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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가문의 흑막] ③ 칼맞은 외할아버지와 총맞은 아베의 평행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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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전범에서 '미국의 양치기'로 변모한 기시 노부스케
1960년 미일안보조약 개정으로 재군비 길 열어놓고 칼맞아
아베의 평생 숙원 평화헌법 개정은 외할아버지 최대 유지 받든 것

[편집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사망함으로써 한일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예상된다. 아베의 사망은 단순히 일본 보수우익 아이콘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본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와, 이의 지지로 자리에 오른 현 기시다 수상은 기존의 아베 노선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최근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선을 확보함으로써, 아베의 필생 숙원이었던 평화헌법 개헌론이 일본 정가를 점차 뜨겁게 데우고 있다. 일본은 과연 과거 군국주의로 회귀하는가. 일본 정가의 풍향계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아베 가문과 아베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에 아베 가문과 일본 정치사의 흑막을 알아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아베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태평양전쟁 이후 미·일동맹에서 양치기 이상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제국주의 전쟁기계'의 핵심 톱니바퀴였고, 전쟁 이후에는 일본에서 미국 정책의 가장 중요한 핵심 축이 됐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것은 A급 중대 전범이었던 기시를 미국이 사형시키지 않고 구제했기 때문이다.

스털링(Sterling)과 페기 시그레이브(Peggy Seagrave) 부부가 함께 저술한 책 『황금 전사들 : 야마시타 골드를 찾으려는 미국의 비밀스런 작업(Gold Warriors : America's Secret Recovery of Yamashita's Gold』은 이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1956년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기시를 자민당의 우두머리이자 새 총리로 만들기 위해 매우 길고도 어려운 노력을 했다. … 10년 동안 기시는 '미국의 소년'으로 몸치장을 했다. … 미국의 일본평의회는 마치 쥐 같은 기시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게 일했고, 영어로 그를 지도했으며, 스카치(위스키)를 사랑하도록 가르쳤다. 그들에게 기시는 일본에 남아 있는 '미국의 유일한 대안(only bet left in Japan)'이었다."

[아베 가문의 흑막] 글싣는 순서

1. 재일교포가 아베 父子를 키웠다 
2. 아베 가문과 통일교의 유착
3. 칼맞은 외할아버지와 총맞은 아베의 평행이론
4. 日 역사 교과서 왜곡, 아베로부터 비롯됐다
5. 아베는 이토 히로부미 '적자', '야마구치 정권' 끝나나
6. 日 평화헌법 개헌될까...한일 관계의 미래

일반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범들을 다룬 도쿄재판은 엄청난 흑막 속에 정작 처형을 받아야 할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엇갈린 엉터리 혹은 사기극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1937년 12월 난징 함락 당시 난징 사령관으로 대학살의 실제 주모자인 아사카미야(朝香宮, 1887~1981)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맥아더 장군 밑에서 정보국장을 맡아 미국의 첩보작전을 이끌었던 찰스 윌로비(Charles A. Willoughby, 1892-1972) 장군조차 당시 재판관 중 한 명인 롤링 판사에게 "도쿄 전범 재판은 인류 역사가 기록된 이래 최악의 위선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수십 년간 히로히토 일왕을 연구해온 도요시타 나라히코(豊下楢彦, 1945~) 간사이학원대학 법학부 교수도 "도쿄 재판은 주역을 빼놓은 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1884~1948·태평양전쟁 당시 육군대장 겸 총리) 일파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 미·일의 합작품이었다"고 정리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48년 12월 24일 스가모 감옥에서 석방된 기시 노부스케에게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친동생 사토 에이사쿠가 담뱃불을 붙여주고 있다. 사토 에이사쿠도 총리 시절인 1975년 5월 19일 요정에서 갑자기 쓰러졌는데, 이와 관련 독살설이 끊이지 않았다. 2022.07.14 digibobos@newspim.com

기시는 '전쟁 악마' 도조 히데키의 심복으로 그와 함께 만주 강경파 지배 집단의 일원이었다. 1941년 12월 대미 전쟁선언서에 서명도 했다. 또한 태평양전쟁 동안 군수공업부 차관과 상공부 장관을 지냈고, 강제 징용자들의 노예 노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그런데 미국은 그런 그를 구제하고 심지어 존 덜레스 국무장관(John Foster Dulles, 1888~1959)은 "기시는 미국의 최상의 선택" "기시는 우리 편"이라고까지 말했다. 기시에 대한 미국의 태도 변화는 미국 정부와 막후의 재계 및 군산복합체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나온 전략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미국의 이런 노력의 결과로 기시는 1957년 드디어 총리가 되는 데 성공했고, 총리가 되자마자 곧바로 미국을 방문한다. 당시 매우 중대하고 흥미로운 장면의 하나는 프레스콧 부시 상원의원(41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대통령 아버지, 43대 조지 W. 부시 대통령 할아버지)이 골프를 좋아하는 기시를 불러내 함께 라운딩한 사실이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57년 미국 방문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왼쪽)과 골프를 치는 기시. 오른쪽 끝이 두 명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할아버지, 프레스콧 부시 상원의원. 2022.07.14 digibobos@newspim.com

