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문화·연예일반

속보

더보기

강운구가 길어올린 예술가의 그때…불멸의 초상사진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예술인 154명의 초상, 이 땅의 예술사 구현
시각예술가는 강물, 문인은 산맥으로 구분
전시실 구비구비 흐르다 종국엔 하나로 만나

[서울=뉴스핌] 이영란 편집위원 = 한 사진가의 타임캡슐이 마침내 열렸다. 50여년간 꾹꾹 담아온 인물초상들이 봉인해제돼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에 여간해선 한자리서 만나기 어려운 귀한 인물사진들이 새 단장을 하고, 미술관 화이트큐브에 내걸렸다. 우리 문화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사들과 오랫동안 교류하며 그들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찍어온 다큐멘터리 사진가 강운구(80). 그가 자신의 방대한 흑백 인물사진들을 일일이 선별하고, 디지털로 변환해 인화한 뒤 전시로 꾸렸다.

강운구로 하여금 타임캡슐을 열게 한 곳은 부산 해운대의 고은사진미술관이다. 미술관측은 작가에게 제안했다. 오랫동안 찍어온 인물사진들을 한자리에 모아 제대로 조명해보자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강운구의 '사람의 그때'전이다.

고은문화재단(이사장 김형수)이 주최하고, 고은사진미술관이 주관한 이번 전시에는 강운구와 연을 맺어온 문인, 화가 등 문화예술계 인사 154명의 인물사진 163점이 출품됐다. 한 작가가 이토록 많은 예술가들의 모습을 찍었다는 것도 범상치 않은 데다, 예술가들의 내밀한 세계와 개성을 정곡을 찌르듯 절묘하게 포착해낸 심미안도 특별하다. 출품작들은 왜 문화예술계에서 그가 '최고의 포츄레이트 사진가'로 꼽히는지 말해준다. 사진의 완성도와 깊이감, 배경과의 조화,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아우라는 강운구표 초상사진이 보여주는 빛나는 세계다. 그는 문학, 미술 뿐 아니라 여러 장르의 예술인들을 찍었지만 이번에는 문학과 미술로 범위를 좁혔다.

해운대 고은사진미술관의 전시실에 발을 들이면 기찻길처럼 길게 늘어선 두개의 벽면이 관객을 맞는다. 작가는 오른쪽으로 시작되는 벽에 화가 윤형근을 필두로 시각예술가들을 일렬로 배치했다. 그리고 왼쪽 벽면에는 소설가 김원일, 박경리를 시작으로 문인들의 사진을 걸었다. '문인은 산맥, 시각예술가는 강물'로 본 강운구는 긴 벽면의 인물들이 구비구비 흘러 종국에는 만나도록 했다. 이에 미술관 제일 안쪽 벽면에는 문인과 화가들의 초상이 하나로 어우러졌고, 50여년에 걸친 강운구의 끈질긴 작업은 반세기 이 땅의 예술사로 정갈하게 직조됐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 소설가 최인호, 서울 신사동 1976  [사진=ⓒ강운구, 고은사진미술관] 2021.11.2 art29@newspim.com

강운구는 154명의 예술가를 한두 번, 또는 여러 번 촬영했는데 전시에는 첫번째 찍은 사진들을 내걸었다. 따라서 대부분 젊은 시절의 싱그런 모습들이다. 소설가 최인호, 한수산, 황석영의 30대 초반 모습은 "아, 저들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구나"하고 탄성을 지르게 한다. 특히 황석영의 경우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낯선 모습이다. 또 김승옥 김원우 김주영 송영 양귀자 오정희 윤후명 윤흥길 이문구 정현종 조해일 최일남의 모습도 싱그럽기 그지없다. 그런가 하면 고은 김지하 박두진 서정주 이문열 이청준 조세희 한승원 등 기라성같은 문인들의 사진들도 "참 좋네!"라는 찬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문학평론가, 저술가, 출판인도 여럿 찍었는데 김병익 김화영 박종만 백낙청 염무웅 이기웅 한창기가 그들이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화가 장욱진, 충북 수안보 1983  [사진=ⓒ강운구, 고은사진미술관] 2021.11.2 art29@newspim.com

