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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시오리'의 미투는 왜 위투가 되지 못했나

기사입력 : 2018년09월26일 09:00

최종수정 : 2018년09월26일 09:00

日 '미투' 불붙인 이토 시오리…2차 가해에 결국 영국으로
되레 피해자를 비판하는 일본 "술자리 따라간 여자가 문제"

[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어렵게 틔워낸 불씨는 결국 사그라져 버렸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의 불모지 일본에서 꿋꿋하게 미투를 외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의 이야기다.

2018년 미투로 전세계가 시끄러운 가운데에도 유독 침묵을 지켰던 나라, 일본. 성범죄 신고 건수가 놀라울 정도로 낮지만 그 이면엔 강간이 미화되고 2차 가해가 만연한 현실이 있다. 

평범하게 살고 싶으면 피해사실을 숨기고 눈물을 삼켜야 했지만, 지난해 5월 이토는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혔다. 인터넷에선 그녀를 향한 조롱과 비난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체 그녀는 왜 힘든 길을 택한 것일까. 이토 시오리는 "울고 있는 '익명의 피해자'로 남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토 시오리가 자신이 당한 성폭력과 그 이후의 법적 대응과정을 담은 저서 '블랙박스' [사진=문예춘추]

◆ "고통에 눈을 떠보니 강간당하고 있었다"

사건은 2015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명 방송국 TBS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이토는 당시 TBS 워싱턴지국장이던 야마구치 노리유키(山口敬之)에게 진로 상담을 요청했다. 야마구치는 흔쾌히 수락해 4월 3일 그녀를 식사에 초대했다. 

도쿄 도내 꼬치가게에 같이 들어간 시각이 오후 8시. 이후 2차를 가자는 야마구치의 끈질긴 요청에 이토는 어쩔 수 없이 9시 20분경 초밥집을 함께 향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고통에 눈을 떴을 땐 야마구치에게 강간을 당하고 있었다. 

처음 닥친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이토 시오리 본인은 마치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것처럼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며칠은. 하지만 저널리스트로서의 근성은 침묵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진실을 직면하지 못한다면 저널리스트 일을 할 수 없을 거야"란 생각에 진실을 밝히기로 했다.

하지만 경찰이 그녀의 용기에 응답해주지 못했다. 증거가 없다며 "사건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데다, 한 경찰관은 그에게 "처녀입니까?"라고 묻기도 했다. 왜 그런 것을 묻냐고 항의하자 수사지침이라는 답만 돌아왔다. 

이토는 기자로서 취재기질을 발휘해 스스로 증거를 찾아 움직였다. 의식을 잃은 자신을 야마구치가 끌고가는 모습이 담긴 호텔 CCTC를 확보했으며, 택시 운전자와 호텔 벨보이의 증언도 얻어냈다. 그제서야 수사기관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야마구치는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주장했으며, 경찰은 그를 체포하지 않았다. 이토는 체포영장은 이미 발부된 상태였고 그해 6월 8일 나리타 공항에서 경찰이 야마구치를 체포하려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에 의해 체포는 무산이 됐다. 검찰도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때까진 이토는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체포가 무산되고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는 걸 보면서 폭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건을 종결시키려는 수사 당국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폭로는 일본 내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야마구치는 아베 신조(安倍信三) 일본 총리와 관련된 책을 쓴데다, 개인 연락처를 공유할 만큼 친밀한 사이였다. 일본 정치권에선 "총리가 야마구치를 위해 수사를 무마시킨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제2의 이토'를 만들지 말자는 운동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후 여론은 이토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2차 가해가 시작된 것이다. 

◆ "일부러 꼬신 거 아냐?" 쏟아진 2차 가해

"당신이 야마구치를 유혹한 거 아냐? 유명세를 얻으려고?"

"술자리에 따라간 거 자체가 문제지"

"기자회견에서 입은 옷의 단추는 왜 제대로 잠그지 않았나?"

일본 네티즌들은 이토를 공격했다. 그가 이미 성공한 사람을 물어뜯어서 유명세를 얻으려 한다는 논리였다. 이토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는 만큼, 이토가 야마구치를 망치려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토가 '블랙박스'라는 책을 냈을 때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렸는데 혼자 소설 쓴다"는 비판이 나왔다. 

가해자인 야마구치는 TBS를 퇴사한 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여러 방송국에 출연하고 있다. 정치평론가이자 코멘테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데다, 지난해 9월엔 이토를 상대로 1000만엔(약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반면 이토는 2차 가해를 피해 지난 7월부터 영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폭로하기 전부터 "고발하는 순간 일본에서 일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어 각오는 했었지만 그에게 쏟아진 비난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때 영국 런던의 인권단체가 안전한 곳에 와서 머물라는 권유를 했고 이토는 그에 따랐다. 

