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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장인과의 소송 끝에 쟁취한 사랑, 로베르트 슈만 vs 클라라 슈만

기사입력 : 2017년11월10일 12:00

최종수정 : 2017년11월10일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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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17)

슈만의 대표작중의 하나인 《시인의 사랑》은 모두 16개의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각 곡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내용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곡부터 제6곡까지는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으며, 제7곡부터 제14곡까지는 실연의 아픔을, 마지막 제15곡과 16곡에서는 지나간 청춘의 향수와 실패한 사랑에 대한 쓰라린 심정을 노래한다.

제1곡 〈아름다운 5월에 (Im wunderschonen Monat Mai)〉는 짤막하고 아름다운 서주로 시작되며 매우 사랑스럽고 서정적이다
“아름다운 오월에 꽃봉오리들이 모두 피어날 때
나의 마음속에도 사랑의 꽃이 피어났네
아름다운 오월에 새들이 모두 노래할 때
나도 그 사람에게 고백했네 초조한 마음과 소원을”

그리고 제7곡 〈나는 슬퍼하지 않으리(Ich grolle nicht)〉는 《시인의 사랑》의 중추적인 곡이다. 시인이 노랫말처럼 이제 자신의 사랑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노래하고 있다. 
“나는 울지 않으리 이 가슴이 부풀어 터지더라도
영원히 잃어버린 사랑이여
나는 울지 않으리 그대가 다이아몬드의 빛으로 꾸밀지라도
그대 심중의 어둠을 비쳐줄 빛은 없으리”

낭만주의 음악가의 한사람으로 주옥같은 피아노곡들과 수많은 가곡을 남긴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 그는 1810년 6월 8일에 독일 작센지방의 츠비카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서적 출판을 하는 한편 문필에도 종사한 문화인이었고, 어머니는 야무진 성격의 사람이었다. 슈만은 7세 때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부터 기초 교육을 받은 이후 스스로 작곡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또 부친의 책방에서 음악 서적을 읽었고, 바이런과 리히터 등 문인들 작품과 칸트의 철학을 연구하면서 교양을 쌓았다.
슈만의 어머니는 음악의 길로 나아가는 아들을 불안하게 여겼다. 16세 때 아버지가 타계하자, 어머니의 권유로 라이프치히 대학에 들어간 슈만은 법률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거기서도 역시 피아노를 치는 데 열중했다. 놀란 모친은 그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전학시킴으로써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막아 보려 했다.
그런데도 슈만은 여전히 피아노를 배우며 한층 더 음악에 힘썼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이 음악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허락했다. 이후 슈만은 라이프치히로 돌아와 당대의 저명한 피아노 선생 프리드리히 비크의 문하로 들어가서, 밤낮없이 피아노 연주에 몰입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무리한 탓이었는지 손가락을 다치게 된다. 더 이상 연주자로서의 꿈을 이어갈 수 없게 된 그가 절망 속에서 찾아낸 길은 연주가가 되는 대신 작곡· 지휘· 평론가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슈만의 이름을 높이는 길이 되었다.

음악가로서 슈만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은 교향곡과 같은 대곡이 아닌 피아노곡과 가곡이다. 특히 슈베르트를 존경한 그는 슈베르트를 능가하는 가곡을 세상에 발표하였다. 슈만의 피아노곡과 가곡에서는 그의 음악세계가 추구하는 서정성과 환상성이 음악과 적절히 조화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전기 낭만주의 시대는 물론이고 독일 정신을 매우 잘 표현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슈만은 독일 낭만주의 시대를 꽃피운 걸출한 작곡가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문학적 소양 또한 깊어서1834년에는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ür Müsik)》를 발행하여 많은 음악평론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슈베르트 · 쇼팽 · 브람스 등의 대음악가들을 세상무대에 소개하였다.