부시와 기시가 골프를 치는 동안 클라렌스 딜런(Clarence Douglas Dillon, 1909~2003) 국무차관은 일본에 미군을 상주시키는 미일안보조약 문서의 타이핑 작업을 지시하고 있었고, 그와 부시 가문이 개입해 있는 군사산업 전문 투자회사 칼라일(Carlyle)은 일본 자위대에 팔 수 있는 무기의 견적을 계산하고 있었다. 칼라일 그룹은 2220억 달러 이상의 운용 자산을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투자 펀드다. 수수께끼로 가득 찬 펀드이며, 수많은 정치인과 깊은 관계에 있어 '전직 대통령 클럽'으로도 불린다.

아베 전 총리는 그의 자서전 『아름다운 나라를 위하여』에서 6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의 충격적인 시절을 기억한다고 주장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아베는 책에서 새 안보협정이 통과되기 전날인 1960년 6월 18일의 유년시절 기억을 되짚어 본다. 시위대가 의회 건물을 에워싸고 기시는 총리 관저 안에 갇혔다. 아베의 기억에 따르면 기시는 나중에 총리가 된 동생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 1901~1975·양자로 가서 성이 다름)와 술을 마시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만약 이 일로 내가 죽임을 당하면 그러라지 뭐"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60년 6년 18일 미일안보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둘러싸인 일본 의회. 2022.07.14 digibobos@newspim.com

기시가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처음으로 추진한 일이 군비 강화였다. 그는 자위력의 범위 안에서 자위대의 핵무장도 가능하다는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단순 보수라기보다 거의 군국주의 극우 노선의 부활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같은 만주 인맥으로 절친했던 전쟁광 도조 히데키가 다시 살아난 것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시는 점령군의 압력으로 만들어진 제도들을 바로잡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사명이라고 여겼다. 특히 헌법과 미일안보조약에 대한 개정 의지가 강했다. 기시는 일본의 군사력 보유를 막고 있는 헌법 9조를 개정해 일본이 상당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면 안보조약도 대등한 내용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헌법 9조의 개정에 나섰다. 사망하기 전 아베의 노선과 판박이다.

그러나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체험한 일본 국민 대다수는 기시의 뜻과 달리 전쟁국가 일본의 부활에 우려하는 마음이 여전했다. 그 결과 선거에서 사회당이 약진하며 3분의 1 이상의 의석을 차지함에 따라 기시의 헌법 개정은 불가능하게 됐다.

그러자 기시는 헌법 개정이 아닌 해석을 통해 그 뜻을 이루고자 했다. 그 첫 번째로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에 대한 수정을 시도했다. 이때까지 일본 정부는 외국과의 군사동맹에 기반을 둔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의 헌법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런데 기시는 해석을 재검토해 헌법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과 행사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눌 것을 주장했다.

두 번째로는 개별적 자위권의 확대도 시도됐다. 1956년 2월 일본 정부는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부득이한 경우에는 적의 기지를 공격하는 것도 합헌이라는 해석을 주장했다. 세 번째로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도 보유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자위를 위한 소형 핵무기는 헌법 9조 하에서도 보유 가능하다고 하면서 장래의 핵 보유가 헌법상으로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1952년에 맺은 미일안전보장조약을 개정해 보다 강력하게 일본을 동북아 지역 반공 보루로 삼는 동시에, 미국 세계 군사전략의 동반자로 삼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런 움직임에 따라 1960년 1월 기시는 미국으로 가서 미일 관계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고, 독자적인 외교권을 위해 미일안보조약 개정안에 조인했다. 이 정책을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기시는 일본의 평화헌법을 공식적으로 재검토하기 시작하는 한편 일본의 자주국방을 추진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60년 1월 19일 미국 방문에서 미일안보조약 개정안에 서명하는 기시 노부스케. 그 옆은 아아젠하워 대통령. 2022.07.14 digibobos@newspim.com

그러나 일본 정부가 평화헌법 제9조를 유명무실화하는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위해 국회 비준을 강행하자,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안보투쟁은 점차 반정부·반미투쟁으로 확산돼갔다. 국회는 연일 시위 군중에 의해 포위됐다.

