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사회 사건·사고

속보

더보기

[전문]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 용서한 적 없어…벌 받아야"

기사입력 : 2020년05월25일 16:23

최종수정 : 2020년05월25일 16:23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수요집회 끝내겠다는 것 아냐...방식 바꾸자는 것"
"윤미향, 김복동 할머니 끌고 다니면서 이용해"
"'안성쉼터' 화려하게 지어놓고 윤미향 아버지가 살아"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는 25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이 할머니는 이날 오후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을 용서한 적 없다"며 "이것 또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뉴스핌] 정일구 기자 =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관리 부실과 전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의 후원금 사적 유용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2차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0.05.25 mironj19@newspim.com

다음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 전문.

두 번째 이제 기자회견을 합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또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제가 저번에 기자회견 할 때 이미 했지만, 많이 생각 못하는 것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정신대대책협의회입니다. 정신대대책협의회는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입니다. 그런데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 하는 것은 정신대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하고 위안부 아주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는 간 데가 다 다릅니다.

잠깐 제가 갔던 곳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나이로 하면 16살 만으로 하면 14살입니다. 저는 양력으로 돼 있습니다. 왜? 그때 성을 갈지 않으면 배급을 안 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을 갈아서 야스하라라고 갈았습니다. 그런데 학교도 그때는 일본 학교입니다. 제가 3, 4학년까지 다녔습니다. 때문에 가타카나를 알았습니다.

끌려가서도 가미카제 부대 특공대 부대로 끌려가서도 그 장교가 가타카나로 이렇게 써줘서 대화했습니다.
이 군인이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야스하라 도시코. 그 후에 겪으면서 제가 생각할 때 끌려가서 당한 것은 말로는 못 합니다. 제가 쭉 30년 동안 해 오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이 증언을 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확실하고 또 바른말 하고 이러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라는 데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92년도 6월 25일에 신고를 할 적에 윤미향이 간사였습니다. 25일에 했는데 29일에 모임이 있다고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어느 교회입디다. 교회 갔었는데 그날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퇴직하고 돈을 1000엔인가 줬다 그러면서 백만원씩 나눠 줬습니다.

그게 무슨 돈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모금을 하는 걸 전 봤습니다. 왜 모금을 하는지 그것도 몰랐습니다. 따라다니면서 모금을 하는데 보니까 농구선수들이 농구를 하는 데 기다렸어요. 기다렸는데 그 농구선수가 돈을 이렇게 들고 모금을 하더라고요. 그 돈을 받아 오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그게 왜 그런 줄 몰랐습니다.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저렇게 농구를 막 하면서 이기려고 애를 쓰고 하는데 거기 버젓이 앉아서 농구 끝나고 하면 돈을 걷어온 걸 받아서 나왔습니다. 좀 늦었습니다. 좀 늦은 시간인데 배가 고픈데 좀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하니까 돈 없습니다. 돈을 걷어서. 그래도 그것이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디 가도 또 교회 가도 또 돈을 주면 그걸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모르고 쭉 30년을 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무엇입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입니다. 그러면 공장 갔다 온 할머니들로 해야 되는데 말하자면 공장 갔다 온 할머니들은 밀가루 반죽해서 만들어서 빚어놓고 속에는 맛있고 귀한 것을 넣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속에는 위안부입니다. 그런 그걸 해도 쭉 30년을 그렇게 해도 전 몰랐습니다. 그저께도 몰랐습니다. 어제 저녁 가만히 생각하니 이것은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 위안부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간 이 위안부를 자기네들이 정신대 할머니와 합해서 쭉 이용해 나왔습니다.

저는 그것도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어저께 제가 생각하니 이럴 수가 있나. 30년 동안 앉아서 얘기하는 게 사죄하라, 배상하라 하는데 일본 사람이 뭔 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죠. 섞어서 사죄도 하지 말고 안 해도 된다는 거 아닙니까? 이것을 30년 동안 해가 나오면서도 사죄 배상을 요구하고 그 학생들까지 고생을 시켰습니다.

