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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 용서한 적 없어…벌 받아야"

기사입력 : 2020년05월25일 16:23

최종수정 : 2020년05월25일 16:23

"수요집회 끝내겠다는 것 아냐...방식 바꾸자는 것"
"윤미향, 김복동 할머니 끌고 다니면서 이용해"
"'안성쉼터' 화려하게 지어놓고 윤미향 아버지가 살아"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는 25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이 할머니는 이날 오후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을 용서한 적 없다"며 "이것 또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뉴스핌] 정일구 기자 =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관리 부실과 전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의 후원금 사적 유용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2차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0.05.25 mironj19@newspim.com

다음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 전문.

두 번째 이제 기자회견을 합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또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제가 저번에 기자회견 할 때 이미 했지만, 많이 생각 못하는 것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정신대대책협의회입니다. 정신대대책협의회는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입니다. 그런데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 하는 것은 정신대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하고 위안부 아주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는 간 데가 다 다릅니다.

잠깐 제가 갔던 곳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나이로 하면 16살 만으로 하면 14살입니다. 저는 양력으로 돼 있습니다. 왜? 그때 성을 갈지 않으면 배급을 안 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을 갈아서 야스하라라고 갈았습니다. 그런데 학교도 그때는 일본 학교입니다. 제가 3, 4학년까지 다녔습니다. 때문에 가타카나를 알았습니다.

끌려가서도 가미카제 부대 특공대 부대로 끌려가서도 그 장교가 가타카나로 이렇게 써줘서 대화했습니다.
이 군인이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야스하라 도시코. 그 후에 겪으면서 제가 생각할 때 끌려가서 당한 것은 말로는 못 합니다. 제가 쭉 30년 동안 해 오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이 증언을 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확실하고 또 바른말 하고 이러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라는 데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92년도 6월 25일에 신고를 할 적에 윤미향이 간사였습니다. 25일에 했는데 29일에 모임이 있다고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어느 교회입디다. 교회 갔었는데 그날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퇴직하고 돈을 1000엔인가 줬다 그러면서 백만원씩 나눠 줬습니다.

그게 무슨 돈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모금을 하는 걸 전 봤습니다. 왜 모금을 하는지 그것도 몰랐습니다. 따라다니면서 모금을 하는데 보니까 농구선수들이 농구를 하는 데 기다렸어요. 기다렸는데 그 농구선수가 돈을 이렇게 들고 모금을 하더라고요. 그 돈을 받아 오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그게 왜 그런 줄 몰랐습니다.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저렇게 농구를 막 하면서 이기려고 애를 쓰고 하는데 거기 버젓이 앉아서 농구 끝나고 하면 돈을 걷어온 걸 받아서 나왔습니다. 좀 늦었습니다. 좀 늦은 시간인데 배가 고픈데 좀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하니까 돈 없습니다. 돈을 걷어서. 그래도 그것이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디 가도 또 교회 가도 또 돈을 주면 그걸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모르고 쭉 30년을 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무엇입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입니다. 그러면 공장 갔다 온 할머니들로 해야 되는데 말하자면 공장 갔다 온 할머니들은 밀가루 반죽해서 만들어서 빚어놓고 속에는 맛있고 귀한 것을 넣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속에는 위안부입니다. 그런 그걸 해도 쭉 30년을 그렇게 해도 전 몰랐습니다. 그저께도 몰랐습니다. 어제 저녁 가만히 생각하니 이것은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 위안부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간 이 위안부를 자기네들이 정신대 할머니와 합해서 쭉 이용해 나왔습니다.

저는 그것도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어저께 제가 생각하니 이럴 수가 있나. 30년 동안 앉아서 얘기하는 게 사죄하라, 배상하라 하는데 일본 사람이 뭔 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죠. 섞어서 사죄도 하지 말고 안 해도 된다는 거 아닙니까? 이것을 30년 동안 해가 나오면서도 사죄 배상을 요구하고 그 학생들까지 고생을 시켰습니다.

