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백인천 전 감독 빈소에 16일 한국·일본 야구계 조문이 이어졌다.
- 장훈은 고인을 한국 프로야구 개척자이자 동료로 추모했다.
- 백 전 감독은 15일 별세했으며 발인은 17일 오전 8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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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한지용 기자 = 고(故) 백인천 전 감독의 빈소에 한국과 일본 야구계의 추모가 이어졌다. 재일교포 출신 일본 야구의 전설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도 고인을 기렸다.
백 전 감독의 빈소가 차려진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 장례식장에는 16일에도 야구인들의 조문이 잇따랐다. 한국야구위원회(KBO) 허구연 총재를 비롯해 구본능 전 총재, 김인식 전 야구대표팀 감독, 김인석 LG 트윈스 대표와 차명석 단장, 민경삼 전 SSG 랜더스 대표 등이 빈소를 찾았다.

경동고 후배인 유승안 전 한국리틀야구연맹 회장도 전날에 이어 빈소를 지켰다. 유 전 회장은 고교 시절 백 전 감독이 만든 '백인천장학회'의 장학금을 받은 인연이 있다.
백 전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를 이끌 당시 선수로 뛰었던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도 빈소를 찾아 애도했다.
일본프로야구계에서도 조의를 표했다. 니혼햄 파이터스는 코무라 마사루 대표이사 명의로 조화를 보냈다. 백 전 감독은 1962년 니혼햄의 전신인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해 1974년까지 뛰었다.
장훈은 일본 매체 스포니치 아넥스를 통해 고인을 추모했다. 장훈은 "백 전 감독은 나보다 세 살 어린 소중한 후배이자 같은 시대를 함께 달려온 동료"라며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깝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1962년부터 1974년까지 도에이에서 함께 뛰었다. 장훈은 백 전 감독의 일본 진출 과정을 떠올리며 "1962년 한국 야구계 관계자로부터 좋은 선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백 전 감독을 훈련에 참여시켰다"며 "포수로서 체격이 좋고 발도 빨랐다. 당시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에게 추천해 영입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장훈은 백 전 감독을 "매우 기가 셌던 남자"라고 기억했다. 그는 "한국에 프로야구가 없던 시절 홀로 일본으로 건너와 지지 않겠다는 강한 마음을 품고 있었을 것"이라며 "언어 장벽 때문에 고생했고 첫해에는 내 뒤를 따라다니며 일본어를 배웠다"고 전했다.
포지션 전향도 돌아봤다. 장훈은 "워낙 기가 세서 자신이 낸 사인대로 투수가 공을 던지게 했다. 투수들과 의견 충돌이 잦아졌고, 결국 외야수로 전향했다"며 "오히려 포지션 전향이 일본에서 성공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장훈은 백 전 감독을 한국 프로야구의 개척자로 평가했다. 그는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백 전 감독을 MBC 청룡 선수 겸 감독으로 추천했다"며 "그는 한국 프로야구의 개척자라고 할 만한 존재"라고 했다.
백 전 감독은 1962년부터 1981년까지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며 통산 타율 0.278, 209홈런, 776타점을 기록했다. 1975년에는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올랐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MBC 청룡 감독 겸 선수로 돌아온 백 전 감독은 그해 타율 0.412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여전히 KBO리그 유일한 4할 타율로 남아 있다. 이후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뒤 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감독 등을 지냈다.
백 전 감독은 지난 15일 오전 별세했다. 장례는 KBO가 주관하는 KBO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장은 전 대한야구협회 부회장인 원로 야구인 김소식 씨가 맡았다. 발인은 17일 오전 8시다.
football122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