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베팅 승부수
진입장벽 높은 온라인 식료품 시장 정조준
현지화·시간 싸움 관건
[서울=뉴스핌] 노연경 기자 = 오프라인 유통 강자지만 온라인에서는 맥을 못 추던 롯데가 1조원에 가까운 투자를 통해 온라인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쿠팡의 미국 뉴욕 증시 상장, 신세계그룹의 지마켓(옛 이베이코리아) 인수 등에도 신중을 기하던 롯데가 이번 투자로 이커머스 시장을 뒤흔들 '메기'로 부상할지 주목된다.
롯데쇼핑은 지난 1일 영국 리테일테크 기업 오카도(Ocado)의 스마트 플랫폼(OSP, Ocado Smart Platform) 및 자동화 물류센터(CFC, Customer Fulfillment Center) 시설에 2030년까지 95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시했다.
오카도 물류 로봇이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있는 모습.[사진=롯데쇼핑] |
매장 없는 슈퍼마켓을 표방하며 2000년에 영국에서 설립된 오카도는 식료품 배송에 특화된 회사다. 바둑판 모양의 격자형 레일을 프로그래밍화 되어 있는 로봇들이 오가며 숙련된 노동자보다 5배 빠른 속도로 온라인 주문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최근에는 글로벌 유통회사들에 이 같은 배송 솔루션을 판매하는 B2B(기업 대 기업) 사업을 키우고 있다. 현재 오카도는 9개국 11개 업체와 협업을 맺었는데, 롯데쇼핑을 통해 한국에 첫 진출하게 됐다.
롯데쇼핑의 이 같은 결정에 유통업계 관계자들도 적잖이 놀란 분위기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까지 나서 생존을 위한 변화를 거듭 강조했지만, 롯데쇼핑은 그간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티몬 인수 후보로 거론됐었고, 지난해에는 지마켓 인수 후보로 마지막까지 거론됐지만 결과적으론 모두 인수하지 않았다.
2020년 4월 출범한 롯데 유통 계열사 통합몰 '롯데온'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있음에도 말이다. 롯데온은 햇수로 3년이 지났음에도 '유통 공룡'이란 롯데의 수식어에 걸맞지 않게 이커머스 시장 내에서 낮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롯데온 홈메인 화면.[사진=롯데쇼핑] |
이커머스 시장에서 매출액보다 더 중요한 지표로 삼는 거래액 규모를 보면 롯데 유통 7개 계열사의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2조1571억원이다.
10조원으로 추산되는 쿠팡과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 지마켓을 인수한 신세계그룹의 합산 거래액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초반부터 서비스 안정화에 애를 먹었고, 외부 인사인 나영호 대표를 발탁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지만 백화점, 마트 등 롯데쇼핑 내 각 사업부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온라인 사업을 지난해 8월 이관받으며 덩치 키우기보단 내실 다지기에 집중해야 했다.
이 때문에 오카도와의 협업은 롯데쇼핑의 '마지막 카드'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롯데온은 뷰티와 명품 등 핵심 카테고리를 키우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식료품 판매에 특화된 별도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롯데온과는 별개로 온라인 장보기 플랫폼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온라인 장보기 시장은 성장 가능성은 매우 크지만 진입장벽이 높아 후발주자인 롯데쇼핑에게도 기회가 있다.
현재 국내 식료품 시장의 온라인 침투율은 25%에 불과하다. 까다로운 재고관리 때문에 이미 진출해 있는 사업자들도 섣불리 덩치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롯데쇼핑이 파트너로 오카도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카도는 수요예측 시스템을 통해 폐기율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오카도의 식품 폐기율은 0.4% 수준이다.
다만 롯데쇼핑이 아무리 오카도라는 든든한 파트너를 만났다고 해도 여전히 실패 가능성은 존재한다. 성공적인 현지화와 경쟁사와의 시간 싸움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오카도가 진출해 있는 미국, 호주 등과 달리 한국은 도심 밀집도가 높아 촘촘한 배송망이 이미 발달해 있다. 새벽배송부터 주문 후 1~2시간 내 오는 즉시배송까지 빽빽하게 경쟁사들이 들어차 있다.
또 롯데쇼핑은 2025년 첫 번째 CFC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6개의 CFC를 오픈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쿠팡과SSG닷컴 등 경쟁사들도 현재 대규모 물류센터를 건립 중에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번 협업은) 온라인 전환이 더디다고 평가받는 롯데쇼핑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전 세계에서 가장 고도화된 이커머스 시장인 한국에서 오카도의 기술을 어떻게 현지화시킬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yk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