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벽경계' 대공진지, 옛 경계초소 원모습 그대로 보존
한양도성 축조 시기 변화 볼 수 있는 길 조성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청와대 뒷편의 북악산 산책로가 52년 만에 문을 열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던 '백악산 전면 개방'의 후속 조치이며, 1차로 한양도성~북악스카이웨이 구간을 지난 1일 개방했다.
지난 2007년 4월 5일부터 성곽 탐방로 탐방이 가능했으나 이번 전면 개방으로 군사진지로 사용하던 대공진지와 옛 경계초소가 공개됐으며, 일부 장소는 시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로 조성됐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한양도성 [사진=문화재청] 2020.11.06 89hklee@newspim.com |
북악산 탐방로는 명승 제67호인 백악산과 사적 제10호인 한양도성, 명승 제46호인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등 문화재가 보존된 공간이자 군사통제지역이다. 옛 한양의 모습을 상상하며 걸을 수 있는 체험의 공간이자 분단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 유적지인 셈이다. 민간에 개방된 탐방로이지만 일부 구간에서는 '여기는 군사시설로 출입을 금지합니다'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으니, 반드시 정해진 탐방로만 따라가야 한다.
문화재청이 6일 기자단을 대상으로 공개한 코스는 제1출입구인 부암동 토끼굴~곡장 전망대로 1780m에 이르는 구간이다. 북악산 북측 탐방로를 전면 확대하면서 부암동 토끼굴~청운대 안내소, 한양도성 옆길과 곡장 전망대로 향하는 길이 새로 조성됐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제1출입구(부암동 토끼굴)문을 개방하는 정재숙 문화재청장 [사진=문화재청] 2020.11.06 89hklee@newspim.com |
부암동 토끼굴에서 청운대 안내소까지 향하는 길은 계단으로 이동가능하다. 목재 계단을 따라 걷는 길은 경사가 높은 편이다. 가다보면 대공진지와 옛 경계초소를 만날 수 있다. 두 곳 모두 철거하지 않고 과거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도록 보존돼 있다.
'철벽경계'가 쓰인 돌벽이 세워진 대공진지와 1.12 사태 이후 2006년 북악산 부분 개방 전까지 사용하던 옛 경계초소는 이번 전면개방과 함께 리모델링돼, 내부로 들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 명소로 탈바꿈됐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한양도성 오르는 계단 2020.11.06 89hklee@newspim.com |
이곳을 지나 탐방로의 '만남의 광장'으로 통하는 제3출입구 '청운대 안내소'를 지나 한양도성 옆길과 청운대, 곡장 전망대로 향할 수 있다. 이번 개방을 통해 신분증이 아닌 출입증을 받아 탐방로로 진입할 수 있다.
목조 계단을 한참 오르다보면 한양도성을 만나게 된다.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 성의 역할을 다한 유적지다. 평균 높이는 5~8m이며 전체 길이는 18.6km에 이른다. 한양도성의 성벽을 통해 축조시기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한양도성 성벽 [사진=문화재청] 2020.11.06 89hklee@newspim.com |
1936년 왕조의 권위를 위해 성벽을 올린 태조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돌로 한양도성을 만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견고하고 단단한 성벽의 형태를 띤다. 세종 때 재정비한 성벽의 모습은 이전시기 보다 다듬어져 옥수수알 형태다. 1704년부터 숙조가 집권했을 때는 방어의 기능을 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견고한 돌을 사용했고 가로·세로 길이가 40~45cm 내외의 방형인 돌을 규격화했다. 순조 때는 이전보다 조금 더 커진 가로·세로 60cm 가량의 정방향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쌓아올렸다. 도성을 따라 걷는 길에서 시대마다 다른 특징의 성벽을 만날 수 있다.
이번 확대 개방으로 한양도성에서 청운대로 향하는 길목이 열려 이전처럼 담을 둘러 가지 않아도 된다. 청운대 쉼터에서는 경복궁과 태평로까지 탁 트인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경복궁을 조망하기 가장 좋은 장소로 꼽히며 마치 조감도를 보듯 궁궐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청운대에서 보이는 경복궁과 태평로 [사진=문화재청] 2020.11.06 89hklee@newspim.com |
청운대에서 왼쪽으로 꺾어들어가면 1.21 사태 훼손된 소나무를 볼 수 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부대 소속의 김신조 등 31명의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해 현 청운실버센터 앞에서 경찰과 교전 후 북악산과 인왕산 지역으로 도주했다. 당시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 중 이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됐다.
한양 도성 성벽을 보며 곡장 전망대로 향하는 코스도 계단을 걸어 움직여야 한다. 10분 가량 걸어가면 인왕산과 남산, 북악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절경이 펼쳐진다. 곡장 전망대를 한바퀴 걸으면서 서울의 산수와 도심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서울시내 전체를 다 볼 수 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1.21사태 소나무 [사진=문화재청] 2020.11.06 89hklee@newspim.com |
또 이날, 북악산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1800년대 도성 밖 정원이었던 백석동천도 살펴봤다. 백석동천은 도서 밖 별서정원이다. 현재 건물터와 연못 등이 남아있으며 인근에 '백석동천' '월암' 등의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백석동천'의 '백석'은 '백악(북악산)'을 뜨샇고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 따라서 '백석동천'은 '백악의 아름다운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란 뜻이다.
이곳은 이항복의 별장이었다고도 전해지는데 이항복의 호가 '백사'인 것에서 유추한 것이다. 또한, 추사 김정희가 매입한 것으로 입증되는 문헌자료가 발견됐지만, 현재 소유주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백석동천'의 복원은 잠시 미뤄진 상태다. 원모습을 복원하기에는 역사적 사료가 부족해 주민들이 과도한 복원은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또한, 도룡뇽이 서식하는 자연친화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복원 공사가 이뤄지면 생태계 교란을 무시할 수 없다는 환경단체의 항의도 있었다. 현재 문화재청은 무리한 복원보다 현재의 상태를 보존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곡장 전망대 가는 길 2020.11.06 89hklee@newspim.com |
이날 토끼굴에서 시작해 백석동천까지 이어진 산책로를 걷는데 걸린 시간은 약 3시간 정도다. 걸음수로는 1만보가 나왔다. 노약자나 장애인이 산책하기에는 계단이 많고 경사도 가파르기 때문에 불편할 것으로 보인다. 구두보다는 운동화와 같은 편한 신발을 착용하기를 추천하며, 걷다보면 땀도 나기 때문에 입고 벗기 쉬운 가벼운 외투를 갖고가길 추천한다.
탐방시 취식과 음주는 불가하다. 이날 막바지 단풍을 즐기러 일부 등산객들은 과자나 도시락을 먹는 모습이 포착됐다. 취식 금지 관련 안내판도 세워져 있지만, 산행하며 점심 시간이 가까워지자 허기진 관람객들은 가방에서 도시락과 간식을 꺼내 돗자리를 펴놓고 먹기도 해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주의를 주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2020.11.06 89hklee@newspim.com |
안내소 운영시간은 동절기인 11~2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3·4월과 9·10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5~8월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다. 하산 시간을 고려해 입장은 마감시간 2시간 전까지 가능하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이용객 간 2m 이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연중무휴 운영이나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 방역당국의 지침에 따라 탐방이 중지될 수 있다.
한편, 내년 봄에는 한양도성 남측 구간이 2단계로 시민에 개방된다. 2단계는 숙정문~삼청공원구간이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