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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단독 인터뷰] 승부사 김호철 "내년엔 우승한다…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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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내가 지금 선수로 뛴다면 요즘 애들 게임도 안돼"

러시앤캐시 드림식스 김호철 감독이 프로골퍼 조윤희와 웃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학선 기자]

'호랑이 감독님' 김호철 러시앤캐시 드림식스 감독을 인터뷰 하러 가는 길은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하러 교무실로 가는 것처럼 괜시리 긴장됐다.
김호철 감독은 이전 팀인 현대캐피탈 감독 시절 코트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호통과, 파워풀한 액션, 심판에 대한 거침없는 어필 등 '버럭호철'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역시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는가 보다. '버럭 호철'에 대한 공포는 김 감독을 만난지 10분만에 사라지고 웃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김호철 감독은 무뚝뚝한 '경상도 싸나이'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개그맨 수준의 '입담'을 구사하는 '꽃중년'이었다.

프로골퍼 조윤희가 지난 2월8일 '마술사'란 별명답게 러시앤캐시 드림식스팀을 마술처럼 변화시키고 있는 김호철 감독을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만났다. 김호철(59) 감독과 조윤희 프로의 어머니인 조혜정(61) 전 GS칼텍스 서울 KIXX배구단 감독과는 현역시절부터 친한 사이로 김감독은 조윤희 프로의 어머니를 "혜정이 누나"라고 부른다.

조윤희 프로골퍼(이하 조) : 키도 작은 감독님이 배구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김호철 감독(이하 김) : 밀양 밀주초등학생때 원래 유망한 육상선수였는데 6학년때 배구부가 생긴거야. 애들이 배구공을 가지고 노는게 뜀박질하는 것보다 재미있어 보여 배구부에 지원했지. 그때도 키가 작았는데 공격수로 뛰었어. 공격이 재미있잖아 하하하

조 : 그럼 세터로 변신한건 언제세요?

김 : 밀양에서 서울 대신중학교로 진학을 했는데 당시 감독님이 키가 작으니까 세터를 하라고 하는거야. 처음엔 싫다고 했지. 그런데 세터가 아니면 내가 할게 없는거야. 배구는 꼭 해야겠고 울며 겨자먹기로 세터로 이동했지

조 : 올시즌부터 만년하위팀 러시앤캐시 드림식스를 맡게 됐는데 어떤 심정이셨어요?

김 : 시즌 시작하기 한달전 팀을 맡았는데 와보니까 선수들이 연습도 제대로 안해 배구선수들이 아니라 씨름선수인줄 알았다니까.(웃음)
그래서 올해는 팀을 살리는데 목표를 뒀지. 선수들한테도 플레이오프 진출이니 우승이니 이런 생각하지 말라고 했어. 단지 올해는 좋은 기업에 인수되기 위해 우리가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 보여주자고 했지.
선수들에게 우리가 다른 기업에 인수되고 2년만 고생하면 우승할 수 있다고 설득했지.

조 : 팀이 초반에 8연패 당했잖아요. 솔직히 그때 기분 어땠어요?

김 : 사실 배구하면서 그렇게 많이 져본건 처음이었어. 시즌 초반인데도 이제 선수들의 몸이 조금씩 만들어져 가고 있는 상태라 솔직히 난 10연패 넘길줄 알았어. 하하하. 나중에 들었는데 선수들도 8연패 당하면서 굉장히 힘들어 했다더군. 그정도로 많이 지면 감독들은 대개 불같이 화를 내거나 특단의 조치를 하는게 당연한 거잖아.
그런데 난 게임에 지고 선수들이 벤치로 돌아오면 "수고했어, 가자"라고 쿨(?)하게 말했거든. 불같은 성격의 내가 담담하게 받아들이니까 선수들은 더 불안하고 미안했던거지.
러시앤캐시 드림식스 김호철 감독이 프로골퍼 조윤희와의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김학선 기자]

조 : 8연패 당했는데도 어떻게 담담할수가 있어요?

