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모순' SNS 타고 젊은 층에 입소문
IMF 시절 베스트셀러 다시 읽히는 건 아이러니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26년 전 출간된 소설이 신간들을 누르고 무서운 기세로 역주행하고 있다. 1998년 첫 출간된 양귀자 소설 '모순'(쓰다)이 젊은층들에게 다시 읽히면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모순'은 16일 교보문고가 발표한 2월 둘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지난주보다 4계단 상승해 종합 순위에서 9위를 차지했다. 소설 분야에선 2위이며 국내 소설만 놓고 보면 5주째 1위다.
[서울 = 뉴스핌] 장편소설 '모순' .[사진 = 쓰다 제공] 2024.02.23 oks34@newspim.com |
출판계에서는 이 소설의 역주행 현상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뚜렷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유튜브를 기반으로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가 '꼭 읽어야할 소설'로 추천하면서 입소문을 탔다는 분석이다. 특히 소설의 내용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 같아 공감하게 된다는 젊은 독자들의 평이 자주 눈에 띈다. 실제로 유튜브와 SNS에 친숙한 젊은 층의 구매 비중이 압도적이다. 30대가 32.8%로 가장 높고, 20대가 32.4%, 40대가 17.5%를 차지했다.
'모순'은 '원미동 사람들'의 작가 양귀자가 IMF 직후인 1998년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출간 직후 국가부도사태로 어려워진 사회 환경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했다. 지금까지 132쇄를 찍으면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지만 다시 국내 소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면서 역주행하고 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소설 '모순'의 주인공인 스물다섯 살 미혼여성 안진진은 모순투성이의 삶에 지쳐 있다. 시장에서 내복을 파는 억척스런 어머니, 어쩌다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 조폭의 보스가 인생의 꿈인 남동생을 가족으로 뒀다. 어머니와 일란성 쌍둥이인 이모는 부유하지만 지루한 삶에 지쳐 있고, 가난한 어머니는 처리해야 할 불행들이 많아 지루할 틈이 없다. 안진진은 사뭇 다른 어머니와 이모의 삶을 바라보며 모순투성이인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 고민의 편린들이 이 책의 기둥줄거리다.
[서울 = 뉴스핌] 소설가 양귀자. [사진 = 쓰다 제공] 2024.02.23 oks34@newspim.com |
'모순'의 힘은 입소문이다. 한 독자는 "20대였던 시절 읽었던 이 소설을 결혼을 하고 30대가 되어서도 가끔씩 꺼내 읽는다"면서 "다시 읽을 때마다 전에는 몰랐던 소설 속 행간의 의미를 깨우치거나 세월의 힘이 알려준 다른 해석에 놀란다"고 밝혔다. 또 열성 독자들이 소설 속 문장들을 기록하고 전달하면서 퍼나르기 때문에 SNS에 익숙한 20대~30대 독자들에게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양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라고 말한다.
문화평론가 주창윤(서울여대 교수)은 "IMF 사태 직후에 출간된 이 소설이 다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면서 "그 시절에 젊은 독자들이 느꼈던 인생의 모순을 당대를 살고 있는 젊은층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출판계와 문학시장의 침체로 많은 독자들이 주목할 만한 소설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반증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