그 학생들 돈 받아서 챙겼습니다. 이래서 어제 저는 잠도 한숨도 못 잤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대책협의회는 정신대만하지 자기네들이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이용합니까? 이것을 생각하니 저는 자다 일어나서 펑펑 울었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이렇게 당하면서 여태까지 왜 말도 못 했나, 하는 걸 생각하니 그래 내일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사죄 배상 요구하는 것을 막았잖아요. 위안부하고 정신대하고 어떻게 같습니까? 위안부는 생명을 걸어놓고 거기 가서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데 이런 그것을 30년을 이용했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일 기자회견 할 때는 이것을 내가 반드시 밝혀야 되겠다. 일본이 그 사람들 바보입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가 위안부 문제를 하는데 거기가 해당치도 않았는데 뭣 하러 그 사람들이 사죄하고 배상하겠습니까?

안 한 이유를 저는 알았습니다. 이것 또한 무엇입니까? 내가 왜 팔려야 됩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아들에 딸 하나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놓으면 터질까 불면 날아갈까, 불상 많은 곳에 쌀 올려놓고 엄마가 수야 이리 오너라 해서 가서 먹이고 했습니다.

이런 남의 집의 귀한 딸 고명딸을 밤에 그것도 끌고 가서 대만, 가미카제 부대를 가서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끌고 가서 전기고문과 갖은 칼로 몸을 긁어서 이렇게 죽여놨습니다. 일본은 그 군인이 보니까 방에 들어가라고 해서 보니까 군인이 앉아 있는데 거기 들어가라 해서 안 들어간다고 하니 와서는 그냥 머리를 끌고 질질 끌고 가서 광 아래 자물쇠 큰 게 달려있었습니다. 그걸 팍하면 문을 확 열지만 밀었습니다.

또 이렇게 해서 발로 그거는 돌덩이보다 더 군홧발이었습니다. 허리를 발길로 차서 엎어졌는데 너무너무 배가 찢어지도록 아프고 죽도록 아파서 저 잘못한 것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잘못했다고 빌면서 살려달라 했습니다.

이런 데 또 머리 뜯고 앉혀서 두 팔을 이렇게 해놓고 거기다 놓고 여기 하나 감고 여기 하나 감고 지금 머리에 귀에 소리 납니다. 그때 제가 엄마라고 크게 불렀던 적이 귀에서 나는지 머리에서 나는지 이것을 어린 나이에서부터 지금까지 지금도 납니다. 이래도 이걸 왜 그런지 누구한테라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정신대대책협의회 이걸 밝혀줘야 되지 않습니까? 할머니 어디 갔다 왔습니까, 해서 밝혀줘야 하는데 한 번도 할머니 앉혀서 절 받은 적 없습니다. 그냥 모여서 노는데 밥 먹는 데도 어디 갔다 왔습니까, 그거 갖고 책을 냈습니다.

93년도부터 책을 내놓고 그 책을 6500원에 파는 걸 봤습니다. 그래도 그걸 몰랐습니다. 그런 책 낸 줄 모르고 그것이 당연한가 보다 하고 다니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제가 증언도 하고 또 정신대 대책협의회 박물관을 짓는 데 서대문 형무소에서 짓는다고 했습니다.

그때 박경림 씨하고 저희 큰 조카하고 저하고 가서 15만원을 받고 정신대 대책협의회에서 증언했습니다. 이러면 그 박물관에 대표가 돼 있습니다. 대표라 소리 하지 마라, 창피하다 했습니다. 그러면 대표 소리는 안 해도 대표 대우는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3월 30일에 제가 전화를 했습니다. 미향 씨, 이러면 안 되잖나. 안 그러면 그렇지 않으면 해결할란다, 했는데 아주 큰 소리로 당당하게 기자회견 하라고 해서 제가 5월 7일에 기자회견 한 겁니다.

이런 등등을 제가 하나하나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빨리 생각이 안 납니다. 이래서 제가 했다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어느 날입니다. 여기 왔습니다. 소위 그 국회의원으로 나올 적에 제가 도와준 건 없지만 가보고 돼야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저따위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나갔다가 들어오니까 들어와서 있는데 문을 열어달라 해서 열어주니까 윤미향 씨가 싹 들어오는 거예요. 제가 넘어갈 뻔했습니다. 놀라서. 그러면서 와서 무릎을 꿇고 무슨 말인지 용서? 뭐를 용서합니까. 뭘 가지고 와야 무엇을 가지고 와야 용서를 하지요.

