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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복서·바이커·클래식 광의 시집, 박시우 '내가 어두운 그늘이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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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시백

[서울=뉴스핌]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여겨온 내게 그는 몇 안 되는 연륙교를 가진 섬이다. 해자(垓子)를 둘러친 내 편협한 교유의 외호에서 그는 허물없이 지내는 후배이다. 그로 말씀드리자면 시를 쓰며 신인왕전에 출전한 복서이기도 하다. 그에게 패한 선수가 이후로 링을 떠나게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그런가 하면, 그는 고전 음악에 심취하여 일가를 이룬 음악 애호가이고, 틈틈이 선인봉이나 인수봉의 바위에 매달리는 산꾼이며, 하반신에 심하게 달라붙은 쫄바지를 입고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는 바이커이기도 하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박시우 시집 '내가 어두운 그늘이었을 때' 표지. [사진 = 걷는사람]  2025.09.02 oks34@newspim.com

그런 그가 십 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내가 어두운 그늘이었을 때'(걷는사람)를 펴냈다. 우선 제목이 매혹적이다. 아마 그가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시집 제목의 공이 크다 하겠다. 4부로 나누어 실은 시들의 단애는 다채로운 빛깔의 지층을 이루고 있다. 설겅에 매단 고기에 배어든 훈연의 향취처럼 그의 시에는 그의 신변과 기호들이 잘 다독여져 풍미를 자아낸다. 때로는 김종삼 시인이 어른거리고, 성속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스텝'이 사각의 링에 선 이력을 엿보게 한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1부에 실린 시들을 좋아한다. 아버지와 증조부, '상주 질구내 외숙모'와 '나루터 민박집' 노인에 이르기까지 시인이 가슴을 내어주어 받아들인 그 목소리들은 한 세대를 넘어 시대의 풍정으로 확장되고 있다.

후퇴하는 인민군이 마을에 들어와
삼십 중반 사내를 앞장세웠다
충청도로 넘어가는 영마루에서 쉴 때
사내는 몸을 낮추고
눈매 순한 젊은 군관에게 다가갔다
내일이 집안 제사라요.
어머니께서 밤잠 안 주무시고 기다리시니
꼭 좀 보내 주시라요
사내를 한참 들여다본 군관은
대열 끝으로 눈길을 던지더니
몸을 돌려 달만 쳐다보았다
이튿날 미군 쌕쌕이가 고개 너머로 날아갔다
아버지는 아흔이 넘어도
군관 걱정에 자갈처럼 중얼거렸다
- '그믐' 전문.

단순한 회고에 머무르지 않고, 세대를 넘어 한 시대의 통점들을 짚어내며 시로 불러내온 그 목소리들은 우리 근대사의 미처 풀리지 않은 비극적 서사들을 조용히 진술하고 있다. 해원되지 않은 한의 응어리들을 토속의 언어들로 꿰어내는 시들은 해원굿판의 무녀가 내어놓는 '공수'와 진배없다. 모차르트와 바흐의 음악에 심취해 지내는 그가 이제는 민속촌의 뒷울에서도 보기 드문 서낭당의 빛 바랜 오방기며, 툇마루 밑에 켜켜이 쌓인 제기들 같은 목소리를 지녔다는 것은 흥미롭다.

한겨울에도 김이 피어오르던
마당 우물은 흐려지고
처마 아래 매달아 놓은 곶감에는
하얀 분이 가득 올라왔다
기억나는 선대가 드문 외갓집
산신각 뒤편 여우굴 울음 닯은
사내들은 명줄이 짧았다
- '향년' 일부.

그해 여름 달포가 넘도록 가물다가 큰비가 내리던 저녁이었지 개울물 소리가 애기 울음처럼 들리데 깜짝 놀라 허겁지겁 애호박을 썰고 감자를 뭉턱뭉턱 썰었어 우리는 소리를 들지 않으려고 양재기에 밀가루 반죽을 쾅쾅 치댔지 수제비를 뚝뚝 끊어내면서 미끄덩거리는 반죽을 보니까 사지에 힘이 빠져 그만 그릇을 놓쳤지 뭐여 근데 뭔 정신이 그랬는지 몰라 대체 뭘 건지려고 했는지 나도 모르게 끓는 솥에 손이 들어가데
- '장마' 일부.

