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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가문의 흑막] ④ 日 역사 교과서 왜곡, 아베로부터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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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카와 총리의 '침략전쟁' 발언에 강력 반발
자민당 '역사검토위'에서 일하며 극우적 역사관 굳어져
'일본의 앞날과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 사무국장 맡으며 역사왜곡 주도

[편집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사망함으로써 한일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예상된다. 아베의 사망은 단순히 일본 보수우익 아이콘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본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와, 이의 지지로 자리에 오른 현 기시다 수상은 기존의 아베 노선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최근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선을 확보함으로써, 아베의 필생 숙원이었던 평화헌법 개헌론이 일본 정가를 점차 뜨겁게 데우고 있다. 일본은 과연 과거 군국주의로 회귀하는가. 일본 정가의 풍향계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아베 가문과 아베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에 아베 가문과 일본 정치사의 흑막을 알아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아베 신조의 친할아버지는 아베 간(安倍寛, 1894~1946)이다. 서민 눈높이에 맞춘 정치를 펼친 사람으로 도리를 벗어난 권력의 전횡에 거역하고 전시 중에 반전을 외쳐 사후 7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이다.

아베 신조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리버럴 보수'를 추구하는 정치가가 되고자 했다. "내 아버지는 대단한 분이셨다"가 입버릇이었던 신타로는 평생 간의 아들인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아베 신조 친할아버지 아베 간의 1937년 중의원 선거 선전물. 빈부격차를 분노하고 실업자 대책의 필요성을 호소하며, 생활이 불안정한 근로자나 농가, 중소기업 경영자등을 배려하는 내용이다. 반면 대자본과 재벌 특권층에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2022.07.15 digibobos@newspim.com

그러나 아베 신조는 자신을 신타로의 아들이 아니라 기시의 손자라고 소개하기도 할만큼, 외할아버지 기시에 대해서는 경애심을 드러내는 한편 친할아버지 아베 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국회 의사록에 남겨진 아베 총리의 유일한 언급은 "할아버지는 아베 간이라는 분이다. 반(反) 도조 히데키 정권의 입장을 일관되게 지켜온 의원이었다"고 한 것뿐이다.

[아베 가문의 흑막] 글싣는 순서

1. 재일교포가 아베 父子를 키웠다 
2. 아베 가문과 통일교의 유착
3. 칼맞은 외할아버지와 총맞은 아베의 평행이론
4. 日 역사 교과서 왜곡, 아베로부터 비롯됐다
5. 아베는 이토 히로부미 '적자', '야마구치 정권' 끝나나
6. 日 평화헌법 개헌될까...한일 관계의 미래

아베의 극우적 이데올로기는 총리가 되기 이전에도 나타났다 종종 우파 논단에 등장해 좌익 비판과 편향된 역사인식을 보였다. 그러다가 제2차 내각 출범 1년 후인 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총리대신 이름으로 헌화를 하면서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노정했다.

아베는 언제부터 극우 이데올로기를 갖게 됐을까. 또 그 계기나 원인은 무엇일까. 사실 이 물음에 대해 정확히 답하기는 어렵다. 아베가 의원이 되기 전의 발언이나 사상, 신조에 대한 것은 거의 글로 남아 있지 않아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 수수께끼는 부자 관계의 문제로부터 일단 풀어볼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 아버지 신타로는 보수이면서도 리버럴한 자세를 견지했다. 그런 정치적 자세는 재일교포들에게도 지지를 얻어 폭넓은 신뢰와 공감을 획득했다. 신타로에게는 아들 신조와 분명히 다른 덕목, 마이너리티에 대한 배려가 있었고, 결코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정치적 균형 감각, 협량이나 독선에 빠지지 않는 넉넉한 품의 깊이가 있었다.

