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특별법, 특검법' 입법 논리로 지원금, 횡재세, 신용사면 등 처리 시사
정부·여당 즉각적인 재정 부담에 위헌법률심판, 거부권 밖에 '길' 없어
[서울=뉴스핌] 온종훈 정책전문기자 = 오는 30일 시작하는 22대 국회의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개원 초기 '처분적 법률'을 통해 민생회복지원금(재난지원금), 횡재세 등 한 해 수십조의 재정과 예산이 들어가는 정책들의 무더기 입법 추진을 하고 있다.
총선에서 제안한 공약인 전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13조원 추정), 금융·정유사업에 대한 횡재세 도입, 신용사면 등에 실제 추진 주체인 정부·여당이 난색을 표명하자 행정부를 건너뛰고 다소 생소한 '처분적 법률'이라는 입법 논리로 정책강행 의지를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문제는 헌법에도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처분적 법률'에 따른 재정사업 추진은 헌정 사상 초유인 데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최소 수년간의 정부의 지출은 즉각 강제되고 소요재원(세목 신설이나 예산편성)은 별개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재정시스템 전반의 혼선과 혼란이 불가피해져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위헌법률심판'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요청하거나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법안거부권을 행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정치적 현실이다.
실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지난달 19일 "국회가 해야 할 일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이 구분돼있다. 선거에 이겼다고 해서 오랫동안 (이어온) 국정운영의 기본적인 원칙이나 상식을 넘어서는 그런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위헌성이 있는 법은 헌재에 제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처분적 법률'은 행정부의 집행이나 사법부의 재판없이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권리나 의무를 발생시키는 법률을 뜻한다. 처분적 법률은 입법권 남용의 소지를 안고 있기에 공익적 가치가 큰 사안에 대해 우리 헌법에도 아주 예외적으로 도입됐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공소시효를 정지한 5·18특별법과 각종 특별검사법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왼쪽 두번째)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1기 원내대표 선출 당선자 총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05.03 leehs@newspim.com |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 8일 "행정부가 실질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집행을 해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는다면, 행정부가 못하는 부분을 입법부가 보완해야 되고 필요하다면 견제해야 하지 않나"라며 입법강행을 예고했다.
박 원내대표는 앞서 7일 한 인터뷰에서 전국민 대상 25만원 지원금에 대해 "(정부에서) 거부됐을 때 당 정책위원회 등에서 '처분적 법률' 효과를 통해서 법안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선출된 박 원내대표는 22대 국회 1호 입법으로 25만원의 지원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가 처음 이 용어를 꺼냈다. 이 대표는 총선 승리 후인 지난달 17일 열린 당 긴급경제상황점검회의에서 "신용사면 이런 건 정부가 안 하니, 입법으로 해도 될 것 같다"며 "이 정부는 완전히 마이동풍이고 앞으로도 그럴(야당과 협의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처분적 법률 형태를 통해서라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실질적 조치'를 하도록 방안을 찾아달라"고 당부하면서 시작됐다.
이 대표가 언급한 이후 당 정책위 등에서 구체적 방안 등을 검토하면서 확산됐고 최근 당내에서 치러지는 국회의장 선거전에서 감사원의 국회 이전 등까지 이 방식의 입법이 언급되는 등 민주당내 주요 논리로 자리잡고 있다.
국민의힘 등에서 '3권 분립', '입법 독재' 등의 즉각적인 반발이 있었지만 171석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의 의지만 있으면 이런 식의 정책 추진은 언제든 가능하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한 관계자는 9일 "'처분적 법률'이 헌재에서 논란이 된 것은 5.18 특별법에서 공소시효를 정지한 것에 대한 예외를 인정한 것이 유일하다"며 "민주당이 현재 방식으로 추진하면 위헌논란은 당연하고 재정·예산 법안에 적용되는 것으론 헌정사상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재정전문가인 김용화 순천향대 IT·금융학과 교수는 "국민이 힘들어하니까 도와주기 위한 정책을 만든다는 것은 좋은 취지"라면서도 "그러나 민주당이 주장하는 '처분적 법률'로 하는 것은 절차적으로나 가뜩이나 어려운 국가 재정을 생각한다면 굉징히 나쁜 일"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재정이 들어가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세목을 신설하든지 세율을 올리든지 해야한다"며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면 민생(국민)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세금부담으로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조세권은 전적으로 국회 권한이다. 그러나 어느 일방이 정하는 것은 아니고 합의와 절충이 선행되어야 한다" 며 "초유의 '처분적 법률'로 재정·예산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민주주의 본질에서도 벗어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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