그 학생들 돈 받아서 챙겼습니다. 이래서 어제 저는 잠도 한숨도 못 잤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대책협의회는 정신대만하지 자기네들이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이용합니까? 이것을 생각하니 저는 자다 일어나서 펑펑 울었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이렇게 당하면서 여태까지 왜 말도 못 했나, 하는 걸 생각하니 그래 내일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사죄 배상 요구하는 것을 막았잖아요. 위안부하고 정신대하고 어떻게 같습니까? 위안부는 생명을 걸어놓고 거기 가서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데 이런 그것을 30년을 이용했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일 기자회견 할 때는 이것을 내가 반드시 밝혀야 되겠다. 일본이 그 사람들 바보입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가 위안부 문제를 하는데 거기가 해당치도 않았는데 뭣 하러 그 사람들이 사죄하고 배상하겠습니까?

안 한 이유를 저는 알았습니다. 이것 또한 무엇입니까? 내가 왜 팔려야 됩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아들에 딸 하나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놓으면 터질까 불면 날아갈까, 불상 많은 곳에 쌀 올려놓고 엄마가 수야 이리 오너라 해서 가서 먹이고 했습니다.

이런 남의 집의 귀한 딸 고명딸을 밤에 그것도 끌고 가서 대만, 가미카제 부대를 가서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끌고 가서 전기고문과 갖은 칼로 몸을 긁어서 이렇게 죽여놨습니다. 일본은 그 군인이 보니까 방에 들어가라고 해서 보니까 군인이 앉아 있는데 거기 들어가라 해서 안 들어간다고 하니 와서는 그냥 머리를 끌고 질질 끌고 가서 광 아래 자물쇠 큰 게 달려있었습니다. 그걸 팍하면 문을 확 열지만 밀었습니다.

또 이렇게 해서 발로 그거는 돌덩이보다 더 군홧발이었습니다. 허리를 발길로 차서 엎어졌는데 너무너무 배가 찢어지도록 아프고 죽도록 아파서 저 잘못한 것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잘못했다고 빌면서 살려달라 했습니다.

이런 데 또 머리 뜯고 앉혀서 두 팔을 이렇게 해놓고 거기다 놓고 여기 하나 감고 여기 하나 감고 지금 머리에 귀에 소리 납니다. 그때 제가 엄마라고 크게 불렀던 적이 귀에서 나는지 머리에서 나는지 이것을 어린 나이에서부터 지금까지 지금도 납니다. 이래도 이걸 왜 그런지 누구한테라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정신대대책협의회 이걸 밝혀줘야 되지 않습니까? 할머니 어디 갔다 왔습니까, 해서 밝혀줘야 하는데 한 번도 할머니 앉혀서 절 받은 적 없습니다. 그냥 모여서 노는데 밥 먹는 데도 어디 갔다 왔습니까, 그거 갖고 책을 냈습니다.

93년도부터 책을 내놓고 그 책을 6500원에 파는 걸 봤습니다. 그래도 그걸 몰랐습니다. 그런 책 낸 줄 모르고 그것이 당연한가 보다 하고 다니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제가 증언도 하고 또 정신대 대책협의회 박물관을 짓는 데 서대문 형무소에서 짓는다고 했습니다.

그때 박경림 씨하고 저희 큰 조카하고 저하고 가서 15만원을 받고 정신대 대책협의회에서 증언했습니다. 이러면 그 박물관에 대표가 돼 있습니다. 대표라 소리 하지 마라, 창피하다 했습니다. 그러면 대표 소리는 안 해도 대표 대우는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3월 30일에 제가 전화를 했습니다. 미향 씨, 이러면 안 되잖나. 안 그러면 그렇지 않으면 해결할란다, 했는데 아주 큰 소리로 당당하게 기자회견 하라고 해서 제가 5월 7일에 기자회견 한 겁니다.

이런 등등을 제가 하나하나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빨리 생각이 안 납니다. 이래서 제가 했다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어느 날입니다. 여기 왔습니다. 소위 그 국회의원으로 나올 적에 제가 도와준 건 없지만 가보고 돼야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저따위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나갔다가 들어오니까 들어와서 있는데 문을 열어달라 해서 열어주니까 윤미향 씨가 싹 들어오는 거예요. 제가 넘어갈 뻔했습니다. 놀라서. 그러면서 와서 무릎을 꿇고 무슨 말인지 용서? 뭐를 용서합니까. 뭘 가지고 와야 무엇을 가지고 와야 용서를 하지요.

