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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 (상) '만능 재주꾼' 한병도, 정치할 수밖에 없던 비하인드 스토리

기사입력 : 2024년12월04일 09:00

최종수정 : 2024년12월04일 09:00

[서울=뉴스핌] 윤채영 기자 =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뉴스핌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입문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한 의원은 지난 3일 오후 유튜브 채널 '뉴스핌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스토리에서 축구를 잘하는 장난끼 많았던 학창 시절을 언급하며, 구체적으로 정치권에 뛰어들게 된 계기까지 털어놓았다.

한 의원은 올해 4월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전북 익산을로 당선되며 3선 중진 반열에 올랐다.

한 의원은 1967년 전라북도 익산 출생으로 이곳에서 대학교까지 졸업한 '토박이'다. 그는 북일초, 이리동중, 원광고를 나온 뒤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89~1990년 원광대 총학생회장을 지내면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활동을 하며 본격적인 '학생운동'을 계기로 정치권에 입문하게 됐다. 17대 총선에서 전북 익산 갑으로 처음 당선된 뒤 21대, 22대 총선에서 내리 익산 을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뉴스핌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한 모습. 2024.12.03 ycy1486@newspim.com

다음은 한 의원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윤채영 기자. 이하 윤) 한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 스토리 안녕하세요 정치부 윤채영입니다. 먼저 오늘 함께 진행을 맡아주실 최연혁 교수님 인사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인터뷰 주인공이시죠 전북 익산 을의 지역구를 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3선 국회의원 한병도 의원님 모셨습니다.

▲(한병도 의원. 이하 한) 어서 오십시오. 고맙습니다. 교수님

-(윤) 의원님 이름이 정말 정치하기에 진짜 적합한 이름이라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정치인은 이름도 특이해야 된다고. 의원님 이름 관련해서도 에피소드 이런 것들이 좀 많았을 것 같아요.

▲(한) 엄청나죠. 히트 쳤죠 이름. 처음 17대 때 2004년입니다. 출마를 했을 때 그때는 무명이었습니다. 갑자기 정치에 도전을 하니까 그런데 시골 가면 어르신들한테 안녕하세요 한병도입니다. 한병도입니다 하면 또 금방 며칠 지나면 잊어버리시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머리를 쓴 게 아 제가 술을 한 병도 못 마셔서 이름이 한병도입니다. 그런데 제가 술을 진짜로 못 마셔요. 실제로 이게 맞아떨어지는 거예요.

-(윤) 의원님의 가족 관계를 제가 좀 검색해봤는데 잘 안 나와 있더라고요. 가족 관계가 지금 현재 꾸리신 가정 말고 원래 부모와의 그런 가족 관계는 좀 어떻게 될까요?

▲(한) 이제 두 분 다 돌아가셨고요. 어머님은 최근에 이제 아버님은 중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교직에 계셨고 나중에 이제 교장 선생님으로 퇴임을 하셨고 저희 이제 어머님이 사실은 고생을 굉장히 많이 하셨어요. 그 아버님이 선생님 생활을 했지만 그 원불교 성직자이셔서 월급을 다 가져오지 못합니다. 어 그러니까 어머님이 그 생계를 또 막 꾸렸거든요. 그래서 저 어렸을 때 막 하숙도 하시고 막 농사일도 하시고 옷 가게도 하시고 아버님이 선생님이신데도 그 생계를 꾸리는 데 굉장히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어머님께서 그리고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의 어머님 아버님처럼 저희 부모님도 그랬죠.

-(윤) 지금 가족은 어떻게 되세요?

▲(한) 지금은 이제 아들 둘 와이프 그런데 와이프는 지금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요. 큰아이는 이제 대학교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졸업했는데 취업 준비생인데 요즘 취업하기가 너무 어려운가 봐요.
맞아요. 그래서 지금 계속 이력서를 넣고 있는 중이라고 들었고요. 그리고 둘째 막내 둘째 큰애하고 4살 차이 예 그렇습니다.

-(윤) 의원님은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서 쭉 사신 거죠?