신타로는 평화헌법에 대해서도 옹호하는 자세를 보였다. 신타로를 따라 중앙 정계에 입문했고, 자민당 대표도 지낸 다케무라 마사요시(武村正義, 1934~)는 신타로가 "기본적으로 리버럴한 편에서 진정한 비둘기파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 활동에 쫓기던 신타로는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아들과의 관계가 소원했다. 1954년 차남으로 태어난 신조는 "철이 들고부터 아버지가 놀아 주었다는 기억이 거의 없다"고 회상하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세이케이학원(成蹊学園)을 다닌 신조는 집 근처에 또래 친구들이 거의 없었고 형과 가정교사, 유모와 노는 일이 많았다.

그런 신조를 맹목적으로 사랑한 사람이 바로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였다. 특유의 노회함과 천운으로 A급 전범으로서의 소추를 면하고 권력의 정점에 올라, 맹렬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이끈 '쇼와의 요괴'는 휴식을 취하러 간 온천 숙소와 별장에서는 오로지 손자 신조에게 애정을 쏟는 자상한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친할아버지는 아베 신조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했다. 아베 간은 중의원 시절 평화주의자로 반전 주장을 펴면서 도조 내각의 방침에 정면으로 맞섰다. 권력의 전횡에 모든 힘을 다해 항거하는 반골로 지역 주민의 존경과 애정을 받았다. 1942년 총선에서는 도조가 주도하는 대정익찬회(大政翼賛会)에 항거해 익찬회의 추천 없이 출마, 특고경찰 등의 혹독한 탄압과 감시를 받으면서도 당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패전 후인 1946년 4월 총선에서 일본진보당 출마를 준비하던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51세.

따라서 아베 신조에게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일종의 '부재 상태'다. 할아버지는 아예 기억에 없고, 아버지는 같이 놀아주지 않았고, 친구도 거의 없다. 그런 '외로운 아이' 아베를 챙긴 것이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다. 그러니 아베 신조는 필연적으로 외가 쪽으로 기울어갔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기시 노부스케와 아베 신조(왼쪽). 기시는 손자와 잘 놀아주는 자상한 할아버지였다. 2022.07.15 digibobos@newspim.com

신조는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그저 '평범한 아이(いい子)'로 이렇다 할 에피소드가 전무하다. 좋든 나쁘든 기존 질서에 대한 회의와 반발이 거세지는 소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일화가 신조에게는 없다.

일본 언론들이 그가 다녔던 세이케이학원 동급생, 선후배, 교사들을 찾아다니며 물어보아도 돌아온 답은 판에 박은 듯 똑같다. 평범했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고, 잘했던 스포츠도 없어서 더욱 그렇다. 그렇게 특별한 인상이 없었던 신조를 총리가 될 그릇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고교·대학시절의 아베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를 둘러봐도 젊은 나이에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정치의식을 키운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나중의 정치적 입장은 찾아볼 수도 없다. 기껏 엿볼 수 있는 것은 외할아버지 기시에 대한 경모뿐. 인간으로서의 본질이 공소(空疎), 공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대학 졸업 후 신조는 낙하산으로 고베제강소(神戸製鋼所)에 입사해 무난히 일을 해냈지만 형이 정계 입문을 거부함에 따라 신조가 아버지의 비서를 맡게 됐다. 아버지 비서관이 된 신조는 열심히 아버지를 도왔다. 외무장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해외출장도 자주 다녔다. 신타로는 총리 직전이었다. 그러나 1991년 암으로 병사(향년 67세)함에 따라 신조가 선거구를 물려받고 1993년 총선에 출마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87년 고향 야마구치에서의 아베 가족. 신타로 옆은 장남 히로노부(寛信) 부부, 오른쪽이 1987년 결혼 직후의 아베 부부. 부인 마츠자키 아키에(昭恵)는 일본 최초의 제과주식회사인 모리나가(森永) 제과 마츠자키 아키오(松崎昭雄) 회장의 딸로 두 사람은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중매를 섰다. [사진=데일리신초(デーリー新潮)] 2022.07.15 digibobos@newspim.com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93년 8월 초선 의원에 당선되고 뱃지를 다는 아베 신조 [사진=지지통신(時事通信)] 2022.07.15 digibobos@newspim.com

1993년은 격동의 해였다. 리크루트 사건 등의 부패 스캔들로 정치 개혁의 기운이 높았다. 선거 결과는 자민당이 과반에 훨씬 모자라는 패배로 8월 9일 야당 세력이 결집하는 호소카와(細川) 내각이 성립했다. 그 5일 전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가장 전향적으로 사과한 '고노(河野)담화'가 나왔다.