하든가 안 하든가 하는데 뭐를 용서(합니까?) 보니까 엄청나구나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검찰에서도 할 것이고 내가 며칠 후에 기자회견을 할 테니 그때 오라고 그랬습니다. 그러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소위 교수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는데 내가 말을 안 했습니다. 뻔뻔스럽게 차에 내려서 휠체어를 타려고 하니 뻔뻔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윤미향이를 오게 했답니다. 무엇입니까? 이것은? 윤미향한테 며칠 후에 내가 기자회견을 할 테니까 그때 오라고 하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뭐 있더라고요. 있는데 거기서 무슨 원수 진 것도 아니고 30년을 지내왔습니다, 했는데 한 번 안아달라 합디다.

그래서 저는 생각에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안아주니 저도 인간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30년을 같이 했으니까 원수는 아닌데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눈물이 왈칵 나서 제가 막 울었는데 이걸 가지고 기자님들 좀 부탁드립니다. 명백하게 좀 기사를 내주세요. 그걸로 용서했다, 이런 기사. 너무 황당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것은 확실하고 명백히 여러분들도 책임이 다 돌아가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걸 명백하게 하려 그랬는데 혼자 생각은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걸 그만둬야 하지 말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맘대로 뭐든지 하고 싶음 하고 팽개치고 하는데 어떻게 30년이나 같이 했는데 해 나왔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마음대로 팽개쳤습니다.

우리 국민들 세계 여러분들이 그 데모에 나오십니다. 그분들도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했습니다. 이래놓고 또 자기가 사리사욕을 차려서 맘대로 또 국회의원 비례대표도 나갔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한테 얘기도 없었고 하니까 자기 맘대로 하는 거니까 제가 뭣을 용서합니까? 이름도 성도 없는 용서? 자기 맘대로 했으니까 자기 맘대로 하든지 말든지 하는 거지 저한테 하든 책임을 미룰 필요는 없잖습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잖습니까? 무엇 때문에 용서를 바랍니까?그게 아니라도 여러 수십만 가지를 제가 다 말씀을 못 드립니다. 속이고 이용하고 재주는 곰이 하고 돈은 받아먹었습니다. 30년 동안 재주 했습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용서를 바랍니까?

저는 데모 방식을 바꾼다는 거지 끝내는 건 아닙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시작했고 또다시 새롭게 좀 학생들한테 교육적인 것을 하기 위해서 제가 이걸 바꾼다 했습니다. 그러면 먼저들 얘기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이웃 나라입니다. 이러면 이 학생들이 결국에는 그 나라 주인 아닙니까. 이 학생들이 알아야 사죄 방식을 하는지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일본 아베는 서류 나온 것 다 불살라 버려놓고는 한국이 거짓말한다, 학생들한테 물으면 한국이 거짓말쟁이다, 거짓말만 한다, 이렇게 나오니까 그것도 몰라서 그런 것 아닙니까.
우리 학생들도 몰라서 그렇고. 일본 학생들도 그걸 모르고 거짓말만 저 한국이 거짓말만 하는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겁니다. 일본과 한국을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이게 시한이 오래 갈 겁니다. 가도 이 학생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희 한국이 왜 일본에 배상하고 사죄하라 하니? 무엇 때문에? 이런 얘기 하면 그러면 일본은 왜 하지 않니? 하면 그게 아니라고 하고 거짓말이라 하니까 우리는 그 말만 들었다, 한국이 거짓말만 한다,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걸 학생들한테 가르쳐서 서로 왕래하면 친해지면 속에 할 말도 있고 또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알지요. 그래서 제가 짧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대구에 역사관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었습니다. 이걸 누가했습니까? 대구에 아주 유명한 최봉태 변호사가 대표로 있으면서 이것을 했습니다. 그래놓고는 지금은 윤미향을 밀고 있습니다. 윤미향을 밀고 있으면서 어느 날 아침에 할머니 윤미향 욕하지 마세요, 김복동 할머니 존경받고 있지 않습니까 (했습니다.)

그러면 나비기금이라든지 하는 것 김복동 할머니 이름으로 했다고 김복동 할머니 돈입니까? 어느 날 미국을 가기로 했는데 윤미향이 모금을 했어요. 모금을 600만원인가 했는데 저한테 하는 말이 전화가 왔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정신대대책협의회 사람 아니라고 못 오게 해요.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면서 모금을 허락했습니까? 제가 간다고 했습니까? 그뿐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는 30년 그거만 얘기했는데 줄줄 나오는 게 엄청나게 나옵디다. 말도 못 하게 나옵디다. 그러면 할머니들 팔아서 그랬으니까 왜 위안부 할머니를 자기가 했습니까. 부정 아닙니까? 이것도 죄를 받아야 합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한쪽 눈 실명입니다. 실명이고 한쪽 눈 조금 보이는 이 할머니를 끌고 다녔죠.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 다니면서 할머니 있을 때 잘해야 하는데 고생시키고 끌고 다니면서 할머니 이용해먹고 그렇게 해놓고도 뻔뻔스럽게 묘지에 가서 눈물 흘려요? 그것은 가짜의 눈물입니다.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그것도 죄인데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 그것은 다 검찰 측에서 밝힐 겁니다.

