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그룹의 '무노조 경영' 기조를 이어가기 위해 노동조합 수립 와해 전략을 펼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던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합의3부(배준현 표현덕 김규동 부장판사)는 10일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전현직 삼성 임직원과 노조와해 공작에 개입한 전직 정보경찰 등 32명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을 열고 이 전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이 전 의장에 대해서는 1심과 달리 증거가 위법적으로 수집됐다고 판단했다.
당초 이 사건은 이명박(79) 전 대통령의 다스(DAS) 횡령 사건을 수사하던 중 불거졌다. 검찰은 지난 2013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외부에 폭로된 후 수사에 착수했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해 수사가 종결됐다. 그러다 삼성의 다스 미국 소송비 대납 혐의 수사를 위해 삼성전자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노조 와해 전략 문건이 든 하드 디스크를 발견하면서 수사가 다시 급물살을 탔다.

피고인 측은 1심부터 이같은 검찰의 증거수집이 위법하다고 주장해왔다.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된 장소에 대해서만 집행해야 하는데, 그 외 장소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압수수색 당시 하드디스크를 소지하고 있던 직원에게 영장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절차상 중대한 하자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전 의장 측의 위법수집증거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하지만 결코 공모 가담이 없어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구치소에 수감 중이었던 이 전 의장은 이날 석방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의장을 제외한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과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 최평석 전 삼성전자서비스 전무는 유죄를 선고 받았지만 일부 무죄를 받아 형이 다소 감경됐다.
목장균 전 삼성전자 노무담당 전무와 전직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 송모 씨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이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10월이 선고됐다.

앞서 이들은 삼성전자서비스센터의 노조 설립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2013년 자회사 삼성전자서비스에 노조가 설립되자 이 전 의장 등이 노조와해 전략인 일명 '그린화 작업'을 그룹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에서 수립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시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협력업체 폐업 및 조합원 재취업 방해 △'삼성관리'를 빙자한 개별 면담 등으로 노조탈퇴 종용 △조합활동을 이유로 한 임금삭감 △한국경영자총협회와 공동으로 단체교섭 지연·불응 △채무 등 재산관계, 임신 여부 등 조합원 사찰 등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1심 재판부는 대부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이 전 의장 등 삼성 임원들을 실형 구속했다.
1심은 "수많은 문건이 제출됐는데, 미래전략실에서부터 하달돼 각 계열사 및 자회사로 배포된 각 연도별 노사 전략과 복수노조 대응 태세 점검, 모의 훈련, 동향 보고, 노조설립 시나리오 등 노조를 와해시키고 설립을 방해하겠다는 문건은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며 "굳이 문건을 해석할 필요도 없이 문건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범행 모의와 실행, 공모까지 인정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삼성 측은 지난 6월 열린 결심공판에서 "1심 선고 직후 입장문을 내 과거 노조에 대한 시각이나 인식이 국민 눈높이나 사회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을 시인하고 앞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관계를 정립하겠다고 밝혔다"며 "연초에는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어 준법 경영에 힘쓰고 있다. 이런 제반사정을 살펴 모든 이들에게 최대한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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