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최근 잇따른 사건 현장 부실 대응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경찰이 현장대응력 강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30일 내놨다. 당장 내년부터 성능이 향상된 한국형 전자충격기를 도입, 기존 테이저건을 대신한다. 저위험 총기 및 각종 전자충격 장비를 개발하고,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도 개선한다. 다만 적극적 법집행을 보장하고 피해자 보호의 실효성을 담보할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라, 관련 법안의 제·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은 신변보호 여성 스토킹 살인 사건,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 등으로 부실 대응 논란이 일자 경찰(본)청 차장을 중심으로 현장대응력 강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번 종합대책은 근본적인 쇄신 방안을 마련하고, 현장대응의 패러다임을 사건해결을 넘어 범죄 위험으로부터 적극적 국민보호로 전환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 범죄피해자 보호 시스템 개선
경찰은 우선 '신변보호' 명칭을 '범죄피해자 안전조치'로 변경하기로 했다. 피해자가 일방적·수동적 입장이라는 의미가 담긴 보호보다는 쌍방향·능동적 의미인 안전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경찰 로고 [사진=뉴스핌DB] |
범죄피해자 안전조치 방안으로 피해자를 매우 높음, 높음, 보통 세 등급으로 구분, 위험도별로 나눠 보호한다. 매우 높음 피해자에게는 10일 이상 안전숙소 제공 및 보호시설 입소, 거주지 이전 지원 등 실질적 안전조치가 이뤄진다. 높음 피해자부터는 스마트워치가 지급된다. 피해자 위험성 및 안전조치 등급 판단의 전문성 및 신뢰성 제고를 위해 필요시 심사위원회에 외부전문가 참여도 제도화한다.
전·현 연인에 의한 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 중 폭력사건은 '신속·집중수사 대상' 지정을 검토하고, 즉시 수사에 착수해 위험성을 판단한다. 경찰은 가·피해자 등 조사 및 CC(폐쇄회로)TV 등 증거자료 확보 등 신고 접수 다음날까지 즉각적인 기초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또 현장출동 및 초기수사 단계에서 긴급응급(임시)조치 및 잠정(임시)조치 등 가해자 접근 차단과 피해자 보호를 적극 시행한다.
반복신고 사건에 대해서는 과거이력 등 상습성 확인, 관할 경찰서장 전수 보고 및 지휘·점검, 지방경찰청 반복신고 현황 취합 및 적정성 확인 등 3중 점검체계를 갖추고 팀장 중심의 수사체계를 정립한다. 반복신고 사건 대상은 층간소음 등 이웃 간 분쟁까지 확대하며,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도 적극 적용하기로 했다.
긴급신고용 스마트워치 도입, 위치측정 성능 향상 등 스마트워치 개선에도 나선다. 현재 총 3700대인 스마트워치를 내년 1만대까지 확충할 계획이다. 녹화만 가능한 기존 CCTV도 개선, 주변배회 및 침입시도 등을 감지해 경고하는 인공지능 CCTV 도입을 추진한다. 내년 주거지용 CCTV 설치 예산도 현 360대분에서 600대분으로 확대한다.
◆ 현장 맞춤형 안전장비 도입
현장 맞춤형 각종 안전장비도 도입한다. 경찰은 한국형 전자충격기를 개발, 내년 상반기 시범운영 후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형 전자충격기는 3연발 방식, 2개 조준점, 경량화, 소형화 등 기존 미국 테이저건보다 성능이 개선됐다.