▲(한) 완전 촌 사람이죠. 대표적인 촌 사람이죠. 가끔 제가 TV 토론 같은 데 나가면 평상시에는 별로 못 느끼겠는데 좀 흥분을 하거나 말이 빨라지면 여지없이 그 전라북도 사투리가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저는 그 동네에서 태어났고 초중고 대학교 전부 그 지역에서 나왔고 지금도 거기 살고 있고 정치 생활을 끝나더라도 다른 데 뭐 이동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저는 거기에서 살 생각이고요. 근데 서울에 있다가 내려가서 국회의원을 많이 하고 그러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왜냐하면 직장생활도 저 처음에는 대학에 근무했어요. 그 지역에 원광대학교 원광보건대학교가 있는데 대학에 직원으로 들어가서 좀 잠깐 한 1년 몇 개월 근무했어요. 근무하다가 이제 유혹 제가 대학생활을 학생회 학생운동하다 보니까 주변에 이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제한들이 굉장히 많이 했고 모임도 하다 보니까 대학 근무하다가 이제 확 변화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아무튼 그냥 직장 생활까지 그 대학에서 했으니까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어.

-(윤) 그리고 의원님께서는 좀 어릴 때는 학창시절에 어떤 아이였어요?

▲(한) 어땠을 것 같아요.

-(윤) 축구 좋아하고

▲(한) 예 맞아요.

-(윤) 장난기 많았던 아이였을 것 같아요

▲(한) 맞아요. 저는 뭐 공부를 잘하고 그러지 못했어요. 스포츠 같은 걸 아주 좋아했고요. 아버님이 제가 아주 초등학교 때부터 이 운동만 시키셨어요. 그래서 제 기억은 어렸을 때부터 막 태권도 도장 합기도도장 아버님 저뿐만이 아니고 다른 형제들도 운동을 시켰지 공부를 시키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뭐 운동은 다 한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는 뭐 철봉 평행봉 이런 거 좋아하고 중고등학교 때도 계속 연극하고 중고등학교 때 그래서 대학도 연극영화학과 가려고 했거든요. 중학교 고등학교 계속 연극을 했으니까 어릴 때부터 그러니까 막 아주 운동 좋아하고 그런 연극 같은 거 하기 좋아하고 아주 활동적이었고요. 그리고 안 믿으시겠지만 고등학교 때는 춤도 아주 좋아하고 잘 추고 그런 아주 활발한 학생이었어요. 그리고 또 상대적으로 공부를 잘하고 그런 학생은 아니었고요. 그런데 이제 대학교 가서 제 인생이 그냥 완전 180도 달라진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그러고 보니깐 이을용 선수하고 이천수 선수 이렇게 그런 모습들이 보이네요. 축구 선수 하셨으면 참 잘하셨을 것 같습니다.

▲(한) 지금도 축구를 너무 좋아해요. 잘하지는 못하는데 아무튼 너무 뛰어다니는 걸 좋아하고요.
지금도 그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운동을 계속 좋아하니까 그래서 살도 안 찌고 그런 요인이 있는 것 같아요.

-(윤) 그러면 어렸을 때 그 예체능 쪽에 끼가 많으셨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꿈도 약간 축구 선수라든지 이런 쪽으로 장래 희망을 갖고 계셨던 거예요?

▲(한) 아버님이 운동을 저보고 아주 잘한다고 그런 것도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씀을 아버님은 하셨었어요. 그런데 이제 중고등학교 때 연극을 해가지고 초창기에는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었어요.근데 이제 지방에는 연극영화과가 없으니까 그럼 서울로 왔어야 되잖아요. 근데 이제 서울로 오면 저희 그때 아버님이 학생운동을 할까 봐 걱정을 굉장히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이 반경 안에 있어야 되는데 더 벗어나면, 그때 저희 그 시절에 6월 항쟁 있고 그랬던 학생운동이 가장 열렬히 일어났던 그런 시기였거든요. 민주화운동이 그러니까 이제 좀 불안하셨는 좀 하셨어요. 신문방송학과를 갔는데 그것도 신문방송학과는 좀 저하고 좀 맞는다고 생각을 했어요. 아 그리고 기자 같은 거 하면 내가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전혀 전공하고는 관련 없이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수배당하고 막 도망다니고 그런 생각을 많이 해서 전공하고는 뭐 관련이 없는 대학생활을 보낸 것 같아요.

