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이승만 대통령이 1950년 6월 말 전쟁 확대 속에서 대전을 사수하려 했다고 했다.
- 무초 대사와 맥아더가 인사와 방어선을 조율하며 정일권 교체가 이뤄졌다고 했다.
- 대통령은 7월 1일 목포로 피난해 부산행 함정에 올랐다고 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충남도지사 관저에 주한 미국대사 존 무초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통령을 마주한 그는 다짜고짜 고개를 숙였다. "각하, 꼴이 사나워 죄송합니다."
그의 몰골은 마치 쓰레기더미 속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사람 같았다. 양복은 흠뻑 젖어 있었고, 여기저기 찢어진 데다 흙먼지와 진흙이 온몸에 들러붙어 있었다.
수원에서 지프를 타고 오는 동안 북한군 야크 전투기의 기총소사를 서너 차례나 받았다. 총탄이 쏟아질 때마다 그는 논두렁과 배수로 속으로 몸을 던져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고 했다. 진흙투성이가 된 그의 옷자락에는 총탄을 피해 몸을 던졌던 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무초는 품속에서 전문 한 장을 꺼내 대통령에게 내밀었다. "맥아더 장군께서 오늘 한강 방어선을 시찰하기 위해 도쿄에서 오십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며칠째 굳어 있던 대통령의 얼굴에 모처럼 엷은 미소가 번졌다. "한 시간 뒤 비행장으로 나가겠소."

그날 수원 농과대학에 설치된 국군과 미군의 임시사령부에서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을 감격스럽게 맞이했다. 두 사람은 뜨겁게 포옹했다. 그러나 포옹이 끝나자 대통령은 뜻밖의 말을 건넸다.
"장군, 장군의 구두가 지금 막 자라고 있는 모를 밟고 있소." 맥아더는 얼른 발밑을 내려다보더니 한 걸음 물러섰다. "각하, 미처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정중히 사과했다. 전선의 참담함 속에서도 못자리 하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노 대통령의 눈길이었다.
짧은 회동을 마친 뒤 대통령은 비행기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귀로 또한 순탄하지 않았다. 북한군 야크기 두 대가 대통령 전용기를 추격해 왔다. 조종사는 산등성이를 스치듯 저공비행을 하며 계곡 사이를 누볐다. 기체가 좌우로 요동칠 때마다 좁은 기내에는 숨죽인 긴장만이 흘렀다. 가까스로 적기의 공격을 따돌린 끝에 비행기는 무사히 대전에 도착했다.
그날 밤 9시 무렵, 장택상과 신익희가 충남도지사 관저를 찾았다. 두 사람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현 상황을 수습하려면 유격전의 명수인 이범석 장군을 국방부 장관으로 기용해야 합니다."
순간, 곁에 있던 무초 대사가 말을 받았다. "각하, 지금은 각료를 교체할 때가 아닙니다. 특히 국방부 장관을 바꾸면 군 지휘체계에 큰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그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당시 정가에는 무초가 이범석 장군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은 대체로 자존심이 강하고 미국의 뜻에 쉽게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였다. 반면 일제강점기 동안 비교적 무난한 경력을 가진 인사들을 더 신뢰한다는 풍문도 나돌았다.
그 소문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쟁 초기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인사 문제를 둘러싼 미묘한 긴장감은 한층 고조되고 있었다.
그날 밤, 모두가 돌아간 뒤 대통령은 조용히 부인 프란체스카를 바라보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철기 이범석 장군 같은 파이터요. 그런데 무초 펠로(Muccio fellow)가 반대하는군."
말끝에는 아쉬움과 답답함이 묻어 있었다. 대통령은 사석에서는 좀처럼 무초를'대사'라고 부르지 않았다. 늘"무초 펠로", 곧"무초 녀석"이라고 불렀다.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만 드러나는 특유의 솔직한 표현이었다.
다음 날인 1950년 6월 30일 아침. 무초 대사가 다시 대통령을 찾아왔다. "맥아더 장군께서는 지쳐 있는 채병덕 육군 총참모장을 정일권 장군으로 교체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갖고 계십니다."
대통령 역시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이었던 듯했다.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날 정오 무렵, 채병덕 총참모장을 정일권 장군으로 교체하는 인사명령서에 조용히 서명했다.
관저 밖에서는 매미가 한여름의 기세를 뽐내듯 쉼 없이 울어댔다. 손길이 닿지 않은 뜰의 꽃들은 제철을 맞아 향기를 한껏 품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풍경은 나라 전체를 뒤덮은 전쟁의 먹구름과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대통령의 또 다른 고민은 국무총리 인선이었다. 신성모 국방부 장관이 총리를 겸임하고 있었지만, 국가적 위기를 수습할 새로운 지도력이 절실했다. 그때마다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름이 있었다. 고당 조만식. '조만식 선생만 곁에 있었다면….'
정부 수립 이전부터 대통령은 여러 차례 사람을 평양으로 보내 함께 나라를 세우자고 간청했다. 그러나 조만식은 끝내 고개를 저었다. "핍박받는 북한 주민을 두고 저 혼자 서울로 갈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을 때마다 대통령은 깊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라를 위해 함께할 수 있었던 인물을 잃었다는 아쉬움이 지금, 이 순간 더욱 크게 다가왔다.
전황이 악화될수록 대통령의 침실 풍경도 달라졌다. 머리맡에는 언제나 권총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어느 날 밤, 대통령은 그 권총을 바라보다가 프란체스카의 손을 조용히 잡았다. "이 권총은 마지막 순간 공산당 서너 놈을 쏜 뒤, 우리 둘을 하나님 곁으로 데려다줄 티켓이오."