총선은 자민당 패배로 정권을 잃었지만, 이 선거에서 신조는 초선 의원이 됐다. 여기서부터 신조의 우파 이데올로기에 대한 급진전, 급접근이 시작된다. 8월 10일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1938~) 총리는 취임 후 첫 기자 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호소카와 총리는 태평양전쟁에 대해 "나 자신은 침략전쟁이었던, 잘못된 전쟁(間違った戦争)이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그릇을 빚는 호소카와 전 총리. .호소카와는 유명한 도예인으로 한국에 와서 도자기를 배우기도 했고, 몇년마다 개인 도예전시회를 연다. 2022.07.15 digibobos@newspim.com

호소카와 총리는 나중 《주간 아사히(週刊朝日)》(2010년 8월 21일호)와의 인터뷰에서 이 발언의 배경에 대해 다음처럼 말했다. 매우 중대한 내용이므로 중요 대목을 게재한다.

"나의 (외)할아버지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1891~1945) 전 총리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 유서를 남겼는데, 그 내용 중에 중일전쟁의 확대, 인도차이나 침공은 자신의 정치적 오류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지난번 세계대전은 침략전쟁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발언이다"

"당시 그 책임을 맡은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그 말은 무겁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내가) 수상에 취임한 1993년 8월의 첫 기자회견에서 기자질문에 '지난번 세계대전은 침략전쟁이고,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총리로서 처음으로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다면 무라야마(村山) 담화도 고이즈미(小泉 ) 담화도 거기까지 깊이 파고들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전까지 역대 총리들은 전쟁을 통해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한 진지한 반성의 마음을 기술하고 있었지만, '침략'에 대해서는 정권의 내외에서 어금니에 무엇이 낀 듯 석연치 않은 발언이 반복되어왔다. 그러나 나는 명확한 역사 인식을 보여줌으로써 인근 국가들이 대일 불신을 씻어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었다"

"아베가 전후 70년 담화를 낸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매우 간단하다. 무라야마와 고이즈미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 발언이나 무라야마 담화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그 정신을 해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해로운 것이 될 것이다. '침략'이나 '식민지'라는 몇 개의 키워드를 계승해 가지 않으면, '미래 지향'이라고 말해도 의미가 없다... 일본과 한국,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평화우호 이외의 선택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호소카와 총리의 발언에 강력 반발한 자민당은 8월 23일 당내에 '역사검토위원회(歴史検討委員会)'를 설치하고, 10월 15일 제1차 위원회를 개최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취지'를 발표한다.

"호소카와 총리의 '침략전쟁' 발언이나 연립정권의 '전쟁책임 사죄 표명' 의도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쟁에 대한 반성의 명분으로 일방적인, 자학적 사관의 횡행은 간과할 수 없다. 우리는 공정한 사실에 근거한 일본인 자신의 역사관 확립을 긴급 과제로 확신한다"

이 취지는 또한 일본의 역사인식은 "점령정책과 좌익편향에 입각한 교육"에 의해 부당하게 왜곡되고 있다며, "이래서는 아이들이 자기 나라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질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일본을 단죄하고 자학적인 역사인식을 강요하는 범죄적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도 말하고 있다.