슈만과 클라라 부부의 초상화 <사진=이철환>

슈만과 그의 부인 클라라의 사랑은 한 편의 드라마이다. 그들의 사랑은 갖은 우여곡절을 거친 뒤 마침내 결실을 거두게 된다. 1836년 슈만은 자신의 은사인 비크의 딸이자 유명한 여류 피아니스트인 클라라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당시 클라라의 나이는 18세, 슈만은 그보다 9살 위였다. 그런데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는 이들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클라라 아버지 비크의 입장에서는 애지중지하는 자랑스러운 딸의 상대로 슈만이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당시 클라라의 명성은 대단했다. 그녀는 아홉 살이던 1828년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공식 연주회를 가졌고, 이후 국외 연주회만도 38회에 이르는 등 손꼽히는 피아니스트였다. 당대의 문호 괴테, 바이올린의 거장 파가니니, 작곡가 멘델스존, 피아노의 귀재 리스트 등 많은 예술가들이 클라라의 피아노 연주를 극찬했다. 또 여러 귀족들로부터 후원도 받고 있었다. 이런 딸이 피아니스트로서는 더 이상 가망이 없고 작곡가로는 무명이나 다름없는 슈만과 결혼하겠다고 하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극렬한 반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도 슈만과 클라라 두 사람은 자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며 3년여에 걸쳐 그들의 결혼을 간청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슈만과 클라라는 법에 호소하기로 하고 장인인 비크를 상대로 라이프치히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840년 9월, 슈만과 클라라는 마침내 법정으로부터 허가를 받아내게 된다. 그해 9월 12일 클라라가 21세가 되기 전날을 기해 두 사람은 교회에서 조촐한 식을 올린 뒤 결혼생활에 들어갔다.

분명 결혼 당시에는 클라라가 좀 더 재능이 뛰어나고 장래가 촉망되던 존재였다. 그러나 이 결혼은 당대의 두 재능이 결합됨으로써 후일 음악사에 대단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슈만은 결혼을 하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얻게 되었고 이로 인해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결혼 이후 거의 모든 부문에 걸친 작곡활동을 펼쳐 나갔다.
결혼생활이 한창 무르익어가던 1843년 슈만은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게 된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이때부터 정신착란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차 병세가 악화되자 드레스덴에 정주하여 개인교수와 창작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이후 1850년, 슈만 부부는 드레스덴을 떠나 뒤셀도르프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시립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다. 그로 인해 경제적 면에서 다소 여유가 생기게 된다. 널찍한 주택이 생겨 클라라는 자신만의 독방을 가지게 되었고, 결혼 후 처음으로 거리낌 없이 마음껏 피아노 연습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객실로 쓰던 큰 방에서는 이따금 음악가들을 초대하여 하우스 콘서트를 열었다.
그렇지만 행복도 잠깐, 얼마 후 불행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슈만은 드레스덴 시절부터 이미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뒤셀도르프에 온 뒤부터는 관현악단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 갈등을 겪으면서 증상이 악화되었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슈만은 정신이상현상을 보이게 된다.
1854년 2월 27일, 그는 가족들 모르게 집을 나와 라인강 다리 위에서 강에 몸을 던졌다. 요행히 뱃사람이 구해서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때 슈만은 자신이 한 짓에 대해 변명도 하지 않은 채 방에 들어가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 뒤 본 시가지 교외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서 약 2년 반 동안 요양에 힘썼다. 그러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마침내 그는 자신의 병실에서 1856년 7월 29일, 4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 병동은 예정되었던 철거를 면하여 지금은 슈만 박물관이 되어 있다.