-(윤) 그 당시만 해도 그래도 기자라는 꿈 그런 것도 좀 갖고 계셔서 그 학과를 지원하셨던 거네요

▲(한) 처음에는 연극영화과를 생각을 했고 그다음에 신문방송학과를 생각을 했는데 두 번째는 신문방송학과를 간 거죠. 그리고 그때는 기자가 정말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좀 성격이 활달해서 그런 생각을 그냥 젊었을 때 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윤) 근데 대학 가시고 나서 6월 항쟁 때 부모님이 한 활동으로 인해서 또 투옥까지 하신 거잖아요.

▲(한) 저는 막 운동하고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학생 운동이나 이런 거는 굉장히 거리가 멀었고 저희 아버님께서도 제가 오죽하면 대학교 가면 학생운동하고 서울 가서 그러면 그게 걱정이 돼서 주변에 두고 싶어 하는 그런 게 있었었잖아요. 그만큼 이제 고생도 많이 하고 좀 어려운 시기였죠. 저도 그 아버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처음에 대학교 갔을 때는요. 정말 최루탄 냄새나면 대학생들 엄청 놀랬어요. 그리고 제 기억에 단과대학 이렇게 올라가면 그 로비에 광주항쟁 관련된 비디오를 틀어줬는데 저는 그걸 막 욕했습니다. 저게 저거 사실도 아니고 저거 조작해서 괜히 이렇게 학생들 데모하게 만들려고 운동권들이 한 거다라는 생각을 해서 그것도 굉장히 뭐라고 했어요 반대했고 그때 1학년 초기에 그랬는데 가을쯤 돼서는 이제 그거에 대한 의심을 품은 거죠. 정말 대통령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 우리 국민을 총으로 쏴죽인게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게 정말 저게 조작되지 않았다면 저게 사실인가 그런 의문을 가졌던 거 1학년 가을 그 학기쯤 그래서 막 주변 이야기를 듣고 그걸 보면서 아 이게 사실이라는 걸 알고 학생 생활이 바뀌어진 거죠. 1학년은 아마 겨울 때부터 경찰들도 저 잡는다고 해서 이제 학생운동에 뛰어드니까 1학년 때부터 도망다녔던 것 같아요.

-(윤) 그 당시에 어떤 단체 가입이라든지 그런 활동이 (있었나요?)

▲(한) 풍물패, 대학에 이런 서클 같은 거 있었는데 거기에 활동을 했고 제가 연극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학생관 앞에서 각설이 그 시사 풍자하는 각설이를 했는데 지금도 사진을 보면 제가 그 각설이복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고 계단에 학생들이 정말 꽉 찼었어요. 그 앞에서 제가 각설이 공연을 했는데 현 정부를 비판하는 거죠. 각설이 공연을 통해서 그거 하고 아마 경찰이 잡으려고 했던 것 같고 그래서 학생운동 시작을 하고 이제 4학년 때 학생회장 하고 그때 학생회장 하면서 이제 투옥이 됐습니다. 학생회장 4학년 때.

-(윤) 학생회장 하다가 어떤 계기로 (투옥이 됐나요?)

▲(한) 그때는 이제 그 집회를 전부 학생회장 앞에서 주도를 하니까 대부분 다 경찰에서 수배를 하죠. 수배를 하는데 그때는 이제 대학 간의 연합 연대 집회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전북대학교가 집회가 있어서 갔는데 그때는 이제 학생회장을 잡으려고 하니까 막 위장하고 몰래몰래 다니고 저를 못 잡아가게 하려고 학생 몇 명이 주변을 따라다니고 막 그랬거든요. 익산을 빠져나와서 전주로 가려고 하는데 그걸로 다 추적을 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버스가 딱 갔는데 그 검문소에서 딱 서더니 밖에를 이렇게 보니까 경찰 정경들이 차를 다 둘러싼 거예요. 그래서 야 내려다 이거 어떡하지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앞에서 이제 경찰들이 올라오니까 두세 명이 저항을 했는데 아무 의미가 없죠. 바로 제압당하고 그냥 덜덜덜 끌려가서 그래서 바로 바로 그냥 구속됐습니다.

