위 비슷하게 생긴 바지들이 쉼없이 움직여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후 내가 장성해서 처음 간 외국이 홍콩이었다. 지금은 반환되어 중국에 속하지만 1986년엔 영국령이었다. 거기서 받은 강렬한 것은 냄새였다.
특히 구룡 반도를 걸을 때는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음식을 볶거나 지질 때 나는 냄새일텐데 도시 곳곳에 배여 있었다. 다니면서 약해지기는 했지만 상한 비위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빅토리아 피크니 침사추이 같은 명소들이 불식될 정도로 강렬하게 첫인상으로 박힌 것이 역겨운 냄새이다.

내 마음 속의 소중한 풍경 중에 한 개를 더 든다면 프랑스의 퐁텐블로 숲이다.
그 속으로 들어간 것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잠깐이라도 보고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파리로 되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다음날 새벽에 유로 터널을 달리는 기차를 탈 수 있다.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서 아내와 두 딸을 맞이해야 했다.
이들은 해외가 처음이고 나와 만나야만 그 다음의 스케쥴이 정해진다. 2000년 여름, 회사에 사표를 내고 십 여년만에 자유로와진 나는 먼저 유럽 여행 길에 올랐고 런던에서 가족과 만나 함께 여행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철저히 지켜야 할 약속을 마음 속에 두고 잠깐 숲에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퐁텐블로 숲은 버스로 오는 동안 봤는데 햇살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빽빽한채 광활하게 뻗어 있었다. 근교에 있는 밀레의 집과 그의 ‘만종’의 실제 배경지를 구경한 다음 숲으로 향했다. 입구를 기억해 두었는데 조금 걷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어디가 입구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행인들은 한 명도 없었다. 날이 저물고 있고 금세 해가 질 것 같았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제 시간에 숲을 빠져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안내판도 찾질 못하겠다. 휴대폰도 지도도 없다. 미로에 빠져 버린 것이다. 입구를 찾으려고 이미 몇 차례 헤맸기에 사방이 숲으로 에워싸이게 되었다. 머리칼이 쭈삣쭈삣 솟았다. 가슴이 타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파리 행 마지막 버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여기서 급히 빠져나가 부리나케 달려야 겨우 닿을 시간이다.
칠흑 같을 숲에서 밤새 헤매일 것도 공포였지만 내일 아침에 히드로 공항에 도착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더 공포스러웠다. 영문을 모를 가족은 무엇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내일 만나지 못한다면 가족은 해외 체류 이주일간 나를 만날 길이 없다. 나도 내일 미로의 숲을 빠져나간다고 할지라도 연락할 방도가 없다. 어둠이 짙어가는 숲 속에서 나는 진짜 공포스러웠다.
마지막 도박인 듯 아무 곳으로나 마구 달리고 달리다가 저쪽 끝이 터져 마을이 보일듯한 곳으로 내달린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어렵사리 출구를 찾아 숨이 넘어갈 정도로 뛰어 마지막 버스에 간신히 올라 탔다. 그 초긴장과 다음날 아침의 극적인 상봉이라는 임팩트들까지 더해 퐁텐블로 숲에서의 아찔함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첫 번째가 유년기의 첫 사회 풍경이고 두 번째가 외국에 대한 첫 인상이라면 세 번째는 다양한 것들의 섞임 속에 자연에 대한 공포가 가장 강렬한 것 같다. 앞의 두 개가 사회에 대한 거라면 마지막은 자연에 대한 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유년기의 그것은 두세번째 것들에 비해 이렇다 할 의미는 없어 보인다. 다만 내가 골목 바깥으로 나가 가족과 이웃 너머의 사회라는 것을 처음 대했을 때의 감각이란 면에서 내겐 중요한 것일 뿐이다.
홍콩의 역겨운 냄새 안엔 많은 것들이 들어 있어 보인다.
물론 그것으로 홍콩을 비판할 생각도 없고 그것의 무의미함을 안다. 우선 냄새에 대해선 세계사에서 중요한 전쟁 중의 하나인 후추 전쟁이 떠올려진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이라 불리는 사건과 그 후에 이어지는 대항해 시대의 요인 중 하나로도 후추가 들어간다. 음식의 부패를 방지하고 거기서 나는 비린내를 제거하는 데 후추가 그만큼 중요했다. 인도에서 나는 후추를 얻기 위한 국가들 간의 전쟁이 대항해 이전까지 줄줄 이어진다.
무두질 역시 가죽의 부패 방지를 위한 것이지만 부패할 때의 냄새가 미리 제거된다는 의미도 있다. 무두질 기술은 인류에서 아주 오래된 것으로 그 자체가 부패 및 냄새와의 전쟁으로 불릴만도 하다.
역겨움에 대해선 싸르트르도 그의 소설 <구토>의 제목 자체가 의미하듯 문명 특히 이차 대전으로 향하는 서구 문명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다. 구토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문명을 물론 구토만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의 앵글들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냄새 내지 역겨움 특히 그것의 합성어인 역겨운 냄새는 국가나 문명의 근저에 흐르는 중요한 느낌 중의 하나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문명의 기초인 의식주가 모두 생태계의 파괴와 관계 깊기에도 그렇다. 생태계 자체가 먹이 사슬에 의해 돌아가지만 인간은 그 외에 또다른 폭력을 가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강자와 약자, 제국주의와 식민지, 부자와 빈자, 갑과 을 등등 약육강식이란 불편한 꼴을 보이면서. 이 모든 것들을 본질적으로 바라본다면 역겨움에서 자유롭진 않을 것이다.
역겨움은 감정적인 차원의 말 이상이다. 우리의 삶을 이루는 바탕들의 근저를 투시하는 조명등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 내부 속으로 더 깊게 파고드는 것이 바람직할지 모른다. 우리의 현재 문명은 그것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외면하는 방식이 강하게 되어 있다. 피하지 말고 그 내부로의 탐사와 철학적 조명 및 실천이 절실한 상황임은 주변을 돌아보면 드러날 것이다.

내 마음 속의 다양한 풍경들 속에서 대강 세 개를 골라 보았다. 유년기에 안방이나 마루에서 봤기에 그렇게 인지되었을 풍경. 별 의미를 자아내지 못하는 무색무취인 거대한 가위 이미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에 대한 첫 이미지가 무엇이었죠?” 이런 식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쳐보자. 담론 문화가 약한 우리나라에서 지금부터라도 이런 식의 물꼬가 터져 나간다면 삶과 문화가 풍성해질 것이다.
사회 내지 문명에 대해 그처럼 낯섬으로 시작해서 역겨움에 철학적 닻을 내렸고 그 기반이자 모태가 되는 자연을 공포를 우선시 해서 그려 보았다.
물론 그것들에 대한 감각은 훨씬 다양할 것이다. 사회 내지 문명에 대해선 대단함, 훌륭함, 감사함 등등의 감정도 있을테고 자연에 대해선 경이로움, 공허함, 무관심, 피조물, 은총, 사랑스러움 등등의 감정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 다를 것이다. 나는 이제 골목을 나서서 그 너머의 세상에 대해서도 나름의 상상 여행을 펼쳐보려 한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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