슈만은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왔고 나중에는 정신이상증세를 보였는데, 이러한 그의 정신병 증세는 집안내력과 무관치 않다. 출판업자였던 슈만의 아버지는 오래도록 신경쇠약을 앓다가 1826년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슈만의 손위 누이인 에밀리에도 자살했다. 슈만이 열여섯 살 되던 때의 일이었다.
슈만 또한 스물세 살이던 1833년부터 정신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무렵 슈만은 손가락 부상으로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어야 했으며, 또 좋아했던 큰형 율리우스와 형수의 죽음 등 불행이 겹쳤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음악평론가로서의 삶을 계획하면서 음악잡지 〈음악신보〉의 창간을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
음악평론가 슈만은 두 개의 필명(筆名)을 사용했다. 하나는 ‘오이제비우스’ (Eusebius)였고, 또 다른 하나는 ‘플로레스탄’(Florestan)이었다. 그런데 오이제비우스는 명상적이고 우울한 인물을 뜻하며, 플로레스탄은 열정이 넘치는 사람을 뜻한다. 이 두 개의 상반된 캐릭터를 자신의 필명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슈만은 극단적인 조울증 환자였다는 것이다. 이 상반된 캐릭터는 그가 작곡한 피아노곡 《사육제 Op.9》에도 등장한다. 이는 모두 21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5곡이 ‘오이제비우스’, 제6곡이 ‘플로레스탄’이다.

거의 한평생을 정신질환에 시달렸던 슈만에게도 꿈처럼 달콤했던 시절이 있었다. 5년간의 열애 끝에 연인 클라라와 결혼했을 때였다. 이 해 한 해 동안에만 자그마치 133개의 가곡을 작곡해내었다. 사랑의 힘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슈만의 생애에서 1840년을 이른바 ‘가곡의 해’라고 부른다.
이 많은 가곡들 중에서도 《시인의 사랑(Dichterliebe)》은 백미다. 이 작품은 슈만이 1840년 여름에 완성한 가곡집으로, 독일 낭만파 시인 하이네의 시집 〈서정적 간주곡〉에 수록되어 있는 66편의 시 가운데 16편을 골라 가곡집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많은 성악가들이 이 《시인의 사랑》을 불렀지만, 그중에서도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의 노래가 특히 유명하다.
하이네는 백만장자 은행가의 딸인 사촌 여동생 아말리에를 깊이 사랑했다. 그러나 속물근성을 지닌 그녀로부터 냉담하게 거절당하는 비참하고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사랑을 향한 애절한 심정이 이 시에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슈만이 하이네의 시에서 맛보는 사랑에 대한 공감은 아주 각별했을 것이다. 슈만은 우여곡절이 많았던 클라라와의 5년에 걸친 사랑의 열정과, 그 귀중한 사랑이 결혼이라는 선물로 연결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이 작품에 매달렸다. 그리하여 음악사에 길이 남는 명작을 남기게 된 것이다.

슈만의 음악과 인생에 부인 클라라와 함께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은 다름 아닌 요하네스 브람스이다. 브람스가 슈만 부부를 처음 만난 것은 1853년 9월 30일, 그의 나이 스무 살 때였다. 그는 당시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신인 피아니스트로서, 친구 요하임의 간곡한 권유에 따라 뒤셀도르프에 있던 슈만의 집을 방문했다.
브람스가 슈만을 방문하기 이전의 일로, 한번은 브람스가 함부르크에서 연주회를 가지고 나서 슈만에게 그의 작품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슈만은 그의 작품을 개봉도 않은 채 반송했다. 브람스는 그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아 더 이상 슈만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브람스는 슈만의 작품을 면밀히 연구해 본 결과 완전히 매료되어 버린다. 그래서 그는 다시 용기를 내어 슈만을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브람스의 피아노 연주와 그의 작품을 들어본 슈만 부부는 브람스의 음악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브람스의 천재성을 단번에 알아본 슈만은 〈새로운 길〉이라는 에세이에서 ‘시대의 정신에 최고의 표현을 부여한 사람’이라고 그를 격찬했다. 브람스 역시 이들 부부에 대한 깊은 존경과 친밀감이 더해 갔음은 물론이다. 이후 그들 간의 관계는 갈수록 친밀해져 갔다.