하든가 안 하든가 하는데 뭐를 용서(합니까?) 보니까 엄청나구나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검찰에서도 할 것이고 내가 며칠 후에 기자회견을 할 테니 그때 오라고 그랬습니다. 그러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소위 교수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는데 내가 말을 안 했습니다. 뻔뻔스럽게 차에 내려서 휠체어를 타려고 하니 뻔뻔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윤미향이를 오게 했답니다. 무엇입니까? 이것은? 윤미향한테 며칠 후에 내가 기자회견을 할 테니까 그때 오라고 하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뭐 있더라고요. 있는데 거기서 무슨 원수 진 것도 아니고 30년을 지내왔습니다, 했는데 한 번 안아달라 합디다.

그래서 저는 생각에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안아주니 저도 인간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30년을 같이 했으니까 원수는 아닌데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눈물이 왈칵 나서 제가 막 울었는데 이걸 가지고 기자님들 좀 부탁드립니다. 명백하게 좀 기사를 내주세요. 그걸로 용서했다, 이런 기사. 너무 황당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것은 확실하고 명백히 여러분들도 책임이 다 돌아가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걸 명백하게 하려 그랬는데 혼자 생각은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걸 그만둬야 하지 말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맘대로 뭐든지 하고 싶음 하고 팽개치고 하는데 어떻게 30년이나 같이 했는데 해 나왔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마음대로 팽개쳤습니다.

우리 국민들 세계 여러분들이 그 데모에 나오십니다. 그분들도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했습니다. 이래놓고 또 자기가 사리사욕을 차려서 맘대로 또 국회의원 비례대표도 나갔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한테 얘기도 없었고 하니까 자기 맘대로 하는 거니까 제가 뭣을 용서합니까? 이름도 성도 없는 용서? 자기 맘대로 했으니까 자기 맘대로 하든지 말든지 하는 거지 저한테 하든 책임을 미룰 필요는 없잖습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잖습니까? 무엇 때문에 용서를 바랍니까?그게 아니라도 여러 수십만 가지를 제가 다 말씀을 못 드립니다. 속이고 이용하고 재주는 곰이 하고 돈은 받아먹었습니다. 30년 동안 재주 했습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용서를 바랍니까?

저는 데모 방식을 바꾼다는 거지 끝내는 건 아닙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시작했고 또다시 새롭게 좀 학생들한테 교육적인 것을 하기 위해서 제가 이걸 바꾼다 했습니다. 그러면 먼저들 얘기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이웃 나라입니다. 이러면 이 학생들이 결국에는 그 나라 주인 아닙니까. 이 학생들이 알아야 사죄 방식을 하는지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일본 아베는 서류 나온 것 다 불살라 버려놓고는 한국이 거짓말한다, 학생들한테 물으면 한국이 거짓말쟁이다, 거짓말만 한다, 이렇게 나오니까 그것도 몰라서 그런 것 아닙니까.
우리 학생들도 몰라서 그렇고. 일본 학생들도 그걸 모르고 거짓말만 저 한국이 거짓말만 하는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겁니다. 일본과 한국을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이게 시한이 오래 갈 겁니다. 가도 이 학생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희 한국이 왜 일본에 배상하고 사죄하라 하니? 무엇 때문에? 이런 얘기 하면 그러면 일본은 왜 하지 않니? 하면 그게 아니라고 하고 거짓말이라 하니까 우리는 그 말만 들었다, 한국이 거짓말만 한다,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걸 학생들한테 가르쳐서 서로 왕래하면 친해지면 속에 할 말도 있고 또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알지요. 그래서 제가 짧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대구에 역사관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었습니다. 이걸 누가했습니까? 대구에 아주 유명한 최봉태 변호사가 대표로 있으면서 이것을 했습니다. 그래놓고는 지금은 윤미향을 밀고 있습니다. 윤미향을 밀고 있으면서 어느 날 아침에 할머니 윤미향 욕하지 마세요, 김복동 할머니 존경받고 있지 않습니까 (했습니다.)