유효사거리도 기존 테이저건 6m보다 0.5m 늘었으며, 발사각은 4도로 조정해 명중률을 향상시켰다. 경찰은 "기존 테이저건에 비해 훨씬 안전하고, 명중률도 향상돼 효율적으로 흉기소지자 등 제압이 가능하다"며 "내년 1월부터 6개월간 서울, 인천, 경기남부·북부 등 4개 시·도경찰청에서 시범운영되며 이후 현장 도입을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경찰청이 개발 추진 중인 한국형 전자충격기. [사진=경찰청 제공] |
경찰은 한국형 전자충격기와 함께 38구경 권총을 대체할 저위험 총기도 개발 중이다. 저위험 총기는 9mm 리볼버 구조로 38구경 권총 대비 소형화, 경량화, 사용 편의성, 저위험탄 등이 특징이다. 내년 7월 이후 시범운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경찰은 흉기소지자 등을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제압·체포할 수 있는 전자충격 경찰봉 및 장갑, 근거리 제압장치, 흉기피습에 대비하기 위한 경량 방검조끼, 원터치 경력지원 무전기 등도 내년 현장 도입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특히 전자충격 장비의 경우 현장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외에도 경찰은 지역경찰 상시 실전 교육 및 훈련 활성화, 신임경찰 교육기간 4개월에서 6개월 연장, 실습 위주 교육과정 개편, 현장 맞춤형 매뉴얼 재정비, 무도 및 사격 훈련 개선 등을 추진한다.
◆ 법적·제도적 기반 강화 법안은 국회 공전
경찰은 이번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적극적 법집행을 위한 법적, 제도적 기반의 강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경찰은 가해자 접근의 실효적 차단을 위해 스토킹·가정폭력·아동학대 관련법에 긴급응급조치 위반 시 '긴급응급조치 불이행죄' 등 형사처벌 신설을 제안했다. 보다 신속한 조치를 위해 긴급응급조치 승인 절차에서 검사 경유를 폐지해 간소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스토킹처벌법 개정도 주장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경찰관들의 적극적 법집행을 위한 형사책임 감면규정 신설도 요구했다. 현재 국회에는 경찰관이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범죄가 행해지려고 하거나 행해지는 긴박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물리력을 행사했을 때 형사책임을 경감하거나 면제한다는 내용을 담은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인턴기자 = 지난 2019년 서울 강북구 지하철 4호선 미아역에서 실시된 2019 을지태극연습 관련 테러 및 화재대비 종합훈련에서 경찰이 테러범을 체포하고 있다. 2019.05.30 dlsgur9757@newspim.com |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은 지난달 2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뒤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러나 공권력 남용 우려를 이유로 한 반대에 막혀 처리가 보류됐다. 여야는 임시국회에서 재논의하기로 했으나 국회 문턱을 넘기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스토킹처벌법의 경우 1999년 발의 이후 무려 22년만인 지난 3월 24일 국회를 통과해 10월 21일부터 시행됐으나 피해자 보호 측면에서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는 지적을 받는다. 무엇보다 보복이 두려워 제대로 신고를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반의사불벌' 조항을 두고 있다.
이에 긴급응급조치 불이행죄 신설과 함께 반의사불벌죄 삭제 등 내용이 담긴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이나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스토킹처벌법은 있지만 스토킹피해보호법은 없어서 경찰이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한 점도 한계다. 피해자 보호가 미흡하다보니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경찰은 직무 관련 피소 또는 진정 시 공무원책임보험과 경찰법률보험으로 5000만원 한도 내에서 각종 소송비용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률지원 홍보도 활성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각급 경찰관서별 '동료지킴이' 지정, 피소 및 진정 등 문의 시 구체적 절차 안내, 담당부서 연결 등 원스톱 지원체제 구축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직무 관련 고의나 중과실이 아닌 한 적극적인 직무수행 중 과실은 면책하는 적극행정 면책제도 활성화도 약속했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법률지원이나 면책제도를 능동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제도를 바꾸고 법안을 바꾸고 예산을 확충하고 교육으로 인식을 바꾸는 모든 것이 경찰의 현장대응력과 직결되는 중요한 결과물"이라며 "내년 1월에 법사위 전체회의 개최한다고 하니 법사위 통해서 관련법 개정안이 통과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1차 종합대책의 후속조치를 신속히 진행하고 추가로 논의가 필요한 과제들을 계속 검토, 추진할 것"이라며 "범죄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안전을 지키는 경찰의 현장대응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소중한 반전의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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