이토는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2차 가해에 인생을 끝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생을 끝낸다면 '피해를 고발해봤자 결국 저런 결말밖에 맞이하지 못한다'고 받아들여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며 "살아남아서 버티자고 생각했다"고 했다. 

사실 일본에서 성폭행 피해를 폭로했다가 비난을 받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토의 사례를 보고 용기를 얻은 유명 방송인 이토 하루카(伊藤春香)도 2010년에 대기업 광고 대행사 덴쓰 신입사원이던 시절 겪은 성희롱을 폭로했다.

이토 하루카는 덴쓰의 유명 프로듀서 기시 유키(岸勇希)가 심야에 자택으로 자신을 불러 "내 마음에 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몸을 사용해라"라며 성관계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토 하루카의 편에 서서 증언을 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 언론사가 이토 하루카의 제보를 확인하기 위해 덴쓰 내부를 취재했을 때 극소수만이 익명을 조건으로 취재에 응했을 뿐이다. 여론도 그녀에게 싸늘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컨설팅 업체 AMF를 창업한 것으로 유명한 시이키 리카(椎木里佳)도 지난해 성관계를 해준다면 사업에 투자해주겠다고 말한 기업인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계약이 무산됐다고 고백했다. 어려운 고백이었지만 일본 네티즌들은 리카의 '미투'를 '노이즈 마케팅'이라며 오히려 비난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대해 성범죄를 전문으로 다루는 쓰노다 유키코(角田由紀子) 변호사는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이토의 문제를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일본에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하자품' 취급을 당해 왔다"고 꼬집는다.

피해자에 2차 가해가 당연하다는 듯이 이뤄지는 사회에서 미투 동참은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가해자의 처분은 더욱 요원하다. 일본의 피해자들이 '미투'를 외치지 못하고 속으로 삼켜 내게 된 이유다. 그렇게 이토의 미투는 '위투(#We Too·함께 행동한다)'가 되지 못했다.

◆ 침묵하는 피해자들…성범죄에 관대한 일본

이토 시오리는 "처음 성폭행을 당했을 때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사실 이는 이토만의 일이 아니다. 쓰노다 변호사의 말처럼 '하자품'이 됐다는 생각은 자책감을 부른다. 그리고 여성들은 스스로 입을 닫는다.

일본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JILPT)가 2015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근로자의 28.7%가 직장 내 성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 정규직은 무려 34.7%가 피해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정부 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 중 4분의 3은 피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다.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4%에 불과하다. 미국 피해자의 약 30%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과 비교하면 극단적으로 낮은 수치다.

피해자가 스스로 숨어드니 가해자들의 기세는 등등해진다. 성추행에 관대한 일본 특유의 문화도 가해자들이 떳떳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하는 배경이다.

방송 카메라가 넘어온 줄 모르고 여성 아나운서를 성추행하는 일본의 유명 방송인 미노몬타 [사진=TBS]

대표적인 예가 2013년 '미노 몬타 사건'이다. 일본의 거물 방송인 미노 몬타(みのもんた)가 2013년 TBS 아침방송 중 여자 아나운서 요시다 아키요(吉田明世)의 엉덩이를 만지는 모습이 TV에 방송된 것이다.

광고가 방송되고 있다고 착각한 미노가 손을 뻗어 아나운서의 엉덩이를 만졌고, 요시다 아나운서는 간신히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필사적으로 뿌리쳤다. 이 문제는 논란이 되긴 했다. 하지만 논란의 책임을 진 건 미노 몬타가 아닌 피해자 요시다 아나운서였다. 그녀는 자신의 방송에서 하차해야 했다.

성추행을 관대하게 용서받는 건 유명인만이 아니다. 프랑스에 거주 중인 소설가 사사키 구미(佐々木くみ)는 지난해 '치한'이라는 이름의 소설을 출간했다. 저자가 12세부터 18세까지 6년 동안 지하철로 통학하면서 겪었던 성추행 경험과 그로 인한 고통으로 자살 시도를 했던 과거를 고백한 책이다.

사사키는 집필 이유에 대해 "일본의 많은 사람은 치한 문제를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성추행을 유발하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분간하는 일러스트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투'를 어떻게 '위투'로 만들 수 있을까. 이토 시오리는 계속해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다짐한다. 그 방법만이 '블랙박스'를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블랙박스는 '성행위는 두 사람만이 아는 밀실에서 행한 것'이란 뜻으로, 수사기관은 입증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토는 수사가 진행될 당시 경찰과 검찰로부터 이 단어를 자주 들었다고 했다. 자신의 저서 명을 블랙박스로 정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이토의 사례를 다루며 "왜 가해자들이 강간 혐의로 기소되지 않는지, 그리고 왜 일본 여성들이 강간 사건을 신고하지 않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말했다.