사태의 심각성 속에서 기시는 한 때 총리 관저에서 동생 사토 에이사쿠와 함께 자살하는 것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서도 안보조약은 참의원에서의 비준 의결 없이 날치기로 자동 승인(6월 19일)됐고, 6월 21일에 쇼와 일왕의 공표가 이루어져 새로운 미일안전보장조약이 개정됐다. 이에 따라 기시가 6월 23일 내각 총사퇴를 결정, 정국은 새 총리를 선출하는 수순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7월 14일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기시가 미는 관료파의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가 신임 총재가 돼 총리 관저에서 축하연이 열렸을 때, 갑자기 아라마키 다이스케(荒巻退助)라는 청년이 달려들어 기시를 칼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60년 7월 14일 미일안보조약 개정의 여파로 괴한의 칼에 맞아 중상을 입고 실려나가는 기시 노부스케. 2022.07.14 digibobos@newspim.com

기시는 꽤 중상을 입었는데,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날의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거의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범인이 우익단체에 속했었다는 내용만 나왔을 뿐 자세한 신원이나 그 후 그가 어떻게 됐다는 내용이 전혀 없다. 정말 기이한 나라, 일본이다.

이와 관련해 종전 이후 CIA의 핵심 협력자로 변절한 고다마 요시오의 지령에 의한 것이었다, 혹은 악화된 여론을 잠재우려는 기시의 자작극이었다는 소문만 돌아다니는 형편이다. 이에 대한 일체의 정보가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보면 '모략과 공작'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이런 유혈 참극의 혼란을 치르면서 기시는 결국 자신의 최대 소망이었던 일본 재군비의 길을 열어놓았다. 대규모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 미일안보조약이 통과된 것은 일본 역사에 그리고 기시 자신에게도 획기적인 순간이었다. 그것은 전쟁과 미군 점령으로 인해 깨지고 추락한 전쟁 전 보수 엘리트들이 위신과 권력을 다시 회복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계를 통과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아베가 2015년 달성한 획기적인 성과도 이와 비슷하다. 2015년은 한일 수교 50주년이자, 패전 70주년, 중의원 선거를 앞둔 해였다. 아베는 55년 전 할아버지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 아베는 그 속에서 친근함과 반감을 동시에 느끼는 미국이라는 지배적 존재와 마주해 일본 재무장에 대한 자신(그리고 외할아버지)의 비전을 밀어붙였다.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은 그해 중의원 총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집권 3년차를 맞는 아베는 장기 집권 발판을 마련했고, 그의 대외정책도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아베는 2019년 7월 19일 참의원 선거에서는 개헌의석수 확보에 실패했으나 "개헌은 나의 사명"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사진=아사히신문] 2022.07.14 digibobos@newspim.com

실제로 아베는 중의원 선거 승리 후 인터뷰에서 다음해(2016년) 일본 패전일(8월 15일) 담화에 대해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된 법안을 정비한 뒤 상반기 중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식화하겠다는 방침과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한마디로 과거를 털어버리려는 '역사수정주의'의 강화였다.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아베는 의회 안팎에서 시위대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1960년 미일안보조약 개정 투표 강행에 격분한 야당 의원들을 피해 의회 밖으로 피신하기 위해 경찰을 불렀던 할아버지처럼 극한 상황으로는 몰리지 않았다. 기시는 쇼와 군국주의자로서 깊은 증오와 경멸을 받았지만, 아베는 오히려 높은 지지율의 방석에 앉아 있었다.

또 아베는 기시가 그랬던 것처럼 불만을 품은 우익의 잇따른 암살 시도를 감수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상황의 대척점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엉뚱하게 통일교와의 유착이 원인이 된 총을 맞았다.

이렇게 해서 아베와 기시 사이에는 평행이론이 완성됐다. 그들의 상황, 사고방식, 그리고 도전은 매우 놀랍도록 닮아 있다. 기시와 미국의 특별한 관계, 미·일 군사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데 있어 그의 핵심적 역할은 손자 아베의 행동에 매우 끈끈한 DNA를 새겨놓았다.

