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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뒤에 고통, ‘명절증후군’...우습게 보다 골병든다

기사입력 : 2018년09월26일 08:00

최종수정 : 2018년09월26일 08:00

어김없이 겪는 명절증후군…수면장애·우울증 유발
무리한 가사노동·장시간 운전, 목·허리 건강 위협
"결혼 언제" "취업은"…정신적 스트레스 가중
정신전문의 "일시적 불안·우울 증상, 필요시 치료해야"

[서울=뉴스핌] 박진범 기자 = 달콤했던 명절연휴가 끝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대개 어깨, 허리가 쑤시고 소화도 안 된다. 스트레스로 머리까지 아파 이곳저곳 성한 데가 없다. 겨우 출근해도 이상하게 졸리고 피로가 쉽게 풀리질 않는다. 

이른바 '명절증후군'은 명절 때 받는 스트레스가 정신적 또는 육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긴 귀향 과정에서 오는 신체적 피로와 가사노동이나 장시간 운전에서 비롯된 통증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증상들은 일시적일 수 있지만 가벼이 넘길 경우 큰 병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명절증후군'은 과거 제사음식 장만과 설거지에 시달려온 여성 주부에게 많이 나타났다. 그렇지만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고 사회가 점점 복합·다변화함에 따라 남편, 청년실업자, 미혼 여성, 직장인, 노인 등 범위가 확대하고 있다.

◆전 부치랴 생선 구우랴...온몸이 ‘욱신욱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명절증후군의 대명사는 아무래도 주부들을 괴롭히는 신체 통증이다. 예로부터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이던 한국 사회에서 요리, 설거지, 청소는 고스란히 여성의 몫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음식문화 특성상 바닥에 앉아 전을 부치거나 고등어를 구울 때가 많다.

아픈 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일하다 명절이 끝나면 갑자기 목과 어깨, 허리 등이 아파온다. 손목 힘줄과 신경에 무리가 가, 손끝이 저리고 팔이 아픈 ‘손목터널증후군’도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다.

26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5년 척추질환의 월평균 진료 인원은 약 66만8000명이었다. 그러나 설날이 있는 1~2월은 약 126만3000명으로 조사됐다. 평소보다 두 배가 넘는 숫자가 병원을 방문하는 셈이니 가히 증후군이라 할만하다.

◆장시간 운전...안구건조·허리디스크 유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런 증상은 남편들에게도 나타난다. 1970~1980년대 이촌향도 현상으로 도시에 이주했던 사람들은 명절을 맞아 그리운 고향을 찾는다. 과거보다 도로 사정은 좋아졌지만 한 번 교통체증이 발생하면 부산, 광주 등까지 차로 5~6시간 넘게 소요된다. 

고향이 광주인 김경훈(56.관악구)씨는 올해 추석에도 운전대를 잡았다. 김씨는 “몇 시간씩 운전하고 나면 눈이 건조해지고 목이 특히 아프다”며 “나이가 드니까 시골 다녀온 뒤 출근하면 몰린 피로를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설, 추석 때 과음이나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 나타나는 소화불량 증세도 명절증후군 중 하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1년~2015년) 소화불량 환자 약 300만명 중 40%가량이 명절이 있는 1~2월, 9~10월에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장시간 운전 때문에 치질이 발병하거나 악화한다는 견해도 있다.

명절이 끝난 뒤에는 치과 이용률도 증가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6년 치과 진료를 받은 국민은 1일 평균 약 9만1000명이었다. 반면 명절 연휴기간 이후 2주간에는 하루 평균 약 13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추석기간 송편 등 당분이 많은 음식을 섭취해 치아에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풀이된다.

◆취업은 언제? 결혼은?...청년들도 괴로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반가운 친척을 만났지만 “결혼은 언제 하니” “취업준비는 잘 되니” “아이는 언제 낳을 생각이니” 등 잔소리를 들으면 즐거웠던 명절은 악몽으로 변한다.

저성장·취업난과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청년들은 명절을 달콤한 연휴가 아닌 ‘고통스런 시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이 때문에 노량진 학원가는 귀향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는 학생들로 붐빈다.

지난 21일 아르바이트 포털사이트 알바몬에 따르면 성인남녀 2229명을 대상으로 ‘추석 스트레스’를 조사한 결과 절반 가까이(46.7%)가 ‘올 추석 친지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친지들과 만남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서(43.8%)’가 가장 많이 꼽힌 이유였다. ‘현재 나의 상황이 자랑스럽지 못해서(35.3%)’가 뒤를 이었다. 스트레스로 후유증을 겪을 바에 명절을 피하겠다는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정신건강전문의 “일시적인 불안과 우울, 치료가 필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명절증후군'을 가볍게 여기다간 목·허리디스크, 위장 질환,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적절한 예방·치료가 필요하다. 가사노동이나 운전 뒤에는 간단한 스트레칭을 통해 근육과 관절의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 또 명절 기간 과식이나 과음을 자제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뿐만 아니라 수면 정상화가 매우 중요하다. 연휴 기간 때 규칙적인 생활리듬이 깨졌다가 갑자기 출근하면 자칫 수면 장애나 불면증이 생길 수 있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명절증후군이란 병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명절을 겪으면서 스트레스나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불안이나 우울 증상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명절 이후에 힘들고 불면증, 불안증상이 있으면 의료기관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며 "필요하면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beom@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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