현재 일본이 역사교과서에서 침략전쟁이라는 사실을 지우고, 독도를 자신의 영토라고 기재하는 과거사 왜곡 행위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다. 이 같은 극우적 역사관을 강조하는 위원회에 초선의원 아베 신조가 참여했다. 그러니 아베 신조의 역사 인식은 자민당의 야당 시절에 역사검토위원회에 참여하면서부터 생성되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어떤 국내 어떤 데서도 밝혀지지 않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아베 신조의 발언이 처음 기록된 것은 1994년 4월 21일에 열린 제9차 위원회다. 여기서 신조는 일왕이 진주만 공격의 위령 시설인 애리조나 기념관에 헌화를 예정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그리고 이런 일왕의 행동이 호소카와 총리의 '침략 발언'과 같은 '일련의 흐름'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낸다.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그가 급속히 우파적 가치관으로 기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뒤 1997년이 되면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가 대표를 맡는 '일본의 앞날과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日本の前途と歴史教育を考える若手議員の会)'이 발족하고 신조가 사무국장에 취임한다. 여기서 그의 우파적 역사인식은 결정적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그의 이런 사고의 뿌리는 바로 외할아버지, 진주만 공습이 침략이 아니라 자위행위였다고 주장한 기시였다.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의 전위를 담당하고 나선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新しい歴史教科書をつくる会)'이 같은 해인 1997년 결성된 것도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는 결국 자민당의 역사 모임과 긴밀하게 행보를 맞추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아베의 자민당 '역사검토위원회' 참석은 급격한 극우 성향으로 기우는 계기가 됐다(왼쪽 사진은 역사검토위 위원 일람). 오른쪽은1997년에 결성한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서 만든 역사왜곡 교과서. 2022.07.15 digibobos@newspim.com

이 모임은 '후소샤(扶桑社)'를 통해 《개정판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출판하였는데, 난징 대학살을 '난징 사건'이라고 바꾸어 부르고, '위안부'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는 등 일제 시절의 전시 활동을 빠뜨리거나 축소하고 있다. 또한 독도와 센카쿠 열도, 쿠릴 열도 남단 4개 섬의 영유권을 강조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오늘날 일본 역사 교과서 과거사 왜곡의 시발은 바로 아베가 참여한 '역사검토위원회'다. 이후 '일본의 앞날과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의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아베는 혐한론의 선봉이자 예봉(銳峰)이 됐다.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도 정한론 주장의 태두 격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다.

