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구와바라 시세이가 27일 사진의 얼굴 개봉 앞두고 소감을 밝혔다
- 그는 60여 년간 한국과 아시아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 외국인 시선으로 한국 민주화와 일상을 담아 시대를 남겼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독재정권부터 눈부신 성장까지…"한국인의 피와 땀과 눈물"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한국의 1960년대 모습부터 최근까지 60여 년의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해온 일본의 포토저널리스트 구와바라 시세이. 그가 카메라에 담아온 한국의 얼굴이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난다.

27일 다큐멘터리 '사진의 얼굴'은 오는 9월 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60년간 약 10만 컷으로 한국의 다양한 현장을 기록해온 구와바라 시세이의 시선을 따라 한국 사회의 변화와 그의 사진 세계를 조명하는 작품이다.
지난 26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구와바라 시세이를 만났다. 구와바라는 완성된 영화를 지난해 9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처음 봤다며 "매우 잘 만들어져 굉장히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자신의 사진과 삶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고희영 감독과의 인연이 있었다. 구와바라는 고 감독의 전작 '불숨'에 등장한 천한봉 장인의 사진을 촬영하면서 인연을 맺었다고 설명했다.
고 감독으로부터 영화 제작 제안을 받았던 당시를 떠올리며 "친척이 내 사진을 영화로 찍어주는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구와바라는 자신을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다. 주인공은 제가 찍은 사진들"이라며 "저는 조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은 지난 60년간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봐온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자신의 존재를 앞세우기보다 사진 속 사람과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를 기록하는 데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구와바라의 작업 세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사진가로서 그의 출발점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공해병인 미나마타병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이후 베트남과 소련, 북한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구와바라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도 이러한 자신의 작업 세계가 함께 담겼으면 한다는 의견을 고 감독에게 전했다. 그는 "구와바라 시세이라는 사진가는 한국만 찍은 사람이 아니다"라며 "사진계에 처음 데뷔하게 된 중요한 작업인 미나마타병을 비롯해 베트남, 소련, 북한에서 찍은 사진도 있기 때문에 함께 넣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했고 사진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의 카메라가 유독 오랜 시간 향했던 곳은 한국이었다. 특히 독재 정권 시절에는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 등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 과정에서 외국인 사진가라는 그의 위치는 때로 한국 사회를 기록하는 데 상대적인 자유로 작용했다.
구와바라는 "당시 한국 기자들은 정보국의 감시가 굉장히 심했고 정부 방침이나 기사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엄격하게 다뤄졌다"며 "외국인 기자들에게는 그 정도로 엄하지 않았고, 프레스 카드가 있으면 어느 정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한국 사진가들이 시위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고 했다. 구와바라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시위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정보국에서 북한과 내통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의심하기도 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그의 카메라가 향한 곳은 정치적 격변의 현장만은 아니었다. 청계천 판잣집과 시장 등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역시 그의 중요한 기록 대상이었다.
구와바라는 과거 청계천의 모습을 촬영할 당시 한 한국 기자로부터 "왜 한국의 가난한 모습을 찍느냐"는 말을 들었던 일화를 떠올렸다. 일본에 돌아가 가난한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진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과거의 청계천이 사라진 뒤 해당 기자가 오히려 "그때 사진을 찍기를 잘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구와바라는 회상했다. 당시에는 불편하게 받아들여졌던 한 장의 사진이 시간이 흐르면서 한 시대를 보여주는 기록이 된 셈이다.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 데에는 그만의 원칙도 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촬영하는 경우와 달리 가까이에서 인물을 찍을 때는 당사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구와바라는 "가까이에서 찍을 때는 양해를 구했다"며 "사진을 전시할 때도 사진에 대한 설명에 늘 따뜻한 글을 붙이려고 신경 썼다"고 말했다.
같은 나라를 60년 넘게 바라본 만큼 한국의 변화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구와바라는 전두환 정권을 지나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른 이후 한국의 발전상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회상했다. 이후 조선과 반도체, 자동차 등 산업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60년 전 처음 마주했던 한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60년 동안 지켜본 한국의 성장을 표현해달라는 질문에는 짧지만 묵직한 답을 내놨다. "한국의 경제 성장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한국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 사진가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가족의 뒷받침도 있었다. 특히 올해 90세인 구와바라는 결혼 생활을 함께해온 아내에 대한 고마움도 빼놓지 않았다. "결혼한 지 56년이 됐다"며 사진 작업만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어려웠던 시절 아내가 75세까지 일을 하며 함께 가정을 꾸려왔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에게 "고맙게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마음을 전했다.
과거에는 그의 사진 작업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던 아내는 이제 가장 가까운 조력자이기도 하다. 구와바라가 80세를 넘긴 뒤 사무실을 정리하고 집에서 사진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작업을 함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 관련 작업에서는 한국인인 아내가 어떤 사진이 한국 관객들에게 더 와닿을지를 이야기하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구와바라는 지난 60여 년 동안 한국의 거대한 역사적 변화뿐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자신은 조연이고 사진이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그의 시선처럼 '사진의 얼굴'은 한 사진가의 삶을 넘어 그가 기록해온 시대와 사람들의 얼굴을 다시 마주하게 한다.
taeyi42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