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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재용 회장, 사실상 제2프랑크푸르트 선언

기사입력 : 2025년03월18일 14:29

최종수정 : 2025년03월18일 15:05

위기 타개 위해 "첫째도 둘째도 기술" 강조
"국적·성별 가리지 말고 인재영입"...수시 인사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 선대 회장 연상
컨트롤타워 부활 등 대대적 경영 개편 예고

[서울=뉴스핌] 서영욱 김아영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 임원들에게 통렬한 비판과 함께 '사즉생'(死卽生·죽기로 마음먹으면 산다는 뜻)의 각오를 요구했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이례적인 강도 높은 발언은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연상케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18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은 임원들을 대상으로 "21세기를 주도했던 글로벌 30대 기업 중 24곳이 무대에서 사라졌다"며 "삼성도 예외일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 회장은 "국가총력전의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라며 우리 경제와 산업을 선도해야 할 삼성전자는 과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를 되물었다.

이 회장의 이 같은 메시지는 지난달 말부터 삼성이 계열사 전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 세미나에서 영상을 통해 전달됐다. 이 영상은 당초 이 회장이 올 신년 사장단 회의에서 함께 시청한 자료다. 3분여 분량으로 이 회장이 직접 출연하거나 녹음된 목소리는 나오지는 않는다. 자막이나 내레이션으로 이 회장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식이다. 이 영상이 임원 대상 교육에 쓰이면서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삼성은 최근 반도체, TV, 스마트폰 등 주요 사업 부문에서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며 경쟁력 약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회장은 각 사업부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짚으며 위기 극복을 위한 혁신을 주문했다. 그는 "메모리 사업부는 AI 시대 대응이 늦었다", "파운드리 사업부는 기술력 부족으로 가동률이 저조하다", "DX 부문은 제품 품질이 걸맞지 않다"고 질책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뉴스핌DB]

◆이재용 회장, 위기 타개 위해 '우수인재' 강조…수시인사 예고까지

삼성전자가 공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산업별 점유율 하락이 두드러진다. TV 부문은 2023년 30.1%에서 2024년 28.3%로 줄었고, D램은 2022년 43.1%에서 2024년 41.3%로 감소했다. 스마트폰 패널 역시 2023년 50.1%에서 2024년 41.3%로 밀려났다. 이는 글로벌 경쟁 심화와 기술 격차 축소에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이 회장은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으로 경영진의 철저한 반성과 과감한 변화를 요구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니라 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라며 "위기의 순간일수록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혁신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과 인재 영입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며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특급 인재를 모셔 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성과는 보상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신상필벌 원칙을 철저히 적용하라"며 수시 인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4일 최원준 MX(모바일)사업부 개발실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정기 인사 시즌이 아님에도 사장 인사가 나자 업계 안팎에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이 회장이 성과에 대한 확실한 보상을 언급한 만큼 향후 수시 인사가 더 잦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내부에서는 처음 진행하는 수시인사를 두고 낯설다는 반응도 있지만, 성과에 대한 사기 진작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삼성이 우수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이 회장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한 부분이다.

삼성은 매년 상·하반기 한 차례씩 정기 공채를 진행하며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공채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대다수 기업이 수시 채용 전략을 펼치는 것과 비교되는 행보다.

삼성은 올해부터 R&D 역량을 갖춘 외국인 인재를 더 많은 계열사에서 확보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세 곳에서만 채용을 진행했지만 올해부터는 삼성전기,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으로 확대된다.

채용 문턱도 낮췄다. 기존에는 학사 학위 취득 후 2년 이상 유관 경력 보유자가 대상이었지만, 석·박사 기간도 2년 경력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삼성은 우수한 인재 영입을 통해 여러 위기를 넘은 전례가 있다"며 "이재용 회장도 선대 회장부터 이어져 온 '인재제일' 경영 철학을 발판으로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했다. [사진=삼성전자]

◆조용한 경영 깼다…'프랑크푸르트 선언' 연상 

이 같은 메시지는 1993년 이건희 선대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연상시킨다. 당시 이 선대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강한 경영 쇄신 의지를 밝히며, 삼성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품질 경영을 바탕으로 삼성전자의 매출은 1993년 9조9000억 원에서 2013년 228조7000억 원으로 23배 이상 성장했다.

'애니콜 화형식' 사례도 삼성 쇄신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삼성은 1988년 국내 최초로 개발한 휴대전화를 선보였지만, 일본의 모토로라가 경쟁력이 앞서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삼성은 휴대전화 생산량을 늘려 모토로라를 따라잡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하지만 생산량 확대에 집중한 나머지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불량률은 한 대 11.8%까지 치솟았다. 이에 격노한 이건희 선대회장은 1995년 휴대전화 등 15만대를 삼성전자 경북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불태웠다. 이날 잿더미로 변한 휴대전화는 총 500억원 상당으로, 회사 전체 이익의 5% 수준이었다.

삼성전자는 이 결단을 계기로 1999년 세계 최초 TV폰 출시, 2006년 1000만 화소 카메라폰 출시를 했으며 현재 갤럭시 신화까지 이어졌다. 이에 이재용 회장의 강도 높은 쇄신 요구 역시 삼성의 변화를 이끌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삼성의 혁신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 컨트롤타워 부활하나

이번 이 회장의 발언 역시 대대적인 경영 개편을 예고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삼성 내부에서는 그룹의 컨트롤타워 복원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 삼성은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 등 주요 의사결정 기구를 운영하며 위기 대응력을 강화했지만,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이후 이러한 컨트롤타워를 폐지했다.

현재 삼성은 주요 사업 부문별 협의체를 운영하며 개별 사업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쟁 격화 속에서 보다 전략적인 의사결정 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업계 관계자는 "컨트롤타워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며 "빠른 투자 판단과 미래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서는 보다 유기적인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삼성은 지난해 말 정기 인사에서 위기 돌파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바 있다. 삼성글로벌리서치 산하에 경영진단실을 신설하고 최윤호 사장을 실장으로 배치했다.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직속으로 품질혁신위원회를 신설하는 한편 신사업 태스크포스(TF)를 신사업팀으로 상설화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위기 대응이 삼성의 향후 10년을 좌우할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은 HBM(고대역폭 메모리)과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 분야에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바이오, AI, 전장(電裝) 분야에서도 신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 회장의 강도 높은 위기 경영 메시지가 실제 조직 개편과 경영진 교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삼성 내부에서도 위기감을 바탕으로 조직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한 임원은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삼성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며 "이 회장의 메시지를 계기로 모든 임직원이 위기의식을 갖고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뉴스핌DB]

◆'사즉생' 각오에 시장 반응은 긍정적

이 회장의 혁신 요구 이후 삼성전자는 주가부터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회장의 쇄신 요구가 알려진 지난 17일 삼성전자의 주가는 5.3% 오른 5만76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 주가가 하루 만에 5% 이상 오른 것은 지난해 11월 18일 이후 약 4개월 만이다. 이날 역시 삼성전자 주가는 장 초반 2.43% 오르며 5만90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의 이탈도 회복세를 보였다. 전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순매수한 1위 종목은 삼성전자(4950억원)였다. 기관 역시 삼성전자(2290억원)를 가장 많이 순매수했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이 직접 나선 것은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이 회장이 삼성 위기를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 그만큼 위기 수준이 심각하다는 뜻으로, 선대 회장의 쇄신 요구 때마다 삼성이 혁신으로 다시 일어선 것처럼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syu@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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