강운구는 화가와 조각가, 사진가, 도예가, 디자이너와도 자주 교류하며 그들을 찍었다. '산의 화가' 박고석, 솔직담백한 조형세계를 구축한 장욱진, 군더더기 없는 단색화로 유명한 윤형근, 푸른 추상을 개척한 남관, 흐드러지게 핀 꽃을 그리는 김종학, 실험적 미술을 펼쳐온 김구림, 대담한 필선의 화가 오수환의 초상은 요즘도 미술도록 등에 자주 등장하는 '명품 인물사진'이다. 특히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장욱진의 초상사진과 굵은 면으로만 이뤄진 추상화처럼 간결한 윤형근의 초상사진은 이 구역(?)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강운구는 장욱진처럼 포토그래퍼가 뭘 하든 개의치 않고 '나는 내 할 일을 한다'는 사람이 사진 찍기 가장 좋다고 했다. 더러는 찍으려는 대상이 '내놓고 연기를 할 때'도 있어 거슬리지만 그것도 그 사람의 성격을 말하는 것이기에 그대로 받아들였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 함박눈이 내리는 12월의 어느 날 출판사에 모인 문인들. 왼쪽부터 신경림 방영웅 염무웅 백낙청 이호철. 서울 청진동 1973 [사진=ⓒ강운구, 고은사진미술관] 2021.11.2 art29@newspim.com

사진은 기록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도 지닌다. 강운구의 인물사진은 거기에 더해 이 땅의 예술이 걸어온 이야기들을 오롯이 품고 있어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그 이야기들이 켜켜이 모여 문학사와 미술사가 되니 말이다. 이를테면 1973년 겨울 광화문 신구문화사 앞에서 찍은 사진이 그렇다. 신경림, 방영웅, 염무웅, 백낙청, 이호철이 함박눈을 맞으며 출판사 입구에 나란히 서있는 단체사진은 1970년대 우리 문단의 한 장면을 압축해 보여준다. 백낙청이 만든 문예지 '창작과 비평'은 당시 신구문화사에서 제작을 대행했는데 알만한 문인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자 강운구는 "눈도 오는데 기념사진 찍어줄 테니 서보라"며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사진을 많이 찍어본 이호철과 신경림은 자연스런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반면에 등단한지 얼마 안된 방영웅은 살짝 긴장된 표정이다. 문학평론가인 백낙청과 염무웅은 양복을 쫙 빼입고 포즈를 취했다(미끄러지지 말라고 건물 입구에 가마니를 깔아놓은 것도 눈에 들어온다). 그날 강운구는 중학동 한국일보 뒷골목에서 연탄배달부가 수레를 끄는 장면을 촬영한 후 '뭔가 대단한 걸 찍은 것같다'는 충만감에 길을 걷다가 우연히 문인들을 만난 것이다. 그는 신경림과 이호철, 백낙청의 독사진도 찍었다. 눈 내리는 거리에 선 신경림과 이호철의 초상사진은 훗날 각자의 시집과 소설집에 실리는 등 작가를 대표하는 초상사진이 됐다. 또 그날 강운구가 찍은 연탄배달부 연작(4점)은 강운구 사진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며, 전시와 책자를 장식했다. 1973년 12월 23일은 이래저래 작가에게도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 소설가 박경리, 서울 정릉 1976  [사진=ⓒ강운구, 고은사진미술관] 2021.11.2 art29@newspim.com

1976년에 찍은 소설가 박경리의 사진 또한 특별하다. 박경리의 정릉집을 찾은 날은 마침 공사가 한창이었다. 소설가는 집에 창문을 낸다며 붉은 벽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벽 아래로는 벽돌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몹씨 을씨년스런 풍경이었지만 박경리는 개의치않고 뻥 뚫린 구멍 속에서 정면을 주시했다. 그 무렵 작가는 대하소설 '토지'의 1부를 책으로 펴냈을 때다. 굴곡진 시대를 대서사로 엮은 작가의 투지가 신산스런 공간과 묘하게 어우러지며 독특한 신이 탄생했다. 강운구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 글 쓰다 막히면 뭔가를 때려부수고, 가구도 이리저리 옮겼다"고 회고했다. 훗날 사진가는 불세출의 역작을 써내려간 박경리의 손을 클로즈업한 사진도 찍었다.

