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사회

속보

더보기

[전문] 문재인 대통령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

기사입력 : 2017년06월10일 10:36

최종수정 : 2017년06월10일 16:05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뉴스핌=이영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이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라며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기억과 다짐'을 주제로 열린 '6·10 항쟁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낭독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30년 전 6·10 민주항쟁 시위의 본거지였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기억과 다짐'을 주제로 열린 '6·10 항쟁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일자리 위기가 근본 원인"이라며 "제가 일자리대통령이 되겠다고 거듭거듭 말씀드리는 것은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민주주의는 형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경제의 문제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6·10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 이한열 열사가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같은 대학 학생 이종창 씨에 의해 부축 당한 채 피를 흘리는 모습이다. 사진가 정태원(Tony Chung) 씨가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뉴시스에 고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제공했다.<사진=정태원 제공/뉴시스>

다음은 문 대통령의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 전문이다.

◆ 문재인 대통령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늘, 국민여러분과 함께
6․10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광장에 서니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스물이 안된 청년부터 일흔의 원로까지,
제주에서 서울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고,
영남과 호남이 한 목소리로 외쳤던 함성,
‘호헌철폐, 독재타도’, 그 뜨거웠던 구호가
지금도 귀에서 생생합니다.

30년 전 6월,
우리는 위대한 국민이었습니다.
빗발치는 최루탄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청년학생들.
응원군에서 항쟁의 주역으로 변해간 넥타이부대.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손수건을 흔들고, 빵을 나눠주고,
전투경찰의 가슴에 평화의 꽃을 달아주었던 시민들.
그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이었습니다.

30년 전 6월,
우리는 국민이 승리하는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엄혹했던 군부독재에 맞서
불의에 대한 분노와 민주의 열망이 만들어낸 승리였습니다.

국민은 시대의 흐름을 독재에서 민주로 바꿔냈습니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을 권리,
국민이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되찾았습니다.
바위에 계란치기 같았던 저항들이
끝내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
너무도 위대하고 감격스러운 역사였습니다.

대통령 직선제만이 아니었습니다.
6월 항쟁은 우리 사회에 광장을 열었습니다.

보도지침이 폐지되고,
언론과 시민은 말 할 자유를 찾았습니다.
다양한 시민사회운동 조직이 생겼고,
억압되고 폐쇄되었던
민주주의의 공간을 확대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면, 눈부신 경제발전도,
사회 각 분야의 다양성도,
문화와 예술도 꽃피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난 30년, 우리 사회가 이뤄온
모든 발전과 진보는 6월 항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 국민들이 이룬 그 모든 성취를 바탕으로 출범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오늘,
6월항쟁의 주역인 국민과 함께
30주년을 기념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6월항쟁의 정신 위에 서 있습니다.
임기 내내 저 문재인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가진 국민의 한 사람임을
명심하겠습니다.
역사를 바꾼 두 청년,
부산의 아들 박종철과 광주의 아들 이한열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항쟁을 이끌어주신 지도부,
87년 뜨거운 함성 속에서
함께 눈물 흘리고, 함께 환호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세계가 경탄하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우리 국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시작은
해방과 함께 바깥으로부터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를 이만큼 키운 것은 국민들이었습니다.
그 길에 4.19가 있었고, 부마항쟁이 있었고,
5.18이 있었고, 6월 항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지난 겨울 촛불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촛불은 한 세대에 걸쳐 성장한 6월 항쟁이
당당하게 피운 꽃이었습니다.

우리는 6월 항쟁을 통해 주권자 국민의 힘을 배웠습니다.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공화국을 실천적으로 경험했습니다.
6월의 시민은 독재를 무너뜨렸고
촛불시민은 민주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의제를 제시했습니다.
촛불은 미완의 6월 항쟁을 완성시키라는 국민의 명령이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우리 앞의 과제는 다시 민주주의입니다.
‘더 넓고, 더 깊고,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6월 항쟁으로 성취한 민주주의가
모든 국민의 삶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질 때,
6월 항쟁은 살아있는 현재이고 미래입니다.

민주주의는 제도이고, 실질적인 내용이며, 삶의 방식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약속드리고 제안합니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후퇴하는 일은 이제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인권은 확대될 것입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헌법, 선거제도, 청와대, 검찰, 국정원, 방송,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운용하는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기관이 국민의 의사와 의지를
감시하고 왜곡하고 억압하지 않도록 만들겠습니다.

이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일자리 위기가 근본 원인입니다.
제가 일자리대통령이 되겠다고 거듭거듭 말씀드리는 것은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민주주의는 형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자리는 경제의 문제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가 함께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양보와 타협, 연대와 배려,
포용하는 민주주의로 가야 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시민사회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6월 항쟁 30주년을 디딤돌 삼아 우리가 도약할 미래는
조금씩 양보하고, 짐을 나누고, 격차를 줄여가는
사회적 대타협에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반드시 해내야할 과제입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진정한 노사정 대타협을 위해
모든 경제주체의 참여를 당부 드립니다.

누구나 성실하게 8시간 일하면 먹고사는 것 걱정 없어야 합니다.
실패했더라도 다시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함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가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정치권에서도 함께 힘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한 가지, 꼭 함께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6월 항쟁의 중심은 특정 계층, 특정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사제, 목사, 스님,
여성, 민주정치인,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문인, 교육자, 법조인, 문화예술인, 언론출판인, 청년, 학생,
그 모두가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로 모였습니다.
전국 22개 지역에서 동시에 열린 6.10 국민대회가
6월 26일, 전국 34개 도시와
270여 곳에서 동시에 열린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국민평화대행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처럼 6월 항쟁에는 계층도 없었고, 변방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저도 부산에서 6월 항쟁에 참여하며,
민주주의는 물처럼 흐를 때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독재에 맞섰던 87년의 청년이
2017년의 아버지가 되어 광장을 지키고,
도시락을 건넸던 87년의 여고생이
2017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촛불을 든 것처럼,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정치와 일상이, 직장과 가정이
민주주의로 이어질 때 우리의 삶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역량이
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갑시다.
관행과 제도와 문화를 바꿔나갈 일은 그것대로
정부가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주변에 일상화되어있는 비민주적인 요소들은
우리 모두 서로 도와가며 바꿔나갑시다.
개개인이 깨어있는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노력은 그것대로
같이 해나갑시다.

민주주의가 정치, 사회, 경제의 제도로서 정착하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상에서 민주주의로 훈련될 때,
민주주의는 그 어떤 폭풍 앞에서도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6월 항쟁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는 영원하고,
광장 또한 국민들에게 항상 열려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6월 10일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문 재 인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기억과 다짐'을 주제로 열린 '6·10 항쟁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낭독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뉴스핌 Newspim]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사진
'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사제목
기사가 번역된 내용입니다.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