이처럼 브람스에게 있어 슈만은 음악적 스승이자 인생의 중요한 길잡이였다. 그러나 클라라라는 존재는 브람스에게 있어 연모하는 ‘여인’이었다. 브람스는 클라라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지닌 채로 다른 여인들과는 이렇다 할 로맨스 없이 한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사실 브람스는 슈만이 살아있을 동안 내내 자신이 연모하는 여인 클라라와, 은인이요 스승인 슈만의 부인인 클라라 사이에서 끝없는 고민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브람스는 심지가 굳고 경건한 사람이었다. 결국 사랑의 감정을 억제하며 우정과 존경의 마음으로 대체함으로써 세 사람의 관계를 원만히 이루어나가기로 했다. 브람스는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채 창작에 열정을 쏟아 나갔다. 그러던 중 브람스는 1853년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브람스는 즉시 클라라에게로 달려갔다. 브람스는 깊은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는 클라라를 최선을 다해 위로하고 도왔다.
이후 브람스는 클라라가 여생을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혼신의 힘을 기울이게 된다. 이처럼 클라라의 슬픔을 달래고 공감을 나누는 동안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한층 더 깊어갔다. 마침내 브람스는 그녀를 향한 마음을 감추고는 더 이상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클라라가 자신보다 14살 연상이라는 사실도 브람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브람스는 종종 편지로 그의 끓어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클라라의 답장에는 항상 매정하게도 자신은 슈만의 아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내용만이 담겨져 있었다. 즉 남편 슈만이 사망한 이후 클라라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란 오직 남겨진 7명의 아이들 양육과 슈만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브람스와 클라라 두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서로를 위로하고 도우면서 각자 예술가로서의 창작에 몰두했다. 오히려 브람스는 그 이후 한층 더 심오한 대작들을 쏟아내게 된다. 불타는 정열을 예술적 영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클라라를 처음 만난 20살부터 64살로 타계하기까지 늘 브람스의 마음속에 있었던 존재는 클라라였다. 브람스는 클라라를 향한 연모의 열정을 모두 음악 창작에 쏟았던 것이다.
1896년 5월 20일 클라라가 77세의 나이로 타계했을 때 브람스는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고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듬해 1897년 4월 3일 대작곡가 브람스는 64세를 일기로 클라라의 뒤를 따라갔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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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22~26일 유엔총회 참석 [서울=뉴스핌] 박찬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참석을 위해 오는 22일부터 26일까지 미국 뉴욕을 방문한다. 이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안전보장이사회 토의를 주재한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1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 일정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우선 22일 뉴욕에 도착해 세계경제포럼 의장인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을 만나 인공지능(AI)과 에너지 전환에 관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이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의원단을 접견해 한미관계 발전을 위한 의회의 역할도 당부한다. 뉴욕에 거주하는 한인동포 간담회도 한다. 여러 세대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뉴욕 한인 동포들과 자리한다. [워싱턴 로이터=뉴스핌]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5.08.26 photo@newspim.com 다음 날인 23일에는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을 한다. 이 대통령은 190여 개 국가 정상들 중 7번째로 기조연설에 나선다.  