-(윤) 그렇게 했을 때 너무 힘드셨을 것 같은데.

▲(한) 그때는 힘든 줄 몰랐어요. 그때는 왜 그러냐면 확실한 신념이 있어서 이게 하는 게 옳다라는 사람의 사고가 어떤 믿음 신념이 있으면 경찰에 잡히고 그런 것에 대한 공포 그런 게 덜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뭐 경찰이든 검찰이든 재판을 받는 과정에 내 생각을 똑바로 다 이야기하고 내가 왜 이 행위를 했는지 그걸 확실히 이야기하고 그래서 검찰이나 뭐 여기 가서도 오히려 막 소리지르고 막 그때는 그랬어요.

-(최) 학생운동에 몸담고 나서 부모님은 어떠셨습니까?
좀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한) 너무 제일 힘드셨죠.

-(최) 특히 아버님께서는 또 공직에 계셨고

▲(한) 예. 아버님은 교수 계셨고 원강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셨거든요. 이게 우리 대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하나의 재단이에요. 근데 그 재단에 제가 학교를 다니는데 아버님 입장에서 이건 내 학교인데 우리 재단인데 정치하는 문제가 아니고 그때 제가 4학년 때 제 기억으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전국에서 등록금을 반환하라는 학생 시위가 처음으로 일어난 전국 대학에서 다 일어났어요. 근데 너무 우리 학교에서 심하게 하고 대한민국 최초로 등록금을 학교에서 반환하는 받았어요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그게 대학 첫 번째 사례였거든요.
그래서 그때 당시 언론에서 많이 나왔었어요. 그러니까 아버님께서는 더 힘드신 거예요. 너 왜 우리 학교에 와서 그러냐? 그냥 정치투쟁에서도 접혀 가든지 그렇지 학교 문제로 이렇게 하는 건 하지 마라라고 하고 아버님이 굉장히 힘들어하시는 고모님도 원불교 성직자 종교 성직자이셨는데 집회하면 막 뒤에서 저 이렇게 쳐다보고 계시고 막 잡으러 오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윤) 그렇게 하시다가 이제 나오셔서 대학교에서 교직원, 직원으로 이제 근무를 하시다가 그러다가 어떻게 또 정치권으로 연결이 (되었나요?)

▲(한) 그 대학교 군대 갔다 와서도 그렇고 저희들은 모임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때 임종석 정무수석할 때 비서실장이 했던 임종석 당시 한양대 학생회장인데 거기가 이제 3기 모임을 했는데 전대요 우리 학생회 모임을 계속했어요. 그래서 전국 학생회장 출신들이 모임을 계속 함께 해서

-(최) 그게 광홍창 모임인가요?

▲(한) 아니요. 전혀 다르죠. 그건 대학 졸업하고 그때 이제 저희 학생운동 갈등이었던 게 임종석 우상호 이인영 이에 같이 친했던 형들 모임을 계속 함께 했었거든요. 특히 이제 임종석 실장하고는 그 뒤에 모임을 계속 하기 때문에 대학교에서 직원을 하고 있으면서도 어떤 모이면 저희들은 항상 주로 정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죠. 현 시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런 와중에 이제 선후배들이 너는 익산에서는 자기들이 봤을 때는 기반도 탄탄하고 한번 시도해보면 가능성이 있지 않냐는 제안을 여러 명이 했었었습니다. 그런데 초기에는 좀 제가 스스로 너무 벅차다고 생각을 했는데 대학 근무 한 1년 6개월 정도 있다가 학교 사표 내고 정치를 하겠다고 결단을 한 거예요. 그 주변에서 좀 많이 말렸습니다. 그 지역에서는 그 대학에 다니는 게 제일 좋은 직장이거든요.

-(윤) 힘든 일을 하려고 하니까

▲(한) 그냥 직장생활 꾸준히 하면 혜택도 좋고 좋은 직장이니까 다니라고 했는데 그걸 사표를 내고 일선에 뛰어들었죠. 그래서 포럼도 만들고 경선에 바로 참여하고 경선에 참여하면서 첫 번에 바로 이

-(윤) 그러면 임종석 전 실장님이 계셨던 그 모임에서 이제 의원님한테 정치권에 들어오는 게 좋겠다라고 (권유를 했던 거고)

▲(한) 네 많이 했죠. 그 모임들

-(윤) 그렇죠 그 모임에서 그 시작이 그럼 임종석 전 실장님하고는 전대협 3기 때 활동 같이 했던 게 인연이 됐던 거죠.