프란체스카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창밖에서는 매미 소리가 밤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를 길고도 혹독한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1950년 7월 1일 새벽 3시. 황규면 비서가 다급히 대통령의 침실 문을 두드렸다. 북한군이 이미 수원을 돌파해 빠른 속도로 남하하고 있다는 긴급 보고였다.
불과 20분 뒤인 새벽 3시 20분, 주한 미국 대사관 1등 서기관 헤럴드 노블이 숨을 몰아쉬며 관저에 도착했다. "각하, 대전 이남으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곧이어 신성모 국방부 장관과 정일권 육군 총참모장도 도착했다. 세 사람의 얼굴에는 공통적으로 짙은 침통함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결심은 완강했다. "차라리 대전에서 죽겠소.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가 국민의 경멸을 받고 싶지는 않소." 그는 대전 사수를 고집했다. 모두를 물린 대통령은 침실 문을 잠갔다. 그리고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아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는 피난길에 오른 국민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잇따른 패배를 막지 못한 지도자로서의 분노와 자책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 앞에서 당장 전세를 뒤집을 묘책은 없었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그는 메모지 한 장을 꺼내 천천히 글을 적어 내려갔다. "죽음. 그 자체는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다. 다만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다. 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제단에 나의 생명을 바치려 한다. 나의 사랑하는 국민 또한 끝까지 싸워 남북통일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다만 후사 없이 죽는다면, 그것만이 조상께 죄를 짓는 불효일 뿐이다." 새벽은 아직 밝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미 자신의 생사를 넘어, 나라의 운명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노블은 다시 대통령을 찾아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외교관다운 침착함보다 절박함이 먼저 배어 있었다. "각하, 정부의 계속성을 유지하려면 대전을 사수하는 것보다 남쪽으로 이동해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하시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애원에 가까운 설득이었다.
곁에 있던 신성모 국방부 장관도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각하, 부디 남쪽으로 내려가십시오." 대통령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으로 나오자 하늘은 이미 장맛비를 쏟아 붓고 있었다. 굵은 빗줄기가 대지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대통령 일행은 폭우를 뚫고 목포를 향해 길을 나섰다.
김장흥 총경이 대통령과 같은 차에 올랐다. 황규면 비서와 이철원 공보처장, 영부인 비서 김옥자는 다른 지프를 탔다. 경호 경찰 네 명이 마지막 차량에서 뒤를 따랐다.

끝없이 이어지는 빗길은 피난길이라기보다 전쟁터를 빠져나오는 탈출로에 가까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로 목포까지 가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일행은 방향을 틀어 이리역으로 향했다. 황규면 비서가 역장에게 열차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냉정했다.
"객차는 모두 징발됐습니다. 교통부 장관의 명령 없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열차를 내드릴 수 없습니다." 황 비서는 곧장 철도 전화기를 붙들었다. 대전의 김석관 교통부 장관이 전화를 받았다. "곧 열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열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황 비서는 역 구내 매점을 돌아다니며 건빵을 있는 대로 사 모았다. 대통령은 건빵 봉지를 받아 들더니 한 조각 입에 넣었다. "어허, 별미네. 맛있는데." 순식간에 한 봉지를 비워 버렸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허기 앞에서는 건빵 한 봉지도 귀한 식사가 되었다.
오후 1시 40분. 열차는 마침내 목포역 구내로 들어왔다. 김장흥 총경은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열차를 역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곳에 세우도록 했다. 그리고 홀로 목포경비사령부를 찾아갔다.
며칠째 이어진 피난길 때문이었을까. 대통령의 바바리코트는 먼지와 때가 잔뜩 배어 있었고, 흰 파나마모자는 검게 얼룩져 본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수행원들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그들을 대한민국 대통령 일행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초라한 행색이었다.
김 총경은 그런 모습으로 대통령이 군인들 앞에 나타났다가 혹시라도 신원을 알아보지 못한 경비병들에게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까 염려했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사령부를 찾은 것이었다.
김 총경은 정극모 목포경비사령관에게 대통령을 극비리에 부산으로 모셔야 하니 함정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정 대령은 쉽게 믿지 못했다. 사전에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던 탓이었다. "직접 대통령 각하를 뵙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김 총경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곧장 정 대령을 지프에 태우고 대통령이 기다리는 곳으로 달렸다.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색안경까지 낀 대통령을 바라보던 정 대령은 한참 만에야 그가 이승만 대통령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황급히 부동자세를 취한 뒤 떨리는 목소리로 경례하며 신고했다. 대통령은 손짓으로 그를 가까이 불렀다. "내가 부산으로 조용히 가고 싶네. 자네가 수고를 좀 해주어야겠어." 정 대령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각하, 점심은 드셨습니까?" 대통령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 판에 점심은 무슨 점심인가."
정 대령은 곧바로 지프를 몰아 역전 다방으로 달려갔다. 잠시 뒤 그는 홍차와 토마토, 그리고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 들고 돌아왔다.
오후 4시. 대통령 일행은 마침내 함정을 타고 부산을 향해 출항했다. 그러나 바다는 그들마저 순순히 보내주지 않았다. 풍랑이 거세게 일었다. 함정은 성난 파도 위를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수행원들은 하나둘 극심한 뱃멀미에 쓰러졌다. 누워 신음하는 사람도 있었고, 갑판 난간을 붙잡고 구토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만은 끝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파도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함정에서의 식사도 병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꽁보리밥 한 그릇, 짠지 몇 조각, 그리고 된장 한 덩이가 전부였다. 멀미에 지친 사람들은 음식 냄새조차 맡기 싫어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말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그 모습은 피난길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절제와 의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 지도자로서 무너지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