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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실종자 찾는 보호자들 발만 동동..."실종 접수했는데 연락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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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151명·부상자 82명

[서울=뉴스핌] 소가윤 기자 = 핼러윈을 앞두고 대규모 인파가 몰린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압사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서울 각지의 병원 응급의료센터를 돌아다니며 실종자를 찾는 보호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30일 오전 10시 기준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는 이태원 사고로 숨진 사망로 인한 사망자가 1명 안치돼있다.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 사고로 인해 151명이 숨지고 82명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뉴스핌] 소가윤 기자 = 핼로윈을 앞두고 대규모 인파가 몰린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압사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서울 각지의 병원 응급의료센터를 돌아다니며 실종자를 찾는 보호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30일 오전 10시 기준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는 이태원 사고로 숨진 사망로 인한 사망자가 1명 안치돼있다. 2022.10.30 sona1@newspim.com

이날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실종자를 찾으러 온 40대 여성 A씨는 "한남동 주민센터에 실종 접수센터를 하고 왔다"며 "아직 연락이 안돼 가족끼리 병원마다 뿔뿔이 흩어져서 찾고 있다"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새벽에 다른 병원도 갔다왔는데 신원확인이 아직 안된다고 해서 응급실로 들어오는 환자들의 옷만 보다가 여기로 왔다"고 덧붙였다.

이곳 병원 관계자는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 들어온 중국인 여성 1명이 퇴원한 상태이며, 또 다른 남성 1명은 경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응급의료센터를 찾은 부상자는 모두 20대라고 전해졌다.

20대 자녀를 찾으러 온 부부도 응급의료센터에 발을 동동구르며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했다.

이곳 병원에서 치료 중인 아들을 찾으러 청주에서 급히 운전해온 부부도 있었다. 20대 초반 아들을 둔 B씨는 "어젯밤 10시30분쯤 서울에 있는 친구와 놀러 간 아들이 전화가 와서 인태원 인파에 밀리고 있다고 갑자기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다"며 "인파에 갇혀 숨이 안쉬어진다고 그러길래 한숨도 못자고 걱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서 겨우 인파를 빠져나왔는데 거리가 통제 돼 친구 집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근처 PC방에서 머물다가 여기저기 몸이 아프다고 해서 응급실에 갔다더라"며 "밤새 연락하다가 아침에 부랴부랴 운전해서 서울에 왔다"고 토로했다.

외상은 없어보이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가 올 거 같아 걱정된다고도 덧붙였다.

경찰 관계자는 "소지품이 사라진 실종자들도 많을 것"이라며 "병원마다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대로 유족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 기준 한남동 주민센터에 접수된 실종자 접수는 총 1736건이다. 오전 9~10시사이 접수된 실종 건수는 335건이다.

지난 29일 핼러윈을 앞두고 용산구 이태원로 해밀톤호텔 일대 골목에서는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전날 오후 10시 15분쯤부터 해밀톤 호텔 인근에서 사람들이 깔려 호흡곤란 환자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이들은 해밀톤호텔 옆의 폭 4m가량의 내리막길에 인파가 몰리면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부상자 중에는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병원으로 이송된 사람들도 있어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sona1@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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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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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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