김 : 우리 팀이 지는건 너무 당연한 거였으니까. 1년 내내 훈련하면서 준비한 팀을 연습도 제대로 안한 팀이 이길려고 하는건 과욕이고 도둑놈 심보지. 그땐 우리가 질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선수들이 경기하랴 훈련하랴 몸 만드느라 고생 많이 했지. 훈련량을 엄청 늘렸거든. 거의 매일 야간훈련이고 심지어 시합전날에도 입에서 단내나게 뛰었어.

김호철 감독의 지옥훈련으로 러시앤캐시 드림식스 선수들은 현재 체중이 평균 7~8kg씩 줄어들었고 컨디션도 많이 올라온 상태라고.러시앤캐시 드림식스는 2월19일 현재 11승 13패 승점 33점으로 LIG손해보험과 11승13패로 같지만 승점(35점)에서 뒤져 5위에 올라있다. 3위 대한항공(14승10패 승점 42점)과는 3게임차.

김호철 감독은 지난 2월5일 열린 삼성화재와의 경기에서 진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러시앤캐시는 이날 부동의 1위 삼성화재를 맞아 분전했으나 3-2로 무릎을 꿇었다. 이날 삼성화재를 잡았다면 러시앤캐시는 3위 대한항공과의 격차를 2게임으로 좁히는데다가 팀 분위기도 상승세를 타 플레이오프 진출의 불씨를 살릴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 : 그럼 내년 시즌 예상 성적을 살짝 공개해 주세요

김 : 음... 이건 천기누설인데.(웃음) 다른 기업에 인수되고 괜찮은 용병만 영입하면 우승도 가능하다고 봐. 올해는 돌풍에 그쳤는데 내년에는 프로배구무대에 태풍을 일으키고 싶어. 현재 드림식스 선수들은 한마디로 리모델링 중이거든. 자신들의 단점을 보완해 한단계 더 성장하는 과정에 있어. 전에 드림식스 선수들은 단점을 보완할 생각도, 할 생각도 없었어. 그래서 내년에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봐.

조 : 감독님은 1981년에 이탈리아에 진출하셨잖아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찬호 선수나 프리미어리그의 박지성 선수 등 한국선수들이 다들 인종차별을 겪었다고 고백했는데 감독님은 어떠셨어요?

김 : 그때도 인종차별은 있었지.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신보다 잘하면 공손하고, 못하다 싶으면 완전 무시하는 특성이 있어. 그런데 나는 경기를 지휘하고 볼을 공격수에 적절히 토스하는 세터였잖아. 내가 공을 안주면 그 선수는 경기에서 할 일이 없거든. 그러니까 다들 나한테 잘보일려고 졸졸 따라다녔지.(웃음)

김호철 감독은 1979년에 이탈리아 안코나로 진출한 조윤희 프로의 어머니 조혜정 당시 선수의 소개로 1981년 이탈리아 멕시카노 파르마클럽에 입단해 40세까지 선수로 뛰었다. 이후 멕시카노 파르마클럽, 베네통클럽 트레비소, 라벤나 밀라빌란디아, 트리에스테 감독 등을 거쳤다.
김호철 감독이 이탈리아에서 선수로 뛰던 시절 서독에는 '차붐' 차범근 선수가 네덜란드에는 허정무 선수가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조 : 컴퓨터 세터, 황금의 손, 마술사 등 별명도 많은데 감독님은 어떤 별명을 좋아하세요?

김 : 난 마술사가 가장 마음에 들어. 상대방을 그만큼 잘 속인다는 의미라 세터에게는 최고의 칭찬이지. 이탈리아에서 뛸때 붙은 별명인데 마술사란 의미의 '마지꼬'로 불렸지.

조 : 요즘 말로 '돌직구' 질문 하나 할게요. 20대 전성기때 감독님 실력으로 지금 V리그에서 선수로 뛴다면 통할 것 같으세요?

