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회·여론의 삼각파도에 침몰한 체육회·축협·배드민턴연맹
강압과 비방, 편 가르기, 법정다툼만 반복되는 아사리판으로 변질
자율과 시장은 실종…민주와 법치가 수단이 아닌 목표가 된 때문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체육계도 난장판이다. 어수선하기가 현 시국과 판박이다. 공정과 정의, 민주화와 법치란 이름 아래 강압과 비방, 편 가르기, 법정다툼이 난무한다. 언론도 줄을 섰다. 팩트를 따지고 진실을 찾기보다 여론에 편승해 스스로 심판을 내린다. 이런 게 시대의 흐름이라면 기자는 동참할 마음이 전혀 없다. 예전엔 그렇게 배웠다.
최근 들어 대한체육회, 축구협회, 배드민턴연맹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여론의 거센 공격을 받았다. 이기흥 체육회장, 정몽규 축구협회장, 김택규 배드민턴연맹 회장은 온갖 치부가 다 까발려졌고, 주적으로 몰렸다. 그럼에도 이들은 꿋꿋하게 차기 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낼 대단한 '멘털'의 소유자들이다.
[서울=뉴스핌] 이호형 기자 = 3선 연임 도전하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입후보 기자회견 중 물을 마시고 있다. 2024.12.23 leemario@newspim.com |
국회 국정감사에서 감사가 아닌 망신을 당했던 이들은 사법 처리를 받게 될 지도 모른다. 문체부가 해임(김택규) 또는 징계(정몽규)를 요구하고, 직무정지(이기흥)를 발동하면서 늘어놓은 이들의 '죄목'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사안이 꽤 들어 있다.
그럼에도 이들 중 최소 2명은 이달 열리는 선거에 출마할 자격을 갖췄다. 3선 이상에 도전하는 이기흥, 정몽규 회장은 스포츠 공정위원회의 후보 자격 심사를 통과했다. 연임을 노리는 김택규 회장은 공정위 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지만 자체 선거운영위로부터 입후보 불허 조치를 받자 곧 바로 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들의 주장은 심플하다. 문체부가 상급기관으로서 '지나친 감독권'을 행사한다면 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독이 바짝 오른 모습이다. 예상대로 모두 기각되긴 했지만 축구협회가 문체부의 감사 결과에 줄줄이 이의 신청을 한 것은 다음 스텝을 밟기 위한 전 단계로 보면 맞다. 직무정지 중인 이기흥 회장이 스포츠 공정위에 심사를 넣고, 김택규 회장이 법원의 최종 판단을 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해 9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택규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 2024.09.24 leehs@newspim.com |
'원죄'를 따져보면 세 회장들은 유사하면서도 차이점이 있다. 이에 맞춰 문체부와 여야 국회의원들의 반응도 온도차가 보인다.
체육계의 숨은 흐름을 따라가 보면, 이기흥 회장은 이제 그만 하고 나가달라는 누군가의 메시지를 씹은 죄가 크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난해 여름 파리 올림픽에서 거둔 대단한 성과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체육계를 체육인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강변하며 이 회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은 일견 옳은 말이기도 하지만, '적의 적은 내 편'이란 정치 논리가 들어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정몽규 회장은 한국 축구가 올림픽 10회 연속 진출에 실패했고, 아시아 최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여론 재판을 받는 중이다. 여기에 승부의 이변 따위는 없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과 황선홍 임시 감독은 그래서 잘렸다. 이 참에 홍명보 현 감독의 반대파와 집행부를 노리는 세력이 힘을 모았다. 정 회장은 같은 재벌가인 정의선 양궁연맹 회장이 6선을 노리고 있고, 최태원 전 핸드볼협회장은 5선을 했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불만을 가질 법도 하다. 축구는 양궁 핸드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인기 스포츠이고, 회장으로서 협찬금도 꽤 냈다. 이 때문이지 문체부도 축구협회의 자체 징계만 요구했지, 직무정지나 수사의뢰 같은 다음 단계는 밟지 않고 있다. 그래도 여론은 아직 정 회장을 용서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김택규 회장은 파리 올림픽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의 한 마디에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다. 광장의 도마에 오를 레벨도 아니지만 국민적 공분이 몰리자 그 누구보다 심한 마녀사냥을 당했다. 문체부가 다른 단체와는 달리 연맹의 시행규칙 하나하나까지 정해서 따르도록 한 것은 과도하기까지 하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최현준 문화체육관광부 감사관이 지난해 11월 5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한축구협회 특정감사 최종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문체부는 정몽규 회장 등 관련자에게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 부적정 등 기관 운영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2024.11.05 yooksa@newspim.com |
수장들이 수세에 몰리자 차기 회장 선거를 앞두고 세 단체는 순식간에 아사리판이 됐다. 경쟁 후보들은 집행부 불신임과 선거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또 이에 대한 맞대응이 난무하고 있다.
축구협회장 선거는 허정무 후보가 낸 가처분 신청이 인용됐고, 선거운영위원이 전원 사퇴하면서 파행으로 치달았다. 체육회장 선거는 투표를 하루 앞둔 13일 강신욱 후보 등이 낸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지만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잡음이 예상된다. 배드민턴연맹도 마찬가지다. 당선인이 향후 사법 처리되면 재선거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체육계는 이제 자율과 시장의 순기능은 실종된 지 오래다. 지난 칼럼(8월 16일자 스포츠 인앤아웃 '스포츠산업 관점에서 본 안세영 7문7답')에서 지적한 대로 한국 체육계의 미래는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암울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게 다 민주와 법치가 수단이 아닌 최종 목표가 된 때문이라고 하면 과문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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