강운구는 소설가 박완서도 두어 번 찍었다. 이번 사진전에는 가락동 아파트의 집필실에서 촬영한 1990년 사진이 나왔다. 박완서는 1970년 월간지 '여성동아'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란 작품으로 당선되며 마흔에 데뷔했다. 늦은 등단이었다. 미리 그를 만나고온 담당 기자는 "아줌마야, 아줌마"라고 외쳤다. 며칠 후 하얀 저고리를 입고 동아일보를 찾은 '아줌마 작가'의 프로필 사진을 찍은 게 강운구였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1990년, 작가의 집으로 찾아가 사진을 찍었는데 '등단사진을 찍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초창기 박완서는 한복을 즐겨 입었으나 20년 뒤 만난 예순의 작가는 블라우스에 니트를 곁들인 차림이었다. 상기됐던 표정도 한결 원숙해졌다. 시절이 그새 많이 바뀐 것이다. 

강운구는 자신과 동시대에 살았던 예술가들을 주로 찍었다. 유명하다는 이들을 억지로 찾아다니기 보다는, 살면서 이런저런 인연으로 스치게 되는 이들을 촬영했다. 어딘가를 지긋이 응시하며 담배를 피우는 소설가 최일남의 사진에는 인물의 내면이 잘 투영돼 있다. 문학평론가인 김병익의 1975년도 사진은 엄혹한 시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신문사 편집국의 낡은 의자를 이어붙인 뒤 신문을 덮어쓰고 쪽잠을 자는 김병익을 강운구는 냉정하게 담았다. 당시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이자 한국기자협회 회장이었던 김병익은 서슬퍼런 유신독재에 항거하며 동료들과 1974년 '자유언론수호 실천'을 선언했다. 이후 탄압은 더욱 거세졌고, 이듬해 3월 기자들은 편집국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여러 날 농성을 하던 김병익의 탈진한 모습을 동료인 강운구가 포착한 것. 얼마나 고단했으면 양복차림에 신문지를 이불 삼아 골아떨어졌을까. 그리곤 며칠 뒤 새벽, 기자들은 회사에서 동원한 괴한들에 의해 쫓겨났고, 강운구를 포함해 113명이 해직됐다. 이들은 동아투위를 결성했는데 그 투쟁은 오늘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시각예술가들의 사진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거리가 가득하다. 파리를 무대로 활동하던 화가 한묵이 1976년 잠시 귀국하자 단짝친구인 박고석(화가)은 설악산 여행을 제안했다. 고은 시인까지 불러내 내설악을 찾았다. 그러나 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일행은 화전민 집의 옹색한 방에서 뭉개야 했다. 오후가 되자 한묵과 박고석은 비좁은 방에서 포개지듯 단잠에 빠져들었고, 강운구는 그 모습을 찍었다. 그리곤 이런 주석을 달았다 "오랜 두 친구는 설핏 잠에 빠져들었다. 꾸는 꿈은 서로 달랐으리라". 

사진가 강운구 주위에는 늘 많은 화가들과 조각가, 디자이너들이 있었다. 가족처럼 가까웠던 박고석 화백 외에도 '심플심플'을 외쳤던 장욱진 화백, 호미와 낫, 연탄집게를 구부려 해학이 넘치는 호랑이, 새 조각을 만들던 조각가 이영학, 맑고 단아한 수묵화를 그리는 송영방, 아름답고 쓸모있는 책을 디자인하는 정병규 등이 그들이다. 강운구는 그들이 오래 머물러, 고유한 공간이 되버린 장소 속에 있는 모습을 찍음으로써 '그 사람다운 사진'을 완성했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 운보 김기창 화백, 충북 청주 1984  [사진=ⓒ강운구, 고은사진미술관] 2021.11.2 art29@newspim.com

이리저리 세워진 동양화붓 사이로 파이프담배를 문채 카메라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사진이라든가, 완성을 앞둔 그림 아래에서 눈을 지긋이 감은 천경자 화백의 사진은 공간과 화가가 절묘하게 합일을 이룬 작품이다. 물감과 캔버스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스튜디오에서 작업에 여념이 없는 변종하, 박고석, 한운성, 오세열 화백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또한 오지호 박생광 백남준 이대원 유영국 김흥수 서세옥 이경성 박노수 최영림 최욱경 류병엽 정강자 등 작고 미술인들의 초상사진은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뛰어나지만, 자료적 가치도 각별하다. 또 정상화 하종현 윤명로 심문섭 서승원 최종태 최인수 김수자 등의 사진도 예술적, 기록적 측면에서 공히 귀한 사진들이다.

