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인플레이션 충격은 이미 끝났다고 확신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24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기저 인플레이션 지표는 전반적으로 우리의 중기 목표인 2%와 일치한다"면서 그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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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24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이날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 6월 기자회견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좋은 위치에 있다"는 말을 여러번 반복했다. 물가가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극대화되고 있는 시기임에도 금리 정책을 펴나가는 데 큰 압박을 받지 않고 있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실제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5월 1.9%에 이어 6월 2.0%를 기록했다. 에너지 가격은 6월에 상승했지만 여전히 1년 전보다 낮았고, 식품 가격 상승률은 3.1%로 소폭 하락했다.
그는 "지난 몇 개월간 악전고투했던 디스인플레이션 사이클을 마침내 끝낼 수 있었다"며 "지난 9개월 동안 8번의 금리 인하를 통해 최고 400bp(1bp=0.01%포인트)에서 200bp로 낮췄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안정한 세계 무역 환경때문에 인플레이션 전망은 평소보다 불확실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강력한 노동 시장과 실질소득 증가, 견고한 민간부문 대차대조표가 소비를 지속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면서도 "관세 인상으로 유로존 상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중국 같은) 과잉 생산 능력을 가진 국가들이 수출 경로를 유럽으로 변경하게 되면 물가가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로존 경제에 대해서는 "1분기에 예상보다 강한 성장세를 보였다"며 "기업들이 관세 인상에 앞서 수출을 앞당긴 측면이 있지만 민간 소비와 투자 증가 또한 성장세를 뒷받침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에 대한 위험은 여전히 하방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했다. 주요 위험 요소로 세계 무역 긴장 고조와 이에 따른 불확실성이 있으며, 이는 수출의 기를 꺾고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ECB는 이날 통화정책위원회를 열고 예치금리를 연 2.0%에서 동결했다. 올 들어 지난 1월과 3월, 4월, 6월 등 네 차례 연속 금리를 내린 뒤 처음으로 걸음을 멈췄다. 레피금리(Refi·RMO)와 한계대출금리도 각각 2.15%, 2.40%로 고정했다. 금리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뤄졌다고 한다.
BCA리서치의 최고 전략가 마티유 사바리는 "ECB가 오늘 금리를 동결했지만 이번 멈춤이 문제의 끝은 아니다"라며 "유로존 지역에 이미 디스인플레이션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유로화 강세와 미국의 관세 부과 임박, 중국과의 경쟁 심화로 유로존은 새로운 위협, 즉 디플레이션에 직면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한편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벌이고 있는 무역 협상 때문에 관세 동결이 이뤄졌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우리는 현재 (협상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앞으로 모든 통화 정책 결정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 회의를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얼마나 빨리 해소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며 "불확실성의 상당 부분은 무역과 관세, 비관세 장벽 등으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흥미로운 협상 과정과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 내용들을 보면 보복은 선택 사항이며 확실한 요소로 보이지 않는다"며 "단순히 일방적 무역과 보복이라는 관점 뿐 아니라 공급망 재편과 방향 전환, 혼란, 병목 현상 등이 모두 가격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란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가상화폐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내비쳤다.
그는 "나는 현금을 좋아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이 발전하고 결제 방식에 대한 선호도가 변함에 따라 사람들의 요구에도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캐시가 핵폭탄이라고 하는 주장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아는 한 우리는 주머니에 핵폭탄을 넣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라가르드 총재의 기자회견 이후 독일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자율에 민감한 2년 만기 국채는 수익률이 10bp 이상 상승해 1.9%에 도달했다. 5월 중순 이후 가장 큰 하루 상승폭을 기록했다. 또 유로존의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국채는 10.8bp 올라 2.71%까지 치솟았다.
금융시장에서는 ECB가 다음번 통화정책위원회에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관측했다.
로이터 통신은 "금융시장에서는 오는 9월 11일 ECB가 금리를 25bp 내릴 가능성을 30% 미만으로 반영하고 있다"며 "이 수치는 이전에는 50%에 가까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