digibobo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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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李대통령 국민 속여" 靑 "왜곡" [서울=뉴스핌] 박찬제 기자 = 청와대는 24일 현 정부의 검찰개혁을 두고 유시민 작가가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을 속였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에 대해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를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는 것에 유감"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날 언론공지를 통해 "근거 없는 비난성 주장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유 작가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에 "법적 대응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 전경 [사진=뉴스핌 DB] 유 작가는 지난 22일 미디어오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 대통령이 생각한 검찰 개혁은 우리가 생각한 검찰 개혁, 더불어민주당 입장, 대통령의 공약이라고 얘기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며 "대통령이 지금까지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검찰 개혁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게 목표다. 원래 최대치의 검찰 개혁의 목표는 이랬다. '검사들이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 기소 즉 소추를 담당하는 검사를 분리해서 수사하는 검사가 기소 역할을 겸하지 못하게 하자', '그리고 이걸 분리해서 법무부 안에 수사 담당하는 기관, 소추 담당하는 기관을 나누자' 이거였다"고 말한 바 있다. 유 작가는 당시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을 두고 '대통령이 이제까지 국민을 속인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한 것이다.  유 작가는 "이 대통령은 법무부 안에 '수사를 하는 검찰'과 '기소를 하는 검찰'을 나누는 것이 원래 검찰 개혁의 최대치라고 말했다. 이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며 "저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pcjay@newspim.com 2026-09-2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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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법원, CNN 등 출입 복원 명령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CNN과 MS NOW, 폴리티코 등 3개 언론사의 백악관 출입을 금지한 조치에 대해 미 연방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24일(현지시각) 법원은 해당 언론사 기자들의 출입증을 즉시 복원하도록 명령했고, 백악관은 오전 한때 기자들의 출입이 계속 제한되는 혼선이 빚어진 뒤 이날 정오께 출입을 재허용했다. ◆ 美법원 "출입증 취소, 적법절차 위반 가능성"…백악관 결국 복원 미 워싱턴DC 연방법원의 팀 켈리 판사는 CNN과 MS NOW, 폴리티코가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이들 언론사 기자들의 백악관 출입증을 즉시 복원하도록 명령했다. 이번 임시명령은 14일간 효력이 유지된다. 켈리 판사는 백악관이 기자들의 출입증을 취소한 조치가 헌법상 적법절차 권리를 침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 출입 금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행정부가 제시한 국가안보 논리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법원 결정문에서 켈리 판사는 출입증 취소가 실제로 국가안보를 보호할 것이라는 주장에 충분한 사실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켈리 판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첫 임기 당시 지명한 판사다. 법원의 복원 명령이 나온 뒤에도 한때 세 언론사 기자들의 백악관 출입이 제한됐다. 이에 CNN과 MS NOW, 폴리티코는 법원에 긴급 심리를 요청했다. 폴리티코는 자사 기자의 출입증이 압수됐다고 밝혔고, CNN과 MS NOW 기자들도 백악관 출입을 거부당했다고 전했다. 백악관 언론운영 담당 책임자인 마이카 스토퍼리치는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서 백악관이 오전 7시25분부터 기자들의 출입증 복구 절차에 들어갔으며, 오전 9시55분께 백악관 언론팀이 출입구에 출입증을 가져다 놓았다고 밝혔다. 이후 세 언론사 기자들의 백악관 출입은 이날 정오께 재개됐다. ◆ 트럼프 "허구·거짓말"…시진핑 방미 당일 TV 풀 취재도 중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CNN과 MS NOW, 폴리티코가 대통령을 취재하면서 "허구와 거짓말"을 끊임없이 보도하고 있다며 백악관 출입을 금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조치를 국가안보 문제와 연결했다. 법무부 역시 이들 언론사의 일부 보도가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면서 미사일 비축량과 백악관 무도회장 건설 등에 관한 보도를 사례로 들었다. 반면 세 언론사는 출입 금지 조치가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와 적법절차 권리를 침해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켈리 판사는 현재 기록만으로는 출입증 취소가 국가안보 보호에 필요했다는 행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할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태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백악관 방문 등 주요 외교 일정을 소화하는 가운데 발생했다. CNN은 ABC, CBS, FOX뉴스, NBC와 함께 백악관 TV 풀을 구성하는 5개 언론사 중 하나다. TV 풀은 대통령 관련 취재를 분담하고 촬영 영상을 다른 언론사에 제공한다. CNN 등에 대한 출입 금지 이후 TV 풀에 참여하는 언론사들은 CNN과의 연대 차원에서 공동 취재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시 주석이 목요일 오전 백악관 사우스론에 도착했을 당시 TV 풀 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았고, FOX뉴스와 MS NOW, CNN은 두 정상의 도착 행사를 생중계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시 주석을 환영하면서 사진기자들을 향해 중국 기자들이 가장 우호적인 언론인들이라는 취지의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한편 켈리 판사의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또 다른 언론 관련 소송에서 법적 차질을 겪은 지 하루 만에 나왔다. 아이오와주 법원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대선을 앞두고 발표된 여론조사와 관련해 디모인 레지스터 신문과 여론조사 전문가 J. 앤 셀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스콧 비티 아이오와 지방법원 판사는 해당 여론조사가 법적으로 보호되는 표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9월 24일(현지시각) CNN 백악관 특파원 베시 클라인이 출입 복원을 명령한 법원의 결정에 따라 출입 권한을 되찾은 후 백악관에서 취재 업무를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kwonjiun@newspim.com 2026-09-25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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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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