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국가보훈부는 30일 박옥규와 스톤을 11월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 박옥규는 백두산함 인수와 해군 지휘로 전력 기반을 구축했다.
- 스톤은 1951년 가평전투에서 677고지를 사흘간 사수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성진 철수 엄호로 국군 2개 사단 병력 보존
스톤의 PPCLI 2대대, 가평 677고지 사수…캐나다 첫 美 대통령 부대표창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국가보훈부는 30일 박옥규(1901~1971) 해군 중장과 제임스 R. 스톤(1908~2005) 캐나다 육군 중령을 '2026년 11월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한 명은 대한민국 해군의 뼈대를 세웠고, 다른 한 명은 1951년 봄 중공군 춘계공세 때 유엔군 전선의 붕괴를 막았다.
박옥규 중장은 해군 창설기 최고의 조함술(操艦術)을 갖춘 장교로 꼽혔다. 해군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의 인수함장을 맡아 1949년 12월 미국 뉴욕항을 출발, 하와이를 거쳐 이듬해 4월 진해에 입항했다. 6·25전쟁 발발 두 달 전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척의 군함을 직접 인수해 해군 전력의 기틀을 닦았다.

전쟁 중에는 압록강함 함장으로 해상봉쇄작전을 펼쳤다. 중공군 개입으로 유엔군이 철수할 때 함경북도 성진에 집결한 국군 제3사단과 수도사단 일부 병력의 해상 철수를 엄호했다. 지상에서 퇴로가 끊긴 국군 전투력을 바다로 살려낸 작전이었다.
1953년 5월 제1함대사령관에 오른 그는 동해·서해·남해전대를 지휘하며 유엔 해군과 함께 38선 이북을 포함한 한반도 전 해역을 통제했다. 정전협상 막바지에 한국이 유리한 여건을 확보하는 데 힘을 보탰다. 같은 해 6월 제2대 해군참모총장에 취임해 전후 해군 조직과 전력을 재정비했고, 1957년 중장으로 예편했다. 정부는 1954년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스톤 중령은 1950년 12월 캐나다 지상군 선발대인 프린세스 패트리샤 경보병연대(PPCLI) 제2대대를 이끌고 부산에 상륙했다. 대대는 밀양 일대에서 산악전 훈련과 공비 소탕 정찰로 실전 감각을 익힌 뒤 전선에 투입됐다.
1951년 2월 킬러 작전, 3월 리퍼 작전에서 주요 고지를 잇달아 점령했다. 이때 쌓은 전투 경험은 뒤이어 도착한 캐나다 제25여단이 한국 전선에 빠르게 적응하는 토대가 됐다.
결정적 순간은 1951년 4월 찾아왔다. 중공군 춘계공세가 시작되자 스톤 중령은 대대를 가평 677고지에 배치했다.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간 대대는 포위·고립 속에서 거듭된 공격을 막아내며 진지를 지켰다. 이 방어로 유엔군 전선은 무너지지 않았다. 2대대는 이 공로로 캐나다 부대로는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았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