그러면 나비기금이라든지 하는 것 김복동 할머니 이름으로 했다고 김복동 할머니 돈입니까? 어느 날 미국을 가기로 했는데 윤미향이 모금을 했어요. 모금을 600만원인가 했는데 저한테 하는 말이 전화가 왔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정신대대책협의회 사람 아니라고 못 오게 해요.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면서 모금을 허락했습니까? 제가 간다고 했습니까? 그뿐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는 30년 그거만 얘기했는데 줄줄 나오는 게 엄청나게 나옵디다. 말도 못 하게 나옵디다. 그러면 할머니들 팔아서 그랬으니까 왜 위안부 할머니를 자기가 했습니까. 부정 아닙니까? 이것도 죄를 받아야 합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한쪽 눈 실명입니다. 실명이고 한쪽 눈 조금 보이는 이 할머니를 끌고 다녔죠.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 다니면서 할머니 있을 때 잘해야 하는데 고생시키고 끌고 다니면서 할머니 이용해먹고 그렇게 해놓고도 뻔뻔스럽게 묘지에 가서 눈물 흘려요? 그것은 가짜의 눈물입니다.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그것도 죄인데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 그것은 다 검찰 측에서 밝힐 겁니다.

하지만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위안부를 이용한 것은 도저히 용서 못합니다. 이것도 또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나이가 들다 보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로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한국과 학생들 해서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올바른 역사를 공부해서 위안부 문제 사죄하라 배상하라 적어놨습니다.

천년이 가든 만년이 가든 일본이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이걸 하기 위해서 가르치기 위해서는 양국 간 친하게 지내면서 이걸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이니까, 이분들을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해서 이 억울하고 누명 쓴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제가 당해야 하고 이게 죄입니까? 늦게까지 산 게 죄입니까? 왜 이렇게 당해야 합니까? 끝까지 이렇게 당하고 있는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할머니들한테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다, 언니, 동생들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와서 나를 용서해달라고 빌랍니다. 그래서 그걸 생각하니까 너무 제가 미안한데 저는 하나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위안부는 여자입니다. 이것이 세계의 여성분들께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참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세계의 여성 여러분들 저희가 위안부지만 여성이라는 그 두 글자가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하면 이런 것도 내가 좀 미안한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생각을 했는데 이 기회를 빌려서 모든 여성분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누명도 쓰실 것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다, 위안부는 여자다, 하는 것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런 소리도 들으실 겁니다. 해서 제가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어떻게 합니까. 이런 기자회견을 통해서 세계여성분들한테 이 위안부가 여러분들의 여자라는 두 글자 손상 입었다는 게 참 죄송합니다, 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 교육을 확실히 두 나라가 서로 왕래하고 친하게 지내서 이 역사를 알아서 이 억울하고 억울한 위안부 문제를 사죄받고 배상해야, 제가 사죄를 받아야 위안부 누명을 벗습니다. 제가 왜 위안부가 성노예입니까. 그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왜 하냐, 그러니까 미국이 들으라고 미국 사람들 겁내라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이렇게 팔아가면서 무엇을 했습니까. 그렇게 한 줄 몰랐습니다. 저 안산이라 하는 곳도 보니까 쉼터를 화려하게 지어놨습디다. 그래서 윤미향 대표, 위대한 대표의 아버님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것들이 엄청나게 나왔는데 그것은 검찰 측에서 다 밝힐 겁니다.

이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도 큰 소리 하고 있는 이 사람들, 죄는 지은 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갑니다. 꼭 이 죄를 물어야 합니다. 그런다고 마음이 제가 편한 건 아닙니다. 고쳐야죠. 이후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또한 무슨 말씀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들한테 이걸 밝히기 위해서 정말 너무 (많이들) 오셨는데 장소가 너무 좁습디다. 제가 해야 하니까 여러분이 다 오셔서 (기자회견장에) 가시도록 하기 위해 장소를 바꿨습니다.

여러분들 기자 여러분들 부탁드립니다. 꼭 했던 말 그대로 해주세요. 없는 말 추측해서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저를 욕보이는 말씀입니다. 기자 여러분들이 이것을 다 옳은 말씀으로 기사를 내주셨으면,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가 오늘 장소를 바꾸라고 했습니다.

