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문화·연예일반

속보

더보기

[변상문의 화랑담배] 제8회 주한 미 육군사령부 "정치세력 불인정"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조선총독부의 항복 조인식이 끝난 후, 이어서 주한 미 육군사령부(USAFIK: US Army Forces in Korea)를 발족하였다. 주한 미 육군사령부는 미 육군 제24군단 사령부와 그 예하 부대로 구성하였다. 사령관에 미 육군 중장 하지가 1945년 9월 10일 취임하였다. 주한 미 육군사령부에서는 1945년 9월 12일부로 미 제7사단장 아놀드(Archibald V. Anold) 소장을 군정장관으로 임명하였다. 헌병사령관 쉬크(Lawrence E. Schick)를 경무국장에 임명하였다.

주한 미 육군사령관 하지 중장은 "미군정청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38도선 남쪽의 한반도 지역을 통치·지도·지배하는 연합군 지휘 아래 미군에 의하여 수립된 임시정부이다. 미군정은 38도선 이남의 한국에서 유일한 정부이다. 이 지역 내의 어떤 정치세력도 정통 정부 혹은 과도 정부로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임시 정부는 자유 한인 대회를 개최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지만 미 군정은 임시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진= 국사편찬위윈회]

이것은 미군의 남한 점령 임무가 38도선 이남의 일본군 무장해제 외 정치경제 문제까지 확대 조정된 것을 의미하였다. 즉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물론이고 미군의 진주 이틀 전에 수립된 건국준비위원회가 발전 변형된 조선인민공화국 등 정치세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미군의 정책은 조선공산당(조선공산당에 대해서는 뒤에서 별도 설명)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의 활동을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 정국은 혼란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통치 방식도 조선총독부 직제를 그대로 둔 채 일제가 임명한 공무원을 해임하지 않고 그들의 업무협력관으로 미군을 임명하여 업무를 습득하는 잠정 기간을 두었다.

이로써 조선총독부의 행정권을 인수하고도 여전히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를 비롯한 일본인 국장들이 직무를 수행하다 1945년 9월 14일에 이르러 전원 해임되었다. 하지만, 현직에서 물러난 일본인들을 고문으로 임명하여 미군을 보좌하도록 하였다. 이런 가운데 미군정청 주요 직위자들이 국내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자, 1945년 10월 5일부로 일본인 고문들을 해직시키고 그 자리에 한국인 지도급 인사 11명을 임명하였다.

또한 미군정 사법기관인 대법원장에 김용무를 임명하는 등 각 행정기관장도 한국인으로 대폭 교체하였다. 12월에 들어서는 미군정청 행정기구에 미국인과 한국인을 함께 기용하는 양국장(兩局長)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때 기용된 한국인 수는 7500여 명이었다.

일본군 무장해제는 1945년 10월 1일 제주도에 주둔하던 일본군 제58군의 항복을 받음으로써 완료되었다. 미군이 전국에 배치가 완료된 것은, 1945년 10월 9일이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때는 총 7만7645명에서 1만6000여 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미군정 기구가 안정되고 있을 무렵인 1945년 10월 17일 다음과 같은 미국의 기본 군정 지침이 일본에 있는 맥아더와 한국의 하지 장군에게 하달되었다.