▲(한) 대학 때부터 친구

-(윤) 그때 의원님은 뭘 맡으셨던 거예요?

▲(한) 저는 이제 제 원광대학교 학생회장, 전북의 어떤 통일 운동하는 회장 그래서 함께 했었죠. 임종석 실장하고 같이

-(윤) 그렇게 해서 정치에 뛰어들게 되셨군요. 네.

<하편에서 계속>

ycy1486@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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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협상 쟁점…쌀·쇠고기·구글지도 [세종=뉴스핌] 최영수 선임기자 = 한미 관세협상이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오는 8일 1일까지 관세 유예기한이 연장되면서 일단 3주간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쟁점이 여전히 남아 있어 앞으로의 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수차례 협상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은 결국 '비관세장벽' 때문이다. 특히 한국 측이 민감분야로 설정하고 있는 ▲쌀 시장 개방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허용 ▲구글 정밀지도 반출 허용 등 3가지 쟁점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제조업 협력' 카드 제시했지만…美, 농축산물 개방까지 요구 미국 정부는 오는 8월 1일부터 한국에 대한 품목관세(25%)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8일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오전 1시 20분(한국시간)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을 통해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 및 발효일자 등이 포함된 서한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2일 발표한 국가별 관세와 같은 수준이다. 협상 시한이 3주간 연장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한국 정부는 앞서 미국 측에 '제조업 협력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미국 측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이 농축산물 등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제조업 협력' 카드만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결국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짧은 시간동안 국익 최우선 원칙을 갖고 치열하게 협상에 임했으나 현실적으로 모든 이슈들에 대해 합의 도출까지 시간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 자동차·철강 품목관세 인하 vs 농·축산물 개방 '저울질' 한미 간 몇 차례 협상에도 진통을 겪고 있는 이유는 결국 미국 정부가 농축산물 시장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국의 정밀지도를 구글에 허용해 달라는 요구 역시 한국 정부로서는 민감한 쟁점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한국 정부의 목표는 이 같은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자동차·철강 품목관세를 경쟁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인하하는 것이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6일 협상 결과에 대해 "자동차와 철강 등 품목관세 철폐 또는 완화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USTR 대표가 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관세협상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2025.07.06 dream@newspim.com 문제는 농업계와 소관부처(농림축산식품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다. 과거 정부도 쌀 시장 개방과 쇠고기 수입을 검토했다가 강한 저항에 부딪혀 보류한 바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품목관세를 완전히 철폐하는 조건이라면 농축산물 시장을 개방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산업부는 8일 미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 "미국 측의 주된 관심사인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국내 제도 개선, 규제 합리화 등과 함께, 양국 간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통해 핵심산업 도약의 기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측의 요구대로 자동차, 철강 등 품목관세를 원하는 수준으로 인하(철폐)될 경우, 미국 측이 요구하고 있는 비관세장벽 개선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결국 품목관세 철폐와 비관세장벽 개선 두 가지 요소를 놓고 얼마나 균형적이고 합리적이 수준으로 타결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가 '상호호혜적이고 균형적인 협상'을 기본 원칙으로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업부는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남은 기간 동안 상호 호혜적인 협상결과 도출을 위해 협상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ream@newspim.com 2025-07-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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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살' 슈퍼주니어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슈퍼주니어(SUPER JUNIOR,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소속)가 8일 정규 12집 'Super Junior25'(슈퍼주니어 이오)로 컴백했다. 