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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안철수·문재인 "김대중 대통령은…"

기사입력 : 2012년10월17일 12:12

최종수정 : 2012년10월17일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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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J토론회서 "동서화합·민주주의 노력 뜻 기릴 것"

 [뉴스핌=김지나 기자] 새누리당 박근혜·무소속 안철수 후보 대선후보 등은 17일 재단법인 김대중기념사업회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동서화합, 민주주의를 실현을 노력한 김대중(DJ) 대통령의 뜻을 이어받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지방 일정이 겹쳐 불참한 대신 영상을 통해 축사를 전했다.

새누리당 박근혜·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17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김대중 재단이 주최한 김대중대통령 토론회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있다. [사진=뉴시스]
이날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김대중기념사업회가 주최한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대한민국의 미래’ 토론회에는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정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먼저 축사에 나선 박근혜 후보는 2004년 한나라당 당 대표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했던 적을 회고하며 "김 전 대통령은 '동서화합이 중요하고 여기서 실패하면 다른 것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내가 하지 못한 것을 박 대표가 하라'며 ‘미안하지만 수고해달라'고 했는데 이제는 제가 그 말에 보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길은 동서가 화합하고 민주화세력, 산업화 세력이 화합하고 지역 간 갈등, 반목을 없애는 것”이라며 “지금 우리시대에 꼭 이뤄야 하는 과제로 국민통합이라 생각한다. 국민대통합으로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로 향할 때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민주화의 상징이었지만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에도 많은 노력을 했고, 동서 지역대립을 국민통합으로 승화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제가 처음 정치할 때가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했을 때다. 당시 온 나라가 IMF로 힘들었을 때 김 대통령이 힘을 모아서 위기를 이겨내는 지도력을 발휘했다”고 회상했다.

박 후보는 “지금도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기다리는 지도자도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 국정운영능력, 식견을 갖춘 사람이 아닌가 한다”면서 “국민통합의 리더십으로 이겨냈듯 저도 국민대통합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1997년, 우리 국민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선택했던 이유는 바로 변화였다.  50년만의 여야 간 정권교체로 우리는 낡은 과거의 유산을 딛고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며 “민주주의와 인권이 꽃피는 그 시기에 저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정부가 IT벤처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했기에 가능했고, 민주주의 속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안 후보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해 “1971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이래 수십년간 이념적인 공격과 온갖 종류의 터무니없는 흑색선전에 고통받아야 했다. 목숨을 위협당하고, 투옥과 연금, 납치의 고난을 겪어야 했다”며 “그런 고난 속에서도 그분은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무릎 꿇지 않았다. 마침내 평생 꿈꾸셨던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의 길을 열었다.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역사와 국민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그 깊은 신념과 의지, 통찰력에서 배운다. 지금 제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굴하지 않겠다. 역사와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그 분은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는 말씀을 남겼다. 언제나 국민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국민을 믿고 역사의 발전을 믿었던 그분의 통찰력과 리더십이 새삼 그리운 시간”이라고 끝을 맺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영상메시지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절반이었다”며 “김대중이 있었기에 그 어둠의 시절 험난한 길에서 우리는 길을 잃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김대중은 횃불이었다”면서 “‘행동하는 양심’인 그 분 궤적을 돌이켜 보면, 그 분은 늘 앞발자국이었다. 김구 선생은 ‘눈 위의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이렇게 말씀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님이 남긴 발자국, 제가 따라 밟으려 한다. 그 분이 흩트리지 않고 걸어갔던 길, 제가 또박 또박 앞만 보고 따라 걸으려 한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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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김지나 기자 (fre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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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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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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