하지만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위안부를 이용한 것은 도저히 용서 못합니다. 이것도 또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나이가 들다 보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로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한국과 학생들 해서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올바른 역사를 공부해서 위안부 문제 사죄하라 배상하라 적어놨습니다.

천년이 가든 만년이 가든 일본이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이걸 하기 위해서 가르치기 위해서는 양국 간 친하게 지내면서 이걸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이니까, 이분들을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해서 이 억울하고 누명 쓴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제가 당해야 하고 이게 죄입니까? 늦게까지 산 게 죄입니까? 왜 이렇게 당해야 합니까? 끝까지 이렇게 당하고 있는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할머니들한테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다, 언니, 동생들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와서 나를 용서해달라고 빌랍니다. 그래서 그걸 생각하니까 너무 제가 미안한데 저는 하나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위안부는 여자입니다. 이것이 세계의 여성분들께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참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세계의 여성 여러분들 저희가 위안부지만 여성이라는 그 두 글자가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하면 이런 것도 내가 좀 미안한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생각을 했는데 이 기회를 빌려서 모든 여성분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누명도 쓰실 것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다, 위안부는 여자다, 하는 것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런 소리도 들으실 겁니다. 해서 제가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어떻게 합니까. 이런 기자회견을 통해서 세계여성분들한테 이 위안부가 여러분들의 여자라는 두 글자 손상 입었다는 게 참 죄송합니다, 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 교육을 확실히 두 나라가 서로 왕래하고 친하게 지내서 이 역사를 알아서 이 억울하고 억울한 위안부 문제를 사죄받고 배상해야, 제가 사죄를 받아야 위안부 누명을 벗습니다. 제가 왜 위안부가 성노예입니까. 그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왜 하냐, 그러니까 미국이 들으라고 미국 사람들 겁내라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이렇게 팔아가면서 무엇을 했습니까. 그렇게 한 줄 몰랐습니다. 저 안산이라 하는 곳도 보니까 쉼터를 화려하게 지어놨습디다. 그래서 윤미향 대표, 위대한 대표의 아버님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것들이 엄청나게 나왔는데 그것은 검찰 측에서 다 밝힐 겁니다.

이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도 큰 소리 하고 있는 이 사람들, 죄는 지은 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갑니다. 꼭 이 죄를 물어야 합니다. 그런다고 마음이 제가 편한 건 아닙니다. 고쳐야죠. 이후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또한 무슨 말씀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들한테 이걸 밝히기 위해서 정말 너무 (많이들) 오셨는데 장소가 너무 좁습디다. 제가 해야 하니까 여러분이 다 오셔서 (기자회견장에) 가시도록 하기 위해 장소를 바꿨습니다.

여러분들 기자 여러분들 부탁드립니다. 꼭 했던 말 그대로 해주세요. 없는 말 추측해서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저를 욕보이는 말씀입니다. 기자 여러분들이 이것을 다 옳은 말씀으로 기사를 내주셨으면,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가 오늘 장소를 바꾸라고 했습니다.

