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420만명 찾는 경마공원 이전 반발
지방선거 앞두고 정치권도 가세
국토부·농식품부 "교통대책·이전 협의" 강조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과천은 지금도 곳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어 숨이 막혀요. 본도심에선 재건축을, 과천지식정보타운에선 오피스를 짓느라 바쁜데 여기에 1만가구 규모 아파트가 또 들어온다니요. 차 막히는 건 물론 애들 다닐 학교도 부족할 겁니다." (과천 주민 A씨)

◆ "우리 공원 뺏지마" 과천시민 반대 물결…레저자산·말산업 퇴행 우려도
9일 방문한 경마공원 앞은 한산했지만 도로변과 공원 내에 걸린 현수막 문구만은 거칠었다. '경마공원 이전, 주택공급 결사 반대' '과천경매공원 이전, 지금 막지 못하면 경마는 사라집니다'라는 문구가 바람에 연달아 휘날렸다.
논란의 출발점은 지난달 29일 발표된 국토교통부의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이다. 정부는 과천시 주암동 일원 과천 경마장(115만㎡)과 국방부 소관의 국군방첩사령부(28만㎡) 부지를 '첨단 직주근접 기업도시'로 조성, 9800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중 17.8%에 해당하는 24만㎡를 자족용지로 확보함으로써 기존 과천 지식정보타운을 웃도는 규모로 첨단 AI(인공지능)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발표 직후 주민 반발은 빠르게 번졌다. 지금도 인구가 넘치는 과천에 공급부터 밀어붙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평소 누리던 녹지 인프라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교통·도로 등 기반시설 보완책이 충분치 않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공원에서 만난 한 50대 남성은 "발표 직후부터 과천시와 시민들이 우려를 표했고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상황이지만 이런 의견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며 "결국 소(小)를 위해 대(大)가 희생하는 흐름 아니냐"고 지적했다.
반대 여론은 집회로도 표출됐다. 지난 7일에는 10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한 '과천 사수 범시민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과천은 이미 여러 택지개발로 도로·교통 등 기반시설이 한계에 이르렀다"며 "마사회에서 발생하는 지방세 감소 등이 시 재정에 타격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사회 노동조합의 반발도 거세다. 이날 렛츠런파크 앞에는 '근무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강제 이전을 반대한다'는 취지의 현수막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노조가 내세운 반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과천 경마공원이 연간 420만명이 찾는 수도권 레저·문화 자산이라는 점, 말산업 생태계를 떠받치는 거점인 만큼 개발을 강행하면 생산 농가부터 유통·관리까지 산업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노조 관계자는 "문화적 자산을 허물고 아파트만 늘리는 게 누구를 위한 공급인지 묻고 싶다"며 정부의 재고를 요구했다. 지난 2일 세종시 국토부 앞에 근조화환을 설치하며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지역 여론이 반대로만 쏠린 건 아니다. 과천 시내 일부에는 개발에 찬성한다는 취지의 주민 현수막도 걸려 있다. 찬성 입장이라는 한 40대 남성은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오른다는 비판을 하면서 동시에 국공유지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을 막는 게 말이 되냐"며 "청년이나 신혼 부부 등 자산 형성이 덜 된 사람도 이 사회에서 집을 가질 기회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좋은 주거지에 진입할 기회를 정책으로 열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 "공급 왜 막나" 맞서는 찬성론…임대 비중·도시 수용능력 '변수'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임대주택'에 대한 거부감이 반대 여론을 키우는 요인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개발 계획상 9800가구 가운데 상당 부분이 임대주택이 될 가능성이 거론돼서다. 아직 분양·임대주택의 정확한 비율은 확정되지 않았다.
과천에 산다는 30대 여성은 "재개발·재건축을 해도 최소 10~15%는 임대주택으로 짓는 시대라는 흐름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국공유지에 국가가 짓는 아파트라면 임대가 포함되는 게 자연스럽고, 인구 밀도를 이유로 무조건 반대하는 건 설득력이 약하다"고 했다.
현재 과천시와 과천시의회 야당 소속 일부 시의원도 반대 대열에 합류한 상태다. 일각에선 6월 지방선거를 앞둔 만큼 선거 전까지는 이 같은 기류가 쉽게 잦아들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정책 관계자는 "지자체 입장에서 1만가구 안팎의 '미니 신도시'가 들어오면 득실이 복합적이지만, 시민 다수가 대규모 공급에 따른 집값 하락을 걱정하는 만큼 선거 이전까지 반대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첨예한 의견 대립에도 정부는 교통 대책을 전면에 내세우며 속도전을 예고했다. 먼저 주택 공급 대상지별 교통 영향을 사전에 검토하고, 신속한 교통개선대책 수립을 지원하기 위한 '주택 신속 공급을 위한 교통개선 협의체'를 구성·운영하기로 했다.

지자체로부터 지구 관련 교통 건의 사항을 접수받은 후 LH 등 사업시행자와 관계 부서가 즉시 검토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김영국 국토부 주택공급추진본부장은 "지역사회에서 제기하는 교통정체 우려를 최대한 해소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와 긴밀히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경마장 이전 논의도 병행되는 분위기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날 "한국마사회와 충분한 협의를 통해 경기도 내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말산업도 중요하고, 마사회 종사자와 지역사회가 모두 중요한 만큼 충분히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농식품부와 마사회, 경기도, 국토부 등 다양한 주체들의 의견을 모아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며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사이에선 임대 비중과 도시 수용능력이 현실화의 열쇠라는 주장이 나온다. 김효선 KB국민은행 WM추진부 부동산수석전문위원 "국유지를 활용한 공급은 임대주택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시장 참여자 입장에선 민간 분양 수요를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지 지켜보며 구체 계획이 나올 때까지 판단을 미룰 수 있다"고 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도심 핵심지에 대규모 물량을 집중하는 만큼 지자체 협의와 민간 참여 유도뿐 아니라 도로 등 인프라 증설을 포함해 도시 기반 수용능력을 충분히 고려한 속도감 있는 개발 계획이 함께 가야 한다"며 "교통 정체나 기반시설 부족 없이 쾌적한 주거환경이 담보돼야 공급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