김 : 당연하지. 솔직히 지금 선수들은 키와 힘은 좋아졌지만 테크닉이나 정신력 등은 내가 선수로 뛰던 때보다 많이 떨어져. 세터뿐 아니라 공격수도 1970~1980년대 선수들이 지금보다 실력이 훨씬 낫다고 봐. 볼을 다루는 테크닉도 옛날 선수들이 훨씬 잘했어.

감독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봐도, 은퇴한 배구 선후배들과 얘기를 해봐도 지금 선수들의 실력은 과거에 비해 퇴보했다고 입을 모을 정도니까.

왜냐하면 과거에는 공격수도 세터와 수비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춘 '토탈 배구'스타일 이었다면 지금은 각자 포지션에 충실하게 세분화 돼 있어.  공격수는 공격만 하고 수비 등 다른 포지션은 잘 못하거든. 요즘 잘나가는 스타플레이어가 '반쪽 선수'라는 평을 듣는게 그런 이유야.

조 : 친정팀인 천안 현대캐피탈과는 '시내버스 시리즈'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매 경기가 화제가 되고 있잖아요. 현대캐피탈과 붙으면 꼭 이기고 싶으세요?

김 : 현대캐피탈은 옛 제자들인데다가 실력도 우리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안들어. 현대캐피탈과 경기하면 이기든 지든 마음이 찡해. 이겨도 썩 기쁘지 않아. 오히려 "쟤들이 왜 저렇게 경기를 하지?"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지.

김호철 감독의 러시앤캐시는 현대캐피탈과 올시즌 5번 맞붙어 3승2패를 기록중이다.

조 :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님과는 초등학교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잖아요. 현대캐피탈 감독 시절 두분은 라이벌로 주목을 받았는데 신감독님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세요?

김 : 신감독과 라이벌이라는건 언론이 만들어 준거지. 난 라이벌이기보다는 배구의 길을 같이 가는 동반자이자 서로에게 빛과 그림자라고 생각해. 신치용이 빛나려면 김호철이 있어야 하고 김호철이 빛나려면 신치용이 있어야지.
내가 러시앤캐시 감독 맡으니까 신감독이 "호철아, 올해부터는 라이벌 아니다" 그러더라고. 하하하

조 : 선수 시절에 라이벌은 누구에요?

김 : 솔직히 한국에서는 없었어(웃음). 세터로서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1970~1980년대 한국킬러로 알려진 일본 세터 네코다(猫田)선수였어.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을 가졌던 선수지.

조 : 내 인생 최고의 경기가 있다면

김 : 1979년 12월21일 바레인에서 열린 아시아배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일본에 3-2로 역전승했어. 그날 승리는 한국 남자배구 역사상 50년만에 일본을 처음으로 꺾은 날이었지. 그때의 감격은 절대 잊을수 없어

김호철 감독이 국가대표로 출전한 바레인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모스크바 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일본과 중요한 첫 경기를 가졌다. 일본전에는 김호철 당시 선수를 비롯해 강만수, 장윤창, 이인, 차주현 등 '배구의 전설'들이 대거 출전했다. 당시 한국팀은 두세트를 내리 내줘 패색이 짙었지만 김호철 선수의 절묘한 토스와 강만수, 장윤창 선수의 공격, 이인의 블로킹포인트를 앞세워 역전의 드라마를 썼다.

조 : '호랑이 감독님' 스타일은 집에서도 똑같으시죠?

김 : 난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와이프한테 매번 혼나. 아이들한테도 선수 가르치듯이 한다고(웃음).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어

조 : 은퇴후에는 무슨 일 하고 싶으세요?

김 : 배구꿈나무들을 키우는 어린이 배구교실을 하고 싶어. 꿈나무들이 많이 나와야 배구가 옛날의 명성을 되찾을수 있지.

김호철 감독이 본지 독자들에게 보내는 새해 인사 친필 사인.


[뉴스핌 Newspim] 정리=김인규 기자 (anold@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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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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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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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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