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원화약세에서 강세로 전환중
"환율 정상화 vs 일시적 강세" 팽팽
[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한 때 1500원을 위협하던 달러/원 환율이 1350원대로 급락하면서 향후 환율 전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환율 정상화' 기대감과 '일시적 강세'라는 시각이 엇갈린다.
각종 재테크 게시판에는 동학개미들 중심으로 "한국 증시 반등에 따른 외국인 자금 유입과 미국 국채 위기로 원화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반면 서학개미들은 "한국의 취약한 펀더멘털로 볼 때 조만간 다시 달러강세로 반전될 것"이라는 의견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 4년간 원화약세 원인은 한국과 미국의 성장률 차이
2020년부터 4년 연속 심각한 원화약세 현상이 진행되면서 급기야 지난 2024년말 원/달러 환율은 1476원까지 치솟았다. 2020년말 환율 1087원과 비교하면 원화 대비 달러 가치가 무려 36%나 강세였다. 원화약세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가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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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미국 연준(Fed)은 한국의 기준금리 2.5%보다 2%포인트나 높은 4.5%의 기준금리를 유지 중이다. 금리가 낮은 한국보다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자금이 빠져나가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원화약세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한국의 낮은 경제성장률과 미국의 높은 경제성장률 격차가 지목된다.
◆ 외국인 한국증시 순매수가 원화 강세 원인?
특히 작년 12월의 비상계엄 선포 영향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졌었다. 이로 인해 작년 12월에 한국 코스피 시장에서만 외국인 자금이 3조원 이상 이탈한 게 원화약세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이 추세는 올해 4월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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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4월까지 4개월 간 외국인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무려 15조8700억원을 추가로 매도했다. 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이 4월에 인용됐고 5월부터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외국인들도 1조원이 넘는 순매수로 돌아섰다.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대부분 제거됐다. 이에 외국인들의 투자심리 회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불과 열흘 만에 3조8000억원이 넘는 주식을 순매수했다. 분위기가 바뀌면서 원/달러 환율도 7개월만에 최저치인 1356원까지 내려오는 원화강세로 반전됐다.
2025년 상반기 원/달러 환율은 예상 외의 급락세다.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올해 상반기 중 1500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됐지만 그 예측은 빗나갔다. 하지만 외국인의 코스피 매매현황을 올해 전체로 보면 여전히 10조원 이상 순매도 된 상태다. 향후 이재명 정부가 얼마나 효율적인 증시부양책을 내놓느냐에 따라 '증시'와 '환율'의 방향성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 무역수지 흑자에도 과도한 우려
지난 4년간 원화약세가 심각했던 원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2022년에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이 당시 약 80달러 내외였던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한 때 120달러까지 돌파했다. 구조적으로 원유를 100% 수입해야 하는 한국의 무역수지도 크게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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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2022년에 한국의 무역수지는 478억달러 적자로 전환됐다. 그 다음해인 2023년에도 103억달러 적자가 지속됐다. 하지만 원유가격이 다시 안정된 2024년에는 516억달러 흑자로 전환됐다.
환율변동의 원인을 한 가지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역수지로만 따지자면 이미 2024년에 원화가치는 강세로 돌아서야 했다. 이런 무역수지의 호조 속에서도 2024년에 원/달러 환율이 1476원으로 약세 마감된 건 이례적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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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수지와 상품수지 흑자 추이는 2025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2025년 1월~4월까지 4개월 누적 경상수지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9% 급증한 249조60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상품수지 또한 13% 증가한 281조6000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의 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유가격 안정화 영향이 크다. 현재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인 80달러보다도 낮은 65달러 수준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반도체 수출도 양호하다.
◆ 환율 1300원 가나…연말에는 반전 전망
미국의 통화정책 기조 변화도 주목된다. 시장에서는 미 연준(Fed)이 2025년 하반기 중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란 기대가 확산되며 달러 약세가 진행 중이다. 연준은 고용과 물가 흐름을 보며 아직 버티고 있지만 최근 발표된 지표들은 금리 인하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시장 심리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환율 상단에 베팅하던 기관 투자자들이 이제는 오히려 환율 하락 쪽으로 포지션을 잡고 있다. 이는 시장의 방향성이 전환됐다는 신호다.
미 재무부는 지난 5일(현지시간)에 '주요 교역 대상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 정책' 반기 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재지정했다. 일본, 중국, 독일, 싱가포르 등 총 9개국이다. 이 보고서에는 환율 조작국에 대해서는 관세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도 담겼다.
트럼프 행정부가 암묵적으로 달러 가치 하락을 원하는 신호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시장에서 연말까지 환율이 1300원 초반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키움증권의 김유미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에서 달러약세/원화강세의 원인으로 세가지를 지목했다. 첫째는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하향조정으로 미국 자산 신뢰도가 약화됐고 미국 국채금리 상승압력이 달러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둘째는 미국과의 무역 협상 과정에서 원화 절상 압박에 대한 우려다. 셋째는 한국 정치 불확실성 완화와 대선 이후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펀더멘털 개선 기대이다.
김 이코노미스트는 "원/달러 환율이 연말까지 계속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미국 민간 부문의 투자 사이클이 여전히 유효하다"며 "연말로 갈수록 감세, 규제 완화 등으로 미국 경기 회복 기대가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 변수는 미국 증시와 한국 증시
경제전문가들은 대체로 원/달러 환율의 하단을 1300원 초반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변수는 '서학개미'와 '동학개미'다. 지금은 미국 주식에 집중 투자해 왔던 서학개미들의 힘이 살짝 빠졌다. 반면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동학개미들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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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인이 미국 주식과 채권에 투자한 규모는 총 185조원(1358억달러)으로 막대하다. 미국 증시가 부진했던 올해도 한국인의 보유 규모는 미국주식 7조원(52억달러), 미국 채권 10조원(71억달러)이 증가했다.
만약 지금 활황세를 보이는 한국 증시가 다시 정체되고 미국 주식과 채권 수익률이 좋아지면 어떻게 될까? 한국 투자자 중 상당수가 다시 미국 주식과 채권으로 몰려들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고스란히 원화약세 달러강세 요인이 된다.
외환시장 신중론자들이 과도한 원화 강세 낙관론을 경계하는 이유다. 또 지정학적 리스크나 글로벌 금융 불안 등의 외부 변수에 따라 언제든 다시 원화약세로 돌아설 가능성은 열려 있다. 관세전쟁도 변수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 증시 부양책으로 어떤 카드를 꺼낼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려 있는 이유다.
longinu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