간밤 꿈에 너 아버지가 무서운 얼굴로 나타난 기라, 두루마기를 입고 꽁꽁 언 맨발로 집 앞을 휙 지나가는 데 불러 틈도 없이 사라지데, 하도 요상해 고개를 빼고 내다봤더니 글쎄, 너 아버지를 몰래 선산 팔아먹고 덤어실 포강에 빠져 죽은 목동 큰조카 고개 골목 끝에서 나오는 기라, 꼴도 보기 싫어 대문을 걸어 잠갔는데 백모님 백모님 부르면서 술 한 되만 받아달라 하데, 하도 애원해가 술도가에서 받아 온 주전자 뚜껑을 여는데 그놈이 거기에 빠져 있지 뭐여, 뒤적여서도 오싹 할 놈, 얼마나 놀랐는지 밥도 안 먹히고 심란해서 그래 아침부터 한잔했지 뭐여
-'묘주' 전문.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시인 박시우. 2025.09.02 oks34@newspim.com

멀리 떠난 미당의 그림자도 어른거리고, 이제는 누구도 입에 얹으려 하지 않으나 존재하는, 이 '어두운 그늘'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해왔고, 보이지 않으나 여전히 그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은 아닐까. 누구도 입에 올리려 하지 않으며, 뒤로 밀쳐졌던 것들을 여전히 호명하는 이는 과연 누구인가.

몇 해 발길 끊은 주정뱅이 장조카는
이른 아침 수초에 엉킨 채 발견되었다
그해 가을 포강에는 거품이 들끓었다
비늘 없는 물고기들이
달밤에 묘혈을 뚫고 나와 우는 소리여,
백부를 악심하는 귀신이니께
저수지가 말라야 하니라,
무당은 껑충껑충 뛰며 칼을 휘둘렀다
- '포강'일부.

'껑충껑충 뛰며 칼을 휘둘러'며 불러낸 것은 무엇일까. 시인이 호명해 낸 것들의 층위는 다채롭고 이질적이다. 태생을 논하기 전에, 여전히 그 가슴에 살고 있는 여러 목소리들이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 영국 모음곡 제1번 중 사라방드'에서 '창문 없는 방은 월 이십팔만 원'의 고시원까지 이르게 하는, '어두운 그늘'이 자아내는 배음(倍音)은 이 시집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저녁 여섯 시
날은 이미 어두워졌네
동지가 한 달 넘게 남았는데
벌써 우울해지네, 11월
퇴근길에 나서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너편 고시원 간판 불빛
창문 없는 방은 월 이십팔만 원
창문 달린 방은 월 삼십육만 원
밤마다 '사라방드'를 틀어도 될까요?
보증금이 없어도 된다는 주인 목소리에
작은 창 하나 뚫고 싶은 11월
바흐의 '사라방드'는 묘한 아름다움이야
용서를 받으려고 만든 음악 같아, 11월
사형장 말뚝처럼 어정쩡한 직립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 영국 모음곡 제1번 중 사라방드를 들으면서' 일부.

이제 십 년 만에 다시 올라온 문학의 링 위에서 또 누구를 뜨겁게 하며, 또 무엇을 떠나게 할지 흥미롭다. 어찌하였든 나는 '동해 횟집'에서 어느 그늘진 바다였던 광어와 도다리 회를 먹으며, 시인과 함께 시를 이야기할 참이다. 경향각지의 시를 애호하시는 제현께서는 그의 시집을 사서 읽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이시백은?] 소설가.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 증조부와, 이야기하기를 즐거워하는 부친의 역사적 사명을 이어받아 어쩔 수 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메고 떠도는 이야기 보부상. 스무 해 동안 땡볕에 풀 매며 정주민으로 살다가 회의를 느낀 이시백은 정든 호미를 집어던지고, 해마다 여름이면 몽골을 헤매며 유목의 삶을 모색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용은 없다', '나는 꽃도둑이다', '사자클럽 잔혹사', '종을 훔치다', 소설집 '응달 너구리', '갈보콩', '누가 말을 죽였을까', '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 산문집으로 '유목의 전설', '당신에게 몽골', '시골은 즐겁다' 등이 있다. 권정생창작기금과 채만식문학상, 5·18문학상을 받았다. oks3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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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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