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청조 사기 사건 재판이 오는 8일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이 사건에서 가장 대중의 기억에 남는 것은 'I am 신뢰에요'로 대표되는 그의 어록일 것이다.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후에도 그의 발언은 언론에 오르내렸다. 첫 공판부터 전청조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이어진 공판에서 전 연인 남현희와 '경호실장' 이모 씨를 공범으로 지목했다.
송현도 사회부 기자 |
그의 자유분방한 입은 재판부를 분노케 했다. 3차 공판에서 전청조가 "(저도) 최대한 벌을 받고 추후에 떳떳하고 올바르고 싶다"고 말하자 재판부는 "그런 말을 한다고 피해자들의 피해보전과 마음의 상처가 아무냐"며 "피해자들에게 두번 상처 주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피고의 입에서 나온 '떳떳하고 싶다'는 발언은 후회와 반성의 여지로 비춰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재판부가 되려 이를 지적한 것은 일견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청조가 재판동안 보인 태도를 살펴야 한다. 그가, 아니 그녀가 4차 공판에서 남긴 '어록'을 뽑아 그 면모를 조명해봤다.
"해석은 '본인'이 하는 겁니다"
4차 공판 당시 피고인 신문에서 전청조는 지난해 2월에는 이씨가 자신의 사기 피해자였지만 2월말부터 공범으로 전향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3,4월에 이씨에게 월급을 지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묻자 그녀는 "당시에 돈이 없어서 투자 사기를 쳐 추후에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했다"고 답했다.
신문을 진행하던 부장판사가 사기 피해자가 투자 사기를 알면서 월급을 투자금에 넣었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냐고 질문하자 전청조는 "해석은 '본인'이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판사는 "'본인'은 지금 재판부인 저를 뜻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좌중에서는 일대 실소가 터졌다. 당시 재판장에는 피해자를 포함한 사건 관계자들이 방청을 하고 있었다. 판사 역시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쳤다. 본인의 범죄 사실과 그 공범을 입증하는 문답에서 전청조는 주장의 신빙성을 가늠하는 재판부와 피해자들 앞에서조차 말장난에 가까운 답을 제시하며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그럼 저도 남현희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거 아닌가라고 하면 죄 아니냐."
이어진 신문에서 재판부는 꾸준히 이씨의 공모 정황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다음 사기 행각으로 돈이 들어올 때까지 수모를 참고 기다렸다고 봐야하냐"고 의문을 표한 판사는 지난해 돈을 구하는 이씨에게 전청조가 메신저로 욕을 하는 증거를 보고선 "이런 강압적 대화 구조가 어떻게 이뤄지냐. 이씨는 가스라이팅으로 심리적 억압을 당한 상황에서 욕 먹고 괴로웠다고 주장한다"고 운을 띄웠다.
전청조는 돌연 판사의 말을 자르고 "그럼 저도 남현희 씨에게 가스라이팅 당했다고 하면 나쁜 짓 해도 죄 아니냐"며 항변했다. 판사는 "여기에 없는 사람 언급해서 말하고 비유도 매우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해당 발언은 심리를 진행하는 판사에 대한 일말의 예의를 저버린 것은 물론, 은연 중에 범행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태도를 내비친 부분이었다.
"유명세를 이용해 옥 중에서라도 책 써서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하겠다"
공판 말미에 전청조는 자신의 법률대리인에게 말한 피해자 변제안도 공개했다. 자신이 언론에 관심을 받을 때 옥 중에서라도 책 써서 피해자에게 피해를 배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사기를 쳐 얻은 범죄 이익금이 없다는 점과 피해자에 대한 배상 의지를 드러고자 한 의도로 풀이되지만, 자신이 당한 사기로 유명세를 얻은 범죄자가 피해 사실을 가십거리로 팔아 번 수익금이 적절한 구제안이라고 생각하는 피해자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는 피해자에게 위로가 아닌 2차 가해로 다가올 것이 자명하다.
궁리 끝에 나온 해당 구제안은 피해자에게 피해 회복을 약속하는 진심어린 행동이 아니다. 구치소에서 자신이 나오는 뉴스를 보고 '대(大)스타'로 자칭하고 우쭐댔던 자의식 과잉의 발로다. 전청조는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고 변제 방법마저 자신을 꾸미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지난달 30일 결심 공판에서 전청조는 징역 15년형을 구형받았다. 그녀는 최후변론에서 반성하고 있으며 법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에서 본 전청조는 법의 두려움을 알고 반성하는 죄인이 아니었다. 또한 자신이 부정한 '희대의 사기꾼', '괴물' 역시도 아니었다. 대신 최후까지도 '떳떳하지' 못한 비겁한 잡범(雜犯)이 그 자리에 있었다.
법은 죄를 뉘우치는 죄인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는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고에 대한 섣부른 가치판단 역시 원칙적으로 배격한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전청조에게 일갈할 수밖에 없던 것은 그녀가 수없이 내뱉은 '어록'의 공허함이 피해자들에게 상처로 남겨지는 것을 참지 못한 인간적 면모였다고 감히 짐작한다.
선고 이후에도 피해자들에게 남는 것은 없다. 그저 그들은 남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다만 전청조가 그간 세치 혀로 양산한 피해자들이 그녀의 어록을 잊을 정도로 충분한 시간이 보장될 수 있게 재판부가 충분한 고려를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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