AP통신도 이토의 사례를 다루며 "가부장제인 일본에서 미투를 말하는 건 비난과 무시의 위험이 따른다"고 말했다. 이어 통신은 "여성이 오랫동안 성범죄에 대한 잘못을 책임져 온 가부장 사회에서 피해 여성은 지지와 정의를 찾기보다는 범죄를 잊어버리려 노력한다"고 일본의 현실을 꼬집었다.

아직도 일본의 많은 피해자들은 '블랙박스'를 부수지 못하고 스스로를 가둬버리고 만다. 답답한 현실이 바뀔 가능성은 요원해 보이지만, 이토는 "미투 운동 덕분에 피해사실을 이야기해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언젠가 자신의 '미투'에 일본 사회가 '위투'라고 답할 때가 올 거라 믿으며 말이다. 

 

kebju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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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세협상, 명백한 중국의 승리"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미중 관세협상에 대해 중국내에서는 미국에 대항해 '승리'를 거뒀다며 고무된 분위기다. 중국의 매체들은 13일 일제히 미중관세협상 결과를 보도하고 나섰다. 관영매체들은 '승리했다'는 표현을 자제하고 있지만, 협상이 성공적이었다는 논조를 유지했다. 중국의 SNS상에서는 미국에 대항해 중국이 승리했다는 반응 일색이다.  12일 미중 양국의 협상단은 스위스 제네바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은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율을 145%에서 30%로, 중국은 미국에 대한 관세율을 125%에서 10%로 낮추기로 했다.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추가적인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5년전인 2020년 1월 타결됐던 미중 관세협상 결과와는 차이가 크다. 당시 중국은 2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제품 구매할 것을 약속했고, 강도 높은 지재권 보호 , 금융 서비스 시장 개방, 환율 투명성 강화 등을 보장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관세를 일부 인하했다. 하지만 이번 미중 관세협상에서는 양국이 모두 동등하게 115%의 관세를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중국의 미국산 물품 구매나 시장개방에 대한 약속은 없었다. 양보 일변도였던 5년전과 달리 이번 미중 관세협상은 공평하고 평등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매체 블룸버그는 "이번 미중 무역협상에서 중국은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를 얻었고, 미국은 끝내 양보했다"며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강대강 전술이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중국 매체 관찰자망은 "양국의 제네바 경제·무역 회담 공동성명 발표는 중국이 무역 전쟁에서 거둔 중대한 승리이자 중국이 투쟁을 견지한 결과"라며 "미국의 무역 괴롭힘에 맞서 항쟁할 용기가 조금도 없는 국가들과 비교하면 이번 승리의 무게가 더 무겁다"고 논평했다. 광다(光大)증권은 13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국제 무역 투쟁에서 패권을 두려워하지 않고 굳건하게 맞선 결과 단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은 가장 먼저 미국에 대등한 보복성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국내적 국제적으로 대응조치를 내놓았다"고 덧붙였다. 자오상(招商)증권은 "중국은 미국과 공평하고 평등한 협상을 진행했으며,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호평했다. 이어 "중국은 우호적인 국가들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중국 경제의 대미 의존도를 낮췄고, 기술 진보와 군사력 확충 등이 이뤄졌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같은 성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여론이 지나치게 고무되는 것을 경계하는 논설기사도 나왔다. 신화사는 '중미 경제무역 회담이 세계 경제 압박을 낮추고 신뢰를 증진시켰다'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양국의 대화 재개는 기쁜 일이지만, 양국간의 의견 차이 해소는 복잡하고 어려우며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오성홍기와 미국 성조기 [사진=로이터 뉴스핌] ys1744@newspim.com 2025-05-1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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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대법원장 청문회 출석 곤란"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대법원은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오는 14일 예정된 '사법부의 대선개입 의혹 진상규명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국회에 전달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12일 기자단 공지를 통해 "재판에 관한 청문회에 법관이 출석하는 것은 여러모로 곤란하다는 입장"이라며 "출석 요청을 받은 16명의 법관 모두 '청문회 출석요구에 대한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조희대 대법원장. [사진=뉴스핌DB]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 사건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심리·선고해 사실상 대선에 개입했다며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7일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청문회 실시계획서 채택과 증인·참고인 출석 요구 등을 의결했다. 청문회 증인으로는 조 대법원장과 판결에 관여한 대법관 11명이 전원 채택됐으며 대법원 수석·선임재판연구관, 대법원장 비서실장, 법원행정처 사법정보화실장 등 판사들도 포함됐다.  shl22@newspim.com 2025-05-1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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