이번 앨범은 슈퍼주니어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이다. 총 9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타이틀 곡은 'Express Mode'(익스프레스 모드)다. 'Express Mode'는 댄서블한 사운드와 중독적인 후렴구가 특징인 업템포 클럽 팝 곡으로, 가사에는 현재에 멈추지 않고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패기 넘치는 태도를 담았다. 어느덧 20년이 된 슈퍼주니어가 컴백을 기념하여 일문일답을 진행했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1. 드디어 정규 12집,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이 발매되는 소감은?- 이특: 슈퍼주니어가 20년을 함께했다. 저 역시 너무나 놀라운 시간이었는데, 이번 앨범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욱 놀라운 시간을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 시원: 믿기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값진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함께해 준 멤버들, 스태프들, 그리고 무엇보다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팬분들 덕분에 이 앨범이 더욱 의미 있게 완성될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하다. 2. 앨범명도 특별하다. 'Super Junior05'에서 'Super Junior25'가 됐는데, 슈퍼주니어에게 있어 가장 많이 바뀐 것과 그래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희철: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저의 외모.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다이어트도 하고 식단도 했는데…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이특, 은혁의 동안력과 몸무게. 둘을 보며 좋은 자극을 많이 받는다.- 예성: 정신 연령? ㅎㅎ 우리는 아직 20대 같다.- 려욱: 멤버들의 입담과 '티키타카'는 변함없는 것 같다. 대본 없이 우리끼리 카메라 하나 두고도 콘텐츠 백만 개는 나올 것 같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3. '히트곡 부자'로 유명한 만큼 타이틀 곡을 정하면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 'Express Mode'가 선정된 이유가 있다면?- 예성: 다른 좋은 곡들도 많았지만 이 노래가 가장 '타이틀 곡' 같다고 느껴졌다.- 신동: 저희는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하지 않나, 이번에도 고민 진짜 많이 했다. 그런데 'Express Mode'를 듣자마자 다들 "이거다!" 싶었다. 슈퍼주니어다운 에너지와 재치, 그리고 요즘 감성까지 딱 잘 버무려진 곡이라, 들으면 그냥 바로 타이틀! 하는 느낌이다.- 은혁: 20주년이라는 숫자와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한발 한발 더 나아가겠다는 의미도 있고, 음악과 퍼포먼스도 우리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려욱: 데모 들을 때만 해도 'Haircut'에 한 표를 던졌던 나였지만, 녹음을 하고 보니 'Express Mode'가 우리의 에너지를 잘 담고 있었고 퍼포먼스까지 멋지게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돼서 인정하게 됐다. 4. 최근 일상에서 나를 제일 'Express Mode'로 설레게 혹은 달리게 만드는 것은?- 희철: 반려견 기복이 산책.(웃음) 기복이 활동량이 상당해서 하루에 몇 번씩 산책을 하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기복이가 저를 미친 듯이 달리게 만든다.- 예성: E.L.F.들과 어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Express Mode'로 달리게 만든다. 우리 더 가까워지자!- 려욱: 노래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E.L.F.들에게 멋진 노래를 들려주고 싶고, 하루빨리 콘서트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다.- 규현: 퇴근 후 접속하는 '33 원정대'.(웃음) 오랜만에 빠지게 된 게임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5. 타이틀 곡 'Express Mode' 퍼포먼스, 준비하면서 어렵지는 않았는지?- 예성: 디스크 때문에 조금 고생했지만 안무가 좋아서 더 열심히 했다.- 신동: 솔직히… 좀 힘들었다. 하하! 퍼포먼스가 진짜 'Express Mode'로 달려야 해서, 예전처럼 체력으로만 밀어붙이긴 어렵더라. 대신 디테일한 표현, 팀워크를 더 살리려고 노력했다. 근데 또 무대 올라가면 신기하게 힘이 난다. E.L.F. 앞이라 그런가 보다.