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경제

속보

더보기

[기업,3新경영] 글로벌 기업, 위기 파고 넘다

기사입력 : 2012년07월24일 13:52

최종수정 : 2012년07월24일 13:52

유로존 위기에 따라 글로벌 경제 전반이 장기 불황의 우려감을 높이고 있다. 국내 대표 기업들에게도 이런 우려는 현실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저마다 위기대응체제를 구축하며 글로벌 시장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IMF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통해 충분히 학습한 국내 기업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며 긍정의 힘을 불어넣고 있다. 세계가 놀라는 뚝심의 저력과 세계 1등을 달리는 신기술, 신제품, 신사업은 국내 기업들의 위기극복 키워드다. 이른바 '3신(新)경영'의 현장을 따라가 봤다.<편집자주>

[뉴스핌=양창균 기자]  긴긴 시련의 세월로 다져진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 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다. 지금까지 지속 성장한 글로벌 기업이 이러한 강력한 무기를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셈이다. 하루 아침에 쌓아 올린 명성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를 굳히기 까지 적잖은 위기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아쉽게도 국내의 경우 100년 이상 존속한 장수기업이 두산과 신한은행 동화약품공업 단 세 곳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기업의 위기경영 극복사례는 국내 기업에 많은 시사점 을 던져 주고 있다.

최근 재계에 부는 신기술 신제품 신사업등 3신(三新) 경영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3신 경영의 취지는 위기 극복을 통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선택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순간의 안도감에 사로 잡히는 시점에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 엄습할 수 있다.

최근 '변신'으로 승부하는 글로벌 기업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세계적인 장수기업으로 꼽히는 필립스는 신기술과 신제품 신사업을 통해 120년간 성장한 기업으로 유명하다. 지난 1891년 네덜란드인 제라드 필립스(Gerard Philips)가 아인트호벤(Eindhoven)에 조명회사인 '필립스 앤 컴퍼니(Philips & Co.)'를 설립한 것이 기업 역사의 시작이다. 

필립스는 설립 초기인 1900년 초 탄소 필라멘트 전구 생산에 주력, 유럽 최대의 전구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이어 1938년에는 형광등을 개발, 새로운 조명시장을 열었다. 1939년에는 최초의 필립스 전기 면도기를 출시하며 면도기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필립스는 끊임 없는 기술개발과 신제품 출시 그리고 신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다.

필립스가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한 시점은 2000년대 들어서다. 지난 2001년 CEO(대표이사)에 취임한 헤라르트 클레이스테를레이의 주도로 경쟁력이 저하된 부문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미래 유망산업으로 역량을 집중했다. 기존 주력사업이던 가전등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장기 비전 없이 표류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변신을 단행한 것이다. 조명과 생활가전의 사업구조를 새롭게 짜고 헬스케업을 추가, 3대 핵심 축을 구성했다.

이러한 변신 결과 현재 필립스는 조명업계 세계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의료장비 분야 에서는 세계 3강 과점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필립스를 '레드오션(Red Ocean)을 탈출한 블루스타(Blue Star)'라고 평가했다.

일본의 게임업체 닌텐도는 신기술과 신제품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로 꼽힌다. 

페미콤, 슈퍼페미콤 등으로 80~90년대 일본 내 게임 붐을 주도했던 닌텐도는 이후 32비트 게임기 개발에 난항을 겪으면서 적잖은 위기를 겪었다. 당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의 새턴이 출시되면서 마땅한 대응을하지 못했던 것.

닌텐도는 1996년 뒤늦게 64비트 게임기 닌텐도64를 출시했지만 서드파티와 소비자의 외면 속에 결국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후 2001년 출시된 게임큐브 역시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는 물론 게임업계 첫 진출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에게도 뒤지는 결과를 낳았다.

닌텐도의 이같은 상황이 역전된 것은 2006년 Wii를 출시하면서다. 당시 닌텐도는 잇따른 실패 끝에 ‘게임기의 대명사’ 자리를 완전히 내어주게 된 상황이었지만 이 Wii로 상황을 한번에 역전했다.

특히 이제까지 없었던 컨트롤러의 모션인식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게임업계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던 것. 이 Wii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게임큐브의 실패로 적자를 봤던 닌텐도는 이듬해인 2007년 시가총액으로 토요타자동차에 이어 일본 시장 2위를 차지했다.

2004년 출시됐던 닌텐도DS 역시 이같은 닌텐도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극찬하면서 유명세를 탔던 이 미니 게임기는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왔다. 미니게임기에 터치스크린 기술을 도입했던 것이 인기의 비결이다.

삼성전자 또한 기술력과 신제품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는 TV와 휴대폰, 반도체 등 세계 1위의 분야에서 누구보다 빨리 신기술의 제품을 출시하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가 한 발 앞선 제품개발과 R&D(연구개발) 투자를 바탕으로 한 성과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LCD(액정표시장치) TV, LED(발광다이오드) TV 등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평판TV를  가장 먼저 출시하면서 프리미엄 TV 시장을 선점했다. 이를 계기로 북미와 서유럽 고소득층의 삼성전자 TV 구매가 급증했고, 2006년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 TV업체로 등극했다.

스마트폰 시장의 활약도 눈부시다. 한 때 애플의 아이폰 위세에 위기상황까지 느꼈으나 현재는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 1위 기업으로 등극한 상태이다.

애플 역시 신기술과 신제품, 신사업으로 대표하는 아이폰을 통해 재도약한 경우다.