바꿔서 여러분과 같이 앉아서 마지막 얘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 여러분들도 너무 가슴 아파 할 것이라 제가 요점만 얘기했습니다. 여러분들 그리 아시고 정말 죽겠습니다. 너무 죽겠습니다. 그 좁은 데서 만약에 하면 또 코로나가 퍼졌다고 하는데 걱정이 됐어요. 좁은 데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여러분들을 이렇게 큰 데 모셨습니다. 그 점을 양해하시고 꼭 기사는 있는 그대로 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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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법 난동' 첫 선고 2명 모두 실형 [서울=뉴스핌] 조승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 전후인 지난 1월 18∼19일, 서부지법에서 발생한 난동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95명 중 2명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재판장 김진성)은 14일 오전 특수건조물침입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모 씨와 소모 씨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김 모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 소모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날 선고는 서부지법 난동 사태 발생 4개월여 만에 나온 첫 선고다.  앞서 검찰은 김씨에게 징역 3년, 소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지난 1월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청사 유리창과 벽면이 파손되어 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유리창을 깨고 집기를 훼손하는 등 난동을 부려 경찰이 강제진압에 나섰다. [사진=뉴스핌 DB] 선고는 김 씨부터 진행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특수건조물 침입, 공용 물건 손상, 특수 공무집행 방해"라며 "피고인이 증거에 관해서 자백하고 있고 보관 증거가 있어서 유죄로 인정된다"고 했다. 이어 "이 사건은 다중위력을 보인 범행이고, 범행 대상은 법원"이라며 "피고인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사건에 연관되었고, 당시 발생한 전체 범행의 결과는 참혹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사법부의 영장 발부 여부를 정치적 음모로 해석 규정하고, 그에 대한 즉각적인 응징, 보복을 이뤄야 한다는 집념과 집착이 이뤄낸 범행"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다만 이 사건은 공동 범행이 아니라 단독 범행이기 때문에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서만 평가한다"면서도 "다중의 위력을 보였다는 부분은 범죄사실에 포함되므로 고려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은 벽돌 등을 던져, 법원 건물 외벽 타일을 깨뜨렸고, 법원 경내로 들어가 침입했다"며 "법원 내부 진입을 막고 있던 경찰관들을 몸으로 밀어 폭행했다"고 했다. 다만 "피고인이 진지한 반성 태도를 보이고,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된 점, 초범인 점, 그밖에 양형 제반 사항을 고려해 징역 1년 6개월에 처한다"고 밝혔다. 이어진 소 씨의 선고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백하고 있고 보관 증거 있어 유죄"라고 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법원 경내로 들어간 다음 당직실 유리창을 통해 건물 1층 로비까지 들어가 침입했다"며 "화분 물받이로 창고 플라스틱 문을 긁히게 하고, 부서진 타일 조각을 던져 법원 건물 외벽 타일을 손괴했다"고 말했다. 다만 "피고인이 진지한 반성으로 보이고, 우발적 범행에 이르게 된 점, 초범인 점, 그밖에 양형 제반 사항을 고려해 징역 1년에 처한다"고 밝혔다. 이번 선고에 앞서 재판부는 "어제 딸에게 산책하며 '아빠가 어려운 사건을 선고한다'고 했더니 '이재명 사건이냐, 윤석열 사건이냐?'고 묻더라"며 "더 어려운 사건이 있겠구나 싶었지만, 결단과 선고 순간에는 어렵고 쉬운 사건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판결문을 머릿속으로 썼다가 지웠다 수없이 반복했다. 오늘 선고를 할지 말지도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선고가 정답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결정과 결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이 선고가 피고인의 남은 인생을 좌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남은 생은 피고인 본인답게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또 "이 사건과 같은 날 있던 전체 사건을 포함해 법원, 경찰 모두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며 "그날 직접 피해를 본 법원, 경찰 구성원분들과 지금도 피해를 수습할 관계자분들 노고에 감사하다. 