- 은혁: 멤버들 모두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잘 준비했다. 그래서 그런지 전혀 어렵지 않았다.(웃음) 6. 앨범 콘셉트인 'SUPER AWARDS'처럼 서로에게 주고 싶은 상 이름을 직접 정해본다면?- 신동: 은혁이한테 '몸이 한 개로 부족했상'을 주고 싶다. 안무 짜랴, 디렉팅 보랴, 촬영 챙기랴… 진짜 슈퍼 히어로다. 그리고 희철이 형한테는 '말은 많았지만 행동도 많았상', 은근히 뒤에서 멤버들 챙기고 조용히 마음 써준 거 다 알고 있다. 나머지 멤버들에겐? '아직도 이렇게 잘생겼상' 드린다. 왜냐면… 정말 아직도 잘생겼으니까.(웃음)- 려욱: '너네가 짱이야 상' 7. 지난 20주년을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지?- 시원: 나이가 드는지 데뷔 무대가 갑자기 기억이 난다.- 려욱: 데뷔했던 순간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를 떠다니듯 춤추고 노래했던 기억이 난다. 꺼진 마이크에 크게 목놓아 부른 'Twins'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규현: 'SUPER SHOW' 투어를 다닐 때인 것 같다. 어느새 너무 오랜 시간 공연을 해와서 기억도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역시 남는 건 벅차게 느꼈던 공연 순간의 감동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8. 슈퍼주니어하면 콘서트도 빼놓을 수 없는데, 'SUPER SHOW 10' 투어가 곧 시작된다. 200회 공연도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새롭게 세워보고 싶은 기록이 있다면?- 이특: 숫자에 대한 기록이라면 300회, 400회, 계속해서 새로운 숫자를 써 나가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렀을 때 'SUPER SHOW'가 더욱 다양한 콘텐츠로 새롭게 재탄생하기를 바라본다.- 예성: 기록에 대해선 큰 생각은 없지만 하다 보니 200회 공연이 되다니 신기하다. 벌써 우리가 이렇게 오래 공연을 하고 있다니!- 려욱: 300회까지 가면 좋을 것 같다. 슈퍼주니어 멤버들과 관객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쌓일수록 그 횟수가 어떻든 행복할 것 같다.- 규현: 가보지 못했던 곳들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에 E.L.F.가 살게 되는 기록도 꿈꿔본다! 9. 슈퍼주니어에게 붙는 수식어가 많은데,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앞으로 어떤 수식어를 더 만들어가고 싶은지?- 은혁: 너무 거창한 수식어들은 솔직히 좀 민망하고 쑥스러운 것 같다. 그냥… '수식어가 필요 없는 그룹' 슈퍼주니어라는 표현이 가장 좋지 않을까?- 려욱: '한류 광개토대왕'이 제일 좋다. 어렸을 때 광개토대왕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내 마음에 콕 박힌다. 10. 이번 앨범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희철: 이제 우리가 무슨 바라는 목표가 있겠나… 무탈히 즐겁게 활동 잘 마치길 바란다. 사랑한다 멤버들아!! 건강하자!!- 예성: 활동 끝까지 무사히 잘 해내고 싶다. 즐겁고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시원: 이번 앨범은 단순한 앨범이 아니라, 저희가 걸어온 20년의 시간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 여정이 누군가에겐 시작점의 작은 용기나 희망이 되고, 후배들에게는 '이렇게 꾸준히, 진심으로 해 나가면 가능하구나'라는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 11. 20년 동안 슈퍼주니어를 지켜준 E.L.F.에게 한 마디- 이특: 한결같이 우리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E.L.F.! 이제는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늘 고맙고 사랑한다!- 동해: E.L.F.가 없었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하늘에 햇빛이 없고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듯이, 우리는 E.L.F.라는 존재가 없으면 내일 당장 시들어 버릴 거다. E.L.F.에게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진심으로 사랑해!- 려욱: 우리와 함께해 준 영원한 친구 E.L.F.들 정말 고마워. 함께 울고 웃던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내 인생에 큰 선물이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 20주년 너무 감사하고 우리 앞으로 함께하자. 사랑해. 슈퍼주니어는 8월부터 데뷔 20주년 기념 투어 'SUPER SHOW 10'(슈퍼쇼 10)에 돌입한다. 투어의 막을 올리는 서울 공연은 8월 22~24일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개최된다. 또한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9월 홍콩, 자카르타, 10월 마닐라, 멕시코시티, 몬테레이, 리마, 산티아고, 11월 타이베이, 방콕, 12월 나고야, 2026년 1월 싱가포르, 마카오, 쿠알라룸푸르, 가오슝, 3월 사이타마까지 슈퍼주니어는 전 세계 16개 지역에서 투어를 이어가며 '레전드 공연킹'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20주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할 전망이다. oks34@newspim.com 2025-07-0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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