문인들의 공간이 빼곡히 들어찬 책들이 주된 배경이라면 미술가들의 공간에선 그림과 조각이 그들의 세계를 대변해주는 배경이다. 그래서 강운구는 예술가들을 스튜디오로 불러내기 보다, 힘들더라도 그들의 공간을 직접 찾아 사진을 찍었다. 인물사진은 '그 사람의 그때'를 증명해주는 증명사진이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진전에는 가슴 아픈 사진들도 나왔다. 건축가 김수근이 자신이 설계한 파주의 한 건물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그러나 거장은 의외로 의연했다)을 찍은 사진(1986년)이라든가, 잡지 '뿌리깊은 나무'를 만든 출판인 한창기가 모자를 눌러쓰고 충주호를 응시하는 사진(1996)은 그들이 이생에서 찍은 '마지막 한 컷'이란 점에서 안타까움을 전해준다. 

이렇듯 우리 문화예술계에 저마다의 궤적을 남긴 예술가들의 초상을 한자리에서 음미할 수 있는 것은 관객으로선 더없는 안복이다. 강운구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을 찍으면서 '언젠가는 전시를 꾸리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70, 80, 90년대에 찍었던 사진들을 선보이는 전시는 이토록 늦어져, 154명의 예술가 중 절반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작가 스스로도 '좀 일찍 전시를 만들었어야 했다'고 아쉬워 했다. 

강운구는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에겐 다시보기 키가 없다. 30,40대들은 이번 전시에 나오는 사람들을 대부분 모른다. 다 돌격하는 병사들처럼 뒤돌아볼 이유도, 겨를도 없다. 그래서 이 사진들은 소용이 없겠다. 슬프다"라고. 그러나 강운구의 이번 사진들이야말로 지나간 우리 문화예술계를 구비구비 증언해주는 값진 사진들이다. 그 사진마다에 시인과 소설가, 화가와 조각가의 진솔한 순간들이, 예술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진가는 사진들마다 때와 장소를 꼼꼼히 메모하고 정리해왔기애 우리는 그 정확한 시점과 장소를 알 수 있고, 그때 그 시절 우리 문화예술계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강운구의 이번 사진전은 흘러간 시대를 증언하며 아름답고도 풍성한 하모니를 선사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 화가 윤형근, 서울 서교동 1986  [사진=ⓒ강운구, 고은사진미술관] 2021.11.2 art29@newspim.com

고은사진미술관 이재구 관장(경성대 교수)은 "강운구의 초상사진은 평범한 것 같지만 독창적인 아우라가 느껴진다. 촬영할 인물의 느낌 그대로, 그 사람답게 찍는 한결같은 일관성을 50년간 유지한 사진들이다. 사진의 지시적 기능과 추상적 가치탐구를 통해 발현된 그의 작품들은 더없이 인상적이다"라고 했다. 이에 작가는 "사람들 얼굴 위로 빛과 그늘이 부단히 교차한다. 시간은 시계 속에 그대로이고, 사람들은 지나갔다. 흐르는 것은 사람이다"라고 화답했다. 

사진가 강운구는 우리의 시각언어로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적 영상을 개척한 다큐멘터리 사진거장이다. 경북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1966년 조선일보(편집국 사진부)에 입사해 포토저널리스트가 됐고, 1970년 동아일보로 옮겨 출판국 사진부 기자로 일했다. 이후 월간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의 사진편집위원으로 일했고,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개발독재의 강압적 분위기 속에 산업사회로 급변하는 과정을 기록해온 그는 경주 남산의 석불을 비롯해 이 땅의 귀한 문화유산들을 담은 작업도 꾸준히 펼쳐왔다.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가졌고 사진집으로 '내설악 너와집'(1978), '경주남산'(1987), '우연 또는 필연'(1994), '모든 앙금'(1998), '저녁에'(2008) '오래된 풍경'(2011), '네모그림자'(2017) 등이 있다. 사진이론을 엮은 '강운구 사진론'과 사진과 글을 함께 담은 산문집 '시간의 빛'(2004) 등도 펴냈다. 공저로는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1999), '능으로 가는 길'(2000), '한국 악기'(2001)가 있다.