바꿔서 여러분과 같이 앉아서 마지막 얘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 여러분들도 너무 가슴 아파 할 것이라 제가 요점만 얘기했습니다. 여러분들 그리 아시고 정말 죽겠습니다. 너무 죽겠습니다. 그 좁은 데서 만약에 하면 또 코로나가 퍼졌다고 하는데 걱정이 됐어요. 좁은 데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여러분들을 이렇게 큰 데 모셨습니다. 그 점을 양해하시고 꼭 기사는 있는 그대로 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clean@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손흥민 7·8호-부앙가 23호...환상 '흥부 듀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손흥민이 시즌 7·8호골을 연달아 터뜨리며 4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드니 부앙가도 시즌 23호골을 넣어 '흥부 듀오'는 3골을 합작하며 팀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LAFC 손흥민은 28일(한국시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에너자이저 파크에서 열린 2025 MLS 정규리그 서부 콘퍼런스 세인트루이스 시티SC와의 원정 경기에서 3-4-3 포메이션의 원톱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했다. LAFC는 '흥부 듀오'의 활약을 앞세워 3-0으로 완승을 거뒀다. LAFC는 승점 53을 기록하며 서부 콘퍼런스 4위 자리를 유지했다. [세인트루이스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 손흥민이 28일(한국시간) MLS 34라운드 세인트루이스 시티 SC와의 원정 경기에서 자신의 첫 번째 골을 넣고 '찰칵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5.9.28 psoq1337@newspim.com [세인트루이스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 손흥민이 28일(한국시간) MLS 34라운드 세인트루이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자신의 첫 번째 골을 넣고 골 셀레브레이션을 하고 있다. 2025.9.28 psoq1337@newspim.com 손흥민은 1-0으로 앞선 전반 추가시간 시즌 7호골을 뽑아냈다. 그는 중원에서 단독 드리블로 페널티박스 왼쪽까지 돌파한 뒤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후반 15분에는 페널티박스 정면에서 수비수를 앞에 두고 오른발 슈팅으로 시즌 8호골을 추가, 이날 멀티골을 완성했다. 손흥민은 이번 시즌 MLS에서 8경기 만에 8골 3도움을 기록하며, 출전 경기마다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MLS 기록 기준으로 이번 4경기 연속골은 지난 2021년 12월 토트넘 소속으로 EPL 14라운드부터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한 이후 약 3년 9개월 만이다. 경기를 중계하던 현지 해설진은 "손흥민과 부앙가는 피할 수 없다(inevitable)"며 두 선수의 뜨거운 활약을 추켜세웠다. [세인트루이스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 손흥민이 28일(한국시간) MLS 34라운드 세인트루이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자신의 두 번째 골을 넣고 골 셀레브레이션을 하고 있다. 2025.9.28 psoq1337@newspim.com [세인트루이스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 손흥민이 28일(한국시간) MLS 34라운드 세인트루이스 시티 SC와의 원정 경기에서 골을 넣고 부앙가과 손을 마주치고 있다. 2025.9.28 psoq1337@newspim.com 손흥민과 함께 공격을 이끄는 드니 부앙가(31)도 전반 15분 선제골을 터뜨리며 5경기 연속골로 시즌 23골을 기록, 리오넬 메시에 이어 득점 랭킹 2위에 올랏다. 두 선수는 최근 LAFC가 터트린 15골 중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경기 도중 손흥민과 부앙가는 높이 뛰어올라 하이파이브를 주고받는 세리머니를 펼치며 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정상빈이 왼쪽 날개 공격수로 선발 출전하며 '코리안 더비'가 성사됐다. 정상빈은 전반 2분 수비 뒷공간으로 빠르게 침투하다 LAFC 골키퍼와 충돌하며 경고를 받았지만 경기 내내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는 후반 20분 공격포인트 없이 교체돼 벤치로 돌아갔다. 이날 승리로 LAFC의 스티브 체룬돌로 감독은 2022년 1월 지휘봉을 잡고 나서 통산 100승(36무 9패)째를 달성하는 기쁨을 맛봤다. psoq1337@newspim.com 2025-09-28 11:52
사진
"'각설이 타령'은 광복군의 희로애락"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신개념 국악 방송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4편이 26일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스팟(K·SPOT)'을 통해 공개됐다.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은 국악이라는 전통 예술 분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대중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가려는 시도이다. 젊은 국악인들의 시선으로 전통음악을 재해석하고 현대사회 속 국악의 의미를 재조명하며, 소리꾼 최한이와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팝페라 가수 오윤석과 소리꾼 박나현, 김보성, 가야금 병창 박혜정 등이 출연한다.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의 제목 속 '작금(昨今)'은 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인물 이야기를 국악으로 풀어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작금(作金)'은 '금을 캐 부자가 된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4편 '광복군'이 공개됐다. 