기자들을 포함해 지금도 피해를 수습하는 과정인 거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어려운 시기에 시민들께서 사법부뿐 아니라 경찰, 검찰, 법원 전체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chogiza@newspim.com 2025-05-1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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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500홈런…한화 12연승 끝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SSG가 7연승 중이던 NC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간판타자 최정의 KBO리그 첫 통산 500홈런을 자축했다. SSG는 13일 NC와 인천 홈경기에서 6-3으로 승리했다. 11일 KIA와 더블헤더부터 3연승을 달린 SSG는 NC를 제치고 4위 삼성과 승차 없는 5위에 올라섰다.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SSG 최정이 13일 NC와 인천 홈경기에서 6회말 500호 홈런을 날린 뒤 포즈를 취했다. [사진=SSG] 2025.05.13 zangpabo@newspim.com 최정은 0-2로 뒤진 6회말 2사 1루에서 NC 선발 라일리 톰슨의 6구째 시속 135㎞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왼쪽 펜스를 넘기는 시즌 5호 110m 동점 투런포를 쐈다. 500홈런이기에 앞서 삼진 10개를 잡으며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톰슨에게 일격을 가한 귀중한 한 방이었다. SSG는 곧 이은 7회초 서재철에게 적시타를 허용해 2-3으로 뒤졌으나 8회말 대거 4점을 뽑으며 역전에 성공했다. 선두 박성한의 볼넷과 최정의 내야 안타로 만든 무사 1, 2루에서 한유섬의 2루타로 3-3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라이언 맥브룸이 고의볼넷을 얻어 만든 무사 만루에서 최준우의 역전 2타점, 1사 후 정준재의 쐐기 1타점 적시타로 점수 차를 벌렸다. 류현진. [사진=한화] 한화는 두산과 대전 홈경기에서 연장 11회 접전 끝에 3-4로 졌다. 12연승이 중단된 한화는 이날 4연승한 LG에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두산은 3-3으로 맞선 연장 11회초 강승호의 볼넷 후 대주자로 나간 전다민을 1루에 두고, '1할 타자' 임종성이 좌익선상에 떨어지는 2루타를 날려 귀중한 결승점을 뽑았다. 반면 한화 선발 류현진은 6이닝을 6탈삼진 6안타 1실점으로 막았지만 팀에 승리를 안기지 못했다. 한화는 1-1로 맞선 6회말 무사 만루에서 노시환이 투수 앞 병살타로 물러난 게 뼈아팠다. 연장 11회말에는 노시환의 안타 후 대주자로 나간 이상혁이 채은성의 삼진 때 2루 도루에 실패했다. 이날 두 팀은 한화가 8명, 두산이 6명의 필승조 투수를 모두 투입하는 총력전을 펼쳤다.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삼성 르윈 디아즈가 13일 kt와 대구 홈경기에서 5회시즌 16호 투런홈런을 날린 뒤 다이아몬드를 돌고 있다. [사진=삼성] 2025.05.13 zangpabo@newspim.com 수석·투수·타격 코치를 교체한 삼성은 kt와 포항 홈경기에서 접전 끝에 5-3으로 승리, 최근 8연패에서 탈출했다. 삼성은 2회말 1사 만루에서 구자욱이 2타점 중전안타로 2-0을 만들었고, 5회말에는 홈런 선두 르윈 디아즈가 시즌 16호 우월 투런홈런을 날려 4-0으로 달아났다. 삼성 선발 이승현은 5이닝을 5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시즌 5연패 뒤 첫 승을 신고했다. 반면 kt는 6연패에 빠졌다. 오스틴 딘. [사진 = LG] 잠실에선 LG가 키움을 9-6으로 따돌리고 4연승을 달렸다. 초반 6점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6-6으로 동점을 내준 LG는 7회말 오스틴 딘의 솔로 홈런으로 다시 리드를 잡았다. 오스틴은 1회에도 선제 솔로홈런을 날려 한 경기 2홈런을 기록했다. LG는 8회말에는 홍창기와 문성주의 연속 안타로 2점을 보태 승부를 갈랐다. 그러나 LG는 이날 시즌 첫 홈런을 신고하기도 한 붙박이 톱타자 홍창기가 9회초 수비 중 다리를 크게 다쳐 웃을 수 없는 하루가 됐다. 김도영. [사진 = KIA] 광주에선 KIA가 김도영의 결승 2루타를 앞세워 롯데를 4-1로 꺾었다. KIA는 5회말 한승택과 박찬호의 안타로 만든 2사 1,2루에서 김도영이 좌중간 2루타를 터뜨렸고, 최형우가 중전 적시타를 날려 3-0을 만들었다. 8회말에는 김도영의 좌전안타와 볼넷 2개로 만든 무사 만루에서 변우혁의 유격수 병살타 때 1점을 보태 승부를 갈랐다. KIA 선발 김도현은 5.1이닝을 4안타 1실점(비자책)으로 막아 2승(2패)를 올렸다. zangpabo@newspim.com 2025-05-1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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