위 실장은 "전 세계 정상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대한민국 대외정책을 천명하는 주요 무대가 될 것"이라며 "민주주의 대한민국 복귀를 선언하고 한반도 정책 등 한국 정부의 외교 비전을 제시하고 인류 평화와 번영을 이뤄나가기 위한 방안을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23일 오후에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면담하고 글로벌 현안 대응과 관련해 유엔 중심의 다자주의 강화 방안을 논의한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유엔 총장의 지지도 당부할 예정이다. 저녁에는 미 조야의 오피니언 리더와 만찬을 하면서 한미관계 발전 방안에 대한 제언을 듣고 의견을 나눈다.  뉴욕 방문 사흘째인 24일 오후 3시에는 이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유엔 안보리 공개 토의를 주재한다. AI와 국제평화 안보 주제 회의에서 '모두의 AI 기조와 국제사회 평화 안보 공동 대응'에 대한 논의를 주도할 예정이다. 마지막 날인 25일 오전에는 미 금융가 월가와 한국 금융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대한민국 서밋 행사에 참석한다. 이 대통령은 글로벌 핵심 투자자들을 만나 한국 정부의 정책을 소개하고 한국에 대한 투자를 요청할 방침이다. 위 실장은 "이 자리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서 '코리아 프리미엄'을 본격적으로 알려 연중 최고가를 경신 중인 한국 증시에도 활력이 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pcjay@newspim.com 2025-09-1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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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2만명 'IMEI·폰번호 유출 우려 [서울=뉴스핌] 양태훈 기자 = KT가 18일 서울 광화문 웨스트 사옥에서 소액결제 피해 관련 2차 브리핑을 열고, 불법 초소형 기지국(일명 펨토셀) 신호와 연계한 추가 피해 정황 및 향후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KT는 전수 분석을 통해 불법 기지국 아이디(ID) 4개를 확인했고, 해당 신호를 수신한 고객이 누적 약 2만 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1차 브리핑 당시 KT가 발표한 2개 ID·1만 9,000여 명에서 범위가 더 확대된 수치다. 피해 고객 수도 278명에서 362명으로 늘었고, 누적 피해액도 1억 7,000만 원에서 약 2억 4,000만 원으로 증가했다.  다만, KT는 9월 5일 비정상 소액결제 패턴 차단 조치 이후 새로운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전수 분석으로 불법 기지국 ID 4개 확인…2만 명 신호 수신 구재형 KT 네트워크부문 네트워크기술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9월 5일 비정상 소액결제 패턴을 차단한 이후 현재까지 추가 피해는 없다"며 "1차 브리핑 당시 피해 고객 278명(피해액 1.7억 원)으로 파악했으나, 이후 고객 문의(VOC) 기반 추가 분석으로 362명·2억 4,000만원으로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류기찬 기자 = 구재형 KT 네트워크부문 네트워크기술본부장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 웨스트에서 열린 소액결제 피해 관련 대응 현황 발표에 앞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2025.09.18 ryuchan0925@newspim.com 이어 불법 초소형 기지국 추적 과정에 대해 "소액결제 2,267만 건을 전수로 펼쳐놓고 결제 패턴과 기지국 동작 패턴을 이중으로 분석한 결과, 불법 기지국 ID 4개를 검출했다"며 "이는 VOC 고객의 접속 로그에서 확인된 ID와 동일했다"고 덧붙였다. 또 "불법 기지국 신호를 수신한 고객은 누적 약 2만 명으로 산출됐다"며 "다만 뒤늦게 확인된 두 개의 ID는 작동 시간이 매우 짧아 신호 수신 고객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부연했다. 나아가 개인정보 유출 정황에 대해서는 "1차 브리핑에서 국제 이동가입자 식별번호(IMSI)를 중심으로 설명했지만, 민관합동조사단과의 확대 분석 결과 국제 모바일 기기 식별번호(IMEI)와 휴대폰 번호도 단말 기종·사용 환경에 따라 전송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다만 유심(USIM) 인증키는 유출되지 않았고, 고객 성명·생년월일 역시 KT를 통해 유출된 정황이 없어 복제폰 생성 가능성은 낮다"고 선을 그었다. ◆ 피해 고객 전액 보상, 2만 명에 '안전안심보험' 무상 제공 김영걸 KT 서비스프로덕트본부장은 추가 피해가 발생한 부분을 고려해 고객 케어 방안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피해 고객 전체에 대한 청구 조정을 진행 중이며, 278명은 조정 완료, 추가 확인된 84명도 금일까지 마무리하겠다"며 "신용카드 결제 시점 차이 등으로 발생한 