"미국의 최종 목표는 한반도에서 자유 독립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미국의 정책은 미·소에 의한 잠정 군정기에서, 미국·소련·영국·중국에 의한 신탁통치를 거쳐 최종적으로 독립된 유엔 회원국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즘 임시정부 요인들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기 시작했다. 1945년 10월 16일에는 이승만이 환국했다. 1945년 11월 23일에는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임시정부를 정부 수임 기관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국내 정치세력은 크게 자유민주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심각하게 대립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김일성을 정점으로 한 공산주의 체제가 확실하게 자리 잡아간 북한과는 대조적인 현상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SK하이닉스 17년만에 상한가 [서울=뉴스핌] 양태훈 기자 = SK하이닉스가 31일 장중 상한가에 진입하면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반도체 승부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불황 속에서 SK하이닉스 인수를 밀어붙였던 최 회장이 최근 주가 급락 국면에서 개인 명의로 처음 자사주를 사들인 지 하루 만에 주가는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21분 기준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보다 39만6000원(29.95%) 오른 171만8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장중 고가이자 가격제한폭 상단이다. 거래량은 853만6822주를 기록 중이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하이닉스 주식 3620주의 평가액은 현재가 기준 62억1916만원이다. 공시상 취득금액 49억31만740원과 비교하면 미실현 평가이익은 13억1884만9260원이다. [사진=뉴스핌DB, AI 인포그래픽=서영욱 기자] 매수 당일 종가인 132만2000원을 적용한 평가액은 47억8564만원으로 취득금액보다 약 1억1467만원 낮았다. 주식을 사들인 직후에는 평가손실을 기록했지만, 이튿날 주가가 상한가로 급반등하면서 하루 만에 13억원대 평가이익으로 전환됐다. 이번 매수는 단순한 내부자 주식 취득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 회장이 그룹의 사업 구조를 반도체 중심으로 바꾼 SK하이닉스 인수의 당사자인 데다, 최근에도 AI 시대 메모리 수요와 SK하이닉스의 장기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을 거듭 드러냈기 때문이다. SK의 반도체 사업 구상은 최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선대회장은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세우며 반도체 진출을 추진했지만 2차 오일쇼크로 계획을 접었다. 이후 최 회장이 2011년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인수를 결정하고 2012년 SK하이닉스를 출범시키면서 30여 년간 이어진 반도체 사업 구상이 현실화됐다. 최 회장은 당시 출범식에서 "30여년 만에 반도체 사업 진출의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인수는 당시에도 순탄한 결정은 아니었다. 반도체 업황이 침체돼 있었고, 정유·통신을 주력으로 하던 SK와의 사업적 연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15년 전 업황 부진기에 회사 인수를 결정했던 최 회장이 이번에는 주가 급락기에 직접 주주로 나섰다는 점도 주목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최 회장은 전날 장내에서 SK하이닉스 보통주 3620주를 매입했다. 최 회장이 SK스퀘어를 통하지 않고 개인 명의로 SK하이닉스 주식을 보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취득단가는 주당 135만3677원이며 총취득액은 49억31만740원이다. 내부자거래 사전공시 기준인 50억원보다 9968만9260원 적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상장사 임원이나 주요주주가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 또는 50억원 이상을 거래하려면 거래 개시 30일 전까지 매매계획을 공시해야 한다. 거래 수량이 발행주식 총수의 1% 미만이면서 거래금액도 50억원 미만이면 사전공시 의무가 면제된다. 시장에서는 최 회장이 사전공시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 범위에서 매입 규모를 최대한 늘려 최근 급락장에서 신속하게 책임경영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최 회장은 지난 17일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SK하이닉스 주식에 대해 "샀다 팔았다 하지 말고 가만히 갖고 있는 게 재산 보전에 좋은 방법"이라며 "메모리는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주면 우상향으로 간다"고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dconnect@newspim.com 2026-07-31 14:38
사진
민주당 당대표 여론조사 보니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8·17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대표 적합도·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일반 국민은 정청래 후보, 민주당 지지층에선 김민석 후보가 앞서는 흐름이다. 오는 8월 1일 충청권 첫 지역 순회 합동 연설회와 경선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어 민주당 전대 열기가 더욱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기자단 = 김민석(왼쪽부터), 정청래,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에서 열린 방송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07.29 photo@newspim.com ◆ NBS, 정청래 21% 김민석 19% 송영길 6%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27~29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조사를 진행한 NBS(전국지표조사)에 따르면, 차기 당대표 적합도 정청래 후보 21%, 김민석 후보 19%, 송영길 후보 6% 순이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김 후보 34%, 정 후보 29%, 송 후보가 9%로 나타났다. NBS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다. ◆ 오마이뉴스 민주당 지지층, 김민석 41.6% 정청래 37.7% 송영길 9.5% 오마이뉴스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에스티아이(STI)가 지난 27~28일 전국 18살 이상 성인 남녀 중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층 11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당대표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김 후보 41.6%, 정 후보 37.7%, 송 후보 9.5%였다. 오마이뉴스 조사는 구조화된 질문지를 사용한 휴대전화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됐다.  ◆ 뉴스토마토, 정청래 36.9% 김민석 28.0%, 송영길 9.2%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지난 27~28일 전국 18살 이상 남녀 103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차기 당대표 선호도 1순위로 정 후보가 36.9%였다. 김 후보는 28.0%, 송 후보는 9.2%였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김 후보가 44.9%로 정 후보 38.9%보다 높은 지지를 얻었다. 송 후보는 11.2%였다.  선호투표제 도입에 맞춰 실시한 2순위 선호도 조사에서는 송 후보가 33.9%로 가장 높은 응답을 받았다. 이어 김 후보가 12.9%, 정 후보 9.0% 순이다. 송 후보를 2순위로 선택한 57.9%는 김 후보를 1순위로 꼽았다. 36.9%는 정 후보를 선택했다. 미디어토마토 조사는 무선 전화 ARS 방식으로 진행됐다. 민주당은 이번 당대표 선거에 선호투표제를 처음 도입했다. 선호투표제는 유권자가 후보 한 명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1·2·3순위 선호 후보를 함께 기입하는 방식이다. 먼저 1순위 득표를 집계해 과반 득표자가 나오면 그대로 당선자가 결정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땐 최하위 득표자의 2순위 표를 배분한다. 각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jeongwon1026@newspim.com 2026-07-31 10:20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