digibobo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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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른되면 만나요"…순직 소방관 딸의 편지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경기 부천 공장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고(故) 김진석 소방위의 6세 딸이 아버지에게 쓴 편지가 공개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은 아버지에게 "그리운 아빠, 나중에 꼭 다시 만나요. 그땐 제가 아마 어른이 됐을 때일 거예요"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 "아빤 저를 제일 사랑하셨다는 거"…딸의 마지막 편지 18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연수갑)이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사진에는 김 소방위의 딸이 아버지를 향해 직접 쓴 편지가 담겼다. 딸은 "보고 싶은 아빠께"라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이어 "아빤 어제 돌아가셨는데 지금도 너무 보고 싶네요. 우린 지금 장례식장이에요"라고 적었다. 고(故) 김진석 소방위 딸의 편지. [사진=송영길 의원 페이스북] 이어 "전 알아요. 아빤 저를 제일 사랑하셨다는 거"라며 "그리운 아빠, 나중에 꼭 다시 만나요. 그땐 제가 아마 어른이 됐을 때일 거예요"라고 했다. 편지는 "사랑해요. 보고 싶은 아빠. 사랑해요"라는 말로 끝났다. 편지 옆에는 '출동'이라는 글자와 함께 소방차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송 의원은 조문 이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영정사진과 앞에 놓인 6살 딸이 아빠에게 쓴 편지를 보니 눈물이 핑 돈다"며 "소방관의 출근 인사가 마지막 인사가 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해본다"고 전했다. ◆ 퇴근 20분 앞두고 출동…화재 진압 중 순직 소방 경력 11년 차인 김 소방위는 지난 16일 오전 8시 38분쯤 경기 부천시 오정구 내동의 한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기까지 불과 20여 분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김 소방위를 포함한 선착대원 4명은 건물 3층에 진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으나 불길이 확산하면서 2명이 고립됐다. 동료 대원은 구조됐지만 김 소방위는 약 27분 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번 화재로 김 소방위가 숨지고 소방대원 1명이 중상을 입는 등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김 소방위는 아내와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과 함께 새집으로 이사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김 소방위를 소방장에서 소방위로 1계급 특진시키고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국립현충원 안장도 지원할 계획이다. kji01@newspim.com 2026-10-1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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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U 없는 내 PC서 초대형 AI 돌린다 [뉴욕=뉴스핌] 김민정 특파원 = 애플과 메타플랫폼스가 인공지능(AI)에서 손을 잡았다. 보통 데이터센터 기반 클라우드에서 돌아가는 AI 모델을 개인 컴퓨터에서 직접 돌리는 방식이다. 애플과 메타는 15일(현지시간) 메타의 새 오픈웨이트 모델 '뮤즈 스파크 오픈'을 애플 고성능 데스크톱에서 구동하는 협업을 공개했다. 파라미터가 8160억 개에 이르는 대형 모델이다. 파라미터는 AI가 학습한 내용을 저장하는 단위로, 많을수록 모델이 크고 성능도 높은 편이다. 맥스튜디오 2~4대를 연결하면 코딩이나 영상 분석 같은 작업을 맡길 수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엑스(X)에 맥에서 돌아가는 메타 에이전트 화면을 올리고 "뮤즈 스파크 오픈이 존 터너스(애플 CEO)와 애플의 작업 덕분에 새 맥스튜디오에서 훌륭하게 돌아간다"고 적었다. 터너스 CEO는 "이 정도 수준과 규모의 모델을 책상에서 바로 이렇게 효율적으로 돌릴 수 있다니 놀랍다"고 답했다. 핵심은 모델이 클라우드가 아니라 내 컴퓨터 안에서 돌아간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AI를 쓰려면 대형 데이터센터에 깔린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빌려 써야 했다. 맥스튜디오에서 대형 모델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은 애플 칩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신호다. CNBC는 이번 협업이 "AI 칩 시장에서 애플의 힘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애플은 이번에 자사 칩의 성능 측정 결과를 새로 공개하고, 하나의 AI 모델을 여러 대의 컴퓨터에 나눠 돌리는 기술 문서도 내놨다. 자체 소프트웨어 도구인 MLX를 통해서다. 개발자는 허깅페이스 같은 사이트에서 복잡한 설정 없이 애플용 모델을 내려받을 수 있다. 뮤즈 스파크 오픈은 애플 기기에서 더 빠르게 작동하도록 조정됐다. 오픈웨이트 모델은 AI가 학습한 결과물이 공개돼 누구나 내려받아 자기 기기에서 돌릴 수 있는 모델이다. 메타는 뮤즈 스파크 오픈이 상업적 이용을 일부 허용하는 조건으로 공개된 모델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CNBC는 이번 조치가 "메타의 재편된 AI 노력에 대한 중요한 신뢰의 표시이며 오픈AI와 앤스로픽에 도전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플랫폼스 최고경영자(CEO)가 15일(현지시간) 애플 맥(Mac) 스튜디오에서 돌아가는 메타 에이전트 화면을 소셜미디어 X에 올렸다.[저커버그 CEO X 게시물 캡처] 2026.10.16 mj72284@newspim.com mj72284@newspim.com 2026-10-1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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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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