'강운구 사진전, 사람의 그때'는 오는 12월26일까지 계속된다. 고은사진미술관은 전시에 맞춰 360페이지에 달하는 대형도록 '사람의 그 때, 강운구'를 출간했다. 무료관람.

art29@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WSJ "'AI 반감' 급속도로 확산" [서울=뉴스핌] 오상용 기자 = 인공지능(AI)의 성지인 미국 안에서 대중들의 AI 반감이 확산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현지시간 18일 보도했다. 고용 불안과 전기료 상승에 대한 불만, 자녀 교육에 미칠 부정적 영향 등이 한데 버무려지면서 AI 산업의 고속 성장세가 무색할 만큼 AI에 반감을 드러내는 저항군들의 기세가 급속도로 자라나고 있다고 신문은 짚었다.  ◆ 미국 대중들의 AI 반감...중간선거 이슈로 부상 구글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에릭 슈미트는 최근 AI에 대한 청년들의 반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애리조나대 졸업식 연설자로 나선 슈미트가 연설을 이어가던 중 AI가 가져올 장밋빛 미래를 설파하는 대목이 나오자 학생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AI가 인간 삶을 더 나은 쪽으로 이끌 것이라는 빅테크 업계의 주장 혹은 낙관과는 판이한 민심이다.  지난달에는 텍사스의 20세 남성이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의 자택에 화염병을 투척한 사건도 있었다. 그는 오픈AI의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도 위협 행위를 벌인 혐의로 고소된 상태다. 인디애나폴리스의 시의원인 론 깁슨의 경우 데이터센터 건립안 승인 후 자택 현관문에 13발의 총구멍이 나는 것을 경험했다. 현관 매트 아래에는 "데이터센터 반대(NO DATA CENTERS)"라는 메모가 나왔고, 이틀 뒤에도 'F'자로 시작하는 욕설이 적힌 쪽지가 발견됐다. AI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은 통계 수치로도 확인된다.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가 진행한 최근 여론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미국이 AI 혁신을 가능한 한 더 빠르게 가속화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0%에 그쳤다. 공화당 지지층에서도 대략 절반만 호응했다. 데이터센터가 들어섰거나 들어설 예정인 동네의 민심은 더 흉흉하다. AI발 전력 수요 증가로 전기요금이 오르자 '이런 민폐도 없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미주리주 페스터스에서는 시의회가 60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립을 승인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유권자들이 시의원 4명을 전원 축출했다. 메인주에서 애리조나에 이르는 여러 주의 지자체에서 신규 데이터센터 설립을 금지하는 조례안 제정이 진행되고 있다. 에릭 슈미트 전(前) 알파벳 회장 <출처=블룸버그> ◆ 일자리 불안·교육 불신이 만든 피로감 AI 확산에 따른 고용 불안은 언론 지상을 통해 시시각각 유권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여러 기업들에서 감원 소식이 잇따르자 AI 자동화가 결국 사회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대량 실업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노동자들 사이에서 늘고 있다. 학부모와 교육계에서는 AI가 교육의 질을 훼손하고, 학생들의 학습 태도와 정신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걱정이다. AI를 이용해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학생들의 일상이 되면서 'AI는 점점 똑똑해지는데 아이들은 갈수록 바보가 되어 간다'고 학부모들과 교육 종사자들은 한탄한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유해 콘텐츠(성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 때문에 내 아이가 오염될까 걱정하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이런 불안이 누적되면서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AI가 삶을 편리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자녀 세대의 미래까지 맡길 수 있는 기술인지는 의문"이라는 회의론이 퍼지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대중의 불만이 쌓이면 정치를 움직이고 규제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마가(MAGA) 진영 내 트럼프 행정부에 영향을 미치는 실리콘밸리 출신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가을 중간선거가 다가올수록 전통 마가 지지층인 백인 블루칼러와 뒤늦게 마가와 결탁한 실리콘밸리의 규제 해방론자들 사이에 반목 또한 커질 수 있다. 메타플랫폼스 AI 로고 [사진=로이터 뉴스핌] ◆ 우리 집 뒷마당에는 No...