기존 PC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와 대항해 마니아층을 구현한 애플은 MP3플레이어 시장의 혁명적인 아이팟, 스마트폰시대를 연 아이폰, 아이패드까지 다양한 제품으로 스마트 기술 혁명을 주도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신제품 아이패드3가 출시됐고 앞으로도 애플의 혁신적인 제품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왕의 귀환" 주식 최고의 별들이 한자리에 -독새,길상,유창범,윤종민...

▶ 글로벌 투자시대의 프리미엄 마켓정보 “뉴스핌 골드 클럽”


[뉴스핌 Newspim] 양창균 기자 (yangck@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안규백 64년 만에 문민 국방 [서울=뉴스핌] 김종원 국방안보전문기자 = 국군 최고통수권자인 이재명 대통령은 23일 초대 국방부 장관에 민간인 출신인 안규백(64) 더불어민주당 5선 중진 의원을 인선했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날 "안 후보자가 국회 국방위원회 간사와 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의 대부분을 국회 국방위에서 활동했다"면서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고 64년 만에 문민 국방장관으로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 [사진=대통령실] 안 후보자는 집권 여당인 민주당에서 국방위원장을 비롯해 국방위원으로서 15년 간 의정활동을 했다. 그 누구보다 군과 국방안보를 잘 아는 인물로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도 꾸준히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명됐었다. 특히 안 후보자는 국회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위원장 중책까지 맡았다. 여야 의원들을 아우르며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 중앙선대위 총괄특보단장 핵심 보직을 맡았다. 계엄 사태 주역인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립하면서 어수선한 군을 안정적으로 이끌면서 군 전반을 개혁할 최적임자로 꼽힌다. 합리적인 성품에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인물이다. 다만 상식과 원칙을 중시하며 불법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일에는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이다. 아들 둘 모두 육군과 해병대에서 현역으로 군 복무를 했다.  안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이재명정부의 초대 국방장관으로 취임하면 1961년 현석호 장관 이후 64년 만에 군인이 아닌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이 된다.  한국 정치사의 격동기를 거쳐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장군 출신들이 독식했던 국방장관을 정치 안정기에 들어 사실상 민간인 출신의 진정한 '문민 국방장관'이 나올 수 있을지 초미 관심사다. ▲전북 고창(64) ▲광주 서석고 ▲성균관대 철학과 학사·무역대학원 무역학 석사 수료 ▲18·19·20·21·22대 국회의원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간사 ▲국회 '내란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 kjw8619@newspim.com 2025-06-23 14:13
사진
[이재명의 사람들] 원조 친명' 김영진 [서울=뉴스핌] 이영태 선임기자 =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원조 친명'으로 분류되는 김영진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직언과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이 대통령도 김 의원의 쓴소리는 합리적이라고 판단해 경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2022년 대선 패배 이후 이 대통령이 인천 계양에 출마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했고, 지난해 당대표직 연임에 대해서도 "이 대표가 계속 '설탕'(감언이설)만 먹고 있다면 이빨이 다 썩을 수 있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냈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부인 김혜경 여사를 국회 취임식장으로 안내하는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5.06.23 [사진=김영진 블로그] 이로 인해 둘 사이가 껄끄러워졌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 사이에선 "그래도 (이 대통령이) 당내에서 진심으로 의지한 인물은 김 의원뿐"이라는 말이 돌았다. 김 의원은 중앙대를 졸업한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정치인이다. 이 대통령이 아끼는 중대 후배 중 하나로 내각 구성을 포함한 각종 인선 시나리오에 1순위로 회자된다. 운동권 출신으로 졸업 후 취업이 안 될 때 당시 변호사였던 이 대통령이 취업을 지원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로 인연이 깊다. 그는 2017년 대선부터 이 대통령을 지원한 '원조 친명' 7인회(김영진·문진석·정성호 의원, 김병욱·김남국·이규민·임종성 전 의원) 중 한 명이다. 김 의원은 지난 대선 때 선대위 상황실장, 이번엔 정무실장을 맡아 '전략통'으로 활약했다.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2025.06.23 [사진=김영진 블로그] 김 의원은 중앙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후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의장직을 맡을 때 그를 보좌했다. 1998년 국회 인턴을 시작으로 조세형 의원 비서, 조한천 의원 비서관, 김진표 의원 보좌관 등을 지냈다. 국회의원 보좌진 외에도 민주당 경기도당 대변인 등을 지내면서 주로 당에서 근무하거나,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수원시 병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첫 뱃지를 단 후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 대세론이 굳어지던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대학 선배인 이재명 후보 캠프에 참여해 '진짜 친명'으로 불린다. 2018년 당 전략기획위원장직을 맡아 지방선거를 압승으로 이끌었고, 2년 후에도 다시 한 번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았다. 이 대통령이 당내에서 전략적 조언을 구하는 소수의 인물 중 한 명으로 '이재명 당대표 1기' 당시 정무조정실장을 맡아 근거리에서 보좌했다. 2016년 처음 국회에 입성한 이후 수원병에서 22대까지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여러 선거를 승리로 이끈 전략통으로, 경제정책과 실물경제 흐름에 밝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당 관계자는 "실물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점이야말로 김 의원과 이 대통령의 닮은 점이자 잘 통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1967년 충남 예산 출신으로 유신고와 중대 경영학과(86학번)를 졸업했다. medialyt@newspim.com 2025-06-23 09:01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