본편은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TV의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SPOT'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맨 왼쪽부터 최한이, 김보성, 변상문. 2025.09.25 alice09@newspim.com 이날 제4편 '광복군'에서는 가야금 병창 박나현과 경기소리꾼 김보성이 함께했다. 4편 '광복군'에서는 의병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변 이사장은 "의병은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후, 1919년 9월 상해 임시정부가 세워질 때까지 개인 신분으로 일제와 싸운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광복군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꼐 국군이 됐다"고 부연했다. 당시 독립군이자 광복군 출신으로 초대 국방부 장관을 맡은 사람은 이범석이며, 초대 국방부 차관은 최용덕이 맡았다. 제4편 '광복군'의 시대적 배경은 1944년 겨울이다. 변 이사장은 "평안도 출신 김준엽을 비롯한 1500여 명의 청춘은 평양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제20사단에서 4주간 훈련을 받고, 당시 중국군과 전쟁 중인 일본군에 배치됐다. 그런데 이들 중 40여 명이 일본군영을 탈영하게 된다. 대표적 인물이 전 고려대 총장 김준엽, 창작과 비평 출판사를 운영했던 장준하, 임시정부 초대 군무총장 노백린 장군의 아들 노능서"라고 말했다. 최한이 소리꾼은 장준하의 '돌베개' 책 부분을 읽으며 "흥이 오르자 안익태 씨가 작곡한 애국가를 불랐다. 회식을 주관한 김주임은 사발가를 불렀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서 나오는 '사발가'는 1900년대 초부터 1910년 한일병탄 무렵까지 우리 민족의 울분을 노래한 곡"이라고 소개했고, 김보성 소리꾼은 가창을 시작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4편 '광복군'이 공개됐다. 본편은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TV의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SPOT'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은 김보성 소리꾼. 2025.09.25 alice09@newspim.com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4편 '광복군'이 공개됐다. 본편은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TV의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SPOT'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은 박나현 가야금 병창. 2025.09.25 alice09@newspim.com 탈영한 이들은 중국 국민당 정부 중앙육군군관학교를 마치고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게 된다. 해당 자리에서 김성근이라는 청년은 '각설이 타령'을 부르게 된다. 박나현 소리꾼은 '품바'라는 가사가 들어간 '광복군 환영가'를 가창했다. 최한이 소리꾼은 이를 들은 후 "지금으로 말하면 타령은 강한 수능금지송이 됐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변상문 이사장과 최한이는 오늘의 '금맥'으로 "각설이 타령은 광복군의 희로애락 그 자체였고, 국악은 곧 군악이었다"고 정의를 내렸다. 올해 8월 15일 광복 8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특집 프로그램인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1화 '광복'은 총 4개로 나뉘어 방송됐다. 제1편은 '작금', 2편 '김구, 판소리 배우다', 3편 '이승만과 아리랑', 4편 '광복군'이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4편 '광복군'이 공개됐다. 본편은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TV의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SPOT'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맨 왼쪽부터 최한이, 김보성, 변상문. 2025.09.25 alice09@newspim.com 앞서 제1편 '작금'에서는 성악가 오윤석이 참석해 한국 가곡 '선구자'를 가창했다. 변사로 나선 변상문 이사장은 '가곡'에 대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가곡'을 우리나라 전통 성악곡의 하나로, 피리나 거문고, 해금 따위의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라고 정의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광복 80주년을 맞이해 뒤죽박죽 돼 있고 뒤섞인 개념을 정리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곡은 국악"이라는 답을 힘주어 말했다. 이어 제2편 '김구, 판소리 배우다'에서는 김구 선생이 왜인을 살해한 후 옥중 생활을 하며 만난 조덕근으로부터 시조와 여창 가곡, 남창 가곡, '경기 12잡가', '선유가', 판소리 '적벽가'와 '춘향가'를 배운 내용이 담겼다. 변상문 이사장은 "백범 김구는 판소리 '춘향가'를 배웠고, 판소리 '농부가'와 '갈까부다'를 즐겨 불렀다"고 말했다. 이에 최한이 소리꾼은 "판소리는 원조 K팝"이라고 정의했다. '이승만과 아리랑'이라는 제목의 제3편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93년 2월 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연맹 본회의에 참석한 후 식사 자리에서 초대 대통령의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만난 내용이 담겼다. 이 전 대통령은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아리랑'을 불러줬다. 이에 최한이 소리꾼은 "아리랑은 201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우리의 소리이다. '아리랑'은 한민족 DNA이다. 슬플 때는 발라드로, 기쁠 때는 찬가로, 힘들 때는 떼창으로, 인생사 희로애락의 뮤지컬로 시류를 편승하는 살아있는 맥"이라고 강조했다.   alice09@newspim.com 2025-09-26 16:05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사제목
기사가 번역된 내용입니다.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