빅테크 여론전 나서 대형 AI 기업과 인프라 사업자들의 경우 막대한 자금을 마련해 데이터센터 증설에 나섰지만 지역사회 반발이라는 벽 앞에 가로막힐 때가 적지 않다.  해당 동향을 추적하는 '데이터센터 워치'에 따르면 지난해 지역사회의 반대로 차단됐거나 지연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는 최소 48건, 사업비 규모로는 총 1560억 달러에 달했다. 올해 1분기에만 지역 사회의 반발로 취소된 프로젝트는 20건에 달해 분기 기준 가장 많았다. AI 인프라 컨설팅업체 세미애널리시스의 딜런 파텔 CEO는 "몇 달 안에 오픈AI와 앤스로픽을 겨냥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것"이라며 "사람들은 AI를 싫어한다. AI의 인기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이나 정치인보다도 낮다"고 꼬집었다. 민심이 나빠지자 AI 빅테크들은 여론전과 정치권 로비에 수억 달러의 자금을 들이고 있다. 전력 사용료를 더 내겠다는 약속과 함께 데이터센터는 많은 일자리와 풍요를 가져올 것이라는 홍보전도 병행 중이다. 오픈AI의 글로벌 대외 담당 책임자인 크리스 리헤인은 "AI를 두려움의 관점에서 쉼없이 이야기하면 당연히 두려움을 증폭시키게 된다"며 "에너지 비용과 아동 보호 등 구체적 문제 해결에 집중해 왜 이 기술이 국가와 세계에 이로운지 더 정교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I 이미지 = 배상희 기자] osy75@newspim.com 2026-05-19 13:23
사진
삼성전자, 평균 월급 1200만원 [서울=뉴스핌] 김아영 기자 = 삼성전자 임직원의 올해 1분기 평균 보수가 전년 동기 대비 25% 이상 급증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됐다. 실적 회복에 따른 영업이익 개선 효과가 반영되면서 임직원들의 급여 수준도 함께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19일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삼성전자 임직원(등기 임원 제외)의 1인당 평균 보수는 약 3600만 원 내외로 추정된다. 이를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매달 1200만 원 안팎의 급여를 받은 셈이다. 이 같은 급여 수준은 동일한 방식으로 추산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707만~3046만 원과 비교해 25% 넘게 뛴 수치다. 지난 2023년 대비 2024년의 증가율이 11.6%였던 점과 비교하면 상승 폭이 2배 이상 높았다. [자료=한국CXO연구소] 이번 분석은 공시 제도 변경에 따른 급여 공백을 추산하는 과정에서 도출됐다. 금융감독원 기업공시서식 규칙 개정으로 지난 2021년까지는 분기별 임직원 보수 현황 공시가 의무였지만, 2022년부터 반기와 사업보고서 등 연 2회만 공개하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1분기와 3분기 급여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소는 과거 1분기 보고서상 성격별 비용상 급여와 임직원 급여 총액 간의 비율이 76%~85.5% 수준으로 일정한 흐름을 보였다는 점에 주목해 수치를 산출했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별도 재무제표 주석상 성격별 비용-급여 규모는 5조6032억 원으로 파악됐다. 작년 1분기 4조4547억 원에서 1년 새 1조1400억 원 이상(25.8%) 늘어난 규모로, 삼성전자가 1분기 성격별 비용에 해당하는 급여액이 5조 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체 급여 규모 자체는 크게 증가했지만, 매출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비율은 오히려 더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 산출 과정에선 올 1분기 성격별 비용상 급여(5조6032억 원)에 과거 급여 총액 비율의 하한선인 76%를 적용하면 급여 총액은 4조2584억 원, 상한선인 85.5%를 대입하면 4조7907억 원으로 계산된다. 여기에 올 1~3월 국민연금 가입 기준 삼성전자의 평균 직원 수인 12만5580명을 대입하면 임직원 1인당 보수는 3391만~3815만 원(월 1130만~1270만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연구소는 두 비율의 중간 격인 81%를 적용해 평균 보수를 3600만 원 내외로 최종 추산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삼성전자는 월급보다 성과급 영향력이 큰 회사이기 때문에 올해 1분기 평균 급여도 이미 지난해보다 25% 이상 늘어 성과급 제외 기준으로도 1억4000만 원을 웃돌 가능성이 크다"며 "성과급까지 반영되면 연간 보수는 앞자리가 달라질 정도로 한 단계 더 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오 소장은 "2022년 이후 분기 보고서 의무 공시 항목이 축소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은 경영 투명성 차원에서 직원 수와 급여 현황 등을 자율 공개하고 있다"며 "투자자와 주주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관련 의무 공시를 다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aykim@newspim.com 2026-05-19 08:47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