금액은 즉시 환불 처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류기찬 기자 = 김영걸 KT 서비스프로덕트본부장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 웨스트에서 소액결제 피해 관련 대응 현황 발표를 하고 있다. 2025.09.18 ryuchan0925@newspim.com 이어 "현재 무료 USIM 교체와 유심 보호 서비스 가입을 지원하고 있다"며 "피해 우려 고객 2만 명 전원에게 'KT 안전안심보험'(가칭)을 3년간 무료 제공해 금융사기 피해를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또 "오후 3시부터 KT 매장·고객센터·홈페이지에서 피해 여부 확인 시스템을 오픈했고, 24시간 전담 고객센터를 지속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KT는 현장 대응 강화도 예고했다. 김 본부장은 "전국 2,000개 매장을 '안전안심 전문매장'으로 전환해 후후 앱 기반의 보안 점검, 악성 앱 탐지, 피싱 대응 안내 등을 상시 지원하겠다"며 "매장별 안전안심 담당자를 지정하고 IT 서포터즈를 활용해 피싱 예방 교육을 연말까지, 내년 이후에도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2차 인증 확대와 관련해서는 "고위험 업종에 대해 9월 9일부터~12일까지 PASS 생체/핀 인증을 적용했다"며 "정부·유관기관 지침과 별개로 선제적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펨토셀 18.9만 대 현황 공개…미사용 4.3만 대 차단·회수 착수 KT는 이날 브리핑에서 펨토셀 관리 실태도 공개했다. 구 본부장은 "총 설치 18.9만 대 중 시점별 가동 장비는 15~16만 대 수준"이라며 "3개월 미사용 4.3만 대는 연동 해지 조치했고, 2주 이내 전수 점검해 정상 사용 확인, 철거·회수 또는 영구 접속 차단을 병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법 기지국 추정 방식과 원인에 대해 "합법 장비를 불법 개조하거나, 고출력 앰프를 추가 연결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실내용 이동형 형태로 제작해 광범위한 커버리지를 확보한 정황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로그 분석 기준으로는 ID 4개가 확인됐고, 하드웨어 실물 대수는 수사로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류기찬 기자 = 구재형 KT 네트워크부문 네트워크기술본부장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 웨스트에서 소액결제 피해 관련 대응 현황 발표를 하고 있다. 2025.09.18 ryuchan0925@newspim.com 복제폰 가능성 논란에 대해 손정엽 KT 디바이스본부장은 "복제폰에는 IMEI·IMSI·인증키 3가지가 모두 필요하다"며 "인증키는 유심(HSM 주입)과 서버에만 암호화 저장돼 있으며 통신망을 오가지 않는다. 따라서 IMEI·IMSI만으로는 복제 불가"라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KT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보안 관련 투자도 확대하기로 했다. 황태선 KT 정보보안실장은 "KT는 수개월 전 향후 5년간 보안 투자 1조 원 계획을 밝힌 바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올해·내년 우선순위를 모바일 서비스·단말 보안으로 재배치하고, 보안 거버넌스 강화도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용어 설명 펨토셀(Femtocell) :초소형 이동통신 기지국. 가정이나 소규모 사무실에 설치해 휴대폰 신호를 보강하는 장치. 불법 개조 시 해킹·소액결제 범죄에 악용될 수 있음.VOC (Voice of Customer) :고객 불만·문의 사항. 기업이 문제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때 쓰는 데이터 소스. IMSI (International Mobile Subscriber Identity, 국제 이동가입자 식별번호) : 유심(USIM)에 저장된 번호. 이동통신망에서 가입자를 식별하는 고유 번호로, 유출될 경우 특정 가입자의 통신 기록 추적이 가능. IMEI (International Mobile Equipment Identity, 국제 모바일 기기 식별번호) :단말기(휴대폰) 고유 식별번호. 분실·도난 시 기기 차단이나 추적에 활용. USIM 인증키 : 통신사 네트워크에 가입자임을 인증하는 핵심 암호화 키. 유심 칩과 서버에만 저장되며, 유출되면 복제폰 생성 가능성이 생김. 복제폰(Clone Phone) : 정식 단말과 동일한 IMSI, IMEI, 인증키를 복사해 만든 불법 단말기. 원래 가입자처럼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음. dconnect@newspim.com 2025-09-1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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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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